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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시간이 없다, 브라질이나 한국이나
[뉴스]
오동진 영화평론가 세계 영화계의 명가(名家) 브라질의 2025년 화제작 는 우리에게 기이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브라질의 1977년, 그리고 우리의 1977년은 똑같이 야만의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에게 박정희와 그의 수하 정보조직이 있었다면 브라질에는 가이제우의 군사독재가 있었다. 양쪽 모두 자신의 모든 정적을 ‘빨갱이’로 몰아 불법적으로 체포 구금하고 고문 살해했다. 브라질의 경우 수많은 지식인, 학생, 노동자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죽은 후 대체로 강과 바다에 던져졌다. 이 영화 는 바로 그때의 이야기이다. 아르만두 솔리몽이스(바그네르 모우라. 맞다. 모우라는 넷플릭스 에서 전설적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역으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배우이다)가 이야기의 중심이며 그가 겪는 도피와 비극적인 최후를 그린다.   독재정권과 결탁한 악덕 기업가에게 쫓기는 과학자 그는 리튬 배터리와 관련해 특허를 낸 공학 교수로 헤시피 대학의 학과장이었다. 그러나 정권의 비호를 받는 악랄한 기업인이자 국영 에너지 기업 이사인 엔히키 기로치(루시아노 시롤리)가 그의 특허 기술을 뺏기 위해 아르만두의 연구소를 폐쇄하고 이에 저항하는 연구원들을 모두 제거한다. 아르만두의 아내 파치마도 희생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르만두가 마르셀루라는 가명으로 고향인 페르남부쿠로 돌아오는 것에서부터이다. 페르남부쿠는 브라질 북동부 대서양 연안의 연방 주로 주도가 헤시피이다. 참고로 브라질은 페르남부쿠 같은 북부와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같은 남부 사이에 정치, 경제, 교육, 인종 등의 격차가 있다. 당시 독재정권의 횡포와 만행이 권력의 중심부보다 북부 지역과 같은 주변부에서 더욱더 공공연하고 잔혹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서사의 콘셉트는 ‘역전’에 있다. 보통은 현재의 시점이 나오고 과거가 플래시백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현재의 시점이 중간에 잠깐, 낯설게 끼어든다. 그래서 영화는 어찌 보면 누군가가 주인공 아르만두에 대한 국가폭력의 만행을 기록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다. 사실상의 화자는 (이것이 소설이었다면) 플라비아라는 대학원생(라우라 루페시)이고 그녀는 대학 내에 설치된 기록보관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는 중이다. 우리로 말하면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같은 것이다. 그래서, 섣부른 감독이었다면 플라비아의 현재를 전면에 내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과거를 중심으로 중간중간, 그리고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마치 ‘플래시 포워드’하듯 플라비아의 현재를 보여준다.   길거리나 강에 널린 시신들, 악마같은 빨갱이 사냥꾼들 제목은 이지만 007 같은 비밀 첩보요원의 활약이나 암약을 그린 내용이 아니다. 할리우드식 액션을 연상했다면 영화적으로 ‘고관여층’이라 할 수 없다. 이 영화의 ‘시크릿 에이전트’는 대체로 빌런들이다. 엔히키 기로치의 사주를 받고 주인공 아르만두, 가명인 마르셀루를 처치하려는 부자(父子) 해결사가 있고 헤시피 시의 경찰서장과 그의 두 아들도 만만찮은 빨갱이 사냥꾼, 폭력배들이다. 이들은 에이전트라기보다 실로 정신들이 온전치 않은 이념적 광인들이다. 인간이 왜 그렇게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해 적대적이게 되었는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간파할 수 있는 얘기이긴 하나 어떻게 저토록 광적이 되었는가는, 브라질이나 여기 한국이나, 선뜻 이해하기가 힘들다. (우리의 4·3과 5·18을 생각해 보라) 지식인은 왜 사회주의에 경도되는가, 반면에 부의 부스러기에 기생하는 인간들, 부르주아의 폭력배들인 룸펜들은 왜 저렇게 악마적이 되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영화 여기저기에 펼쳐진다. 과거나 지금이나 청산되지 않는 역사적 문제가 ‘룸펜’들을 경찰이나 국가 공권력의 수장 자리에 앉혀 놓는다. 사람들이 이유 없이 잔혹하게 난도질당해 거리나 강에 유기된 것은 이처럼 이성이 없는 폭력배들을 정치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의 오프닝 시퀀스만 해도 시체와 사체가 연달아 나온다. 자신이 이끌었던 리튬 연구소가 강제 폐쇄당하고 아내인 파치마(앨리스 카르발류)마저 살해당하자 아들 페르난두를 처가에 맡긴 후 수년간 다른 주에 피신해 있던 아르만두는 헤시피로 돌아가는 길, 급유하러 주유소에 들렀다가(불심검문을 하는 경찰에게 3일 넘게 운전만 했다고 말한다) 버려진 시체를 목격한다. 주유소 당직 직원은 며칠째 저러고 있다고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할 만큼 페르남부쿠주 전역에 비슷한 폭력이 난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신문에서는 카니발 사망자가 91명이라는 기사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상어에게 물어뜯긴 남자의 다리(허벅지 아래로 잘린)가 건져졌다는 기사가 ‘묘한 가십성’으로 지면을 탄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이 다리의 주인을 고문 끝에 죽인 후 강이나 바다에 버렸다는 것을 직감하는 분위기이다.   털북숭이 잘린 다리의 폭력을 피해 숨어든 ‘난민 하우스’ 아르만두의 아들 페르난두가 (1975년 작)를 보고 싶어 하는 얘기는 영화가 의도적으로 깔아 놓은 정치적 대구이다. 영화 초반부에는 때문에 악몽을 꾸는 어린 아들 페르난두의 얘기가 끼어든다. 아르만두도 악몽을 꾼다. 아빠의 정치적 악몽은 아이의 악몽을 통해 이것이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공포임을 역설해 간다. 는 이처럼 스토리 텔링이 뛰어난 수작이다. 특히 사회적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치고 중간에 보여주는 공포의 판타지 시퀀스는 감독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영화적 저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털북숭이의 잘린 다리가 헤시피 시내의 트레지 지 마이우 공원-브라질의 노예해방일인 5월 13일을 기념하는 이름의 공원. 파리의 볼로뉴 숲 같은 곳으로 심야에는 공공연한 섹스와 매춘이 이뤄진다-을 다니며 음행 중인 게이와 남녀들을 걷어차는 내용이다. 이게 또 만평에 실렸고 사람들은 이 기사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재미있어 한다. 잘린 다리는 법의학연구소의 시체 검안실에서 누군가에 의해 탈취된 상태이다. 이 털 달리고 잘린 다리의 폭력행위는 브라질 국가폭력의 기괴한 야만성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건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을 영화로 만든 를 연상케 하는데, 그 소설과 영화에서도 서핑 중 상어에게 다리를 뜯겨 죽은 아들이 하와이의 해변 하나레이에서 외다리 서퍼 유령이 돼서 나다닌다는 얘기가 나온다.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이 이걸 참조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주인공 아르만두가 마르셀루라는 가명으로 숨어 들어간, 이른바 ‘난민 하우스’에서 감독은 갖가지 이유로 숨어 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아프리카 앙골라 커플도 있고 성소수자들도 있다. 브라질은 인종과 민족 구성이 매우 다양한 국가이다. 이 나라가 다인종 다민족인 이유는 (과거 식민주의, 노예무역의 영향뿐 아니라 이후에도) 유럽의 파시즘을 피해 멀리 온 사람들이 많았던 데다 거꾸로 유럽과 일본의 파시스트들이 역사적 청산 작업에서의 처벌을 피하고자 일종의 ‘오지’인 양 숨어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의 ‘난민 하우스’는 브라질 현대사의 이상한 굴곡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르만두가 만나는 독일 재단사 한스(우도 키어)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브라질로 도망한 유대인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나 군부독재 시절 브라질의 반유대주의를 대변하듯 나치 전직 군인으로 위장, 혹은 오해된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들어야 할 메시지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의 진짜 ‘비밀 요원’은 본명이 사라 게베르트라는, 활동명이 에우자라는 여인(마리아 페르난다 칸지두)이다.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반정부 조직의 일원으로 아르만두 같은 사람을 해외로 도피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는 암울한 역사의 면면을 보여주는 내용이지만 에우자 같은 여인, ‘난민 하우스’의 사람들을 통해 어둠 속에서도 빛과 희망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치과의사 출신으로 아르만두와 함께 숨어 지내는 클라우디아(에르밀라 게데스)는 그와 육체적 사랑을 나눈다. 이들의 섹스는 생존에 대한 희망을 찾는 행위와 다름없다. 는 현재의 브라질이 과거의 망령으로 여전히 고통의 기억에 시달리고 있음을 인지하게 만든다. 영화가 그 고통을 더욱 가중할지, 아니면 이를 통해 극복의 시그널을 잡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후대를 위한 교육으로는 넘어야 할 산과 같은 일임을 보여준다. 이런 영화적 기록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배재고 야구부 사건 같은 것은 줄어들 것이다. 아카데미상 4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던 는 지난 8일 전국 개봉했다. 15세 이상 관람가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반면교사로 보고 배울 수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엔딩곡은 브라질 전설의 디바 안젤라 마리아가 부르는 ‘너웅 아 마이스 뗑뿌(Não Há Mais Tempo)’이다. 번역하면 ‘더 이상 시간이 없다’이다. 브라질이나 한국이나 더 이상 시간이 없다.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가 전하는 묵직한 메시지이다.오동진 ohdjin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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