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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나의 애꾸눈 두꺼비

나의 애꾸눈 두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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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형 작가, 농부 말라붙은 그의 한쪽 눈 무성한 바랭이 풀 한 무더기 휘어잡는 순간, 물컹! 손아귀에 잡히는 덩어리. 이크! 기겁하며 물러난다. 빽빽한 풀더미 속에서 흙빛 덩어리가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온다. 어른 주먹만 한 두꺼비다. 나 못잖게 저도 놀랐으련만 걸음걸이는 느릿느릿 태평하기만 하다. 역시 두꺼비다. 천지가 요동쳐도 끄떡 않는 단단한 저 뱃심!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는 나 같은 사람은 평생 애써도 못 따라갈 태도다.   한 눈 잃은 두꺼비. 고개 숙여 녀석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깜짝 놀란다. 눈 하나가 없다! 오른쪽 눈은 검고 촉촉한데 왼쪽은 말라붙어 흔적뿐이다.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거냐. 상흔만으로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저 몸으로 야생에서 어찌 살았을까. 거리 측정이 어려우면 사냥도 쉽지 않았을 텐데……. 덩치가 상당히 큰 것으로 보아 제법 나이 든 두꺼비다. 한 눈으로 살아낸 그의 삶이 새삼 장해 보인다. 그날 이후 우리 집 두꺼비는 둘로 나뉘었다. 한 눈 없는 두꺼비와 그냥 두꺼비. 앞마당과 뒤뜰, 야외수도와 연못가에서 덩치 큰 두꺼비를 만나면 나는 꼭 다가가 그 얼굴을 확인했다. 한 눈 잃은 그가 맞는지, 나의 애꾸눈 두꺼비가 맞는지. 어쩌다 그를 만나면 마음이 환해졌다. 기특해라! 잘 살고 있구나! 나는 한 눈 잃은 두꺼비에게 끌렸고, 그를 걱정했고, 그를 아꼈다. 우리 뜰 어딘가에 그가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애틋하였다. 두꺼비가 믿는 구석 나는 두꺼비에 매료된다. 느릿느릿 평화로운 걸음, 약간 졸린 듯한 게으른 눈매, 한껏 미소 짓는 커다란 입, 그리고 지상에 탄탄히 내디딘 앞 발가락의 너비까지 마음에 든다. 두꺼비의 묵직한 안정감과 달관한 듯한 태도는, 요동치는 세상에서 온갖 풍파에 시달리며 마음을 닳는 나 같은 인간에게 경외감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 감정은 내가 원했으나 평생 갖지 못한 품성, 나의 결핍과 선망의 투사일 뿐이다. 두꺼비야 두꺼비로 충분하지, 평화와 달관 따위 알 게 뭐람.   두꺼비는 축축한 자리를 좋아한다.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대다수 야생동물은 본능적인 긴장과 예민함으로 포식자의 급습에 대처한다. 그러나 두꺼비는 두려움에 쫓기지 않고, 호들갑 떨지 않고, 웬만한 이변에도 놀라지 않는다. (등덜미를 와락 잡히고서도 뭔 일 있느냐는 듯 천연덕스럽던 그 녀석!) 바삐 돌아다니지 않는 걸 보면 그리 부지런한 성품도 아니다. 두꺼비는 안다. 그렇게 살아도 문제없다는 걸. 타고난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다. 바로 살갗의 독이다. 두꺼비에겐 독충을 삼켜 독을 축적하는 능력이 있다. 천적인 능구렁이에겐 통하지 않지만, 그 밖의 상대에겐 꽤 강력한 방어 무기다. 내면이 강한 자는 온순하다. 두꺼비는 온순하다. 불행히도 인간을 상대할 때 두꺼비의 느긋함은 치명적이다. 인간이 휘두르는 도구의 속도와 위력을 두꺼비는 알지 못한다. 진동과 소리에 겁이라도 먹으면 좋으련만, 제 독만 믿고 천하태평이다. 두꺼비는 아직 인간이라는 종을 배우지 못했다. 그들의 진화사에는 인간의 가공할 속도와 폭력성, 물리력과 인공의 장애물이 없었다. 세대를 거듭하며 진행되는 생명체의 진화 속도는 광속처럼 빠른 인간 문명의 진보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 간극을 좁힐 진화의 시간이 두꺼비에게 남아 있을까.   흙 속에서 튀어나온 어린 두꺼비. 누가 길을 가로질렀나 친구 집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 다녀오는 길, 가을비에 젖은 지방도를 달리는 동안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것들이 쉴 새 없이 헤드라이트 앞으로 뛰어든다. 습기 충만한 날에 한껏 활발해진 개구리들이다. 팔짝 뛰는 작은 녀석들을 깔아뭉개는 일이 나는 끔찍하게 싫다. 두 손으로 핸들 꼭 쥐고, 허리 바짝 세우고, 브레이크에 발 얹고,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아스팔트만 노려보며 간다. 제한속도 60에 40을 밟으며 간다.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 움직이는 허들(hurdle)들, 반짝반짝 다가와서 팔짝팔짝 달아난다. 나는 장애물 경주 선수처럼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양쪽 바퀴 폭을 번개처럼 계산하며 반사적으로 피한다. 심장이 덜컹, 브레이크 쿨렁, 핸들은 좌우로 휘청휘청. 개구리 십여 마리를 막 피했는데 갑자기 넙데데한 두꺼비 옆구리가 차도로 들어온다. 이크!” 어기적어기적 두꺼비 걸음을 피해 급히 핸들을 꺾어 중앙선을 넘는다. ​어둠에 잠긴 왕복 2차로에 오가는 차량은 없다. 수백 마리 양서류를 피하는 묘기를 부리며 한 시간 만에 집에 도착하니 긴장감으로 어깨가 뻣뻣하다. 무단횡단 개구리들이 너무 많아.” 한숨처럼 내뱉는 순간, 문득 ‘무단횡단한 게 누군데?’라는 항변이 마음 안쪽에서 울린다. 개구리의 길을 가로지른 게 누군데? 두꺼비가 오가는 물과 산 사이를 끊은 게 누군데? 새로 낸 도로 위로 거대한 쇳덩이를 굴려 그들을 납작하게 깔아버린 게 누군데?   연못과 연결된 수로에서 애꾸눈 두꺼비를 또 만났다. 허들은 그들이 넘고 있다 대형 맹금류는 종종 풍력 터빈에 충돌해 치명상을 입는다. (…) 낮에 날고 지구에서 가장 날카로운 눈을 가진 새들이 어떻게 그렇게 크고 눈에 띄는 구조물을 피하지 못할 수 있을까? (…) 독수리가 풍력 터빈에 정면 충돌하는 것은, 하늘을 나는 동안 정면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사의 대부분에서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 에드 용, 『이토록 굉장한 세계』, 112쪽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의 눈은 정면을 향하지만, 독수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새(올빼미 제외)는 측면에 눈이 있다. (고개를 돌리지 않는 한) 인간이 자기 뒤를 볼 수 없듯이, 새들에겐 머리 위쪽이 사각지대다. 사냥감을 찾아 땅을 훑어보며 나는 독수리에게 정면의 거대한 풍력 터빈은 사각지대에 숨겨진 죽음의 구조물이다. 독수리 진화의 역사는 자연의 허공에 치명적인 구조물이 서 있을 수 있다는 걸 가르치지 않았다. 기나긴 지구 생명체의 역사에서 보면 인류 문명은 어느 날 갑자기 평지 돌출한 거대한 장애물이다. 예측 불허의 무수한 허들이 자연 속으로 쉴 새 없이 난입했고 지금도 난입 중이다. 허들은 그들이 넘고 있다. 뱀이, 개구리가, 두꺼비가 길을 가다 깔려 죽고, 잠자리가 짝을 찾아 날다 자동차 앞유리에 부딪혀 죽고, 새들이 비행하다 건물 창문에 부딪혀 머리가 깨져 죽는다. 느닷없이 나타난 허들의 폭격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터지고 깨지고 깔려 죽는다. 그들의 길을 끊은 건 우리다. 무단횡단자는 우리다.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진 오색딱따구리. 다행히 살아서 날아갔다. 죽음과 초록이 함께 있다 초가을 풀들이 씨앗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풀씨 맺히기 전에 뽑으려 했는데 일이 많다 보니 뒷전으로 밀렸다. 옆사람이 예초기를 든다. 나는 야외수도 주변의 풀을 매고, 그는 비탈의 풀을 예초기로 친다. 엔진 예초기의 요란한 소음이 점점 내 쪽으로 가까워진다. 가까이 있다간 튀는 흙과 돌 조각에 맞기 십상이다. 피하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위잉! 풀 조각과 함께 뭔가가 날아와 내 발 앞에 툭 떨어진다. 허연 살점 한 조각. 악, 내 짧은 비명이 엔진 예초기 소음에 묻힌다. 그것이 두꺼비의 일부란 걸 확인한 순간, 충격이 나를 후려친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머릿속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 끔찍한 폭력의 소식도 전달 경로를 늘리면 구경거리로 변하고, 당사자와 멀어질수록 체감의 강도는 약해진다. 시골에서 맞닥뜨리는 죽음은 진저리칠 만큼 날것이다. 도시에 살았다면 예초기에 잘린 두꺼비 살점이 내 발 앞에 떨어질 일은 없겠지. 나는 관찰자이기를 원했지만, 끝내, 자주, 가해자가 된다. 부릅뜬 눈으로 죽음의 증거를 내려다본다. 혹시 그 녀석일까. 불길한 상상을 세차게 도리질한다. 나는 확인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 절대 알고 싶지 않다. 옆사람이 예초기를 휘두르며 멀어진다. 주변에 풀 냄새가 진동한다. 풀이 잘려나간 자리의 향기. 풀의 피. 나는 맥이 풀려 주저앉는다. 죽음과 초록이 햇살 속에 함께 있다.   어린 두꺼비 엉덩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두더지 잡기』를 쓴 작가 마크 헤이머는 예초기의 불필요한 학살”에 몹시 마음이 상해 대안으로 낫을 택한다. 우리 역시 한때 ‘서서 베는 낫’을 쓰기도 했지만 결국 예초기로 돌아왔다. 정원의 풀 정도면 손과 낫으로 감당할 수 있지만, 천 평 밭과 아홉 배미 논둑을 제초제 없이 관리하려면 예초기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화학적 살해와 물리적 살해 사이 선택의 문제인가. 죽이고 싶지 않은데도 죽이는 도구를 휘두르는 딜레마라니. 그날의 사고 이후 옆사람의 예초기 작업은 더 신중해졌다. 그는 개구리와 두꺼비와 뱀을 난도질하지 않기 위해 되도록 천천히 움직인다. 두꺼비가 있을 만한 습한 자리를 피하고 이슬 내린 아침저녁 시간엔 예초기를 돌리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최선이다. 땅을 파고 풀을 뽑고 작물을 길러 먹고사는 농부로서 살생을 피하기가 이토록 어렵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느라 애썼구나. 추석을 앞두고 풀 베는 예초기 소리가 마을길에 요란하다. 나는 풀숲 그늘에 엎드린 작은 동물들, 그중에서도 특히 느려터진 두꺼비를 생각한다. ‘제발 도망가라, 도망가. 눈치 빠른 쥐처럼, 미끄러운 뱀처럼, 겁쟁이 개구리처럼, 제발 달아나라, 달아나.’ 그러나 나는 무력하고 내 기도는 헛되다. 예초기 소리가 그치고 길과 들판이 조용해진다. 그들은 소리내지 않는다. 학살 중에도, 학살이 끝난 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찮은 죽음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나의 애꾸눈 두꺼비를 보지 못한 지 해를 넘겼다. 그를 오래 그리워했다. 어느 날, 뒤꼍의 퇴비 더미를 치우다 마른 두꺼비 사체를 발견했다. 미라처럼 뼈와 가죽만 남았지만 한눈에 두꺼비란 걸 알 수 있었다. 혹시 녀석일까? 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본다. 이미 두 눈이 다 말라붙어 한쪽 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어쩌면 그인 듯도 하다. 어쩌면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죽었을까? 어딘가에 살아 있을까? 살아 있다면 텃밭에서 딱 한 번만 마주치면 좋겠다. 가슴이 벅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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