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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트럼프로 환생한 120여 년 전의 매킨리 망령

트럼프로 환생한 120여 년 전의 매킨리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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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슬로건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입니다. 이는 원래 로널드 레이건이 1980년 대선 캠페인 당시 사용했던 Let s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슬로건에서 가져왔어요.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 패배의 후유증으로 자존심이 크게 꺾인 상태였는데, 이 구호를 통해 미국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트럼프는 2012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패배한 후 Make America Great Again”으로 단순화했고, 이 구호는 그의 지지층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는데요. 거기에는 미국이 제25대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대통령 시절에 누렸던 경제적 번영, 강력한 국력, 그리고 전통적 가치를 다시 회복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름대로 뚜렷한 역사의식에서 나온 슬로건인 것이지요.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  알래스카에는 북미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있었습니다. ‘매킨리 산(Mount McKinley)’이라고 불리던 것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5년 알래스카 주민들의 오랜 요구를 받아들여 ‘높은 곳’이라는 뜻을 가진 디날리(Denali)로 바꾸었어요. 그런데 트럼프가 2025년 1월 취임 직후, 이 산을 다시 ‘매킨리 산’으로 되돌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그만큼 매킨리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을 분명히 한 것이라 볼 수 있어요. 하원의원 낙선하고 주지사 당선된 ‘관세의 왕’ 매킨리 윌리엄 매킨리(1843~1901)는 1897년부터 1901년까지 재임하면서, 미국이 전통적인 고립주의를 벗어나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발판을 마련한 인물입니다. 오하이오주 출신으로 18세의 나이로 남북전쟁에 사병으로 자원입대했다가 소령까지 진급했는데요. 전쟁 후 법학을 공부하고 오하이오주 캔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876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14년간 재임했습니다. 그는 미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고율관세를 주장했어요. 그가 1890년 하원 세입위원장으로서 주도한 ‘매킨리 관세법’은 수입 관세율을 평균 49.5%까지 끌어올리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관세의 왕’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 결과 국내 산업 보호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물가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을 가져 왔어요. 특히 상대국들의 보복 관세로 인해 미국의 농산물 수출이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독점 대기업의 이익만을 보장해 준다는 비판을 받았지요. 그 결과 189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하원 의석의 절반 가까이를 잃는 참패를 당했고, 법안 주도자인 매킨리 본인도 하원의원직에서 낙선했습니다. 그 여파는 1892년 대선에도 반영되어 공화당의 벤저민 해리슨 대통령이 낙선하고, 관세 인하를 내건 민주당의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당선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매킨리는 이 낙선을 계기로 고향 오하이오 주지사가 되어 대권후보로 부상했어요.   미서전쟁 전리품으로 챙긴 필리핀 쿠바, 그리고 하와이 189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당선된 매킨리는 미국 경제를 산업화하고 영토를 확장하며 현대 미국의 기틀을 닦았으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통해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매킨리 대통령의 해외 진출 정책은 미국이 먼로 독트린이라는 고립주의를 벗어나 세계적인 제국주의 강대국으로 변모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어요. 그는 경제적 이익과 전략적 요충지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영토 확장과 통상 정책을 펼쳤습니다. 매킨리의 가장 대표적인 해외 진출 사례는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인데요. 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 미국은 명실상부한 제국주의 국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전쟁의 결과 체결된 파리 조약을 통해 스페인으로부터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을 할양받았어요. 특히 스페인에게 2000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7~8억 달러 상당)를 지불하고 필리핀 제도 전체를 넘겨받았습니다.   미서전쟁에 참전한 미국 의용군 러프 라이더 그리고는 에밀리오 아기날도를 중심으로 1899년 1월 아시아 최초의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필리핀 민족해방운동 세력을 가혹하게 진압했습니다. 이때 최소 20만에서 많게는 100만에 달하는 필리핀인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미국은 전쟁 전 쿠바인들에게 통치권을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쿠바를 미국의 보호국으로 만들었고 1898년에는 하와이도 병합했습니다. 태평양 국가 미국의 의화단 사건 개입과 문호개방정책 미국은 필리핀을 거점으로 아시아에서의 상업적 이익을 보호하고, 유럽 강대국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고자 했습니다. 매킨리는 1900년 중국에서 일어났던 의화단 사건에 개입했는데요. 이 군사행동은 미국 외교사에서 의회의 선전포고 없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대규모 해외 군사 개입을 단행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미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베이징에 진입했으며, 공사관 구역의 포위를 풀고 의화단과 청나라 군대를 제압했어요. 미국의 군사 개입은, 존 헤이 국무장관이 추진하던 문호개방정책(Open Door Policy)을 지키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습니다. 미국은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나 유럽 강대국들이 중국을 완전히 식민지로 분할 점령할 것을 우려했어요. 미국은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한 직후, 중국의 영토적·행정적 일체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선언을 발표하여 미국이 중국 시장에 평등하게 접근할 권리를 지켜낸 것입니다.   의화단 사건을 미국인의 시작으로 풀어낸 영화 북경의 55일 매킨리 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은 미국을 영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태평양 국가’로 완전히 체질을 바꾸어 놓았어요. 아울러 의화단 사건에서 구미 열강의 입장에서 맹활약했던 ‘극동의 헌병’ 일본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중국 시장 진출 과정에서 러시아의 만주 점령을 가장 큰 위협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세력 확장을 일정 부분 용인하는 균형 외교를 시도했어요. 재선에 성공한 매킨리를 ‘부패한 정부의 수장’으로 간주한 암살범 윌리엄 매킨리의 국내 정책은 한마디로 ‘산업 자본주의의 완성’과 ‘강력한 보호무역’으로 요약됩니다. 그는 미국이 농업 국가에서 세계 최대의 공업 강국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이끈 인물인데요. 가장 대표적인 국내 정책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보호관세를 통한 ‘미국 우선주의’ 경제, 알래스카의 골드 러시를 통한 금본위제 확립, 그리고 노동자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적극적인 노사 갈등 중재를 통한 ‘산업 평화’였어요, 그에 따라 높은 인기를 누리며 1900년 재선에 성공하였으나, 두 번째 임기 시작 6개월 만인 1901년 9월에 암살당했습니다. 뉴욕주 버펄로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아나키스트 레온 촐고슈가 쏜 총에 맞았으며, 며칠 뒤 세상을 떠났어요. 촐고슈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출신의 철강 노동자였습니다. 1893년 경제 공황 당시 일자리를 잃은 후 사회 시스템에 대한 강한 불만을 품게 되었고 급진적인 아나키즘에 빠져들었어요. 그는 정부와 통치자 자체가 억압의 상징이라고 믿었습니다. 심문 과정에서 한 사람은 많은 대우를 받고 다른 사람은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으며, 매킨리를 ‘선량한 노동자들의 적’이자 부패한 정부의 수장으로 간주했어요. 대통령을 살해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확신했던 레온 촐고슈는 범행 직후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전기의자에서 사형당했습니다. 매킨리는 ‘관세의 왕’ 트럼프 자신은 ‘관세맨’ 트럼프 대통령은 윌리엄 맥킨리를 ‘관세의 왕(Tariff King)’이라 부르며, 자신의 경제 철학인 ‘미국 우선주의’를 정당화하는 역사적 근거로 삼고 있어요. 그는 19세기 후반 맥킨리 시대가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황금기였다고 주장합니다. 트럼프가 매킨리의 관세를 통한 국부 창출(Tariffs for Wealth)을 계승하겠다고 하지요. 2018년 스스로를 나는 관세맨이다(I am a Tariff Man)”라고 했던 것도 매킨리의 오마주입니다. 나아가 트럼프는 매킨리의 하와이, 필리핀 등에 대한 영토 확장을 미국의 힘이 분출되던 시기로 보는데요. 알래스카의 ‘디날리’를 다시 ‘매킨리 산’으로 바꾼 것도 원주민의 유산보다 미국의 산업화와 팽창을 이끈 맥킨리의 유산을 우위에 두겠다는 강력한 상징적 조치였습니다. 트럼프에게 매킨리는 강력한 관세 장벽을 쳐서 외국에 이용당하지 않고, 그 돈으로 나라를 부유하게 만든 비즈니스맨형 대통령”의 전형인 것이지요.   관세전쟁에 여념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가 추진하는 그린란드 매입 등 영토 팽창 정책은 매킨리가 펼친 ‘제국주의적 해외 진출’과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의 현대적 재해석입니다. 두 인물의 팽창 정책은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추진 목적과 방식에서 매우 강력한 평행이론으로 보이는데요. 군사적 점령보다 ‘합법적 매입’이나 ‘외교적 계약’ 형식을 선호하는 비즈니스맨 스타일의 접근을 취했습니다. 의회를 우회하는 일방적 추진 방식도 비슷하지요. 트럼프에게 유용하게 쓰이는 매킨리의 유산들 매킨리 시대에 쿠바로부터 확보한 관타나모 해군 기지는 트럼프 행정부 들어 남미 정책의 핵심 거점으로 다시 부상했습니다. 트럼프는 관타나모 기지를 대규모 불법 체류 범죄자 수용 시설로 전환하여 남미발 불법 이민을 원천 차단하는 압박 카드로 쓰고 있지요. 아울러 이 기지를 통해 카리브해 해상 무역로를 통제하고 남미 국가들에 대한 군사적 위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남미 지역을 미국의 독점적 세력권으로 묶어두려 합니다. 주진오 역사학자·상명대 명예교수 트럼프로 말미암아 전 세계는 물론 미국인들도 고통을 받고 있으며, 전쟁으로 인해 세계 경제는 파탄 지경이지요. 그렇다고 미국의 경제가 다시 살아난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과연 트럼프의 끝은 무엇일까요? 매킨리를 숭배하고 닮으려고 하다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에 대한 몇 번의 암살 시도가 그런 우려를 갖게 합니다. 물론 그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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