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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밝힌 아침이슬, 생명의 대지로 흐르다
[사회혁신]
나의 아침이슬. 김정택 지음 [신앙과지성사] 한 인간의 자서전은 단순히 개인의 사적인 기억을 기록한 백서(白書)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살아낸 시대의 공기와 온도, 그리고 그 시대를 지배했던 거대한 모순과 싸워낸 영혼의 흔적이다. 감리교 목회자이자 사회운동가인 김정택이 세상에 내놓은 ‘나의 아침이슬’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뜨거웠던 격동기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한 인간의 고백록이자,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의 숨겨진 역사를 복원해 낸 귀중한 사료(史料)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순진한 신앙을 가진 청년에서 역사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운동가가 되었는지, 그리고 다시 어떻게 자연을 일구는 생명 농부로 돌아왔는지를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필치로 서술한다. 그의 삶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 그 자체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암울했던 독재 정권 시절에는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던졌고, 사회적 민주화가 일정 부분 달성된 이후에는 생태와 농촌, 그리고 지역 공동체라는 더 깊고 근원적인 생명 운동으로 그의 발걸음을 옮겼다. 이 서평에서는 ‘나의 아침이슬’이 담고 있는 역사적 궤적을 추적하고, 저자가 평생을 통해 실천하고자 했던 현장 중심의 영성 과 생명 신학 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나아가 이 책이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회고록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위기와 생태적 재앙 앞에 직면한 우리 사회와 기독교계에 어떤 예언자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성찰해 볼 것이다. ‘나의 아침이슬’의 전반부는 1970~80년대 한국 사회의 암울했던 정치적 상황과 그 속에서 태동한 기독교 사회운동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저자 김정택은 원래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소위 순진한 기독교 청년 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시절 방언을 체험하고 개인적 구원과 뜨거운 종교적 체험에 매료되었던 그는,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대학교정은 기도실의 평안함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유신체제의 삼엄한 독재 아래에서 청년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고 있었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최루탄 연기 속에 묻히기 일쑤였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깊은 신학적·존재론적 회의를 마주한다. 골방에서 부르짖는 기도와 저 거리에서 들려오는 민중들의 신음 소리 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고백하듯, 그를 사회운동의 길로 이끈 것은 거창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할 수 없다는 기독교적 자비(Compassion) 와 사랑 의 본능이었다. 그는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 인천도시산업선교회(산선), 그리고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등 한국 기독교 진보 진영의 가장 핵심적인 현장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당시 한국 기독교, 특히 에큐메니칼(세계교회협의회) 성향의 청년·학생 운동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독재 정권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교회는 유일하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고, 기독 청년들은 성경의 예언자적 전통에 따라 정의를 외쳤다. 김정택 목사는 이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서 기획하고, 행동하고, 고난받는 실무자이자 지도자였다. 이 책은 당시의 사건들을 날짜와 인명, 장소까지 비교적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자칫 거대 담론 속에 묻히기 쉬운 기독교 민주화운동의 구체적인 이면을 복원해 낸다.   나의 아침이슬 출판기념회에서 저자 김정택 목사. 2026.6.18 김정택 목사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현장 이다. 그는 강단 위에서 세련된 언어로 복음을 선포하는 목회자가 아니었다. 그의 신학은 철저히 먼지 날리는 공장 지대, 최루탄이 빗발치는 거리, 그리고 차디찬 감옥의 마룻바닥에서 형성된 현장 신학 이었다. ​특히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의 활동은 그의 목회 인생에서 전환점이 된다. 1970~80년대 인천은 한국 자본주의 개발독재의 최전선이었으며, 수많은 노동자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인간다운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던 곳이었다. 기독교 도시산업선교회는 이들에게 단순히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넘어, 노동법을 가르치고 소모임을 조직하며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와 인간 존엄성을 깨닫도록 도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기억들을 담담히 풀어낸다. 밤샘 노동에 지친 어린 여공들의 손을 잡고 기도하던 순간, 공권력의 구두발에 짓밟히면서도 예배를 멈추지 않았던 순간들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진다. 김정택 목사는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이 단순한 학문적 유희가 아니라, 한국의 역사적 현장에서 어떻게 기도로, 눈물로, 그리고 피로 구현되었는지를 증명한다. 지난 6월 18일 출판기념회 북토크에서 감신대 후배인 이정배 교수가 그를 향해 전태일 열사가 오래 살았더라면 정택이 형처럼 살았을 것이다”라고 회고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내면화하고, 그 고통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낸 고난의 연대자 였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필연적으로 정권의 탄압을 불러왔다. 체포와 연행, 구속과 사찰이 일상이 되었던 시절 속에서도 그는 비굴해지지 않았다. 책의 중반부에 묘사된 감옥 안에서의 일화들은 인간 김정택의 강인함과 동시에, 그를 지탱해 준 영성의 깊이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독방이라는 철저한 고립 공간은 그에게 도리어 하나님과 단둘이 마주하는 영적 성소(Sanctuary)가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외로움과 공포를 이겨내며 시대의 아픔을 위해 더욱 깊이 기도했다. ​많은 민주화운동가들이 1990년대 이후 정계로 진출하거나, 제도의 중심부로 이동하여 권력을 획득하는 길을 택했다. 그것이 잘못된 선택은 아닐지라도, 권력의 속성은 종종 운동의 순수성을 퇴색시키곤 한다. 그러나 김정택 목사의 행보는 달랐다. 사회적·정치적 민주화가 일정 수준 궤도에 오르자, 그는 거대 담론의 중앙 정치를 떠나 거칠고 황량한 변방, 즉 농촌으로 향했다. 그가 정착한 곳은 강화도였다. ‘나의 아침이슬’의 후반부는 저자가 도시의 소음과 정치적 긴장을 뒤로하고, 강화도의 흙을 만지며 생명 농부로 거듭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것은 단순한 귀농(歸農) 이나 은퇴 후의 전원생활이 아니었다.   인천 도시산업선교회 존치 를 위한 단식농성 28일차 김정택 목사 2021.7.19 그것은 그의 신학적·사상적 지평이 인간 중심의 민주화 에서 우주적 생명과 상생 으로 심화되고 확장된 대형태적 전환(Great Turning) 이었다. 김정택 목사는 농촌에서 호미를 쥐고 땅을 일구며 새로운 복음을 깨닫는다. 도시에서의 운동이 불의한 권력과 맞서 싸우는 대결과 저항 의 성격이 강했다면, 농촌에서의 운동은 무너진 생태계를 살리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치유와 상생 의 운동이었다. 그는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서로살림농도생협 등을 조직하며 농촌 교회를 살리고, 친환경 농업을 확산시키는 데 앞장섰다. ​특히 그가 주도한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과 농도(農都) 생협 운동은 도시와 농촌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생명 공동체로 묶어내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도시의 소비자들에게는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농촌의 농민들에게는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보장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유통 구조가 파괴한 상생의 신뢰 를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책 속에서 묘사되는 강화도에서의 일상은 지극히 소박하다. 새벽같이 일어나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그의 모습은 고대 기독교의 수도사들이 실천했던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 는 전통의 현대적 부활이다. 그는 흙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고, 돋아나는 싹 속에서 부활의 신비를 목격한다. 저자에게 있어 농사는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우주적 예배이자 지구를 치유하는 거룩한 성례전(Sacrament)이다. ‘나의 아침이슬’이 지닌 커다란 미덕 중 하나는 글의 톤앤매너에 있다. 저자는 자신이 이룩한 수많은 성취와 역사적 기여에 대해 결코 자랑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그의 문체는 담담하고, 수식어가 적으며, 때로는 투박할 정도로 솔직하다. 자신의 성공담뿐만 아니라, 운동 과정에서 겪었던 동료들과의 갈등, 스스로의 한계와 두려움, 목회자로서 가졌던 내면의 연약함까지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러한 솔직함은 독자로 하여금 저자를 하늘 위에 떠 있는 범접할 수 없는 영웅 이 아니라,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이웃 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평범한 인간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시대의 요청에 응답했을 때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더 큰 감동을 준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책은 실천적 에큐메니칼 신학 의 훌륭한 교과서다. 한국 기독교는 오랫동안 보수와 진보, 영혼 구원과 사회 구원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에 갇혀 갈등해 왔다. 보수 진영은 사회운동을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으로 매도했고, 진보 진영은 때로 신앙의 본질적인 영성을 간과한 채 정치적 투쟁에만 매몰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택 목사는 이 두 가지를 자신의 삶 속에서 완벽하게 통합해 낸다. 그는 철저한 기도 신앙과 성령 체험을 바탕으로 사회운동의 동력을 얻었고, 반대로 사회적 실천과 생태적 감수성을 통해 자신의 영성을 풍성하게 가꾸었다. 그의 영성은 세상 밖으로 도피하는 영성 이 아니라 세상의 고통 한복판으로 뚫고 들어가는 영성 이며, 땅의 언어로 하늘의 뜻을 풀어내는 성육신적 영성 이다. 책의 제목인 ‘나의 아침이슬’은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잘 함축하고 있다. 아침이슬은 밤새 대지의 어둠과 차가움 속에서 조용히 맺힌다. 그것은 화려하게 빛나는 태양이나 거대한 폭포처럼 요란하지 않다. 그러나 이른 아침, 초목의 잎사귀마다 맺힌 맑은 이슬방울들은 대지에 생명을 공급하고 메마른 영혼을 정화한다. 김정택 목사의 삶이 그러했다. 그는 역사의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기를 원치 않았다. 오직 시대의 밤이 깊었을 때, 고통받는 민중들의 삶 위에서 묵묵히 이슬처럼 맺혀 그들을 적시고, 날이 밝아오면 소리 없이 대지 속으로 스며드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김정택 목사의 자서전 ‘나의 아침이슬’은 과거의 영광을 박제해 놓은 기념비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특히 길을 잃고 방황하는 한국 교회와 현대인들을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자 따뜻한 초대장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사회적 신뢰를 잃고, 대형화와 기복주의,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복음의 야성은 사라지고, 세상의 가치관과 다를 바 없는 자본과 물질의 논리가 교회 안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온몸으로 복음의 공공성과 생명 가치를 증명해 낸 김정택 목사의 삶은 교회가 가야 할 참된 길이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교회가 존재해야 할 곳은 세상의 높은 보좌가 아니라 고난받는 이들의 곁이며, 교회가 선포해야 할 것은 번영의 신화가 아니라 상생과 나눔의 십자가다. ​또한 기후위기와 생태적 재앙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2020년대의 오늘날, 강화도의 흙 속에서 문명을 전환할 대안을 찾고자 했던 그의 생태적 영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만들어낸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시스템을 멈추지 않는 한, 인류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을 삶으로 경고한다. 흙을 살리고, 농촌을 지키며, 이웃과 서로 살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잔잔하게 설파한다. ​현재 강화도 뉴스 이사장으로서, 그리고 여전히 현역 농부로서 맑은 눈빛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김정택 목사. 그의 삶의 여정이 담긴 이 한 권의 책은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영혼을 적시는 맑은 아침이슬 이 되기에 충분하다. ​불의에 저항하는 뜨거운 열정과, 생명을 보듬는 따뜻한 사랑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 속에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나의 아침이슬’을 덮는 순간, 우리 역시 우리가 서 있는 각자의 현장에서 맑고 투명한 한 방울의 이슬로 살아가고 싶다는 깊은 울림과 열망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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