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산망 화재, 재생에너지 탓이라는 궤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정부 전산 시스템 647개가 중단되었다. 그 중 96개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고, 551개는 복구 대기 상태로 남아 있다. 행정 서비스가 사실상 마비되고 국민 생활 전반이 영향을 받으면서, 이번 사태는 국가 핵심 기반 시설의 안전 관리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점은, 단 한 차례의 화재로 국가 전산망 전체가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29일자 사설에서 이번 사고의 원인이 된 UPS(무정전 전원장치) 배터리 화재를 빌미로 재생에너지 정책과 ESS(에너지저장장치)의 위험성을 연결 지으며, 결국 원전 확대의 필요성으로까지 주장을 비약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을 왜곡하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행위다. UPS는 데이터센터 비상전원용 장치로, ESS와는 용도와 운영 환경이 전혀 다르다. 특히 사고 원인을 재생에너지 확대와 연결하는 것은 기술적 무지이거나 의도적인 정치적 왜곡에 가깝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의 전산실 화재로 정부 업무시스템이 무더기로 마비된 가운데 28일 서울 중구의 한 지하철역 무인민원 발급기에 운영 중단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5.9.28 연합뉴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명확하다. 국가 전산망 이중화와 분산화가 부재했고, 안전문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재로 인해 서버, 네트워크, 냉각, 소방, 전원까지 모두 마비된 것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중복 안전 체계가 마련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2022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때 국민이 겪은 불편은 국가 차원에서 중대한 교훈이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교훈을 제도 개선으로 연결하지 않았고, 그 결과 이번에는 민간 플랫폼이 아니라 국가 전산망 자체가 무너졌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재 위험성은 이미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재생에너지 확대 자체를 비판하거나, 원전 확대의 논거로 삼는 것은 문제를 본질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선진국들은 ESS 확대와 동시에 화재 안전 기술, 소방 규제 강화, 소재 개선을 통해 문제를 관리하고 있다. 위험은 기술과 제도의 문제이지, 정책 방향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번 사고는 국가 전반의 안전문화 취약성을 보여준다. 안전은 단순히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예방적 점검과 규제, 체계적 이중화, 문화적 인식이 어우러져야 지켜진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사고가 난 뒤에야 땜질식으로 대응하는 후진적 안전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사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원안위는 지난 10여 년간 원전 수명연장 심사와 안전 규제에서 부실과 편향을 드러냈다.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 등 노후 원전 심사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문제점이 지적되었으나, 제도적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국가 전산망 화재와 마찬가지로, 원자력 안전 역시 단 한 번의 사고로도 국민 생명과 국토 전체가 치명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엄중한 분야다. 그러나 원안위는 여전히 안전 규제보다는 산업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단순히 전산망 관리 실패가 아니라, 국가 전반의 안전문화와 규제 체계 개혁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경고음이다. 부실 규제의 온상이 되어버린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즉각 해체하고, 새로운 안전 규제 기관으로 재출범해야 한다. 특히 원전 안전에 대한 독립적이고 강력한 심사 기능을 확보하고, 원전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화학·전산·교통 등 국가 중요 기반 시설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안전 규제체계를 신설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 인프라의 안전을 종합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대전 전산망 화재의 교훈은 분명하다. 재생에너지를 공격할 빌미가 아니라, 국가 안전문화 개혁과 규제 체계 혁신의 시급성을 드러낸 사건이다. 전산망이든 원전이든, 안전은 뒷북이 아니라 선제적 점검과 체계적 관리로 확보되어야 한다. 안전 규제 기관이 산업 논리에서 독립해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두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또 다른 대형 사고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원전 확대 주장이 아니라, 국가 안전 규제체계 전반의 대대적인 개혁이다.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낡은 안전문화와 부실 규제를 과감히 청산하고, 새로운 안전 문화와 제도를 세워야 할 때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