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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그래미가 놓친 양심, 아카데미가 지켜…케데헌 재평가

그래미가 놓친 양심, 아카데미가 지켜…케데헌 재평가
[교육]
김성수 문화평론가  가 마침내 9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실상 주인공이 되었다. 3월 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이번 시상식에서 은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주제가인 ‘골든’은 최우수 주제가상을 거머쥐었다. 골든글로브에서의 수상 결과가 고스란히 오스카로 이어진 것이라 새삼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미에서 격을 낮춰 시상하면서 최초의 KPOP 아티스트의 그래미 수상이라는 기록만 남겨놓았기에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어버린 에 대한 미국 문화예술계의 평가가 왜곡되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오늘의 수상은 이를 바로잡은 것으로 아카데미의 권위를 다시 확인하고 공동체의 문화적 기록에 대한 미국 문화예술인들의 양심을 회복한 결단이라 볼 만하다. 가치 높이기 위한 최대의 배려 아카데미는 의 가치를 아로새기기 위해 여러 가지 배려를 했다. 축하무대에 ‘골든’을 배정한 것은 기본이고 아예 의 프롤로그를 먼저 무대에 올렸다. 갓을 쓴 저승사자가 무녀들로 보이는 선대의 헌터스들과 대결하는 안무를 풍물과 함께 연출하면서 판소리 창법에 얹어 한국어 가사 어둠을 밝히려 우리 노래 부르리라 / 굳건한 이 소리로 이 세상을 고치리라 를 또박또박 토해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역대급 장관이었다. 최초 발매된 OST 앨범에는 아예 실리지도 않았다가 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따라 싱어롱 버전에 담긴 신비한 노래, ‘헌터스 만트라’의 완벽한 무대화는, 의 수상 의미를 담아낸 매기 강 감독의 수상 소감, ‘골든’의 역할을 분석한 이재의 수상 소감과 어우러지며 올해 미국의 2030들이 한국의 전통 문화상징들이 쏟아지는 콘텐츠를 왜 선택했는지를 정확하게 기록해 내었다.   이재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2026.3.15. 로스앤젤레스 AP 연합뉴스 게다가 아카데미 시상식 연출팀은 주제가상 시상자로 팝스타 라이오넬 리치를 섭외했다. 그는 흑인으로 네 번째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한 아티스트이며, 흑인 음악이 주류 팝이 되어 클래식과 어우러진 영화 의 주제가를 작곡하고 부른 당사자다. 영화 는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탈주를 결심한 러시아 발레리노와 엉겁결에 그와 공연을 하게 된 흑인 탭 댄서의 우정을 기둥 삼아서 클래식과 대중문화의 아름다운 콜라보, 이질적인 문화의 벽을 넘은 연대, 그리고 예술가에 있어서 자유의 의미 등을 성공적으로 담아낸 수작이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현실은 이 작품의 서사를 무너지게 한다. 아카데미는 라이오넬 리치와 영화 의 두 댄서를 통해 다양한 벽을 넘어서는 예술의 위대함을 강조하면서, 자유가 무너지고 전범국이 되어버린 지금의 미국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는 역으로 의 가치를 입증하는데, 로 상을 받은 라이오넬 리치의 손에서 오스카가 이재에게 넘어가는 장면은 의 서사가 1985년 당시 시대정신을 품고 소련의 붕괴까지 예고한 영화 에 버금가는 역할을 해내었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는 것이다. MZ세대의 불안과 공포, 고독 속에서 일어난 현상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의 열기는 쉽게 무시할 수 있는 문화 현상이 아니다. 흔히 MZ세대라 일컬어지는 2030세대가 막연한 불안과 공포, 고독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발현된 현상이다. 예컨대 이들은 자신이 공들여 배운 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조차 없는 첫 세대다. 교육 전문가들은 영상으로 학습하는 양이 많아 학습의 밀도가 낮고 다른 사람과 소통이 적어 학습 성취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지만, 문화적으로 보면 미래가 너무 빨리 현실이 되는 상황에 십수 년을 두고 투자를 해야 하는 기존의 시스템은 써먹지 못하는 지식이나 기술을 쌓는 것이 된다. 그들은 변화를 따라잡는 일상 프로세스로서의 학습, 즉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바빠 깊이 있는 학습과 연구를 선택하기 어려운 것이다. 장기 계획이 무의미해진 상황에 돌발적 사고는 쉽게 일상을 파괴한다. 기후조차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기본 방어기제인 가족공동체마저 완전히 해체된 상황에 놓인 그들은 외로워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 언제 내게 해를 끼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끊임없는 불안과 막연한 공포, 그리고 절대 고독은 매 순간 영혼을 잠식한다. 그들에게 미래가 있으니 한 발이라도 일단 떼어 놓으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한 강요라고 느껴진다. 권위 있는 거의 모든 것은 파괴되었기에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당연히 기준, 원칙조차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수가 롤모델이 없다고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것인데, 신뢰할 만한 기준과 원칙이 없다보니 타로나 점술에 의존하는 것이 고작이다. 분명한 것은 이 지독한 혼돈의 세상을 만든 자들이 기성세대들이라는 사실이다. 비대해진 자본주의에 포획된 상황에 그 풍요를 누리다가 변화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한 그들은 자신의 권리를 더 많이 누리려다가 인류의 가장 중요한 방어기제인 공동체와 자연을 모조리 파괴해 왔다. 입으로는 온갖 이념과 가치를 늘어놓지만, 결국 약자에 대한 수탈과 만인에 대한 투쟁만을 유일한 생존 법칙으로 확립한 위선자들이자 내로남불의 전형이 그들이다. 그들처럼 되기 싫지만 그들 정도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절망이 또 상대적 박탈감을 키운다. 사실 이들의 상황을 거의 모든 콘텐츠들이 직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98회 그래미 어워드가 선택한 올해의 노래.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야생화(WILDFLOWER)’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데뷔 때부터 우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음악에 속삭이는 듯한 저음 위주의 노래를 얹어 자신과 같은 세대를 대변했다. 앨범 아트워크와 뮤직비디오까지도 어둡고 기괴한 콘셉트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런 일관성은 MZ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고 지금의 미국 상황과 어우러지면서 유효한 문화적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방에 처박혀 시들지 말고 뛰쳐나와 부딪치라는 KPOP 메시지 하지만 같은 문제를 다루면서도 KPOP은 전혀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나란히 수상 후보에 오른 로제의 ‘APT’와 헌트릭스의 ‘골든’은 살아 펄펄 뛰는 심장소리 같은 드럼비트로 흥을 돋구고 자신들을 얽매고 있는 온갖 장벽들에 몸을 던져 부딪치고 저항하는 듯한 곡의 전개를 선택한다. 내가 누군지 몰라서, 내가 아닌 존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지 몰라서, 돌발적인 사고나 무한경쟁의 룰이 나를 다치게 할지 몰라서 방에 처박혀 시들어 가는 삶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무리들과 함께 게임을 하거나(‘APT’) 함께 노래를 부르며(‘골든’) 눈 앞의 문제에 부딪쳐 보자고 독려하고 응원하는 것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으며 2관왕에 오른 16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핫트랙스에 진열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음반. 2026.3.16. 연합뉴스 가사에서도 이 차이는 더욱 분명하다. 빌리 아일리시의 ‘야생화’는 자신의 절친과 사귀었던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 절친이 망가져 갔듯 본인도 그렇게 될 것임을 느끼면서도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절친의 남자와 사귀는 것이 선을 넘은 것임을 직감하지만 그가 본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우기며 먼저 관계를 끊지 못하고 있는 화자는 어떤 윤리적 기준도 신뢰하지 못하고 본능에 따라 반응하며 그것이 쿨한 일이라 여기는 세대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준다. 절친과의 연대감은 이미 깨져 공동체는 해체되었고, 언젠가 남자는 절친을 버리듯 자신도 버릴 것임을 알기에 불안은 더 커져만 가도 그 혼란을 주체적으로 탈출할 방법이 없는 화자. 혹자는 자기 예언적 학대에 빠져 있는 우울증 환자들의 상황이라 분석하기도 하고, 윤리적 기준에 혼란을 느끼면서 무엇도 판단하지 못해서 행동하지 못하는 미국인들의 현실을 은유한다고 분석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노래 속의 화자는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통이 서툴러 술게임을 해야 속내를 터 놓을 수 있는 ‘APT’의 화자는 파티를 열고 말을 걸고 상대에게 내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호소한다. 심지어 ‘골든’의 화자는 유령처럼 혼자 버려졌고 두 가지 삶 속에서 누군가를 속이고 가면을 쓴 채 살아왔지만 이제는 숨지 않겠다고, 타고난 것처럼 모두는 다 빛나는 존재라고, 열심히 꿈꾸고, 함께 위로, 더 나은 삶으로 가자고 응원하고 독려한다. 넋두리나 하소연 아닌, ‘회복 시키는 노래’ 선택한 오스카 오스카에서 주제가상을 놓고 마지막까지 승부를 벌인 영화 의 주제가인 ‘I lie to you’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한과 혼이 담긴 정통 블루스 장르의 노래로 매력적인 완성도를 보여주었지만 메시지는 역시 빌리 아일리시의 ‘야생화’와 유사하다. 영화 안에서는 과거와 미래의 영혼까지 불러오는 강력한 장치로 작용하는 이 노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살던 시기에 블루스 대신 성경과 찬송가를 강요당하는 이야기를 기본 서사 축으로 삼고, 노래의 화자는 블루스를 싫어한다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정신을 차리라는 가사들이 들어있지만 비탄과 우울을 호소하면서 자신을 위로해 줄 대상을 찾는 후렴은 결국 현실의 고통을 참아내고 잊는 것이 유일한 방법임을 세뇌한다. 그래미는 두려움을 이겨내며 세상에 손을 내미는 화자도, 온갖 차별 속에서도 끝내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주위의 친구들까지 함께 노래하게 만드는 화자도 외면하고, 혼돈과 욕망에 빠진 우울증 환자의 넋두리를 선택했지만, 오스카는 정체성을 속이고 자위하며 견디는 노인의 하소연 대신 ‘골든’을 선택함으로 두려움에 맞서 싸우는 실천이 필요함을 암시한 것이다. 이재의 오스카 주제가상 수상 소감은 사실 이런 오스카의 선택에 빛을 더해 준 화답이었다. 이제는 ‘골든’이 성공이나 승리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시키는 노래”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덧붙이면서 매기 강의 우리가 주인공인 영화”가 주류로 인정받게 된 현상은 단지 결과에 불과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래서 이는 하나의 사건이다. 미국과 전 세계가 치유되고 회복되기 위해서는, 오랜 질곡을 견뎌내고 공동체와 특유의 문화적 DNA를 지켜내면서 민주주의까지 회복시켜 온 특별한 지혜가 필요하다는 각성을, 어워드란 이벤트로 기록해 낸 일이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레이 아미, 이재, 오드리 누나(왼쪽부터)가 ‘골든’ 무대를 연출하고 있다. 2026.3.15. 연합뉴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비롯해 엠마 스톤까지 많은 할리우드의 스타들과 영화 제작자들이 응원봉을 들고 흔들면서 의 극 중 걸그룹 헌트릭스 를 현실화한 이재, 오드리 누나, 레이 아미의 ‘골든’ 무대와 하나가 된 장면을 연출한 것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이다. 전쟁과 인종차별 반대의 메시지가 쏟아졌지만 그것들이 오히려 ‘골든’ 무대의 양념이 된 98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이제 앞으로 어떻게 기억될지가 더 궁금한 시상식이 되었다. 양심을 지키고 미국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이번 시상식으로부터 시작될 흥미로운 변화가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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