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가 야만으로…선거 불신이 드러내는 파시즘 징후 [뉴스] 올림픽공원에서 심야 시위 중인 시민들. 연합뉴스
2026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결과는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6곳의 광역자치단체장 중 12곳을 쓸어 담으며 압승을 거두었다. 반면 12·3 내란 에 대한 반성 없는 태도로 일관하며 현 정부에 대한 합리적 견제마저 실패한 국민의힘은 4곳을 수성하는 데 그쳤다. 특히 민주당 입장에서는 민심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대전·충남·충북을 모두 탈환하고, 전통적 험지였던 울산과 부산에서 승리한 데 이어, 국민의힘의 심장부인 대구에서 김부겸 후보가 4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성공으로 평가할 만하다.
반면 국민의힘은 수도권에서 인천을 내주었으나 서울을 지켜내며 오세훈 시장의 전무후무한 5선 대기록을 완성했고, 경남 역시 여론조사의 열세를 뒤집고 수성에 성공하며 나름의 위안을 삼게 되었다. 동시에 치러진 평택을 보궐선거에서는 범여권 진영의 잠룡이었던 조국혁신당 조국 후보가 여권 내부의 분열로 낙선하고 국민의힘 유의동 후보가 당선되면서, 국민의힘으로서도 지난 2018년 지방선거만큼 완전히 궤멸적인 결과는 면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에서 여당 비주류로 밀려나 무소속 출마를 감행한 한동훈 후보가 3자 구도를 뚫고 당선되고, 안동시의원으로 녹색당 허승규 후보가 원내에 진입하는 등 이번 선거는 여러모로 주목할 점이 많았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터져 나온 투표용지 부족 사태 로 인해 이 모든 정치적 분석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특히 21대 총선을 기점으로 일부 극단주의 세력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부정선거론 과 선거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이 이번 사태와 맞물리면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낳고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던 노태악 전 대법관이 직무에서 사퇴했고, 김민석 국무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한 엄정한 대응을 천명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관위를 매섭게 질타하는 모습은 선거 관리 부실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진짜 문제는 사태가 합리적인 책임 추궁에 그치지 않고, 일부 부정선거론자들과 결탁하며 조직적인 세력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으로 압승하자 극단주의 세력은 본격적으로 부정선거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2021년 재보선,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하며 이들의 주장은 잠시 잠잠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2024년 총선에서 다시 범여권이 압승하고, 탄핵 직후 치러진 2025년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자, 12·3 내란 을 거치며 결집한 극단주의 세력은 부정선거론을 전면에 내걸고 세력을 급격히 확장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흐름이 이미 깊은 냉소주의에 빠진 채 권위주의에 종속되어 버린 젊은 층을 포섭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한국 사회 밑바닥에 숨어있던 파시즘의 조짐이 마침내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사실 2030 세대의 보수화 담론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문재인 정부 중반부터였다. 조국 전 장관 사태를 기점으로 한 공정 논란과 86세대와의 갈등, 그리고 민주당의 일부 여성주의적 경향에 반발하며 젊은 보수의 대변자를 자처한 이준석의 부상 등이 이를 증명한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후 친윤계와 이준석 사이의 정파 갈등,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연이은 실책과 무능으로 인해 이러한 극단주의적 경향은 일부 강성 지지층 내부의 현상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12·3 내란 은 이 지형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윤석열의 전격적인 계엄 선포와 내란 행위는 대통령 탄핵과 이재명 정부의 출범으로 귀결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콘크리트 지지층을 광적으로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박근혜 탄핵에 이어 또 한 번의 붕괴를 경험한 이들은 더욱 강고하게 뭉쳤고, 코로나19를 거치며 범람한 유튜브와 SNS의 극단주의 유사 언론들은 계엄이라는 내란 범죄를 계몽 이자 구원 의 서사로 선동하기에 이르렀다. 이 부조리한 선동은 수구 기독교 세력 등 완고한 진영의 힘을 업고 걷잡을 수 없이 몸집을 불렸다.
그 결과 내란 정권의 노동부 장관을 지내고도 일말의 반성조차 없던 인물이 야당의 대선 주자가 되었고, 비슷한 헌정 중단 사태 속에서 치러진 2017년 대선 당시 홍준표 후보가 참패했던 것과 달리, 지난해 대선에서 야당 후보는 4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석패했다. 사태의 엄중함에 비해 야권 강성 세력의 결집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진 것이다.
물론 이를 두고 민주당에 대한 2030 세대(특히 남성)의 반감으로만 환원하는 분석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난 21대 대선에서 이준석 이라는 확실한 대안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 3사 출구조사 기준 20대 이하 남성 계층에서 김문수 후보가 지지율 1위를 차지했고, 30대 남성에서도 이재명 후보(37.9%)와 박빙인 34.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히 젠더 갈등이나 특정 정당에 대한 반감이라는 단면만으로는 이 현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이번 2026 지방선거는 이러한 징후를 확증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구조사에서 20대 이하 및 30대 남성은 오세훈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특히 20대 이하 남성 계층에서 오세훈 후보의 지지율은 무려 75%를 상회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청년 남성뿐만 아니라 20대 이하 여성층에서도 오세훈 후보에게 과거와 달리 40% 이상의 지지를 보냈으며, 30대 여성층에서는 정원오 후보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서울의 지역 특성상 부동산 등 경제적 여건이 표심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강남 3구를 비롯한 보수 우위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도리어 그러한 물질적 이행 관계에 철저히 종속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파시즘의 토양이 무르익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정치적인 주장이 담긴 선전물들. 연합뉴스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rno)는 1967년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훗날 『신극우주의의 양상(Aspekte des neuen Rechtsradikalismus)』으로 출간될 역사적인 강연을 했다. 당시 서독은 네오나치 성향의 국가민주당(NPD)이 주 의회 선거에서 잇따라 돌풍을 일으키던 시기였다. 아우슈비츠의 참혹한 기억이 여전하던 때였기에 사회적 충격은 막대했고, 그 기억을 자신의 사유의 핵심 축으로 삼았던 아도르노는 그 위기감의 배후를 날카롭게 짚어냈다.
아도르노는 파시즘의 일차적 토양을 상품 사회, 즉 자본주의 구조 그 자체에서 찾았다. 자본주의 체제는 내적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주기적인 경제 위기를 겪으며, 스스로의 존립을 위해 특정 개인과 계층을 구조적으로 소외시키고 희생양으로 삼는다. 상품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 를 인정받지 못해 주류 사회로부터 밀려난 개인들은 필연적으로 자아가 극도로 취약해진 상태에 놓인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결핍된 소외감을 충족시켜 줄 가짜 구원으로서 정체성(Identity) 의 기제가 등장한다. 민족, 인종, 성별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정체성에 스스로를 종속시킴으로써 대리 만족을 얻는 것이다.
이는 비판과 부정을 통해 사유하는 주체적 행위가 아니라, 거짓이며 허위인 우상과 형상을 비합리적으로 숭배하는 행위다. 따라서 이들은 음모론과 거짓 선동에 쉽게 의존하게 되며, 선전가들이 주입한 허구적 논리 속에서 스스로 자유롭다 는 착각에 빠진 채 집단적 동일성 속에 완전히 파묻힌다.
여기서 아도르노는 냉소주의 의 역할에도 주목했다. 냉소주의 역시 상품 개념이 파생시킨 모순의 결과물이자, 파시즘을 심화시키는 비옥한 토양이다. 상품 사회는 인간을 철저히 고립된 원자적 존재로 파편화하고 무한 경쟁으로 내몬다. 그 결과 사회에는 모순과 타인의 고통에는 철저히 무감각해지는 냉소주의가 만연하게 되며, 이 냉소주의는 궁극적으로 주체를 더욱 고립시킨다. 결국 스스로가 체제의 희생양으로 전락해 소외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순간, 취약해진 자아는 자신을 구해줄 강력한 독재자나 구원자를 갈구하게 된다.
로베르트 쿠르츠(Robert Kurz) 역시 그의 문헌 『Null-Identität』에서 상품 사회가 인간을 냉소주의와 맹목적 동일성 숭배로 이끄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며, 이것이 현대 유럽의 극우세력 약진과 미국의 트럼피즘을 낳은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즉, 상품의 법칙 아래에서 냉소화되고 소외된 개인들이 경제 위기라는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극단주의의 품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시위 현장에 등장한 대진연(한국대학생진보연합) 단속반. 연합뉴스
작금의 한국 사회는 이 비판적 분석이 정확히 들어맞는 각축장이다.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 한국을 지배하던 권위적 공동체적 문화는 각자도생의 가혹한 개인주의로 빠르게 재편되었고, 이는 사회 전반의 냉소주의를 가속화했다. 여기에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청년 실업이라는 구조적 위기가 더해지면서, 아도르노가 경고한 파시즘의 토양은 이미 완벽하게 무르익었다.
물론 잠실 올림픽공원 시위나 대학가의 성명 등을 보면, 이들이 부정선거와 같은 극단적 음모론이나 그 모체라 할 수 있는 윤어게인 세력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며 선을 긋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에 나선 2030 세대의 행동을 곧바로 파시즘적 징후로 규정하는 것은 다소 비약이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안위나 이익과 직결되지 않는 사회적 모순—가령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나 대학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침해—앞에서는 철저히 침묵하거나 도리어 조롱으로 일관했던 이들이, 왜 유독 이번 사태에는 이토록 분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인지 곱씹어 본다면 앞선 분석의 정당성은 충분히 확보된다. 타자의 고통과 사회적 약자의 저항에는 지독한 냉소로 일관하던 이들이, 오직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세대 라는 정체성으로 얽힐 수 있는 사안에만 선택적으로 결속하여 행동에 나섰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앞선 선거 결과가 증명하듯,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의 젊은 세대가 이미 경제적 이해관계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으며 자신의 기득권 수호에 매몰되어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오직 세대 라는 맹목적 동일성으로 묶여 집단행동에 나서는 작금의 현실은 위태롭다. 이미 파시즘의 토양이 비옥하게 무르익은 사회에서 극도의 냉소에 빠진 파편화된 개인들이 결국 세대 라는 동일성 아래로 종속되는 현상은, 더욱이 그 세대의 본질이 이미 상품의 논리에 온전히 물화되어 있다는 점과 맞물려 파시즘의 부상을 한층 심화시킬 것이다.
결국 작금의 사태가 가리키는 본질은 선거 관리의 기술적 부실이나 일부 집단의 돌출 행동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상품 개념 과 자본주의의 내적 법칙이 필연적으로 잉태한 파시즘의 어두운 전조다. 이 야만의 구조를 뿌리부터 뒤집는 근본적인 변혁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앞에 놓인 길은 결국 또 다른 야만으로의 회귀뿐임을 뼈저리게 직시해야 한다.이승규 시민기자 seungkyu010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