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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 앞에서 내 머릿속 솎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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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진 마을활동가 이 글을 쓰는 날은 마침 어린이날이다. 휴일에는 도시로 나간 자녀들이 자식들을 데리고 부모를 찾아오곤 해 마을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곤 했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인적도 드물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인지 왠지 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어느 미래에 어린이 없는 어린이날을 맞이하게 되지는 않을까? ‘저출생’ ‘초고령화’ ‘인구절벽’ ‘농촌소멸’ 같은 우울한 단어들이 줄지어 떠올라 심란해진다. 그래도 논밭에 내리는 비가 봄의 생명들에게 단비가 돼 줄 것이라는 생각에 좀 위로가 된다. 비가 그치면 자두나무의 열매를 솎아주려고 한다. 농사 용어로 ‘적과(摘果)’라고 한다. 과실 수를 적당히 제한해서 최종 수확하는 과실의 발육을 좋게 하기 위한 것이다. 농사를 짓다 보면 이런 식으로 작물의 과밀 생육을 방지하기 위해 솎아내기 하는 경우들이 많다. 솎아내기를 할 때는 부실한 것, 벌레 먹은 것 등을 없애고 제일 튼실한 것만 남기게 된다. 그렇게 솎아내기를 하면서 난 ‘인류도 이렇게 솎아내기를 해왔다면 지금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같은 생태계 파괴와 기후재앙은 피할 수 있었을까?’라는 다소 섬찟한 생각을 하곤 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긴장관계가 만든 인구 폭발 인류의 역사는 그런 식의 솎아내기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보해왔다. 이런 점에서 인간종은 좀 멋지다. 산업혁명 이후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인류는 강자를 살리기 위해 약자를 솎아내듯 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종종 전쟁광이나 독재자들이 우월한 민족, 인종을 들먹이며 타민족과 인종을 학살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여지없이 역사와 정의의 심판을 받았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라고 멜서스가 「인구론」에서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어떤 이데올로기로 인간을 솎아내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원하는 대로 낳아라 어떻게 해서든 먹여 살릴게’라는 식으로 인구를 늘려왔다.   그래프를 보면 맬서스가 「인구론」을 발표했던 1789년부터 보란 듯이 인구가 급증했다. 당시 인구가 약 8억 명이었다고 한다. 2023년 인류는 80억을 돌파했다. 이런 인구 폭발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긴장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 싸고 풍부한 노동력과 자원이 필요했던 자본은 민주주의의 신장으로 국민국가 내에서 이윤 창출의 어려움에 봉착한다. 이를 때로는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때로는 창의력으로 그 한계를 극복해 왔다. 제국주의 침략, 전쟁 그리고 혁명과 각종 기술의 혁신 등은 자본의 팽창 욕구와 민주적 정치의식이 만들어 낸 역사다. 그렇게 인류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바퀴를 굴리며 인구를 늘려왔다. 그렇다면 이 인구성장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모든 생명체는 개체수의 밀도가 높아지면 그 수를 조절한다. 환경 저항에 의해 개체수가 늘어나는 한계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개체군의 생장곡선〉 출처 : 두산백과 위 그림에서 보듯 생명체들은 환경저항을 받으면 이론적 생장곡선에 변화가 생겨 그 한계에 달했을 때 생장곡선이 S자 모양으로 굽게 된다. 그 굽어지는 지점이 그 개체군의 환경수용력이 된다. 산업혁명 이후 폭발한 인류의 인구 증가는 위 그림의 이론적 생장곡선을 닮았다. 그렇다면 인류는 아직 환경수용력이 남아있다는 것일까?   인구 100억 정점 찍을 2080년, 그때까지 인간은 안전할까? UN의 자료에 근거해 만들어진 위 그래프에 따르면 인류는 2080년경에 인구 100억 명을 넘기며 정점을 찍고 곡선의 변화가 생긴다. 그때 인구증가율은 마이너스로 떨어져 있다. 태어나는 인구보다 사망하는 인구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이런 인구증가율의 추세로 보면 인구증가 그래프도 다른 개체군의 생장곡선처럼 S자가 돼 갈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마치 장군 멍군 하듯 하며 결과적으로는 인간 한계의 확대를 만들어 온 역사가 약 50년 후면 환경저항의 한계 앞에서 멈추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다면 그때까지 인류는 안전할까? <인구 폭탄>의 저자인 진화생물학자 폴 얼리크는 지구의 적정인구를 15억~20억으로 계산했다고 한다. 이미 그 4배를 넘어섰다. 환경재앙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인구 규모다. 이 재앙의 극복은 민주주의로 가능할 텐데, 민주주의마저도 자본에 현혹되어 가는 세상에서 시간은 자본주의의 편이라고 여겼다. 후세대를 볼 면목이 없다. 살맛이 안 난다. 그러니 이 폭주가 멈출 때까지 50년이나 남았다는 전망마저도 위안이 되지 않는 것이다. 반(反)출산주의 운동을 하는 여성들은 인간의 탄생 자체가 탄소 배출의 시작이므로 ‘기후 비상사태와 멸종 위기가 해결될 때까지 출산 파업’을 한다고 한다. 난 그런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아서 저출생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반출산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득, 주거, 자녀 양육, 경력 단절, 경쟁 등의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연애, 결혼, 출산을 미루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역시 이러저러한 위기를 언급하며 아이를 낳으라고 하기 어렵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졌고, 기존의 공동체적 관계가 깨진 세상에서 돈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청년들 입장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저출생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도 프랑스의 팍스(PACS)처럼 비혼 자녀 등 혼외 자녀도 법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아이가 귀하면서도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현실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외국인들의 국내 이민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좀 더 개방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저출생 문제의 해법이 인권 신장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인구가 줄어들고, 4차 산업혁명으로 노동자의 소비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자본가들이 기본소득을 얘기하고 있다. 저출생의 ‘위기’는 기득권 혹은 낡은 지식이 만든 위기 아닐까? 저출생이 위기라고 얘기하지만 그 위기가 누구의 위기냐고 질문을 한다면 정작 아이를 낳고 기를 청년들이 “우리들의 위기다” 라고 말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누구의 위기일까? 그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도 위기를 얘기했던 사람이다. 그렇지만 내게 어떤 기득권이 있어서 얘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살아왔던 삶, 알고 있는 지식 속에서 ‘위기’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지금 전대미문의 기후재앙 앞에 선 우리는 역시 전대미문의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인구절벽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이때 민주주의는 인간을 넘어서 모든 생명의 주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 ‘저출생, 초고령화, 인구절벽, 농촌소멸의 위기’를 얘기할 때 좀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단어들로 애먼 청년들에게 스트레스를 가중한 것 같기도 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작물을 솎아주면서 인간을 솎아낼 것을 떠올린 것은 나의 살맛 없는 마음이 만들어 낸 생각이다. 솎아낼 것은 솎아내야겠지만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잘못된 또는 과거의 지식에 안주하고 있는 생각들이지 않을까 싶다. 내 생각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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