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흥 올리가르키, 한국 민주주의 위협한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2025년의 미국은 마치 한 시대의 끝자락에 서 있는 거대한 제국을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국가의 자정 능력이 빠르게 약해지며 스스로의 균열을 통제하지 못하는 현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미국을 지배해 온 신자유주의 실험은 ‘효율’과 ‘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공공의 안전망을 해체했고, 기득권 중심의 경제 권력을 정교하게 강화해 왔습니다. 그 결과 누적된 재정적자, 산업 쇠퇴, 장기적 실물경제 침체, 세계 최고 수준의 불평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사회의 심층부를 흔들어왔습니다.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는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은 이미 1920년대의 구조적 취약성을 넘어섰다”(2024.11.02)고 평가했습니다.
정치·사법·언론 체계 역시 이 균열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게리맨더링은 선거제도의 공정성을 구조적으로 훼손했고, 연방대법원은 여성의 낙태권을 폐지한 Dobbs 판결(2022)에서 보듯,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영역에서조차 시대를 역행하는 판단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Pew Research Center는 연방대법원에 대한 국민 신뢰가 조사 이래 최저치로 추락했다”(2023.10)고 지적했습니다. 언론 역시 상업적 편향과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공론장의 중심 역할을 잃고 있으며,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미국은 사실과 허위가 뒤섞여 구분되지 않는 혼합 현실로 이동하고 있다”(2024.07.18)고 분석했습니다.
제가 기존 칼럼 〈고장난 미국 민주주의의 시계〉에서 지적했듯, 지금의 미국은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민주주의 구조 자체가 장기간 침식되며 자기정비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국면에 있습니다. 2025년의 미국은 이 구조적 침식 위에, 민주주의가 비워둔 공간을 새로운 권력집단이 빠르게 채워나가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국가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틈을 타 기술·정보·국방 인프라를 장악한 새로운 지배집단이 미국 정치와 국가 기능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21세기형 ‘신흥 올리가르키’입니다.
■ ‘신흥 올리가르키’의 실체와 확장
신흥 올리가르키는 더 이상 단순한 ‘성공한 실리콘밸리 기업가들’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인공지능, 데이터, 글로벌 플랫폼, 위성통신, 국방기술 등 21세기 국가 기능의 신경망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 영향력은 기존 군산복합체나 금융자본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강력합니다. 일런 머스크(Elon Musk)와 피터 틸(Peter Thiel)은 이러한 흐름의 대표적 얼굴에 불과하며, 그 뒤에는 실리콘밸리 벤처자본, 거대 플랫폼 기업, 국방기술 기업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거대한 권력 네트워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는 이미 미국과 나토의 군사·통신 체계를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가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변화를 전 세계가 목격한 사건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현대 전쟁에서 민간 기업이 전선의 통신과 작전 속도를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했다”(2024.03.18)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전쟁과 국가 전략의 핵심 영역이 민간 기술기업의 판단에 의해 좌우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팔란티어(Palantir)는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미국 국방부, CIA, FBI, NSA, 국토안보부 등 안보·수사·정보기관의 분석 시스템 상당 부분을 팔란티어가 사실상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디언은 공공의 판단 기능이 민간기업 알고리즘에 종속될 위험이 현실화 되고 있다”(2025.06.30)고 경고했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신흥 올리가르키가 행사하는 권력이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적이 없고,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으며, 공적 책임 체계 밖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국가 핵심 기능이 어떠한 헌법적 정당성도 없이 민간 지배집단에 넘어가는 구조. 이 구조가 바로 21세기 기술 기반 과두지배(올리가르키)의 본질입니다.
(왼쪽 위부터)트럼프 2차 정권의 정부효율부 수장에 기용된 스페이스X와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 비벡 라마스와미, 백악관 비서실장에 지명된 수전 와일스, 국방장관에 기용된 폭스뉴스 사회자 피트 헤그세스. (중간 왼쪽부터)국경관리 수장이 된 이민 및 세관 집행국(ICE) 국장대행 토머스 호먼, 유엔대사에 지명된 하원 공화당 회의 의장 엘리스 스테파닉,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기용된 텍사스주 공화당 대표 존 래트클리프, 백악관 안보보좌관에 지명된 마이클 월츠. (아랫줄 왼쪽부터) 국무장관에 기용된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환경보호청장에 기용된 리 젤딘, 한사람 건너 맨 오른쪽은 국토안보부장관에 기용된 크리스티 노엄. 2024.11.12. 연합뉴스
■ ‘프로젝트 2025’가 준비한 신흥 올리가르키 부흥의 길
이 변화의 정점에 놓인 것이 미국 보수진영의 핵심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주도해 만든 트럼프 2기 정부 집권 청사진 ‘프로젝트 2025(Project 2025)’입니다. 프로젝트 2025는 보수 성향 연구기관 100여 곳이 결집해 작성한 국가 재설계 계획으로, 연방정부의 대대적 축소, 규제체계 철폐, 공공 기능의 민간 기업—특히 빅테크·AI·국방기술 기업—으로의 이양, 대통령 권한 강화와 행정부 재편을 핵심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Heritage Foundation, 2023; Mandate for Leadership). 헤리티지재단은 행정부 조직의 50% 이상을 재배치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Heritage Foundation 브리핑, 2023.12 ), 이는 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핵심 기능을 민간 기술자본이 장악하도록 설계된 구조적 프로젝트입니다. 공무원 감축은 1980년 이래 신자유주의 정부들이 반복해 온 작은 정부 담론의 연장선에 있지만, 역대 정부가 공무원 감축을 실제로 실행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프로젝트 2025는 이 부분을 처음으로 구체적인 실행계획으로 제도화했습니다. 핵심은 정부 효율화가 아니라, 행정 축소 이후의 기능을 빅테크·AI 기업의 소프트웨어·데이터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구조 자체가 이미 전제돼 있다는 점입니다. 기술 감시 단체인 Technology Oversight Project는 프로젝트 2025가 규제 완화·기관 폐지·기술 의존 강화를 결합해 기술기업과 억만장자들에게 막대한 혜택을 안겨주는 설계”라고 분석했습니다( Technology Oversight Project 보고서, 2024 ). WIRED 또한 프로젝트 2025를 빅테크와 군사기술 기업에게 무제한의 사업 공간을 여는 제도적 선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WIRED, 2024.08.01 ).
여기에 프로젝트 2025는 연방 공무원 신분을 대규모로 박탈할 수 있는 ‘스케줄 F(Schedule F)’ 부활을 핵심 제도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케줄 F’는 트럼프가 2020년 말 행정명령 13957호로 도입했던 제도로, 정책 결정·정책 자문 업무에 참여하는 경력직 공무원 수십만 명을 사실상 업무 교체 내지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조치입니다(Executive Order 13957, 2020;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분석, 2025 ). 트럼프 2기를 준비한 프로젝트 2025측과 트럼프 캠프는 이 제도를 전면 부활해 약 5만 명의 핵심 공무원을 재분류하여 충성도가 높은 인사들만을 잔존시키고, 민간 기술자본 출신을 행정부 조직에 직접 투입할 계획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The Guardian, 2025.04.18 ). 또한 프로젝트 2025는 행정 절차를 자동화하고 AI·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모듈로 대체하는 계획을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행정 판단 기능 자체가 팔란티어(Palantir), 스페이스X(SpaceX), 앤듀릴(Anduril) 등 기술자본이 제공하는 시스템에 편입되는 구조임을 의미합니다. WIRED는 이 부분을 행정부의 두뇌가 민간 소프트웨어 인프라로 이식되는 과정”이라고 분석했습니다( WIRED, 2024.08.01 ).
이와 같은 방향은 일런 머스크가 트럼프 2기 초기에 추진했던 ‘효율성 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DOGE)’ 구상에서 이미 드러났습니다. DOGE는 연방정부 조직 축소, 공무원 감축, 예산 절감, 행정 절차 자동화 등을 통해 행정 기능을 빅테크의 AI·데이터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머스크는 연방 규제의 절반을 AI 분석 도구로 정리해 폐지하고, 주요 기관에 대화형 AI를 배포해 실무를 자동화하는 계획을 직접 추진했습니다( Washington Post, 2025.07.26; WIRED, 2025.03 보도 ). 그러나 고압적 업무 방식과 권한 충돌 문제로 인해 조기에 퇴진했고, DOGE도 해체 수순에 들어갔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도는 기술자본이 행정권에 직접 진입하려 했던 첫 대규모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정치 환경이 재편될 경우 이 구상은 언제든 다시 재가동될 수 있으며, 프로젝트 2025는 이를 위한 제도적 길을 이미 정교하게 마련해 둔 상태입니다. 결국 축소된 정부는 효율적 정부가 아니라 기술자본에 종속된 관리 대상 정부로 전락할 위험이 큽니다. 공무원은 줄어들지만, 규제·감시·데이터 처리·안보·복지 행정 전반은 빅테크가 제공하는 시스템에 의존하게 되고, 정부의 실제 운영 회로는 민간 기술자본의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인프라 속에서 재편됩니다. 프로젝트 2025는 신흥 올리가르키가 그림자 권력에서 벗어나 인사·예산·행정·규제 전반에서 제도적 권력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체계적인 경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 신흥 올리가르키, 민주적 통제를 넘어섰는가 ?
신흥 올리가르키의 부상은 단순한 ‘기술기업의 성장’이 아닙니다. 미국 민주주의가 내부에서 붕괴하며 만들어낸 권력의 진공 상태를 그대로 파고드는 현상입니다. 지금 미국 곳곳에서 경고음이 동시에 울리고 있지만, 이를 멈추거나 방향을 바꿀 제도적 힘은 이미 크게 약화된 상태에 가깝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사례를 분석하며 전쟁의 핵심 통신망이 한 민간 기업의 의지에 좌우되는 현실은 국가주권의 개념 자체를 뒤흔드는 변화”(2024.03.18)라고 지적했습니다. 과거에는 전쟁의 통신·의사결정·작전 수행이 국가 통제 아래 있었지만, 이제는 민간 기술기업의 판단이 전쟁의 방향을 실질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의존이 아니라 국가 기능 일부가 민간 권력에 종속되는 구조 변화입니다. 가디언 역시 팔란티어(Palantir)의 데이터·AI 체계가 수사, 치안, 이민, 정보기관 전반에 깊숙이 스며든 현실을 지적하며 공공의 판단 기능이 기업 알고리즘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2025.06.30)고 경고했습니다. 민주주의에서는 공공권력의 판단 기준이 시민의 권리와 헌법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서는 그 기준 자체가 민간 기업의 서버와 알고리즘 안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정치·사법·언론은 이러한 변화를 견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화당은 신흥 올리가르키가 가진 자본력·기술력·플랫폼 영향력이 선거 전략에 유리하다고 보고 이들과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규제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극단적 정치 양극화 속에서 실효성 있는 규제안을 마련하고 통과시키는 데 번번이 실패해 왔습니다. 사법부는 정치화와 신뢰 추락으로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 가까우며, 언론 역시 상업적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구조 속에서 공적 감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신흥 올리가르키는 사실상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미국의 정치·행정·안보 구조 전반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습니다. 이 침투 과정은 미국 민주주의의 신경망을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미국 내부에서 울리는 경고는 점점 더 커지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수습할 힘은 점점 더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미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는 정치·경제 구조의 붕괴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시민의 판단 능력 자체가 기술에 의해 재편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의 전제가 되어야 할 시민의 인식 구조가 플랫폼 알고리즘의 설계 방향에 따라 조용히 바뀌고 있습니다. 코넬대학교(Cornell University)와 코넬테크(Cornell Tech)가 운영하는 학술 저장소 arXiv에 2023년 발표된 연구는 플랫폼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감정, 분노, 불안 등 정서적 변수를 실시간 분석해 정보 노출을 조절하는 방식은 시민 판단의 자율성을 직접적으로 약화시킨다”(arXiv, 2023)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보 편향이나 노출량의 차이를 넘어, 시민의 사고 과정 자체가 기술적 설계에 따라 조정되는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플랫폼 구조는 시민이 접하는 정보의 범위를 의도적으로 좁히고, 감정적 반응이 극대화되도록 콘텐츠를 배열합니다. 복잡한 사안을 숙고할 여유를 빼앗는 대신, 분노·혐오·두려움을 자극하는 자극적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보여주는 알고리즘 경로로 시민을 유도합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현실을 두고 오늘의 플랫폼은 시민을 ‘정보를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정보에 의해 선택되는 존재’로 만든다”(2024.11.02)고 분석했습니다. 이제는 시민이 스스로 정보를 선택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이 설계한 정보 흐름이 시민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이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지배 방식입니다. 무솔리니가 신문을 장악하고, 히틀러가 라디오를 장악했다면, 오늘의 신흥 올리가르키는 개개인의 감정과 심리, 취약점까지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조정할 수 있는 권력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과거의 선동이 이미 형성된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이었다면, 오늘의 디지털 선동은 감정이 형성되기 이전의 사고 경로 자체를 설계하고 재편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정면으로 흔듭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충분한 정보에 접근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존재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러나 플랫폼 알고리즘이 시민의 인식 구조를 사실상 설계하는 수준에 이르면, 민주주의는 더 이상 자율적 시민을 전제로 성립하기 어려운 체제로 전락할 위험을 안게 됩니다.
■ 한국 극우와 미국 극우 네트워크의 구조적 결합
이제 우리는 이 구조가 한국 민주주의로 어떻게 전이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국의 극우 네트워크는 미국 극우 세력이 만들어낸 담론·전략·서사를 거의 실시간으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단지 비슷한 이념을 공유하거나 우연히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메시지 구성 방식, 감정 자극 구조, 이슈 전환 속도까지 놀라울 만큼 유사한 패턴을 보입니다. 제가 의 ‘미국극우 10부작’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국 극우는 미국 극우와 단순한 친밀성이나 모방 관계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결합된 모습에 가깝습니다. 미국 극우 커뮤니티에서 새로운 혐오 프레임이 등장하면, 한국의 극우 유튜브·커뮤니티·SNS에서 거의 같은 시점에 동일한 언어와 논리 구조로 재현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프레임이 등장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한국 온라인 공간에서 같은 표현과 이미지를 접하게 되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이는 우연으로 보기 어렵고, 미국 극우 서사가 한국 극우 네트워크에 ‘구조적으로 이식’되고 있다는 강력한 징후입니다.
얼마전 한국의 빌드업 코리아 행사에 참석해서 이재명 정부를 공격하던 찰리 커크 - 출처: X
황희두의 저서 『사이버 내란』은 이러한 구조를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경험에 기초해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는 극우세력이 특정 이슈가 소진되면 곧바로 새로운 분노 프레임을 던져 대중이 사안을 깊이 숙고할 시간을 빼앗는다고 분석합니다. 이 연쇄를 통해 극우세력은 시민의 감정 구조 자체를 관리하고 통제하려 하며, 황희두는 이를 대중의 감정 구조 자체를 관리하는 감정 통제 시스템”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하여 최근 발간된 황희두의 저서인 이 시사하는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됩니다. 그와 관련된 내용은 후술하겠습니다.
■ 인지전(認知戰)이 위협하는 민주주의
이러한 인지전(認知戰, Cognitive Warfare)이 한국에서 특히 더 위험한 이유는, 한국 민주주의가 구조적으로 상당히 취약한 지형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여론 형성의 중심이 더 이상 공영 언론이나 전통적 언론이 아니라,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비공식 플랫폼에 크게 치우쳐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시간 조회나 공유하기 등에서 기존 언론이 더 이상 비교가 되지 않는 형국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레거시 미디어라 불리는 기존 언론의 신뢰와 영향력은 오랫동안 약화되어 왔습니다. 사법·검찰에 대한 불신은 높아지고, 정치권은 내란 수습조차 명료하게 국민들에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극단적 대립으로 비추는 정치현실은 오히려 정치적 효능감을 낮추고 정치에 대한 불신감을 부채질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적 정보 생태계가 취약한 상황에서, 미국 신흥 올리가르키가 주도하는 플랫폼·AI·알고리즘 기반 여론 조작 구조가 한국 극우 네트워크와 결합한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미국보다 더 빠르고 심각한 방식으로 침식될 위험을 안게 됩니다. 동시에 미래를 짊어져야 할 청소년들이 극우적 사고에 휘말려 민주주의 자체를 불신하고 혐오하는 세대가 된다면, 한국의 미래가 어떠할지 매우 우려스러운 지점입니다.
이미 한국 사회 곳곳에서 이러한 조짐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소한 사건 하나가 하루 만에 거대한 분노의 서사로 비약하고, 혐오 발언이 단기간에 마치 표준어처럼 일상 대화 속으로 스며들며,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대한 적대감이 조직적으로 증폭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론의 1차 생산지가 언론이 아니라 유튜브·온라인 커뮤니티로 이동한 현실은, 인지전이 이미 한국 사회의 기반 구조를 흔들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징후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가짜뉴스 유통이나 일시적 정보 왜곡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민의 감정과 인식이 기술의 흐름을 따라 자동적으로 반응하도록 길들여지는 구조가 형성되면, 민주주의의 신경망 자체가 서서히 붕괴할 위험을 안게 됩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공적 정보 생태계에 대한 신뢰가 약화된 상태에서 이런 인지전이 지속될 경우, 제도와 선거만 남고 실질적인 시민 주권은 마비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이 위기는 단순히 가짜뉴스를 정정하거나 몇 가지 규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를 다시 설계한다는 각오로 공적 정보 시스템의 신뢰를 회복하고, 인지전에 대응하는 감시·통제 틀을 마련하며, 무엇보다 시민의 판단 능력을 지키기 위한 교육과 제도 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시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근본적 위기와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인공지능 시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새로운 위기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은 인류에게 거대한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의 근본적 기반을 흔드는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판단, 공적 토론, 투명한 정보, 제도적 견제라는 네 축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플랫폼 알고리즘과 생성형 AI가 결합된 정보 환경은 이 네 축을 조용히 약화시키고 있으며, 그 균열은 신흥 올리가르키의 영향력이 확장되는 가장 큰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심각한 변화는 시민의 판단능력 자체가 플랫폼 알고리즘의 설계 논리에 따라 재편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한 정보 왜곡을 넘어,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사고 경로 자체가 기술의 감정 조정 흐름에 따라 움직이도록 설계된 시대가 열렸음을 뜻합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러한 현실을 두고 현대의 인공지능 플랫폼은 시민을 정보를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정보에 의해 선택되는 존재로 만들고 있다”(2024.11.02)고 지적했습니다. 시민의 인식 과정 자체가 기술적 조정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더 큰 문제는 국가조차 이 기술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빅테크 기업의 알고리즘을 직접 검증하거나, 그 작동 원리를 규제할 법적 권한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국가가 규제할 수 없는 비가시적 권력이 민주주의의 신경망을 대체하고 있다”(2025.01.13)고 우려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정보의 생산·배포·소비의 모든 경로가 민간 기업 손에 집중되면서, 국가는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 변화는 신흥 올리가르키에게 절대적인 우위를 제공합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이제 시민 인식에서 여론 형성, 정치적 판단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 핵심 흐름 전반에 개입할 수 있는 권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의 파시즘이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대중을 조작했다면, 21세기의 기술 기반 과두지배는 감정이 형성되기 이전의 사고 경로 자체를 조정함으로써 시민을 통제합니다. 가디언은 편견을 학습하고 강화하며 확산시키는 알고리즘은 민주주의의 공적 토론장을 붕괴시키는 가장 위험한 요소”(2024.12.21)라고 지적했습니다. 알고리즘이 편견과 분열적 감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때 사회적 합의는 점차 불가능해지고, 시민은 공통의 언어를 잃게 됩니다. 결국 민주주의가 기대 온 시민적 상식과 공론장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인공지능이라는 초유의 기술적 위기가 미국 내부에만 머물지 않고, 한국 민주주의에도 구조적 위협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 인공지능과 인지전의 시대,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현실
미국 신흥 올리가르키의 영향력은 이미 국경을 넘어 한국 사회 곳곳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황희두의 저서 『사이버 내란』은 이러한 흐름을 ‘감정 통제 시스템’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극우세력은 특정 이슈가 소진되면 즉시 새로운 분노 프레임을 던지고, 시민이 사안을 숙고할 시간을 차단하며, 분노·혐오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노출해 시민의 감정 구조 자체를 장기적으로 재편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점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과 기무사가 수행했던 조직적 온라인 여론조작이 완전히 해체되지 않았으며, 그 작업에 참여했던 일부 인사들이 진화, 확산되어 지금도 극우 여론전의 배후에 있다는 그의 추적과 분석을 통한 증언입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인지전은 한국에서 이미 현실화 되었습니다. 사소한 사건이 하루 만에 거대한 분노의 서사로 비약하고, 혐오 발언이 단기간에 표준어처럼 확산되며, 특정 지역·집단에 대한 적대감이 조직적으로 증폭되는 현상은 이미 일상이 되었습니다. 여론의 1차 생산지가 언론이 아니라 유튜브·온라인 커뮤니티가 된 현실은, 인지전이 한국 민주주의의 신경망을 이미 잠식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이는 단순한 가짜뉴스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인식 구조가 침식되는 문제입니다. 공적 정보 생태계가 취약해진 상태에서 이러한 침식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제도와 선거만 남고 실질적인 시민 주권은 마비될 위험을 안게 됩니다.
세계는 지금 한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중국과 세계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격돌하는 가운데, 한국이 어떤 민주주의 모델을 선택하고 어떤 대응 전략을 구축하느냐는 동아시아 정세를 넘어 세계 정치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아직 윤석열 내란의 상처를 온전히 치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식민지 극복과 산업화·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세계 유일의 국가이며, 무엇보다 두 차례의 무혈 명예혁명을 통해 스스로 대통령을 탄핵해낸 압도적 시민 역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시민적 에너지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탱해 왔습니다.
하지만 내란 청산은 아직 미완입니다. 사법부와 검찰은 사실상 내란세력을 옹호하는듯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국민의힘과 극우세력은 반성은커녕 ‘윤어게인’을 외치며 재결집을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내란정당 국민의힘은 반성 대신 극우 동원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은 단지 내부 개혁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습니다. 미국 신흥 올리가르키가 주도하는 극우 네트워크가 한국 여론·사법·언론 구조와 결합하는 흐름을 동시에 차단해야 합니다. 특히 미국의 ‘프로젝트 2025’는 해리티지재단을 중심으로 미국 보수 연구기관들이 집결해 만든 집권 청사진입니다. 이 문서의 제도적 파급력은 이미 미국 내부를 넘어 동맹국의 정치에도 간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계획이 빅테크·AI·국방기술 기업의 영향력 확대를 제도화하려는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은 미국 극우적 테크 네트워크가 국내에 이식되는 흐름을 단호하게 차단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과제는 분명합니다. 극우의 준동과 여론 장악 시도를 헌법적·제도적 장치를 통해 제압하고, 플랫폼 기반 인지전 감시 체계를 공적 기관 수준으로 구축하며, 공영 언론과 국가 정보 시스템을 정상화해 정보의 투명성과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시민사회와의 상시적 대화창구를 마련해 공론장을 재건하고,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통해 ‘판단하는 시민’을 다시 세우는 작업 역시 병행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 않습니다. 무관심이 쌓이고, 왜곡된 정보가 반복되며,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균열은 임계점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어느날 갑자기 회복되지도 않습니다. 시민이 스스로 민주주의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행동할 때, 공동체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 연대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기술권력에 맞서는 시민적 용기이며, 인공지능 시대 민주주의를 새롭게 설계하는 시민적 상상력입니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할 때 대한민국은 기술과 권력이 결탁한 새로운 형태의 과두지배를 넘어, 세계 민주주의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주도국가로 우뚝설 수 있습니다.
–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 미국 경제적 불평등 관련 온라인
분석 보고서(2024.11.02).
– Pew Research Center. 미국 연방대법원 신뢰도 관련 조사 보고서(2023.10).
–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미국 정보환경·혼합 현실 및 알고리즘 통제 관련 기사(2024.03.18, 2024.07.18, 2025.01.13).
– 가디언(The Guardian). 팔란티어·AI·공공 판단 기능 및 알고리즘 관련 기사 (2025.06.30, 2024.12.21).
– 와이어드(WIRED). ‘프로젝트 2025’와 기술 기업 영향력 분석 기사(2025.01.12).
– 워싱턴포스트(The Washington Post). 플랫폼·AI와 시민 인식 구조 변화 관련 기사 (2024.11.02).
– arXiv. 플랫폼 알고리즘·정서 분석·이용자 판단 구조 관련 학술 논문(2023).
– 황희두. 『사이버 내란』. 메디치미디어,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