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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가 세상을 구한 날, 알렉산더 플레밍의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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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여름, 스코틀랜드 출신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은 2주의 휴가를 떠나면서 실험실 책상 위에 세균 배양접시를 덮지도 않은 채 그대로 두고 갔다. 돌아와 보니 엉망이었다. 곰팡이가 슬어버린 배양접시들. 하지만 그는 곰팡이 주변의 세균이 모두 죽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페니실린(penicillin)의 발견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어라? 중 하나였다.   1943년쯤 실험실에서의 플레밍 (위키피디아) 농부의 아들이 세상을 구한 과학자로 플레밍은 1881년 스코틀랜드의 작은 농장에서 여덟 남매 가운데 태어났다.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손에 자랐다. 열셋에 런던으로 이주했고, 의대 진학 전 4년을 해운회사 사무원으로 일했다. 삼촌의 유산을 받고서야 1906년 런던대학 세인트 메리 의과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플레밍이 원래 외과의사가 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관이 자네는 총 잘 쏘니까 연구실에 남아서 우리 사격팀에서 뛰어주게 라고 설득했다. 세계사가 한 명의 사격 실력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페니실린을 기적의 치료제 로 소개한 광고 (위키피디아) 1차 세계대전, 진짜 적은 총알이 아니다 1914년, 플레밍은 육군 의무부대 대위로 전쟁에 참여했다. 그가 목격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병사들이 총상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그 후 생긴 감염 탓에 죽어갔다. 당시 의사들은 상처에 소독약을 부었는데, 오히려 이게 조직을 손상시켜 세균 증식을 도왔다. 치료 때문에 병을 키우는 아이러니였다. 플레밍은 더 나은 항균 물질을 찾기로 결심했다.   플레밍이 이곳 2층 실험실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했음을 안내하는 런던 세인트 메리 병원의 명판 (위키피디아) 1928년 9월 3일, 운명의 곰팡이 1928년 9월 3일, 플레밍은 황색포도상구균 배양접시에 곰팡이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곰팡이 주변에는 세균이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곰팡이는 훗날 페니실리움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으로 밝혀졌다. 플레밍은 처음에 이걸 곰팡이 즙 (mould juice)이라고 불렀다. 1929년 3월 7일, 그는 비로소 이 물질을 페니실린 이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플레밍이 1929년 2월 13일 의학연구클럽에서 논문을 발표했을 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하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것이다. 플레밍 혼자서는 이걸 정제할 수 없었다. 그는 실망한 채 다른 연구로 돌아섰다.   벤질페니실린의 3D 모델 (위키피디아) 구원의 손길 뻗친 플로리와 체인 1940년, 하워드 플로리(Howard Florey, 1898~1968)와 에른스트 보리스 체인(Ernst Boris Chain, 1906~1979)이라는 두 과학자가 플레밍의 논문을 다시 발견했다. 플로리는 호주 출신 병리학자였고, 체인은 나치를 피해 독일에서 망명한 유대계 생화학자였다. 스코틀랜드인, 호주인, 독일계 유대인이 모여 인류를 구한 것이다. 체인과 동료들은 페니실린을 정제하고 농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초기에는 수십 리터의 곰팡이 배양액에서 손톱 크기만 한 양밖에 얻지 못했다. 참으로 비효율적이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1940년 9월, 옥스포드의 마흔여덟 살 경찰관 앨버트 알렉산더가 첫 임상시험 대상이 되었다. 장미 가시에 긁힌 상처가 감염되어 눈과 머리에 농양이 생긴 상태였다. 페니실린 투여 닷새 만에 그는 회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니실린이 부족해 알렉산더는 결국 사망했다.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을 맛본 순간이었다.   1943년 플레밍의 실험실 (위키피디아) 2차 세계대전, 페니실린이 전선으로 1941년부터 페니실린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와 제약회사들이 대량생산에 나섰다. 전쟁 마지막 2년 동안 페니실린은 수많은 병사들의 생명을 구했다. 폐렴, 수막염, 임질, 성홍열 등 그 전까지 치명적이었던 세균 감염이 이제 치료할 수 있게 됐다. 플레밍은 돌연 스타가 되었다. 1941년부터 언론이 페니실린 임상시험을 보도하기 시작하자, 플레밍은 발견자로 찬사를 받았다. 반면 플로리 팀의 공헌은 거의 무시되었다.   현대 항생제는 플레밍의 발견과 유사한 방법을 사용하여 시험 된다.(위키피디아) 1945년 노벨상 수상 소감으로 남긴 플레밍의 경고 1945년, 플레밍과 플로리, 체인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플레밍은 수상 연설을 통해 예언 비슷한 경고를 했다. 페니실린을 과다 사용하면 세균이 내성을 가질 수 있다. 80년이 지난 지금, 그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플레밍은 1944년 기사 작위를 받았고, 전 세계에서 30여 개의 명예 학위를 받았다. 1955년 3월 11일, 그는 런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유골은 세인트 폴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 지하 묘지에 있는 알렉산더 플레밍 경의 무덤 명판 (위키피디아) 한국에의 시사점: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플레밍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 여러 교훈을 준다. 첫째, 기초과학의 중요성이다. 플레밍의 발견은 순수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당장 돈이 되는 연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연구가 결국 인류를 구했다. 한국은 여전히 응용과학에 치중하고 기초과학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노벨상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그 토양을 만들지 않는 아이러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기초연구 투자 비중은 전체 연구 개발비의 30% 남짓으로, 선진국에 견줘 여전히 낮다. 둘째, 실패와 실수를 용인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플레밍의 발견은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배양접시를 방치한 것. 한국 사회는 실수에 너무 가혹하다. 한 번 실패하면 끝 이라는 분위기에서 혁신은 나오기 어렵다. 셋째, 국제협력의 중요성이다. 페니실린은 스코틀랜드인, 호주인, 독일계 유대인의 협업으로 완성되었다. 한국도 폐쇄적인 연구 문화를 벗어나 세계와 협력해야 한다. 넷째, 인내심과 장기적 안목이다. 페니실린이 실용화되기까지 12년이 걸렸다. 한국 사회는 너무 빠른 결과를 원한다. 빨리빨리 문화가 때로는 독이 된다. 진정한 혁신은 천천히 익는다. 다섯째, 공정한 공로 인정이다. 플레밍만 유명해지고 플로리 팀이 무시당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팀 공헌보다 개인 업적이 과대 포장 되는 경우가 많다.   노벨상을 비롯한 플레밍의 수상 경력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페니실린 샘플과 초기 페니실린 제조 장치의 예시도 전시되어 있다.(위키피디아) 현재 한국 상황과의 접점 현재 한국은 심각한 항생제 내성 문제에 직면해 있다. 플레밍이 경고한 그대로다. 한국은 항생제 처방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위권이다. 감기에도 항생제를 처방하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있다. 또한 축산업에서의 항생제 남용도 문제다. 플레밍이 준 선물을 우리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는 셈이다. 한편, 한국 제약산업은 여전히 복제약 중심이다. 신약 개발은 더디다. 페니실린 같은 혁신적 신약을 만들려면 장기적 투자와 인내가 필요한데 단기 수익에 집착하는 구조에서는 어렵다.   알렉산더 플레밍 경(가운데)이 1945년 스웨덴의 구스타프 5세 국왕(오른쪽)으로부터 노벨상을 받는 모습.(위키피디아) 곰팡이가 가르친 교훈 알렉산더 플레밍은 우리에게 여러 교훈을 남겼다. 호기심을 가지라. 예상치 못한 것에 주목하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혼자보다 함께 일하라.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특허 내지 않았다. 인류의 유익을 위해 공짜로 제공했다. 이 정신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 얼마나 절실한가! 지저분한 실험실에서 우연히 발견된 곰팡이 하나가 80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구했다. 플레밍이 그 날 실험실을 깨끗이 정리했다면, 우리는 지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역사는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연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우연을 알아보는 눈은 준비된 자에게만 허락된다. 오늘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어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작은 의문이 다음 세대를 구할 발견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에서도, 세계 어디에서도 말이다.   플레밍을 기념하는 페로 제도 우표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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