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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을 버틴 돌담의 고집, 영국 스탬퍼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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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중부 링컨셔 주 남쪽 끝, 웰랜드 강이 조용히 흐르는 곳에 스탬퍼드(Stamford)라는 마을이 있다. 인구 약 2만 남짓의 이 작은 마을은 한국으로 치면 읍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소설가 월터 스콧(Walter Scott, 1771~1832)은 이 마을을 두고 에든버러에서 런던에 이르는 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경 이라 극찬했고, 역사학자 윌리엄 호스킨스(William George Hoskins, 1908~1992)는 영국 전체를 통틀어 이보다 아름다운 마을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고 했다. 영국 일간  선데이 타임스 는 2013년에 이어 2021년에도 스탬퍼드를 영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 로 뽑았다. 2023년에는 텔레그래프 가 영국 최고의 중심가 로 스탬퍼드 번화가를 선정했다.  도대체 이 마을의 어디가 그토록 특별할까?   반 힐, 스탬퍼드.(위키피디아) 돌로 쌓은 역사, 지워지지 않는 기억 스탬퍼드라는 이름은 고대 영어로 돌이 깔린 여울목 (Stony Ford)을 뜻한다. 1~4세기 로마제국 시절에 로마군이 런던과 요크를 잇는 에르민 가도 를 닦으면서 웰랜드 강을 건넜던 바로 그 자리에 마을이 형성됐다. 922년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스탠포드 로 처음 등장하고, 1086년 정복왕 윌리엄(William I, 1028~1087)이 명령한 국가토지대장 둠스데이 북 에도 어김없이 기록된다. 중세에 스탬퍼드는 모직물 무역의 중심지였다. 13세기에는 스탬퍼드 천 이 유럽전역에 이름을 날렸고, 그 돈으로 중세 교회가 다섯 채나 세워졌다. 지금도 도심에 다섯 채가 멀쩡하게 서 있으니, 자본의 기억력이 참으로 질기다. 스탬퍼드는 영국과 웨일스에서 최초로 보전지역 으로 지정된 마을이다. 1967년 시민편의법 에 따라 이 영예를 차지했으며, 이후 도심 전체가 건축·역사적으로 국가적 중요성을 갖는 특별 지역이 됐다. 현재 도심에는 600채가 넘는 등록문화재 건물이 있는데, 이 숫자는 링컨셔 주 전체 문화재 건물의 절반이 넘는다. 한국으로 치면 인구 2만의 읍에 국가지정문화재가 600개 넘게 몰려 있는 셈이다. 전국 문화재 숫자를 두고 해마다 예산 싸움이 벌어지는 나라에서는 그야말로 감히 꿈도 못 꿀 밀도다.   스탬퍼드에 있는 성 레오나드 수도원(유적)(위키피디아) 마을의 주인들, 권력, 지식, 그리고 기인(奇人) 윌리엄 세실 (William Cecil, 1520~1598), 40년 짜리 재상의 비결 스탬퍼드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윌리엄 세실이다. 그는 1520년 9월 13일 링컨셔 본에서 태어나 1598년 8월 4일 런던에서 숨을 거뒀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Elizabeth I, 1533~1603) 치하에서 40년 가까이 수석보좌관을 지낸 이 인물은, 두 차례 국무장관과 재무대신을 역임했다. 스탬퍼드 바로 외곽에 세워진 버글리 저택(Burghley House)은 세실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제1대신으로 재임하던 시절 1555년부터 1587년 사이에 지은 저택으로, 18개의 국가접견실 과 수백 점의 미술품을 갖추고 있다. 세실은 1598년 78세의 나이로 몸이 쇠해지자 임종 직전 여왕이 친히 찾아와 손수 음식을 먹여 줬다고 전해진다. 세실의 성공 비결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오래 살아남기 다. 당시 영국 정치는 군주의 변덕 한 번에 목이 날아가는 살벌한 세계였다. 그는 종교개혁의 파도를 타고 개신교 편에 섰지만, 가톨릭 여왕 메리 재위 시절에도 슬며시 몸을 낮춰 살아남았다. 스페인 무적함대를 막아냈고,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를 처형대로 보냈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적당히 원칙주의자이고 적당히 기회주의자였다. 스탬퍼드 성 마틴 교회에 잠든 그의 무덤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세실은 단 한 명의 군주 아래에서만 일하지 않았다. 에드워드 6세, 메리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은 것은 충성의 대상을 국가와 제도로 삼았기 때문 이라는 평가가 있다. 인사적체, 낙하산, 보은인사가 반복되는 한국 관료문화에서 제도에 충성하는 공직자 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볼 대목이다.   윌리엄 세실 초상화.(위키피디아) 윌리엄 스투클리 (William Stukeley, 1687~1765), 영국 고고학의 아버지 스투클리는 1687년 11월 7일 링컨셔 홀비치에서 태어났다. 의사로 시작해 고고학자가 됐고, 나중에는 성공회 사제가 됐다. 스탬퍼드 성당(All Saints Church) 담임사제로 1730년부터 1747년까지 17년간 이 마을에 살면서 스톤헨지와 에이브버리의 거석 유적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조사·기록했다. 그러나 40세 이후 고고학적 실사를 접고 고대 켈트족의 기원과 종교에 관한 갈수록 기상천외한 이론에 빠져들었다. 말년에는 조롱의 대상이 됐고, 그 오명은 오래 이어졌다. 그는 1765년 3월 3일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결국 2010년에야 스탬퍼드 시민단체가 그의 옛 집 자리에 파란 기념명패를 붙이며 명예를 되돌려줬다. 스투클리의 인생은 묘한 교훈을 남긴다. 전반부의 엄밀한 현장 기록이 없었다면 스톤헨지 연구는 수십 년 뒤처졌을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의 허황된 고대종교 기원론에 빠지면서 그는 스스로 쌓은 탑을 무너뜨렸다. 정통성을 확보한 뒤 오만해진 전문가, 초기의 원칙을 잊은 지식인의 이야기는 어느 사회에나 있다.   윌리엄 스투클리 초상화.(위키피디아)  명소들, 돌의 마을이 내놓는 볼거리 버글리 저택(Burghley House): 세실이 1553년에 짓기 시작해 1587년에 완성한 저택으로, 현존하는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 건물 중 가장 장대한 것으로 꼽힌다. 매년 9월에는 이곳 광활한 공원에서 버글리 마굿간 경기대회(Burghley Horse Trials) 가 열린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마 삼종경기로, 말과 사람이 함께 달리는 진풍경이다.   버글리 저택.(위키피디아) 조지 여관(The George Hotel): 1597년에 문을 연 이 여관은 독특한 교수대형 간판이 도로 전체를 가로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성기에는 하루에 마차 40대가 오르내렸다고 하니, 당시 스탬퍼드는 오늘날의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역할을 했던 셈이다. 국왕 찰스 1세(1600~1649)도 1641년 이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조지 여관.(위키피디아) 브라운 병원(Browne s Hospital): 1485년 부유한 모직물 상인 윌리엄 브라운이 세운 이 시설은, 가난한 남성 10명과 여성 2명을 받아들인 일종의 공공복지 시설이었다. 540년이 지난 지금도 실제로 사람이 사는 시설로 운영 중이다. 주말에는 일반에 공개한다. 한국의 노인요양시설이 갈수록 대형화·기업화되는 시대에, 500년 된 민간설립 복지시설이 지역공동체 안에서 조용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한 대조를 이룬다.   브라운 병원.(위키피디아) 스탬퍼드 머큐리(Stamford Mercury): 1712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발행되고 있는 영국 최장수 지역신문을 자처한다. 지역 언론의 위기가 전 세계적 현상이 된 지금, 300년을 버텨온 이 지역신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적 자산이다. 스탬퍼드가 한국에 건네는 말 첫째, 보전 이 곧 발전 이다. 스탬퍼드는 재개발을 거부하고 옛 모습을 지킨 덕분에 영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 됐다. 스탬퍼드는 1967년 영국 최초의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600채 이상의 문화재 건물이 보호를 받고 있으며, 마을 중심부의 거리 구조는 기본적으로 색슨 시대 이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재건축 열풍이 도시의 기억을 지우는 한국에서, 특히 서울 도심과 지방 옛 시가지가 삽날 앞에 무방비로 서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깊은 울림을 준다. 둘째, 공동체 시설은 천천히 쌓인다. 500년 된 빈민구제 시설이 아직도 가동 중이라는 것, 300년 된 지역신문이 아직도 인쇄된다는 것은 지속가능성 이 구호가 아닌 실천임을 보여준다. 한국사회는 5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복지정책의 기반이 흔들리고 지역공동체 인프라가 헐린다. 스탬퍼드의 교훈은 단순하다. 좋은 것을 만들면, 그냥 두면 된다. 셋째, 작은 마을도 문화자원이 될 수 있다. 스탬퍼드는 미들마치 , 오만과 편견 (2004년 영화판), 다빈치 코드 의 촬영지가 됐다. 지역 소멸이 화두인 한국에서 지방 중소도시들이 무조건 기업을 유치하고 공단을 세우려 하는 동안, 스탬퍼드는 그냥 옛 돌담 하나 허물지 않은 것만으로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오만과 편견》2004년 영화 촬영 중.(위키피디아) 스탬퍼드의 돌들은 말하지 않는다. 그저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침묵이 어떤 웅변보다 설득력 있다. 부수지 않으면 남는다. 남으면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가 되면 사람이 온다. 이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고 있는가.   스탬퍼드의 한 카페에서 김성수 시민기자(가운데) 가족. 왼쪽이 장모, 오른쪽이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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