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唐詩) 한자 독음에 대한 새로운 제안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당나라 시인 이백과 두보는 자신들의 시를 어떻게 읽었을까?
중국 여행 TV 프로그램에서 가끔 이태백(李太白)이나 두보(杜甫) 등의 시를 중국어로 낭송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문제 제기를 하고자 한다. 바로 이태백이나 두보의 시는 우리가 지금 한자를 읽는 독음 방식으로 읽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할 수 있지만, 몇 가지 사례들을 들어 설명해보도록 한다.
중국 고대의 오언시(五言詩)나 칠언시(七言詩)에서 제1, 제2, 제4 구(句) 마지막 글자의 음은 압운(押韻) 혹은 각운(脚韻)을 반드시 맞춰야 했다. 그래서 그 발음(韻)이 같아야 했고, 당시 이러한 규칙은 엄격하게 지켜졌다.
당시를 공부하는 사람들. 나무 위키
이태백의 유명한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에서 이를 살펴보도록 한다.
問余何意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이 시에서 압운은 ‘산(山)’, ‘한(閑)’, ‘간(間)’의 세 글자이고, 이것을 현대 중국어로 읽으면 각각 ‘shan(샨)’, ‘xian(시엔)’, ‘jian(지엔)’이다. 동일 범주의 발음으로 간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우리의 한자 독음으로 읽으면 각각 ‘산’, ‘한’, ‘간’으로서 운이 ‘-an’으로 정확히 일치하고 그래서 압운도 정확하게 맞게 된다.
우연일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이번에는 이태백의 또 다른 시 「추포가(秋浦歌)」를 살펴보도록 하자.
白髮三千丈 離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여기에서 압운은 ‘장(丈)’, ‘장(長)’, ‘상(霜)’의 세 글자다. 이것을 현대 중국어로 읽으면 각각 ‘zhang(장)’, ‘zhang(장)’, ‘shuang(솽)’이다. 동일한 범주의 발음으로 보기 어렵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의 한자 독음으로 읽으면 각각 ‘장’, ‘장’, ‘상’으로서 운이 ‘-ang’으로 정확히 일치하게 되고, 그리하여 압운은 정확하게 맞게 된다.
우리의 한자 독음 방식은 당나라 시대 전래된 것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현재 한자 독음 방식은 당나라 시대에 전래되었다. 현재 우리의 한자 독음은 당나라와 교류가 잦았던 신라로 전래된 뒤 그 원형이 거의 변함없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에 반해, 정작 중국에서는 기존의 발음에서 받침이 없어지고 혀를 말아서 발음하는 권설음화(捲舌音化)의 경향이 많아지는 등 크게 변화하였다. 이 권설음 발음은 원래 권설음이 많았던 북방의 몽골족이나 만주족의 발음에서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잘 알다시피 몽골족은 원나라를 세우고, 만주족은 청나라를 개국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중국 대륙을 지배했다. 이러한 북방민족의 중국 지배 시기에 중국어는 권설음의 발음이 많은 몽골어와 만주어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현재의 중국어 발음은 원래 중국어 자체의 변화와 함께 북방민족의 영향이 수백 수천 년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북방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즉 남부지역으로 갈수록 북방 민족 언어의 영향을 적게 받아 중국 고대의 원래 발음이 많이 남아 있게 되었다. 실제로 중국 남부의 광둥어(廣東語)에서는 ‘三’을 ‘삼’으로 발음하고, ‘學’을 ‘각’으로 읽는 등 우리의 한자 독음과 유사한 발음이 많고 받침(입성)도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남방어에 해당하는 상하이어에도 이러한 현상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고가도로’를 의미하는 ‘고가(高架)’는 표준 중국어로 ‘가오자-gaojia’이지만 상하이어로는 ‘고가’이다. 우리말과 완전히 동일하다. 상하이 교외에 위치해 있는 ‘송강(松江)’이라는 지명도 표준 중국어 발음은 ‘쑹장-songjiang’이지만 상하이어로는 ‘송강’이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서진(西晋) 시대에서 동진(東晋) 시대로 되면서 상층 귀족들이 남쪽으로 피신하여 상하이, 양저우 등 장강(長江) 유역에 거주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해당 지역에 이러한 발음들이 남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존 중국어 발음에 존속했던 ‘p’, ‘t’, ‘k’의 발음은 송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한자를 우리 민족이 만들었다?
중국의 최대 자전(字典), 한자사전인 『강희자전(康熙字典)』에는 지금 우리의 한자 독음 방식이 그대로 나온다.
예를 들어, ‘학(學)’ 자는 현대 중국어 발음으로 ‘쉐(xue)’이다. 그런데 이 글자를 『강희자전』에서 찾아보면 그 발음에 대하여 ‘唐韻, 胡覺切’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의미는 ‘學’의 당나라 시대 발음은 ‘胡’의 첫머리 발음과 ‘覺’의 발음 중 첫머리 발음을 제외한 부분을 연결시켜 읽는다”는 뜻이다. 이를 현대의 중국어 발음으로 이해하려면 불가능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한자 독음이 절대적으로 유용하다. 즉 ‘호(胡)’의 ‘ㅎ’과 ‘각(覺)’의 ‘’을 연결시키면 ‘학’으로 자연스럽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당나라 시대에는 중국인들이 지금 우리의 독음 방식으로 발음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 중국어 발음으로 ‘쑤(su)’인 ‘속(束)’자의 발음은 『강희자전』에서 ‘당운(唐韻)의 書玉切’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書의 첫머리 발음과 玉의 발음 중 첫머리 발음을 제외한 부분을 연결시켜 읽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정확히 ‘속’이라는 발음으로서 현재의 우리 한자 독음과 동일하다. ‘격(激)’ 역시 『강희자전』에서 당운이 ‘吉歷切’로서 현재의 중국어 발음인 ‘지(ji) 와는 전혀 상이하고 우리의 한자 독음인 ’격‘의 발음으로 정확하게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강희자전』의 이러한 대목을 증거로 한자를 우리 민족이 만들었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처럼 우리나라의 현재 한자 독음 방식이 당나라 시대에 전래되었고, 『강희자전』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뒷받침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