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 칼럼] 인류사적 과제 탈식민 선두에 선 한국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몇 해 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간송미술관 소장품 전시회에 갔다가 『훈민정음 해례본』 앞에서 갑작스레 눈물이 쏟아졌다. 옆에 있던 아내가 망신스러우니 빨리 그치라”고 타박했지만, 눈물은 좀체 멎지 않았다. 때로는 가슴이 먼저 반응하고 머리가 나중에 해석하는 일도 생기는 법이다. 나는 평생 역사를 공부하면서 ‘현대의 한국’을 만든 힘의 원천이 한글에 있다고 생각해 왔으니,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한글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본 듯한 감동을 느낀 건 당연했다.
세종 지음, 『훈민정음』, 목판본, 1446. 간송미술관, 국보 70호. 복간본 사진임.
식민지서 ‘선진국 그룹’ 진입한 유일한 나라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은 후, 인류는 이제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과 결별하지 않으면 자멸(自滅)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쟁 없는 세계를 만들려면 국가간 평등을 실현해야 했으며, 그 전제는 ‘인류평등’이었다.
UN이 창설되고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었으며, ‘구(舊) 식민지 질서 타파’, 즉 ‘탈(脫)식민’이 인류사적 과제로 부상했다. 물론 이 과제는 양면적이었다. 식민지를 지배했던 나라 국민들에게는 제국주의와 패권주의, 자민족 우월주의를 청산, 극복하는 것이 주요 과제였고, 같은 맥락에서 식민지였던 지역 주민들에게는 종속적 사회·경제구조 타파, 빈곤과 자민족 열등의식 극복이 핵심 과제였다. 다 알다시피 이 과제를 수행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되었어도 구(舊) 식민모국의 언어와 문자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역이 많았다. 구(舊) 식민지 주민 대다수는 자기 생각을 자기 언어로 표현하고 자기 문자로 기록할 수 없는 사람들, 즉 서발턴 (subaltern)이었다.
과테말라에서 봉제업을 하는 동포를 만난 적이 있다. 그에게 신입직원은 어떻게 뽑느냐?”고 물었더니, 열 손가락을 쫙 펴게 한 뒤 오른쪽 엄지손가락부터 차례대로 접었다 펴게 합니다. 이 일에는 손재주가 중요한데 식사 때 포크만 사용해서인지 그게 안 되는 사람이 많아요”라고 답했다. 필기시험은 안 치릅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는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 나라 작업장에서는 글이 필요 없어요”라고 말했다. 국제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과테말라의 여성 문맹률은 20%를 넘는다. 노동자들에 대한 작업지시를 ‘문서’로 할 수 없는 나라, 작업장 벽면에 ‘표어’를 붙여봤자 쓸모없는 나라가 많다. ‘구 식민지 체제’가 해체된 지 80년이 넘었지만, 식민지였던 나라 대다수는 아직도 독재와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식민지였다가 이른바 ‘선진국 그룹’에 진입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정의와 인도’의 정신으로 이룬 한국형 ‘탈식민 근대화 모델’
식민지 때의 한글은 한국인들의 문화적 자부심을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고, 해방 후 민족문화 재건과 국민통합, 경제성장을 촉진한 지렛대였다. 한글은 작업장 내의 효율적인 의사소통과 국민들 사이의 사회적 토론을 쉽고 빠르게 매개했다.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로 쓰기에 편안케 할 따름’이라던 세종의 뜻은 한국전쟁 이후 신분의식 소멸과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전면적으로 실현되었다. 한글을 매개로 빠르게 형성된 ‘집단지성’은 식민지배의 유산인 독재와 빈곤을 극복하는 데에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지난 반세기, 한국인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국은 ‘탈식민’의 인류사적 과제를 선두에서 수행하는 나라가 되었다. 오늘날의 한국 문화는 제국주의적 오만함도, 식민지적 비굴함도 없는 지점에 자리 잡았다.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소구력을 갖는 이유 중 하나도 미국 국적의 슈퍼맨이나 아이언맨이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제국주의적 코드가 없는 데에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한다’는 구절이 있다.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은 1947년 「나의 소원」에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며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썼다. 모두 ‘힘’이 아니라 ‘정의와 인도’로 규율되는 ‘탈식민의 세계’를 향한 꿈을 표현한 것이다. 물론 한국인들도 ‘탈식민의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숱한 미숙성을 드러냈고, 시행착오들을 범했다. 한국인들은 민주국가,선진국가로의 ‘이행’을 ‘민족적 과제’로 삼으면서 ‘모범 국가’들을 상정했다. 미국형, 소련형, 서유럽형, 북유럽형, 또는 일본형 중 어느 길을 따라야 할 것인가를 두고 사회적 토론이 거듭되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 역사박물관
그러나 결국 한국인들은 자기 나름의 ‘발전 모델’을 만들었다. 식민지의 부정적 유산을 다 청산하지는 못했지만, 한국인들은 독재체제를 타도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민주정’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군사력과 경제규모면에서도 ‘열강(列强)’의 지위에 올라섰다. 이제 한국은 식민지를 겪은 많은 나라 국민들에게 미국이나 유럽국가, 일본과는 다른 ‘탈식민 근대화’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달리 말하자면, 한국인들에게는 ‘탈식민’의 경험을 전 인류와 공유할 책임이 부과된 셈이다.
남미의 ‘탈식민’ 선도국가 브라질과 만남의 의미
며칠 전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과 브라질 룰라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졌다. 브라질 역시 남아메리카에서 ‘탈식민’ 과정을 선도하는 나라다. 회담에서 두 정상은 특히 ‘AI를 활용한 포용적 성장’ 방안을 함께 연구,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AI기본사회’ 구상과 빈곤퇴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룰라 대통령의 ‘포용적 성장’ 구상 사이에서 접점을 찾은 것이다. AI혁명으로 인한 세계사적 대전환을 맞아 현재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제국주의적, 패권주의적’ AI 개발과는 다른 ‘탈식민적’ AI 개발에 합의했다고 보아도 좋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브라질 확대정상회담에서 룰라 브라질 대통령 요청으로 책에 사인한 뒤 전달하고 있다. 2026.2.23 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은 세계질서를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적 상태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이에 호응하든 반대하든, 구(舊) 제국주의 국가 다수는 ‘힘이 지배하는 세계’로 되돌아 가는 길을 피할 수 없다고 여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인류의 꿈이었던 ‘평화로운 지구’, ‘탈식민의 세계’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인들이 가꾸고 다듬어 온 ‘탈식민의 가치’를 세계인들과 공유하는 일은 더욱 절실하다. 지금은 AI혁명에 따른 세계사의 대전환기다. ‘탈식민적 가치’를 담은 AI 활용 기준이 ‘세계의 표준’이 되어야, 역사의 퇴행과 인류의 재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