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멈췄는데 먼저 냈다…美 기업들, 캘리포니아 기후공시 자발 제출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캘리포니아 기후공시 자발 제출 기업은 산업재·서비스 업종 비중이 34%로 가장 높았다. 기술·미디어·통신과 소비재 시장 기업은 각각 15%를 차지했으며, 에너지·유틸리티·자원 및 헬스케어 업종은 각각 13%로 나타났다. / 출처 = PwC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후공시 규제에서 물러난 가운데, 미국 기업들이 캘리포니아 기후공시 보고서를 자발적으로 제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기후공시는 현재 소송과 시행 지연 속에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다.
19일(현지시각)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PwC는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California Air Resources Board) 공개 문서함에 올라온 자발적 제출 사례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규제가 멈춰도 기업들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법원서 멈춘 SB261…94개 기업은 먼저 냈다
캘리포니아주는 2023년 SB261을 제정해 일정 매출 이상 기업에 기후 관련 재무 리스크 공시를 의무화했다. 기업들은 기후변화가 사업과 재무에 미치는 영향을 공개하고, 관련 대응 전략까지 설명해야 한다.
다만 현재 제도 운영은 소송과 시행 지연 속에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다. 재계가 제기한 소송으로 시행 일정이 흔들리는 가운데,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의 세부 시행규칙 확정도 늦어지고 있다. CARB는 법 자체는 유효하다는 입장을 유지한 채 기업들의 자발적 제출을 허용하고 있다.
동시에 연방 차원의 기후공시 정책도 후퇴했다. SEC는 지난해 3월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기후공시 규칙에 대해 더 이상 법원 방어를 이어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연방 규제 기조가 바뀌면서 미국 연방 차원의 기후공시 추진 동력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오히려 먼저 움직였다. CARB가 소송 종료 전까지 자발적 제출을 허용하자 올해 1월 30일 기준 94개 기업이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가운데 63%는 처음으로 기후리스크 보고서를 작성한 기업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비상장기업 비중이다. 초기 제출 기업 가운데 비상장기업이 상장기업보다 더 많았다. 상당수는 SEC 기후공시 규칙 적용 대상조차 아닌 기업들이다. 연방 규제가 후퇴한 상황에서도 공급망·투자자·거래처 요구에 맞춰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캘리포니아 기후공시 체계가 사실상 미국 기업들의 새로운 공시 기준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방 규제가 흔들려도 캘리포니아와 EU 규제가 시장 기준으로 작동하면서 대기업들이 글로벌 공시 체계에 계속 맞춰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환경 이슈 아니다”…이사회·ERM 체계 안으로 들어갔다
기업 공시 내용을 보면 기후리스크는 더 이상 ESG 부서만의 관리 항목이 아니었다. 재무·리스크 관리 체계 안으로 편입되는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보고서를 제출한 기업의 91%는 이사회와 경영진이 함께 기후리스크를 감독한다고 밝혔다. 감사위원회·지배구조위원회·지속가능성위원회·리스크위원회 등이 함께 관여하는 구조도 다수 확인됐다.
77%는 기후리스크를 전사 리스크 관리(ERM) 체계에 통합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꼽은 주요 위험은 폭염·폭우·산불 등 극단 기상 현상과 평균 기온 상승 같은 물리적 리스크였다. 동시에 규제 강화, 저탄소 기술 전환 비용 증가, 원자재 가격 상승 같은 전환 리스크도 핵심 변수로 제시됐다.
반면 상당수 기업은 저탄소 에너지 사용 확대와 에너지 효율 개선, 저배출 제품·서비스 시장 확대 등을 사업 기회로 함께 공시했다. 의미 있는 기후리스크나 기회가 없다고 밝힌 기업은 전체의 7%에 불과했다.
기후변화를 단순 환경 문제가 아니라 비용·공급망·투자·사업 전략에 직결되는 경영 변수로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공시는 시작됐지만 수준 격차는 여전”
다만 공시 품질은 아직 균일하지 않았다. 제출 기업의 91%는 기후 관련 재무공시 협의체(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권고안을 기준 틀로 활용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34%는 정량 시나리오 분석이나 온실가스 배출량 등 일부 권고 항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시나리오 분석 수준도 차이를 보였다. 정성적 분석 중심 공시는 56%였고, 정량 기법까지 활용한 기업은 21%에 그쳤다. 기후리스크가 실제 재무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로 공개한 기업은 13%였다. 자산 노출 규모, 에너지 가격 변동, 극단 기상에 따른 과거 손실 등이 계량화 대상에 포함됐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공개한 기업은 59%였다. 공급망 전반 배출량인 스코프3까지 공개한 기업은 56%로 직접 배출량 공시율(76%)보다 낮았다. 기후 전환계획을 보유했다고 밝힌 기업도 40%에 머물렀다.
기업들이 기후리스크를 인식하고 관리 체계 구축에는 나서고 있지만, 실제 감축 실행과 정량 관리 단계까지 도달한 곳은 아직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PwC는 기업별 공시 수준 차이는 데이터 확보 역량과 내부 거버넌스 구조 차이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도 최근 보고서에서 SEC가 물러난 이후에도 캘리포니아와 EU 규제가 공백을 메우고 있다”며 대형 미국 기업 상당수는 결국 어느 한 관할권에서는 기후공시 의무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