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의 한글철학㊾] 민세 안재홍, 다사리 말뿌리 [사람들] 세종이 글꼴로 ‘말문’을 열었다면, 민세 안재홍(民世 安在鴻, 1891~1965)은 그 말문이 낮은 삶으로 내려오는 길을 찾았다. 세종 정음(正音)이 ‘하늘땅사람(天地人)’ 소리를 글꼴로 세운 빛이라면, 민세 다사리는 그 ‘말글’이 나라와 누리와 씨알 정치로 내려오는 땅이다. 그러므로 다석철학 인물지도에서 세종 다음에 민세가 오는 건 당연하다. 세종은 다석 한글철학의 하늘을 열고, 민세는 그 하늘 아래 다 말하고 다 살리는” 다사리 들판을 열었다. 하늘땅∞땅하늘이 한꼴 돌아감이다!
그런데 한 물음이 솟는다.
다석과 민세는 언제 만났을까?
어디서 마주 앉았을까?
무슨 말을 나누었을까?
그들은 서로를 깊이 알았을까?
먼 숲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다석철학 인물지도에서 민세를 큰 숲 사이로 쏟아지는 한 빛줄기로 놓으려면, 이 둘의 만남을 찾아야 한다. 다석이라는, 한 깨달은 이 안으로 어떤 ‘숨빛’이 들어왔는지, 그리고 민세라는 다사리 말뿌리가 다석 말숨과 씨알 사상 속에서 어떻게 큰 우주목(宇宙木)으로 자랐는지 살펴야 한다.
하지만 아직 기록을 찾지 못했다. 자료는 어딘가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석이 민세를 ‘만났다’는 한 줄, 민세가 다석을 ‘찾아갔다’는 한 줄,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한 줄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만남이 없었을까?
기록은 어딘 가에 있을 텐데, 말은 뚜렷이 남았다.
다사리가 남았고, 우리 수 헤임말이 남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이 남았고,
비, 씨, 몬이 남았고,
나, 나라, 누리가 남았고,
말숨과 씨알이 남았다.
얼굴 마주한 만남은 나타나지 않았으나, 말로는 이미 드러나 있다. 민세 다사리와 다석 말숨은 우리 수 헤임말에서 함께 하고 있다. 깊은 데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맞둘’ 하나요, ‘맞봄’ 하나다. 그 하나는 뻥 뚫린 숨빛이다.
열쇳말: 다사리, 수 헤임말, 비·씨·몬, 나·나라·누리, 진백, 진생, 말숨, 씨알, 갇집
그림1) 청년 민세 안재홍과 다석 류영모.
도쿄, 나라 잃은 두 청년의 밤
둘이 첫 숨빛을 틔운 자리는 도쿄(東京)였다.
1910년, 나라를 잃었다. 그해 민세는 도쿄로 건너갔다. 아오야마가쿠인(青山学院)에서 어학을 준비하고, 이듬해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 들어갔다. 도쿄 조선YMCA를 드나들었고, 조선 유학생들 모임과 학우회 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조만식, 송진우, 김성수, 이광수, 장덕수, 김병로, 신석우, 문일평 같은 이름들이 그 곁에 있었다. 나라 잃은 청년들이 제국 심장부에서 조선을 생각하고, 민족을 생각하고, 새 세상을 생각하던 때였다.
다석도 그 무렵 도쿄에 있었다. 다석은 도쿄 물리학교에서 수학과 물리로 엄밀한 질서를 공부했다. 그러나 그가 들이마신 것은 과학만이 아니었다. 도쿄는 조선 청년들에겐 망국 학교였다. 조선 유학생들이 모여 밤새 토론하던 자리, 조선YMCA 작은 방, 성서와 민족운동과 세계 사상이 뒤섞이던 열띤 자리,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 1861~1930)가 세운 무교회 정신이 조선 청년들에게 다른 신앙 길을 열어주던 자리였다.
청년들은 망한 나라를 뚫고 새 틈을 내고 싶었으리라. 그 틈에 제 씨알 뿌리를 내리고 싶었으리라. 그래야 식민으로 갇힌 조선의 ‘갇집(囚獄)’을 해방시킬 수 있었으니까.
다석과 민세가 도쿄 조선YMCA에서 실제로 마주쳤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같은 시대, 같은 도시, 같은 조선 유학생들 장 안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민세는 와세다와 도쿄 조선YMCA, 조선 유학생 학우회와 민족운동의 장에 있었다. 다석 또한 도쿄 물리학교와 기독교, YMCA, 우치무라 무교회의 장에 있었다. 둘은 나라 잃은 조선 청년이었다. 둘은 제국 도시에서 조선의 앞날을 물었다. 둘은 남의 말과 남의 제도와 남의 힘에 눌린 시대 속에서, 어떻게 조선 사람이 제소리로 설 수 있는지를 크게 앓았다.
도쿄는 두 사람 숨빛이 겹친 시대의 방이다. 그 방 안에는 일본어책이 있었고, 영어 성서가 있었고, 정치경제학 노트가 있었고, 조선 청년들의 낮은 말소리가 있었다. 밖에는 제국 전차가 달렸고, 안에는 나라 잃은 청년들 눈빛이 타올랐다.
민세는 도쿄에서 정치와 역사의 길을 얻었고, 다석은 수학과 물리와 ‘믿음(信仰)’ 밑자리를 깨우쳤다. 민세는 조선을 살릴 정치 길을 물었고, 다석은 참을 깨는 몸맘얼 길을 꿍꿍했다. 두 길은 멀리 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그 밑에는 같은 물음이 흘렀다.
조선은 어떻게 제소리로 설 것인가?
우리말 철학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나라 잃은 시대에도 ‘땅하늘(地天泰)’을 품을 수 있는가?
김정식, 이어진 숨줄
두 청년이 에두른 마당에 삼성 김정식(三醒 金貞植, 1862~1937)이 겹친다.
김정식은 한 시대의 통로였다. 그물코를 잇는 벼릿줄같은 통로! 연동교회와 황성기독교청년회,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와 우치무라 간조, 조선 청년들의 신앙과 민족운동이 그를 지나 서로 만났다. 그는 감옥에서 성서를 읽고 기독교인이 되었고, 연동교회와 YMCA에서 일했으며,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조선YMCA 기틀을 놓았다. 그 길은 뒤에 조선 유학생들의 민족운동과 2·8독립선언의 숨은 터가 되었다.
다석은 김정식에게 아들 같은 존재였다. 다석이 예수를 만난 길목은 김정식 덕분이다. 김정식이 다석을 연동교회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둘의 관계는 일본에서 김정식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석의 예수 길, 다석의 무교회 길, 다석의 YMCA 연경반 길을 더듬을 때 김정식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다.
민세 역시 도쿄 조선YMCA 장 안에 있었다. 조선 유학생들 모임, 와세다 정치경제학, 조선 청년들 민족운동, 기독교청년회 네트워크가 민세 청년기를 감싸고 있었다. 그러므로 김정식은 다석과 민세를 직접 만나게 한 인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이 같은 강가에 서 있었음을 알려주는 물소리다.
김정식은 시대의 회로였다. 한쪽에는 다석 예수 길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민세 도쿄 조선YMCA와 민족운동 길이 있었다. 그 사이의 숨은 매듭이 김정식이다. 아니, 당시 도쿄에 있던 조선 청년들에게 김정식은 이음새였고 마당이었고 언덕이었다.
인물지도에서 이런 이음과 매듭은 아주 중요하다. 깨달음은 직선으로만 오지 않는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무엇을 가르쳤다’는 식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어떤 시대에는 사람보다 장이 먼저 있다. 그 장 안에서 서로 이름을 몰라도 같은 숨을 쉰다. 같은 말문을 앓고, 같은 민족의 통증을 앓고, 같은 미래의 물음을 앓는다. 김정식은 바로 그런 장의 회로였다.
민세 작은 만다라의 첫 이음 매듭은 김정식이다. 그는 민세 사상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민세와 다석이 같은 시대의 영적·민족적 회로 안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숨은 그물코다.
그림2) 다석 류영모와 삼성 김정식 가족 사진. 1912년 경이다.
조선학, 대종교, 우리말 깊은 우물
도쿄의 밤이 지나고, 둘은 각자 다른 길로 돌아왔다. 돌아온 조선은 더 어두웠다. 나라 없는 조선이었다. 말이 막히고, 글이 억눌리고, 역사를 빼앗기고, 사람의 제소리가 남의 제도 속에 갇히던 시대였다.
민세는 언론인, 독립운동가, 역사가, 정치가로 뛰었다. 아홉 차례 옥고를 겪었고, 조선일보와 신간회와 해방정국 한복판을 내달렸다. 그렇다고 민세를 정치인으로만 보면 그의 참 속알을 놓쳐 버린다. 그는 뛰어난 국학자였고, 우뚝 솟은 조선학자였으며, 우리말 속에서 조선철학을 캐낸 놀라운 철학자였다.
민세는 대종교와도 깊이 이어졌다. 아니, 그는 대종교인이었다. 단군과 상고사, 한민족 고유사상, 불함문화(不咸文化)와 조선학, 우리말의 고유한 말뿌리를 붙들었다. 그는 외래 사상 이전의 조선, 유․불․도(儒․佛․道) 이전의 조선, 한문으로 덮이기 전의 조선, 말살되기 전의 우리말 속에서 겨레의 오래된 생활이념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민세의 ‘언어고증학’이다. 말은 의사소통 도구 이상이다. 말은 겨레가 살아온 삶의 굳은 숨결이지 않은가. 말 속에 우주관이 있고, 말 속에 인간관이 있고, 말 속에 정치관이 있고, 말 속에 세계관이 있다. 그러니 ‘말’을 꿰뚫어야 한다.
그러므로 민세의 첫 자리는 ‘말’이다. 말 그것이 그대로 도의(道義)요 철학(哲學)이요 그지없는 가르침”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말을 생활 도구로만 보지 않았다. 말은 겨레가 오래 살며 몸에 새긴 생각의 화석이고, 삶의 숨결이고, 세계를 보는 눈이지 않은가! 그래서 민세에게 우리말 풀이는 잃어버린 겨레의 우주관을 캐내는 일이고, 사대주의와 식민주의가 덮어버린 민족철학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민세의 ‘언어고증학(우리말로 철학하기)’은 세 겹이다.
첫째, 우리말은 민족 생활이념 저장고다.
둘째, 고유어에는 외래 사상 이전의 세계관이 남아 있다.
셋째, 그 고유어를 밝히면 한국 고유 정치철학을 다시 세울 수 있다.
이 세겹에서 민세는 다석과 깊이 닿는다. 다석은 한글 글꼴과 소리에서 ‘참’을 보았고, 민세는 우리 낱말과 수 헤임말에서 정치 원리를 보았다. 다석이 ‘말숨’으로 갔다면, 민세는 ‘다사리’로 갔다. 하나는 얼의 길이고, 하나는 나라와 누리의 길이다. 그렇지만 둘 다 우리말에서 철학을 캐낸 사람들이다.
다석도 다른 길에서 같은 우물가로 왔다. 그는 ‘훈민정음’을 파고들었고, 한글 글꼴에서 천지인(天地人)의 이치를 보았고, 중용(中庸)을 ‘가온씀’으로 풀었고, 노자(老子)를 ‘늙은이’로 풀었으며, 대종교와 동학, 예수와 붓다, 공자와 맹자, 톨스토이와 간디를 제 ‘몸맘얼’로 통과시켰다. 다석은 한글 글꼴 하나하나가 뜻을 품고, 소리 하나하나가 숨을 품고, 말 하나하나가 참으로 가는 문이라고 보았다.
민세는 우리말 낱말에서 조선 정치철학을 캐냈다.
다석은 한글 글꼴과 말숨에서 참의 철학을 밝혔다.
민세는 다사리로 갔고, 다석은 큰나(大我)로 갔다.
민세는 나·나라·누리를 물었고,
다석은 속나·큰나·한아님을 물었다.
둘 다 우리말 깊은 우물가에 서 있었다. 세종에게서 훈민정음이 한글경전으로 열렸다면, 민세에게서 우리 수 헤임말은 다사리 경전처럼 열린다. 다석은 글꼴에서 참을 보았고, 민세는 말뿌리에서 정치를 보았다. 한쪽은 말숨 경전이고, 한쪽은 다사리 경전이다.
그림3) 안재홍, 조선상고사감(朝鮮上古史鑑). 상·하 (민우사, 1947). 상권은 ①기자조선고(箕子朝鮮考), ②아사달(阿斯達)과 백악(白岳), 평양, 부여변(夫餘辨), ③고구려건국사정고(高句麗建國事情考), ④고구려직관고(高句麗職官考), ⑤신라건국사정고, ⑥신라직관고략, ⑦삼한국(三韓國)과 그 법속고(法俗考), ⑧육가라국소고(六加羅國小考). 하권에는 ①부여조선고(夫餘朝鮮考), ②ᄇᆞᆰᄇᆞᆯ, ᄇᆡ원칙과 그의 순환공식, ③고구려와 평양별고, ④백제사총고, ⑤조선상대지리문화고(朝鮮上代地理文化考) 등이다. 이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나 정인보의 조선사연구(朝鮮史硏究) 같은 시대사와 그 연구 영역을 같이하고 있다. 또, 그는 언어학적 연구방법을 자주 쓰고 있는데 이 또한 신채호에게서도 보인다. 신채호와 정인보를 자주 인용하고 있지만, 그가 근대적 사회과학에 접촉했던 만큼 그의 연구는 독자성을 보이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수 헤임말, 만남을 증언하다
두 사람 빛줄기 솟구침은 우리 수 헤임말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민세에게 이 말들은 조선 정치철학 문이다. 그는 수를 계산 기호로 보지 않았다. 수는 우주가 열리는 차례이고, 사람이 생겨나는 질서이고, 나라와 정치와 세계가 펼쳐지는 길이었다.
하나는 한이다. 한울이다. 큰 하나다. 무궁대의 하나다. 모든 걸 품은 하나다. 둘은 들이다. 땅이다. 만물이 닿아 사는 자리다. 하늘을 받아 싣는 두터운 바탕이다. 셋은 씨다. 사람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생명의 씨가 놓이는 자리다. 넷은 나다. 나다, 낳다, 나아가다, 살아나다의 자리다. 여기서 자아와 자유와 나라의 문이 열린다. 다섯은 다사리다. 다스림이다. 지배가 아니다. 다 말하게 하고 다 살리는 섭리다.
흥미롭지 않은가?
자 다시 깊게 살펴보자. 민세가 쓴 글을 풀어 밝힌다.
하나·둘·셋 - 하늘, 땅, 사람
하나(一 / 天). 한, 한울에서 유래하며, 최대이자 무궁대(無窮大)를 뜻한다. 무궁대는 오직 하나뿐이므로 유일(唯一)이자 최존(最尊)의 존재인 대일신(大一神)으로 귀결된다. 이는 ‘일즉다 다즉일(一即多 多即一)’의 만류일원(萬類一源) 우주관의 시작이다. 하나는 숫자 1이 아니다. 한이다. 한울이다. 크고 높고 가없는 하나다. 민세는 하나를 하늘로 보았다. 하나는 수의 처음이고, 한울의 자리다. 이 하나는 쪼개진 하나가 아니라, 모든 것을 품은 하나다. 다석으로 말하면 ”의 자리다.
둘(二 / 地). 대지를 뜻하는 ‘들’과 통한다. 만물이 ‘닿아서 존재하도록’ 두터이 싣는 곤후재물(坤厚載物) 성격을 지니며, 삼라만상이 들어앉는 포온정축(包蘊停蓄) 공간을 뜻한다. 하늘이 열렸다면, 땅은 그것을 받아 싣는다. 둘은 갈라짐이면서 받침이다. 천지가 열려야 생명이 설 자리가 생긴다.
셋(三 / 人). 세, 셋은 생명 씨앗(種子)을 배치한 것이다. 민세는 천지가 아무리 장엄하더라도 그 씨앗이자 주인인 ‘사람’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우주 작용과 존재 의의가 생긴다는 ‘인간본위 세계관’을 주창했다. 이것은 인간중심 오만이 아니라, 하늘땅 뜻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사람 본위 세계관이다. 사람은 ‘살음(生活)’이자 ‘사랑’을 유친어로 가지므로, 국가를 넘어서는 인류대동의 ‘선국가적 존재(先國家的存在)’가 된다.
여기서 민세 수 철학은 우주론에서 인간론으로 넘어간다. 하나는 하늘, 둘은 땅, 셋은 사람이다. 세종 ‘천지인(天地人)’과도 닿고, 다석 ‘몸맘얼’과도 닿는다.
민세가 하나·둘·셋에서 하늘·땅·사람을 보았다면, 다석은 그 하늘·땅·사람을 몸맘얼 수행으로 다시 살았다. 민세의 셋은 사람 자리이고, 다석의 셋은 몸맘얼이 하나로 꿰이는 자리다.
넷 - 나, 나라, 누리
넷(四 / 나). 네, 넷은 나 혹은 ‘나엇(出生)’을 뜻한다. 민세는 자아(나), 출생(낳다), 생존(살아남), 진취(나아감)가 모두 ‘나’라는 어휘소에서 출발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가를 뜻하는 ‘나라’ 역시 ‘나’에서 파악하여, 국가란 나의 개성과 자유를 근본 바탕으로 삼는 ‘생활협동체’이자 ‘정신적 결사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나 즉 나라, 나라 즉 나”의 관계가 도덕적으로 성립되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나 제국주의는 철저히 배격된다.
넷은 나다. 나다, 낳다, 나아가다, 살아나다”가 모두 이 ‘나’의 자리와 통한다. 민세는 여기서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관계를 푼다. 나가 있어야 나라가 있다. 그러나 나만 있으면 나라가 되지 않는다. 나들이 모이고, 서로 살고, 서로 말하고, 서로 책임질 때 나라가 된다. 나라는 개인을 짓누르는 국가가 아니다. 나의 자유가 살아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
이 점이 민세 정치철학의 중요한 자리다. 민세는 전체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와 자주성을 무시하는 정치는 다사리가 아니다. 동시에 개인의 자유가 공동체 책임과 끊어져 제 욕망만 좇는 것도 다사리가 아니다. 나와 나라가 맞물리고, 나라와 누리가 이어지는 길, 그것이 민세 정치철학이다.
민세의 넷은 나를 나라와 누리로 여는 정치의 문이다. 다석의 나 물음은 좀나(小我)를 깨고 큰나(大我)로 솟는 수행문이다. 좀나는 겉나요, 큰나는 속나다. 민세는 닫힌 국가를 깨고, 다석은 닫힌 자아를 깼다.
그림4) 2014년 다사리문화학교 결과자료집 표지이다. 글쓴이는 당시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실장으로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1년 과정으로 문화학교를 개설했다. 2014년 9월에 1기가 입학해서 2015년 7월까지 공부했다. 1기 샘으로 참여한 이는 박이은실, 심혜경, 이명원, 한문희, 김월식, 곽동열, 천원진, 하승수, 박찬응, 김종철, 심광현, 이장섭, 민운기, 주요섭, 박이창식, 용마, 이선철, 임정희, 홍선웅, 조지은, 그리고 1기 물로 배운 이는 고미랑, 강시내, 오린지, 김지아, 이유진, 강우진, 김해송, 이다영, 이용규, 김가화, 김설경, 김유진, 윤혁준, 이연순, 홍지수, 권선혜, 김대남, 김라연, 노재윤, 박민희, 박은주, 이현정, 조경서, 황민숙이다. 글쓴이는 마당샘이고, 조민우는 꿀벌샘이었다. 책 디자인은 오린지, 김진아(4만키로미터)가 맡았다. 이후, 이끔샘은 김월식(교장), 강정석, 이채관, 임재춘, 주성진이고, 7기까지 이끌었다.
다섯 - 다사리, 다 말하고 다 살리는 정치
다섯에서 민세 철학은 가장 크게 피었다.
다섯(五 / 다사리). 다섯은 ‘다사리’와 말뿌리를 공유하며, 우주 섭리가 인간 사회에 정치 통치 원리로 표출된 것이다.
만민총언(萬民總言)과 만민공생(萬民共生)의 민주정치 수 헤아림 철학 중 ‘다섯’에서 도출된 ‘다사리 이념’은 민세 정치철학 정수이자, 이상국가 핵심 원리다. 그는 우리말 ‘다사리’ 어원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서구의 자유와 평등 가치를 완벽하게 통합해 냈다. 다사리 두 기둥은 진백(盡白)과 진생(盡生)이다. 둘을 살핀다.
첫째는, 방법으로서의 ‘다 사뢰다’이다. 곧 진백(盡白: 자유주의)이다. 다사리는 국정에 대해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사뢰어(말하게 하여)” 총의를 표백한다는 의미다. 이는 언로(言路)를 완전히 개방하는 만민총언(萬民總言), 개백(皆白)의 정신이며, 정치적 절차에서 개인의 자유와 참여를 극대화하는 자유주의와 의회민주주의 이념이다.
둘째는, 목적으로서의 ‘다 살리다’이다. 곧 진생(盡生: 사회주의)이다. 다사리는 사회 구성원 중 그 누구도 소외되거나 굶주리지 않고 모두를 다 살아나게 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차등과 유루(遺漏: 빠짐) 없이 만민이 골고루 잘살 수 있도록 공생을 도모하는 개활(皆活)의 정신이며, 경제적 균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와 복지공동체 이념과 연결된다.
민세는 이 다사리 흔적이 한민족 상고사 속 대인시(大人市), 제가회의(諸加會議), 신라 화랑도와 화백제도[‘화백’의 뜻인 ‘성(誠)’을 모든 이가 발언권을 갖는 ‘함언(咸言)’으로 해석] 등 고유한 공화주의 풍속에 내재해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과거 다사리가 ‘지배계급(公民)’에게만 한정된 제한적 민주주의였다면, 해방 공간의 현대 한국에서는 이를 ‘전민중, 전민족’의 영역으로 확대보화(擴大普化)하여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로 진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좌우 극단 대립을 지양하고, 중도 길을 열고자 한 ‘순정우익(純正右翼)’ 정치노선의 철학 기반이 되었다.
그래서 다사리는 ‘자유∞평등’을 둘로 찢지 않는다. 다 말하게 함이 자유라면, 다 살게 함은 평등이다. 다사리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한쪽으로 기울이지 않고, 둘을 회통 시키는 우리말 정치철학이다. 다사리는 다 말하게 하고, 다 살리는 길이다. 말문 없는 정치는 다사리가 아니고, 살림 없는 정치는 다사리가 아니다.
다사리는 정치의 ‘갇집’을 깨는 말이다. 권력의 독점, 말문의 봉쇄, 굶주림과 배제, 이념의 편 가르기가 모두 ‘갇집’이다. 다사리는 그 ‘갇집’을 깨고 진백과 진생의 들판을 여는 말이다.
그림5) 다사리문화기획학교(1기만 ‘다사리문화학교’임) 7기 모집 벽종이다. 7기를 끝으로 다사리문화기획학교는 문을 닫았다. 공공기관에서 교육철학을 세우고, 1년 전문과정으로 문화기획학교를 운영한 사례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역문화기획자 ‘한 사람’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야말로 정성으로 모시는 ‘모심’에 있다. 숫자로 보이는 성과가 아니라, 적은 수일지라도 정성을 다해서 모시면 저절로 커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다사리는 그런 학교였다. 문을 닫을 때까지 5명의 이끔샘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섯·일곱 - 이어감과 이룸
여섯(六 / 지속). ‘여어서’, 즉 지속과 존속을 뜻한다. 우주 대자연 섭리가 시공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생성·변화하는 모습을 나타내며, 『주역』의 ‘자강불식(自彊不息)’과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여섯은 지속이요, 이어짐이다. ‘여어서’ 나아가는 힘이다. 우주가 한 번 생기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고 흐르고 계속되는 힘이다. 다석으로 말하면 ‘줄곧’의 자리다.
일곱(七 / 사위). 일(勞動)을 통해 일어나고(興起), 이룩하며(成就), 목적지에 이르는(到達) 사위(事爲)를 뜻한다. 하나부터 여섯까지 축적된 우주 대도가 단단한 매듭(결괴, 結塊)을 짓는 도덕적 성취 단계다. 다시 말해 일곱은 일어나고, 이루고, 목적지에 닿는 힘이다. 여섯이 이어감이라면, 일곱은 이룸인 것이다. 생각이 말에 머물지 않고 일로 나아가는 자리다.
민세에겐 정치도 이와 같았다. 정치철학은 말로 끝나지 않는다. 다사리는 제도와 실천으로 가야 한다. 만민총언은 의회로 가야 하고, 만민공생은 경제·교육·생활의 균등으로 가야 한다.
여덟·아홉·열 - 여닫음, 아우름, 엶
여덟(八 / 개합지양). 문을 여닫는 ‘여닫(開闔)’이자 모자라고 남는 ‘여덜(損益)’이다. 모순과 이질적인 요소를 변증법으로 깎아내고, 이어 붙이는 ‘지양(止揚)과 변통’의 핵심 원리다. 다시 말해 여덟은 여닫음이다. 여닫으며, 덜고 보태며, 모순을 지양하는 자리다. 민세가 해방정국에서 좌우합작을 고민한 것도 이 여덟의 자리와 닿는다. 좌와 우, 자유와 평등, 민족과 세계, 개인과 공동체를 서로 죽이는 대립으로 두지 않고, 여닫으며 새 질서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홉(九 / 종합회통). 아홉은 ‘아울름(綜合, 會通)’이다. 내 몸이 수많은 세포와 선조들의 혈육이 모여서 이루어졌듯, 인간의 마음 역시 수많은 선철들의 지혜가 융합된 천하의 공체(公體)임을 뜻한다. 다시 말해 아홉은 종합이요, 회통이다. 여러 흐름이 한자리로 모여 새 몸을 이루는 단계다. 민세의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는 바로 이 아홉 자리에서 이해해야 한다. 민족주의만도 아니고, 자유주의만도 아니고, 사회주의만도 아니다. 그것들을 조선 말뿌리와 역사 속에서 아우르려 한 것이다.
열(十 / 무한개전). 열은 거칠 것 없이 사방으로 열려 뻗어나가는 ‘개전(開展)과 현현(顯現)’이다. 개합회통 된 진리가 역사 속에서 무한히 전개되는 이상적 역동성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열은 활짝 열림이다. 진리가 역사 속에서 펼쳐지는 자리다. 닫힌 민족주의가 아니라 세계로 열리는 민족주의, 배타가 아니라 공생으로 나아가는 민족주의다. 민세(民世), 곧 민족과 세계다. ‘민세주의’는 민족에서 세계로 가는 길이다.
여덟·아홉·열은 민세에게 해방정국의 ‘갇집’을 여닫고 아우르고 열어내는 수였다. 다석에게 이 자리는 회통과 ‘줄곧뚫림’의 자리다. 서로 다른 빛들을 한 말숨으로 태워내는 알맞이 자리다.
민세의 수 헤임말은 한 줄로 잡을 수 있다. 다석 수 철학과도 그대로 맞물린다.
하나 : 한울, 하늘, 큰 하나 / , 참의 시원
둘 : 들, 땅, 받침 / 몸, 터, 생활
셋 : 씨, 사람, 생명 / 씨알, 사람
넷 : 나, 출생, 나라 / 자아와 공동체
다섯 : 다사리, 섭리, 다스림 / 다 말하고 다 살림
여섯 : 지속, 존속, 이음 / 줄곧 이어감
일곱 : 사위, 일, 성취 / 몸살이의 이룸
여덟 : 여닫음, 여덜, 손익, 개합 / 대립의 지양
아홉 : 아우름, 종합, 회통 / 통합과 회통
열 : 열림, 개전, 현현 / 역사 속 펼침
민세는 여기서 정치철학을 세웠다. 하나에서 하늘을 보고, 둘에서 땅을 보고, 셋에서 사람을 보고, 넷에서 나와 나라를 보고, 다섯에서 다사리 정치를 보았다. 수 헤임말은 민세에게 우주론, 인간론, 정치론, 민주주의론이었다.
그림6) 안재홍이 쓴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 (서울: 민우사, 1945). 우리 수 헤임말 철학을 밝힌 논문이다. 내용은 (1)국제적 개관과 신민족주의, (2)조선 정치철학과 신민족주의, (3)결론으로서의 신민족주의로 구성되어 있다.
다석의 수 헤아림도 이와 같다. 다석에게 하나는 이다. 한아님이다. 한 끄트머리이고, 한 점이다. 다석은 나는 참나라는 하나의 증인”이라고 했다. 하나는 참의 벼리다. 한 점은 가온이다. ‘ㆍ’ 하나는 하늘 점이며, 빈탕에서 솟는 첫 숨이다. 둘과 셋, 하늘땅사람, 몸맘얼, 말숨과 씨알 길도 다석 한글철학에서 서로 맞물린다.
이 닮음은 우연일까?
어떻게 이런 같은 말뿌리를 캐낸 것일까? 어느 시기, 어느 자리, 어느 글, 어느 대화에서 이런 생각이 오갔을까? 아직 확정할 수 없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민세와 다석은 우리 수 헤임말을 철학의 자리로 보았다. 식민지 조선에서, 남의 말로 배운 학문이 지식의 표준이 되던 시대에, 두 사람은 우리말 속에서 철학을 캐냈다. 서구 철학 번역어를 빌려 조선을 설명하지 않고, 조선말 속에서 세계를 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비, 씨, 몬.
나, 나라, 누리.
다사리.
그들은 우리말 속에서 만났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비, 씨, 몬. 나, 나라, 누리. 다사리. 이 말뿌리에서 민세는 조선 정치철학을 캐냈고, 다석은 말숨 한글철학을 밝혔다. 이 말뿌리는 가장 든든한 밑동이다. 이 말뿌리 밑동을 깨우치지 못하면 한글철학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비·씨·몬, 우주론
비(虛)는 ‘비어 있’이다. 허공(虛空: 빈탕), 본무(本無: 밑없)를 뜻한다. 비는 텅 빈 빈탕이다. 모든 것이 비롯될 수 있는 큰 빈자리다. 비로소, 빌미, 빛, 별, 배다 같은 말들이 이 자리에 닿는다. 민세는 여기서 한민족 고유의 ‘비(虛)’의 철학을 보았다. 노자의 허(虛)와 닿는다. 그렇다고 남의 철학을 빌려온 게 아니다. 우리말 속에서 이미 숨 쉬던 ‘빈탕’을 캐낸 것이다.
씨(種)는 생명 씨앗(種子)을 뜻한다. 모든 생명체가 발생하고 성장하는 중핵이자 원동력이다. 한민족 역사의 시작점인 아사달(阿斯達)을 ‘아씨땋(처음 씨앗이 닿은 땅)’으로 고증했다. 다시 말해 씨는 생명이다. 씨알이다. 생명이 이어지는 알짬이다. 씨가 있어야 싹이 트고, 사람이 나고, 역사가 이어진다. 이 씨는 다석과 함석헌의 ‘씨ᄋᆞᆯ’과 곧바로 이어진다. 다석 ‘씨ᄋᆞᆯ’은 깨달음이 역사 속으로 내려온 생명 알갱이다. 함석헌 ‘씨ᄋᆞᆯ’은 민중이고, 역사이고, 민주주의 속알이다. 민세의 씨는 그보다 앞서 우리말 속에 들어 있던 생명 철학의 원형이다.
몬(物)은 물질(物質)을 뜻한다. 물질이 집결하는 현상을 ‘모음’, ‘모듬’이라 하고, 물질의 미세한 잔재를 ‘몬지(먼지)’라고 하지 않는가. 광대한 우주 물질세계를 구성하는 근본 바탕이다. 민세는 ‘비·씨·몬’ 이 세 가지 요소 외에 우주 근원이자 섭리의 핵심을 이루는 지성적·영적 힘으로 ‘알·얼’을 추가했다. 인간의 마음과 정령(精靈)은 이 ‘알·얼’을 통해 성립되며, 이는 우주가 거대한 지성적 영능(靈能)에 의해 숨 쉬고 있음을 뜻한다.
여기서 민세의 ‘’가 드러난다. ‘’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참나의 씨, 말뿌리 속에 숨어 있는 속알이다. 민세에게 그 ‘’는 비·씨·몬과 수 헤임말 속에 숨어 있었다. 그는 그 말을 캐냈다. 캐냈기 때문에 깼다. 남의 말로 철학해야 한다는 식민의 ‘갇집’, 한문과 서구 번역어만이 철학이라는 지식의 ‘갇집’을 깼다. 다석도 마찬가지다. 다석은 한글 글꼴과 말숨 속에서 ‘’를 캐냈다. 그 캐냄이 깨달음이 되었고, 그 깨달음이 얼나와 씨알로 솟았다. 그러므로 민세와 다석은 ‘-깨-캐’의 같은 길에 서 있다.
다석 얼 철학은 여기서 민세와 깊이 만난다. 다석에게 얼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속빛이다. 얼나는 제나를 벗고 솟는 참나다. 민세가 우주 영능으로 얼을 보았다면, 다석은 수행하는 속나로 얼나를 밝혔다. 그이가 ‘큰나’다. 민세 얼은 조선 정치철학의 우주 바탕이고, 다석 얼나는 한 사람이 참으로 솟는 수행 길이다. 둘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지만, 같은 말뿌리에서 솟는다.
비는 다석 빈탕이요,
씨는 다석 씨ᄋᆞᆯ이요,
몬은 다석 몸성히요,
얼은 다석 얼나다.
흥미롭게도, 민세 사상은 다석 한글철학을 마중물처럼 끌어내고 결속시키는 학문적 수원지 역할을 한다. 두 사상가는 우리말에 대한 깊은 경외와 영성스러운 통찰을 공유하고 있다.
민세가 말은 곧 생활이념의 표현”이라며 ‘알·얼’을 우주 핵심 영능으로 파악한 자리는, 다석에 이르러 우리말 닿소리와 홀소리 하나하나에 천지인 형이상학을 부여하고 인간을 ‘얼나’로 거듭나게 한 ‘한글 소리 철학’으로 더욱 깊어지고 통합된다. 민세가 ‘여덟’과 ‘아홉’에서 끌어낸 ‘개합회통론(開闔會通論)’을 비롯해, 물질과 정신이 상호작용하는 ‘물심양원론(物心兩元論)’은 이데올로기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카드였다. 이는 다석이 동서양 사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노장의 ‘빔(虛)’과 기독교의 ‘하느님’, 유교의 ‘천명(天命)’을 하나로 꿰뚫어 사색했던 통합 사유의 선구적 형태다.
민세는 다사리를 인류사회에만 한정하지 않고 백(온), 천(즈믄), 만(잘), 억(골)의 숫자풀이를 통해 일월성신(日月星辰)부터 초목(草木) 곤충에 이르기까지 우주 자연의 모든 존재가 제자리 잡고 살아가게 하는 ‘함화보육(咸化普育)의 홍익원’이자 ‘인(仁)의 대도(大道)’로 확장시켰다. 이 거시적인 생명 평화 비전은 ‘다사리공동체’의 이상이며, 다석철학이 지향한 우주 귀일(歸一) 사상과 맞닿아 있다.
민세는 우리말로 사색하고 우리말로 세계를 해석함으로써 사대주의에 함몰되지 않은 ‘보편을 지향하는 민족철학’을 우뚝 세웠다. 민세는 다석에게 한 인물을 뛰넘어 한 지층이라 할 것이다. 다석 말숨 아래 깔린 우리말 철학의 깊은 땅이기 때문이다.
그림7)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가 쓴 ‘다사리국가론’(백산서당, 1999)과 ‘민세 안재홍 평전’(민음사, 2018).
다사리, 정치가 되는 길
다섯에서 다사리가 열린다.
다사리는 다스림의 오래된 말이다. 민세는 그 말속에서 지배의 뜻을 캐내지 않았다. 그는 다사리를 다 말하게 하고 다 살리는 길로 풀었다. 다 사뢰게 한다, 다 살게 한다, 바로 이것이 다사리다. 앞에서 살폈으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다 사뢰게 함은 진백(盡白: 자유주의)이다. 모두가 자기 뜻을 밝히는 일이다. 말길을 여는 일이다. 말문을 막지 않는 일이다. 의회가 필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복수정당이 필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서로 다른 뜻들이 나와야 한다. 백성의 말이 권력 앞에서 막히면 다사리가 아니다. 말 못 하는 이의 말이 공론의 마당에 나오지 못하면 다사리가 아니다.
다 살게 함은 ‘진생(盡生: 사회주의)’이다. 말하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모두가 살아야 한다. 굶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버려진 사람이 없어야 하고, 배제된 사람이 없어야 한다. 정치가 말의 자유만 주고 삶을 살리지 못하면 다사리가 아니다. 자유가 있어도 굶주림이 있으면 다사리가 아니고, 평등을 말해도 말문을 막으면 다사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다사리는 자유 평등을 둘로 찢지 않는다.
다 말하게 함은 자유다.
다 살게 함은 평등이다.
다사리는 자유 평등이 우리말 속에 하나로 더불어 솟아오른 자리다.
세종이 말문을 열었다면, 민세는 그 말문이 정치가 되는 길을 열었다. 세종 ‘정음’은 백성이 제 뜻을 적게 하는 글자였다. 민세 ‘다사리’는 백성이 제 뜻을 말하고, 그 말이 모두의 삶을 살리는 정치가 되게 하는 길이었다. 말문은 다사리로 내려가야 한다. 말이 많아도 모두가 말하지 못하면 말문이 열린 것이 아니다. 말이 넘쳐도 모두가 살지 못하면 정치는 열린 것이 아니다.
말문을 막는 권력의 갇집!
모두를 살리지 못하는 경제의 갇집!
자유와 평등을 갈라 싸우게 하는 이념의 갇집!
민족을 닫아버리는 배타적 민족주의 갇집!
민주주의를 절차로만 남기는 제도의 갇집!
다사리는 해방의 말이다. 무엇으로부터 해방인가. 말 못 하게 하는 권력의 갇집으로부터, 굶주리게 하는 경제의 갇집으로부터, 자유와 평등을 갈라 싸우게 하는 이념의 갇집으로부터, 민족을 닫힌 울타리로 만드는 배타의 갇집으로부터 해방이다. 다사리는 다섯의 정치가 아니라, ‘갇집’을 깨는 정치다.
다석에게 말은 숨이다. 말숨이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얼에서 나오는 숨이다. 그러므로 다석 말숨은 민세 다사리와 만날 때 씨알 민주주의 땅을 얻는다. 말숨이 제 속 깨달음에만 머물면 얼나 길이다. 그 말숨이 씨알들 사이에서 서로 말하게 하고 서로 살게 하는 길로 내려오면 다사리 길이다.
민세는 다석에게 한 땅이다. 세종이 다석 한글철학 하늘을 열었다면, 민세는 그 하늘 아래 말이 사회가 되고 정치가 되고 민주주의가 되는 땅을 열었다. 다석 말숨은 민세 다사리와 만나 씨알 숨으로 내려온다.
그림8) 1935년 조선어학회 표준어사정위원들이 현충사를 방문하고 찍은 기념 사진이다. 표준어사정위원회에는 서울 출신 26명, 경기 11명, 각 도 대표 36명 등 73명의 위원이 참여해 표준어의 어휘를 사정(司正)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가운데 검은 안경테 안경을 쓴 이가 민세 안재홍이다. 출처: 한글학회
나·나라·누리, 제나에서 얼나로
민세 수 헤임말에서 넷은 나다. 여기에 정치철학 핵심이 있다.
나는 작지 않다. 나가 있어야 나라가 있다. 나의 자유가 없으면 나라도 죽는다. 그러나 나만 있으면 나라는 서지 않는다. 나가 서로 만나 우리를 이루고, 우리가 삶의 터를 만들고, 그 터가 나라가 된다. 나라는 나를 삼키는 괴물이 아니어야 한다. 나의 자유를 지키고, 나의 삶을 살리고, 나와 나 사이의 공동 책임을 세우는 생활협동체여야 한다.
민세는 나에서 나라로, 나라에서 누리로 갔다. 이것이 중요하다. 민세 민족주의는 닫힌 민족주의가 아니다. 나라를 세우되, 누리를 닫지 않는다. 민족을 사랑하되, 세계와 끊어지지 않는다. 민세라는 호 자체가 민족과 세계의 두 글자에서 왔다. 민족에서 세계로, 세계 속 민족으로, 조선 길에서 세계 길로 가려 했다.
다석 길은 수행 언어로 같은 물음을 묻는다. 다석은 겉나를 깨고 속나로 솟으라고 했다. ‘겉나(제나)’는 닫힌 나다. 욕심나, 이름나다. ‘속나(얼나)’는 열린 나다. 하늘바탈을 받은 큰나다. 한아님과 통하고, 씨알과 통하는 나다. 민세가 정치철학에서 나를 나라와 누리로 열었다면, 다석은 수행철학에서 좀나를 큰나로 열었다.
민세의 나와 다석의 큰나는 같은 말이 아니다. 그러나 둘은 서로를 비춘다. 민세는 정치 자리에서 나를 전체주의와 제국주의에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 다석은 수행 자리에서 나를 욕망과 거짓 중심에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 민세는 나를 나라와 누리로 열었고, 다석은 나를 참과 한아님으로 열었다. 하나는 다사리 길이고, 하나는 말숨 길이다.
두 길은 이렇게 만났다. 민세의 나가 나라와 누리로 열릴 때, 닫힌 개인은 공동의 삶으로 나아간다. 다석의 제나가 깨질 때, 좀나는 큰나로 솟고 겉나는 속나로 깊어진다. 민세는 정치의 갇집을 깨서 나를 나라와 누리로 열었고, 다석은 수행의 갇집을 깨서 좀나를 큰나로 열었다.
‘참나’는 늘 열려 있다.
참 ‘나라’는 사람을 내고 낳는다.
참 ‘누리’는 나라를 살리고 더한다.
참 ‘얼나’는 씨알과 더불어 산다.
다석 안에 타오른 민세 빛
민세 다사리를 다석 안에서 찾는 일은 필요하다. 자료를 더 찾아야 한다. 두 사람의 직접 만남, 편지, 강연, 독서 기록, 제자들 증언을 더 살펴야 한다. 도쿄 조선YMCA, 조선 유학생 학우회, 귀국 뒤 서울 종로 YMCA와 조선학 네트워크, 이광수와 정인보, 대종교와 국학 연구, 해방정국 교차점을 하나씩 더듬어야 한다.
민세 큰며느리의 작은아버지는 현재 김흥호(鉉齋 金興浩, 1919~2012)다. 김흥호는 다석을 이은 큰 제자이고, ‘현재(鉉齋)’라는 호도 다석이 준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민세와 다석이 이어지지 않을 까닭이 없다.
이 글은 멈추지 않는다. 다석철학 인물지도는 더 나아가야 한다. 깨달음 솟난 지도로 넓혀야 한다. 어떤 빛이 어떻게 타올랐는지를 보는 숨빛 만다라이기 때문이다.
민세 빛은 다석 안에서 네 방향으로 타올랐다.
첫째, 우리말로 철학하기 빛이다.
민세는 우리말 그대로가 철리(哲理)요 우주관이라고 보았다. 다석은 말숨으로 참을 밝혔다. 두 사람 모두 우리말을 철학 몸으로 삼았다. 남의 말로 빌린 관념을 옮기는 데 머물지 않았다. 우리말 속에서 세계를 열었다. 남의 말 철학의 ‘갇집’을 깼다.
둘째, 수 헤임말 빛이다.
민세는 하나·둘·셋·넷·다섯에서 하늘·땅·사람·나·다사리를 보았다. 다석은 하나와 , 하늘땅사람, 몸맘얼, 큰나․속나, 씨알 길을 보았다. 두 사람은 수를 계산 기호가 아닌, 존재 ‘길눈’으로 보았다. 계산으로만 보는 수의 ‘갇집’을 깼다. 수를 존재 길눈으로 열었다.
셋째, 다사리 빛이다.
민세는 다 말하게 하고 다 살리는 정치 길을 밝혔다. 다석 말숨은 이 빛과 만나 씨알 민주주의 숨으로 내려온다. 함석헌이 그 ‘씨ᄋᆞᆯ’을 역사와 민중 길로 밀고 나갔다면, 민세는 그보다 앞서 우리말 속에서 정치 씨를 캐냈다. 말 못 하는 정치, 살리지 못하는 정치의 ‘갇집’을 깼다.
넷째, 나·나라·누리 빛이다.
민세는 나를 나라와 누리로 열었고, 다석은 겉나를 깨고 속나로 솟게 했다. 한쪽은 정치철학이고, 한쪽은 수행철학이다. 그러나 두 길은 모두 닫힌 자아와 닫힌 민족주의를 넘어선다. 민세는 민족에서 세계로 갔고, 다석은 제나에서 한아님으로 갔다. 그 둘 사이에 씨알이 있다. 닫힌 나와 닫힌 민족주의 ‘갇집’을 깼다.
그러므로 민세는 다석에게 ‘영향을 준 인물’이라는 좁은 말로 가둘 수 없다. 민세는 다석철학 인물지도에서 말글 뿌리의 두 번째 큰 빛이다. 세종이 정음 태양이라면, 민세는 다사리 말뿌리다. 세종이 소리를 글꼴로 세웠다면, 민세는 말을 정치로 세웠다. 세종이 말문을 열었다면, 민세는 그 말문이 모두를 살리는 다사리 길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석 말숨은 세종 정음 하늘에서 숨을 얻고, 민세 다사리 땅에서 씨알 길을 얻는다.
그림9) 1931년 11월 5일 저녁, 만주 봉천으로 가는 기차 앞에서 함께한 만주조난동포문제협의회 위문사절단. 왼쪽에서 세 번째가 안재홍, 다섯 번째가 윤치호,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박동완 목사(민족 대표 33인). 출처 : 평택시민신문(황우갑 민세아카데미 대표가 연재한 ① 민세 사진 자료 발굴-조선일보 출신 손정미 소설가 미공개 사진 20여 점 기증”을 참조했다. 기사는 1931년 9월 18일 일제는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이때 일제와 후퇴하는 중국군 사이에서 만주에 사는 동포들이 방화와 약탈 등으로 큰 곤란에 처했다. 이에 10월 27일 만주조난동포문제협의회가 종로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조직되고 안재홍은 윤치호, 송진우, 박동완, 서정희 등과 함께 만주동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11월 5일 봉천행 열차로 서정희 등이 위문사로 파견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오늘, 다사리
우리는 말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구나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모두가 말하고 있는가. 말 못 하는 사람은 어디 있는가. 가난한 이 말, 장애인 말, 이주민 말, 청년 말, 노인 말, 농민 말, 노동자 말, 예술가 말, 전쟁과 재난 속에 갇힌 사람들 말은 어디서 들리는가?
말은 넘치고, 말숨은 드물다.
표현은 드센데, ‘진백’은 약하다.
정책은 쏟아지지만, ‘진생’은 멀다.
모두를 살리지 못하는 시대다.
다사리는 묻는다.
다 말하게 하고 있는가?
다 살리고 있는가?
정치는 말문을 열고 있는가?
나라는 씨알 삶을 살리고 있는가?
민주주의는 절차로만 남았는가?
만민공생 숨으로 살아 있는가?
다석이라면 여기에 말숨을 물었을 것이다.
말이 입에서만 나는가?
말이 얼에서 나는가?
말이 제 욕망을 키우는가?
말이 씨알을 살리는가?
다사리는 말숨이어야 한다. 말숨 없는 말은 소음이고, 살림 없는 정치는 껍데기다.
그러므로 민세의 다사리는 오늘 씨알에게 다시 오는 물음이다.
AI가 대신 말해주는 갇집!
정보 과잉의 갇집!
혐오와 진영 정치의 갇집!
자본과 성과주의의 갇집!
기후 위기와 인류세의 갇집!
절차만 남은 민주주의 갇집!
21세기 현대인은 다른 ‘갇집’에 산다. AI가 대신 말해주는 갇집, 정보가 넘쳐 생각이 마르는 갇집, 혐오와 진영이 말문을 막는 갇집, 자본과 성과가 사람을 숫자로 바꾸는 갇집, 기후위기와 인류세가 삶의 터를 흔드는 갇집. 오늘 다사리는 이 갇집 앞에서 다시 묻는다. 너는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대신 말해지고 있는가. 너는 살고 있는가. 아니면 소비되고 있는가.
다 말하라. 참으로 말하라!
다 살라. 함께 살라!
나를 세우라. 나라와 누리로 열라!
말문을 열라. 말숨으로 열라!
민세의 작은 만다라 그물코 곁빛
삼성 김정식 — YMCA와 예수 길의 숨은 매듭
조만식 — 도쿄 유학생·민족교육·무저항 실천의 벗
이광수 — 동경·오산·문학과 사상의 교차점
정인보 — 조선학 깊은 우물
대종교 — 단군·상고사·한민족 하늘사상의 지층
함석헌 — 씨ᄋᆞᆯ 역사화
다석 류영모 — 말숨 한글철학
세종 — 정음의 하늘, 말글 뿌리의 첫 빛
다음 빛, 단재의 역사 불칼
민세는 우리말에서 다사리를 캐냈다. 그는 하나·둘·셋·넷·다섯 속에서 우주와 사람과 나라와 민주주의 길을 보았다. 세종이 정음으로 말문을 열었다면, 민세는 그 말문이 다 말하고 다 사는 정치가 되는 길을 찾았다.
이제 말글 뿌리의 두 별을 지나, 다음 길로 간다.
‘민족 숨빛’이다. 거기에 단재 신채호가 섰다. 민세가 말뿌리에서 조선 정치철학을 캐냈다면, 단재는 역사 속에서 ‘아’의 불칼을 들었다.
민세가 다사리의 들판을 열었다면, 단재는 나라 잃은 시대 얼줄을 벼렸다.
말이 정치가 되는 길을 지나, 이제 역사가 불칼이 되는 자리로 간다.
다음 글에서는 단재를 만난다.
나라 잃은 시대에 역사를 목숨으로 쓴 사람!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조선 주체를 세운 사람!
다석철학 인물지도 두 번째 길(方位)
‘민족 숨빛’은 거기서 타오른다.
그림10) 다석이 1968년 10월 30일에 우리말과 한글로 푼 ‘천부경’이다. 오롯이 우리 수 헤임말로 풀어 놓았다. 아라비아 숫자는 없다. 천부경 한글 풀이는 다석의 한글철학 ⑳ ᄒᆞᆫᄋᆞᆯ 댛일쪽 실줄, 천부경”을 참조하기 바란다.
☞ 뱀발(畵蛇添足)
천부경 한글 풀이: 우리 수 헤임말로 풀어야 맞쪽이 한꼴”
우리 고유 철학을 풀 때 아라비아 숫자 기호(1, 2, 3 등)는 한계가 분명하다. 왜냐하면 아라비아 숫자가 한반도에 들어와 보편화된 것은 19세기 말 근대화 시기니까 말이다. 아주 높게 올려 잡아도 고려 말이다. 그런데 고려 말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이슬람 천문학(回回曆)이나 산학은 숫자 기호가 아닌 ‘계산법’ 중심이었다.
회회력은 중세 아랍 세계에서 발전해 중국을 거쳐 조선에 전래된 이슬람 천문 역법(달력 계산법)이다. 회회력은 조선 세종 때 이룩한 독자적 역법인 『칠정산(七政算)』 완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까닭은 그것이 ‘계산법’이었기 때문이다. 칠정산조차도 세종이 완성한 역법일 뿐이다. 칠정산이 조선의 역법이라는 것은 1447년(세종 29) 정묘년에 일어난 일식을 실제로 계산한 『정묘년교식가령(丁卯年交食假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학자들이 칠정산은커녕 천부경(天符經)을 아라비아 숫자에 기대어 푼다.
아라비아 숫자는 가치를 배제한 계량적 도구인 반면, 우리 수 헤임말은 ‘우주가 생성되는 단계적 파동’을 뜻하는 질적 상수학(象數學)이다. 양적 수리(Quantitative)와 질적 상수(Qualitative)의 차이다. ‘하나, 둘, 셋’은 단순한 개수(個數: 基數)가 아니고, 우주 질서의 선후 체계(序數)인 것이다. 개수(個數)는 낱개 수량을 나타내고, 기수(基數)는 수량의 많고 적음을 나타내는 기본 수이며, 서수는(序數) 사물의 순서나 차례를 나타내는 수다.
천부경은 우리 민족 고유의 상고대 사상과 얼을 담은 수천 년 앞의 경전이다(그렇게 생각하고 풀어보라!). 서구·인도식 아라비아 숫자 논리체계로 천부경을 재단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해석이다. 그러니 수(數)가 아닌 말(言)의 철학을 살펴야 한다. 아라비아 숫자는 양(Quantity)을 계산하는 계량적 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 둘, 셋’은 존재 생성과 우주 이치를 소리로 담아낸 ‘뜻소리글자’요, 존재론 선언이다. 천부경의 참뜻을 헤아리려면 단순한 수리적 계산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수 헤임말’ 속에 박힌 철학 낱말 뿌리를 찾아야 한다.
민세 안재홍의 국학과 ‘다사리’ 정신을 이어보자. 민세는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에서 우리 고유의 상고사와 국학을 바탕으로 민족 주체성을 세우고자 했다. 그는 서구식 자유·평등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유 철학으로 ‘다사리’를 제창한 것이다. 다사리는 다 함께 말하고(자유), 다 함께 살다(평등)”의 뜻이자, ‘다스리다’의 말뿌리다. 이는 천부경이 지향하는 ‘홍익인간’이요, 만물이 ‘하늘땅사람’ 안에서 다 함께 살아가는 우주 평등 세계와 직결된다. 안재홍이 순우리말 ‘다사리’에서 민족의 길을 찾았듯, 천부경 역시 우리 수 헤임말로 풀 때 비로소 그 주체적 가치가 살아난다.
그렇다면 우리 수 헤임말로 풀 때 밝혀지는 천부경의 참뜻은 무엇일까? 다석 류영모는 천부경을 ᄒᆞᆫᄋᆞᆯ 댛일쪽 실줄”이라 부르며 한글로 풀었다. ‘하나, 둘, 셋’에는 우주 생성 물리학과 영성이 녹아 있지 않은가!
우리 수 헤임말로 천부경을 풀어야 하는 결정적 근거는, 우리 몸짓과 놀이문화 속에 ‘원방각(圓方角: 天地人)’ 수리 철학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동그라미(○·하늘·하나), 네모(□·땅·둘), 세모(△·사람·셋)는 천지인 삼재(三才)의 기하학 표현이다. 하도낙서(河圖洛書)가 음양오행의 수 결합이라면, 원방각은 존재 형태와 관계성이다.
윷판의 둥근 외곽(圓)과 사각의 내부(方), 그리고 말들이 교차하며 그리는 각(角)은 천부경이 말하는 우주 운행의 축소판이다. 아이들이 땅에 그리고 하던 ‘오징어 놀이’의 기하학적 선(○, □, △) 역시 민중들 무의식에 각인된 원방각 놀이 계승이다. 강강수월래는 거대한 동그라미(원·하늘·하나)를 그리며 추는 ‘둥구루움(다석 표현)’ 춤이다. 나를 온통(하나)으로 이어 돌아가는 대동(大同) 몸짓이다. 아리랑 역시 ‘알(얼·영혼)이 신명 나게 넘어가는(랑)’ 우리 노래이며, 이는 천부경의 ‘본심본태양앙명(本心本太陽仰明)’과도 이어진다. 이 모든 것은 상고대 우주관이 민중의 신체 언어로 내면화된 기호학적 침전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맥락에서 천부경은 말숨 얼개도에 가깝다. 고려 시대에 들어온 회회력(回回曆), 그리고 근대 개화기에 보편화된 아라비아 숫자를 벗고, 우리 조상들이 수천 년 전부터 온몸으로 부르고 놀았던 ‘하나, 둘, 셋’ 헤임말과 놀이로 천부경을 읽을 때, 비로소 우리 고유의 웅숭깊은 우리말 우리글 철학이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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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다석학회 엮음, 『다석일지1~4』, 2024, 동연.
․ 김흥호, 『다석일지 공부1~7』, 2001, 솔.
․ 류영모 말씀, 박영호 엮음, 『씨ᄋᆞᆯ의 메아리-다석어록: 죽음에 생명을 절망에 희망을』, 1993, 홍익재.
․ 류영모, 『다석 마지막 강의』, 2010, 교양인.
․ 박영호, 『다석전기-류영모와 그의 시대』, 2012, 교양인.
․ 안재홍선집간행위원회 편, 『민세안재홍선집2』, 1983, 지식산업사. 이 글에 인용한 부분은 주로 안재홍이 쓴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 (서울: 민우사, 1945)에 있다. 이 논문은 선집2 15~60쪽에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로 재수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선집4를 비롯해 대부분 선집에 실린 내용을 참조한 것이다.
[※『민세안재홍선집』은 안재홍선집간행위원회가 1권(1981), 2권(1983), 3권(1991), 4권(1992), 5권(1999), 6권(2005)까지 펴냈고, 7권(2008), 8권(자료편, 2004년)은 고려대학교박물관이 편집했다.]
․ 정윤재(한국학중앙연구원), 「민세 안재홍의 다사리이념 분석」, 『동양정치사상사(제11권 제2호)』, 2012,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91~122쪽 참조.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gjg6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