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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튀르키예에선 고양이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튀르키예에선 고양이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사회혁신]
뉴스가 쏟아진다. 새로운 소식들의 쓰나미 가운데 기억에 남는 뉴스는 얼마나 될까. 최근 튀르키예의 항구 도시 이즈미르에서는 색다른 이야기가 들려왔다. 난민, 기후위기와 물가상승, 혹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여야의 정쟁처럼 무거운 비중 을 차지하진 않지만, 쉽게 잊혀질 것 같지는 않은 소식이었다. 사건은 지난 6월 10일, 이즈미르 시내의 보르노바 원형 극장에서 일어났다. 이날 무대에 오른 작품은 황실 러시아 발레단 의 이었다. 휴식 시간까지 합쳐 세 시간에 달하는 긴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두 주인공은 마침내 드라마의 가장 비극적인 절정을 연출할 참이었다. 연인이 죽었다고 오인한 로미오가 목숨을 끊고,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난 줄리엣이 차갑게 식어버린 로미오를 따라 죽음을 선택하는 대목이었다. 바로 그때, 무대 위로는 누런 털의 고양이 한 마리가 유유히 걸어 나왔다.   2026년 6월 10일 튀르키예 항구도시 이즈미르에서 무대에 오른 ‘황실러시아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고양이의 난입으로 세계 주요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다. ttps://www.theguardian.com/lifeandstyle/video/2026/jun/15/o-romeow-cat-steals-the-show-during-final-scene-at-romeo-and-juliet-ballet-video 고양이는 바닥에 쓰러진 로미오의 곁에 앉더니 앞발로 무용수의 머리카락을 건드렸고, 줄리엣이 오열하며 쓰러지는 순간에도 로미오의 머리칼을 놓지 않았다. 지난 500여 년간 인류 역사상 가장 슬픈 비극으로 꼽혀왔던 이야기, 그것도 하필이면 관객들의 심장을 후벼 파는 애달픈 장면에서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죽음을 맞이한 두 주인공이 바닥에 누워 있는 동안, 고양이는 줄리엣이 잠들어 있었던 자리 위로 올라가 천연덕스럽게 그루밍을 하면서 발레는 막을 내렸다. 예기치 않은 배우의 출연에도 휘둘리지 않고 초연하게 죽음을 연기해 낸 무용수들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물론 환호성은 그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셰익스피어도, 인공지능(AI)도 비극을 희극으로 전환하라 는 과제를 받았다면 꽤나 골머리를 앓았겠지만, 고양이는 단칼에 상황을 정리해버렸다. 결국 커튼콜 때 로미오는 이 뜻밖의 주인공을 품에 안고 무대에 올랐고, 사람들은 이 고양이에게 ‘로미오야옹(Romeow)’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사실 프로코피예프가 1935년 레닌그라드 키로프 극장의 위촉을 받아 이 곡을 완성했을 당시, 그는 두 주인공이 살아남는 해피엔딩을 기획했었다. 하지만 원작을 훼손한다는 거센 비판에 부딪혀 비극적 톤을 유지했다. 그로부터 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 대성통곡을 해도 모자랄 순간에 이즈미르의 관객들은 미소 지을 수 있었으니, 고양이 ‘로미오야옹’이야말로 해피엔딩을 꿈꾸었던 프로코피예프의 소원을 들어준 셈이다.   한 시민이 갓 태어난 후 버림받은 새끼 고양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다. 출처 : 이혜승   이스탄불의 파티흐 모스크. 튀르키예는 전 국민의 고양이 집사화가 실현되는 친묘국이다. 출처 : 이혜승 이집트나 이란, 일본 등 고양이를 추앙하는 나라들은 많지만, 친묘국 타이틀 경쟁이 벌어진다면 튀르키예야말로 챔피언감이다. 유튜브, 틱톡 등 디지털 세상을 평정한 고양이 콘텐츠들 때문이 아니다. 일반 가정뿐 아니라 상점이나 식당, 종교 사원, 사무실, 병원 등을 막론하고 전국에 방대한 길고양이 네트워크가 깔려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곳에서는 직업을 불문하고 온 국민의 고양이 집사화가 이루어진다. 신이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범신론은 증명하기 어려운 종교의 범주에 속하지만 고양이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는 명제만큼은 입증조차 불필요한 과학이다. 대학교수들은 강의실 강단으로 뛰어오르는 고양이를 ‘초빙교수’로 소개한다. 패션쇼에서는 모델들이 옷을 선보이는 런웨이(Runway)를 ‘캣워크(Catwalk)’라고도 부르는데 2018년 튀르키예의 한 패션쇼에서는 실제 고양이가 캣워크에 나타났다. 고양이는 캣워크를 활보하면서 모델들의 진행을 방해하거나 옷에 매달리는 풍경을 연출해 오늘날까지도 캣워크의 정석으로 회자된다.   2018년 이스탄불에서 열린 에스모드(Esmod International fashion show) 국제 패션쇼https://www.boredpanda.com/stray-cat-istanbul-fashion-show-vakko-esmod/ 공연장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24년 이스탄불 음악 축제 때는 오케스트라 단원들보다 고양이가 먼저 무대에 등장해 악단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지휘자 단상까지 점령했다. 당시 지휘자는 태연하게 혹시 알레르기 있으신 분? 하고 단원들과 관객에게 물었다. 불청객의 존재보다는 알레르기로 인한 재채기야말로 공연을 망치는 주범일 테니 말이다. 지휘자는 고양이를 내버려둔 채 연주를 시작했다. 튀르키예에서 음악가로 관록을 쌓기 위해서는 고양이를 능숙하게 다루는 자질도 갖춰야 할 것이다.   2024년 제52회 이스탄불 국제 음악제. 무대 밖으로 내보내려는 연주자와 스탭들의 손을 피해 고양이는 무대 위에서 음악을 감상했다. https://www.classical-music.com/articles/cat-onstage-concert 아야 이리니 성당(Hagia Irene) 은 1,500여 년 전 건축된 비잔틴 시대의 유산이자, 오늘날에는 클래식 음악 공연장으로 사랑받는 공간이다. 비록 이웃한 아야 소피아 성당 만큼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공명이 아름다운 이 성당에서 고양이의 ‘골골송’(그르렁거리는 소리)이 연주의 배경 음악으로 도드라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곤 한다. 이 나라에서는 문화예술계 지면의 일부가 고양이 뉴스 에 할애된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2014년에 있었던 한 공연은, 문화예술계와 고양이의 협업 이 오랜 전통으로 뿌리내린 튀르키예에서도 단연 전설로 남을 만하다.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플루티스트 엠마뉘엘 파위(Emmanuel Pahud)가 보루산 이스탄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IPO)와 협연을 펼치던 중, 무대 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여기까지는 흔한 일이었다. 연주자들은 동요 없이 음악을 이어갔다. 반전은 지금부터였다. 고양이는 무대 위에 자리를 잡고 새끼를 낳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야 이리니 라는 이름에는 성스러운 평화 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날 관객들이 목도한 것은 고풍스러운 성당에서 고전 음악을 배경으로, 수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새 생명이 태어나는 광경, 성스러운 평화 가 실현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고양이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는 명제는 튀르키예에서 과학이다. 출처 : 이혜승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양이의 난입을 제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관계자가 사과를 하거나 책임을 묻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들 그저 그러려니 웃어넘긴다. 자동차 업계에서 농담처럼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현대 자동차의 한 관계자가 우리는 자동차 조립을 마치면 문을 모두 닫고 방수가 잘 되는지 품질 테스트를 합니다 라고 말하자, 튀르키예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저희 쪽은 조금 다릅니다. 문을 닫은 상태에서 고양이가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면 합격입니다.   고양이들의 사랑은 경계를 알지 못한다. 사진 : Arif Asci. The Street cats of Istanbul. 2009.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상자 속 고양이가 살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죽어 있을 수 있다는 이론을 내놓아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만약 그가 지금 튀르키예에 살고 있다면 양자역학과 관련된 고양이 이론의 후속편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이론은 훨씬 대중적이고 이해하기 쉬우리라 짐작해본다. 아무리 좁은 틈이라도 공기처럼 드나드는 고양이는 미래 과학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양자 순간이동(Teleportation) 기술이 현실화되었음을 증명하는 사례가 될 테니까 말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왜 이토록 고양이를 사랑할까? 헬로키티나 톰, 가필드처럼 귀엽고 무해한 캐릭터여서 일까? 튀르키예의 명물 반 호수의 고양이처럼 물에서는 수영하며 물고기를 잡고, 육지에서는 쥐와 뱀을 포획하며, 날개가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민첩하게 공중에서 새를 낚아채는 등 육해공을 섭렵하는 능력 때문일까? 아니면 한없이 다정한 동물이라서일까? 실제로 이탈리아의 한 고양이는 주인을 먼저 떠나 보내고는 슬픔에 겨워 매일 쥐 같은 작은 선물을 물고 주인의 무덤을 찾아가 성묘를 했다고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불량고양이 셰라페틴에 폭행당하는 가필드. 출처 : 이혜승 튀르키예 사람들은 고양이의 성격과 외모, 인간들이 기대하는 윤리의식을 가졌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물론 좋죠. 그냥, 고양이니까.” 1996년에는 튀르키예만의 독특한 고양이 캐릭터가 탄생했다. 바로 ‘불량 고양이 셰라페틴’이다. ‘세로’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이 녀석은 짙은 눈썹에 험상궂은 인상을 하고, 줄담배를 피우며 보드카를 물 마시듯 마시고, 행색에 걸맞게 거친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양아치다. 흔히 ‘상남자’ 캐릭터들이 의리 있고 은근히 로맨틱한 ‘츤데레’ 면모를 풍기는 것과도 결을 달리한다. 동네 암컷 고양이들을 죄다 건드리는 난봉꾼이며 사회적 규칙이나 규범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오직 본능과 이기적인 욕구로 똘똘 뭉쳐, 생존을 위해서라면 불법을 서슴지 않는 전형적인 악당이다. 만화가 뷜렌트 위스툰(Bülent Üstün)은 자신의 반려묘가 무지개다리를 건너자 그를 추억하며 1996년 잡지 에 셰라페틴을 선보였다. 2016년에는 디지털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고양이가 주인공임에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탄생한 지 서른 해가 넘었지만 셰라페틴의 인기는 여전하다. 인위적인 가치와 권위를 조롱하며 윤리의 벽을 뛰어넘는 안티 히어로가 오히려 짜릿한 해방감을 선사하는 까닭일까.   싸움꾼 ‘키를리’는 셰라페틴의 실사판으로 여겨지며 공중파 방송에 여러번 소개되었고 현재 튀르키예의 셀럽 고양이로 급부상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f4LPtILZwW0 만화 속 캐릭터니까 그렇지 이처럼 못된 고양이가 실제로 뒷골목을 휘젓고 다닌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2023년에는 이스탄불의 한 동네에는 ‘키를리’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등장했다. ‘키를리’, 튀르키예어로 ‘더럽다’는 뜻이다. ‘사이코패스’라는 별명도 있다. 온종일 동네 고양이들과 쌈박질을 벌이는 깡패이며, 암컷들을 쫓아다니는 꼴이 그야말로 셰라페틴의 재림이다. 아무리 뜯어봐도 호감가는 면이라고는 일도 없어 보이지만, 사람들은 키를리를 개천에서 태어난 용처럼 취급한다. 만화 속 주인공 셰라페틴이 우리 동네에서 재림했다며 자부심을 갖고 녀석을 보살핀다. 인터넷은 물론 공중파 채널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면서 키를리는 현재 튀르키예의 셀럽 고양이로 급부상했다. 키를리처럼 튀르키예의 모든 도시와 골목, 마을에는 그곳을 관장하는 고양이들이 있다. 길고양이들의 역사책이 있다면 아마 꽤 두툼한 페이지가 톰빌리(Tombili)에 할애될 것이다. 톰빌리는 통통하다는 말 뜻 그대로 대단한 뚱냥이였다.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이혜승 튀르키예 통신원 lhs@mind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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