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는 법원행정처장 아닌 조희대 대법원장이 해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2.25 [공동취재] 연합뉴스
27일 국회가 사법개혁 3법 (법왜곡죄·재판소원·대법관증원)을 처리하고 있는 가운데, 박영재 법원행정처장(대법관·사법연수원 22기)이 취임 42일 만에 행정처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사법개혁에 대한 반발이자 시위다. 연일 사법 불신 사태 핵심인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취를 압박하는 범여권에서는 박 처장 사퇴에 대해 관심없다 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 처장이 사퇴한 이날도 국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법왜곡죄 법(형법개정안)에 이어 재판소원제법(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처리하고,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정치권에서는 조 대법원장 탄핵까지 언급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박 처장은 이날 오전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직책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했다. 박 처장은 대법 공보관실을 통해 최근 여러 상황과 법원 안팎의 논의 등을 종합해볼 때 제가 물러나는 것이 국민과 사법부를 위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아 처장직을 내려놓게 됐다 며 사퇴 이유를 밝혔다. 이어 사법부가 많은 어려움을 겪는 시점에 물러나게 되어 여러 모로 송구스럽다 며 부디 현재 진행되는 사법제도 개편 관련 논의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고 덧붙였다.
박 처장이 낸 입장은 최근 범여권에서 추진하는 사법개혁 입법에 대한 불만으로 해석된다. 법원행정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조 대법원장과 사전에 교감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법 소속 기구인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 위임을 받아 전국 각급 법원의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기구다. 소수 엘리트 법관이 모여 법관 인사까지 손에 쥐는 현행 법원행정처 체제는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 핵심이자, 폐쇄적이고 수직적으로 사법부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사법개혁의 마지막 퍼즐 로 불리는 법원행정처 폐지와 관련된 입법도 여당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을 비롯한 법원장들이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6.2.25 [공동취재] 연합뉴스
무엇보다 국회 입법에 반발해 이뤄진 박 처장의 사퇴는 사법부가 사법 불신 사태 원인을 여전히 제대로 짚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법 불신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 지귀연 부장판사의 윤석열 구속취소 와 재판 지연, 12·3 내란범에 대한 상식밖 판결, 김건희 등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솜방망이 수준 선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조 대법원장 본인이 사법쿠데타 로 불리는 대선 개입의 당사자인 만큼 그에 대한 책임론은 당연한 귀결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핵심은 외면한 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반발하듯 행정처장이 사퇴하는 행태는 사법부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이러한 사법부의 인식은 지난 25일 전국법원장회의에서도 확인됐다. 법원장들은 국민의 충분한 신뢰를 받지 못해 현 상황에 이르게 된 점에 대해서 무겁게 받아들인다 면서도, 공론화 부족 부작용 등 이유를 들어 사법개혁 3법 전부를 반대했다. 법원장들은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데 대해서도 단 4명만 증원하라는 의견을 냈다. 지난해 9월 법원장 회의에서 나온 의견의 반복이었다. 재판소원 도입 등에 대해서도 법원 등관계기관과 논의와 조율이 반드시 필요하다 며, 마치 사법부 의견을 듣고 입법하라는 폐쇄적 엘리트 의식을 내비치기도 했다. 사법부 독립을 외치는 사법부가 입법부의 독립 은 침해해도 된다는 식의 모순이기도 했다.
이날 박 처장이 기자들에 전한 입장에서 사법 불신 사태 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은 단 한 마디도 없이 사법개혁 입법에 대해서만 의견을 피력한 것 역시 법원장 회의에서 보인 사법부 인식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6.2.13. 연합뉴스
범여권에서는 박 처장의 사퇴에 대해 별 관심없다는 반응이다. 되레 박 처장의 사퇴로 사법개혁 완수 와 조희대 탄핵 목소리만 커지는 모습이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은 사법개혁에 저항하는 법원행정처장의 사의에 관심이 없다 며 조희대 대법원의 대선개입 판결과 여러 납득하기 힘든 판결 등, 사법부는 입법부의 사법개혁이 이루어진 이유부터 성찰해야 할 것 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정부 시절 시작된 사법개혁을 이제는 매듭지어야 한다 며 과거 사법농단 사건에서 확인되었듯이,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이 인사를 통해 판사의 판결에 영향을 끼치는 기구다. 민주당의 사법개혁 3법에서 빠진 법원행정처 폐지 까지 이뤄내야 사법개혁은 완성된다 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연일 조 대법원장 거취를 압박하고 있다. 당 일각에선 조 대법원장 탄핵안 추진까지 언급된다. 정청래 대표는 이날 오전 대구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조희대 사법부의 불신이 사법개혁의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희대 대법원은 지금 반성이 없다 며 12·3 비상계엄 서부지법 폭동 사태 때 침묵했고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고 민주주의가 확대되자 그제야 사법부 독립을 외치고 있다. 마치 8월 16일부터 독립운동을 하는 8·16 독립운동가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고 비판했다.
정 대표는 지금까지 이런 일련의 사법 불신 사태의 출발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자초한 것 이라며 이 모든 사태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껴야 되지 않느냐 고 반문했다. 이어 저 같으면 사법 불신의 모든 책임은 나한테 있다. 이에 책임을 지고 대법원장직에서 사퇴한다고 말할 것 같다 며 그 자리가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민망하고 부끄럽지 않느냐 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본인의 거취에 대해서 이제 고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고 했다.
그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웃으면서 그만두는 유형, 울면서 그만두는 유형 이라며 그나마 국민의 신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럴 때 거취를 표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27일 대구 중구 2.28 민주운동기념회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2.27. 연합뉴스
이성윤 최고위원은 인혁당 사건과 관련,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단 한차례 심리로 피고인 8명을 사형 확정했고 확정 18시간 만인 다음날 새벽 4시, 가족들 면회조차 허용하지 않은 채 8명 전원 사형이 집행됐다. 법원이 국가폭력의 도구가 되어 자해한 사법살인 이라며 작금의 조희대 법원 행태는 50년 전 사법살인을 저질렀던 법원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조희대 대법원은 작년 5월 1일 희대의 사법쿠데타 의혹 사건으로 국민의 선택권을 빼앗으려 했다. 제2의 인혁당 사건이고 부끄러운 역사로 남을 것 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조희대 법원은 아직도 자신들이 처벌할 수 없는 성역이나 되는 것처럼 착각에 빠져 개혁을 막아보겠다는 오만함에 빠져있다 며 사법 불신의 근원 조희대 대법원장은 부끄러움을 알고 당장 사퇴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의 탄핵 요구에 직면할 것 이라고 했다.
다만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 탄핵에 대해 지도부 차원의 논의는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개인의 입장 표명 단계고 지도부는 논의한 바 없다 며 사법개혁 법안이 처리되는 와중 법원이 전국법원장회의 소집으로 여전히 사법개혁 주체인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경고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 아닌가 한다 고 전했다.
국민의힘 김희정 의원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8차 본회의에서 전날 상정된 재판소원제법(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2026.2.27. 연합뉴스
한편 국회는 이날 사법개혁 3법 중 하나인 재판소원제법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오후 5시 20분 기준 23시간째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의사진행 방해)가 진행 중이다. 민주당은 국회법에 따라 필리버스터 개시 24시간 뒤 토론을 종결하고 재판소원제 법을 처리할 예정이다. 이어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하는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한다. 국민의힘은 마찬가지로 필리버스터로 법안 처리를 지연시킨다는 계획이다.
대법관 증원법 필리버스터 1번 주자는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다. 이어 2번 주자로 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연단에 올라 국민의힘에 대해 반대 토론을 할 예정이다.
법왜곡죄 법은 전날(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