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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정치적 상상력이 사회발전 이끈다[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현실적이 되어라,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꾸어라. 프랑스 68혁명 당시의 이 유명한 구호는 정치적 상상력의 본질을 꿰뚫는다. 흔히 발전을 기술의 진보나 경제적 효율성의 결과로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 더 정의로운 사회, 더 편리한 삶을 꿈꾸고 그것을 실제 제도와 정책으로 구현해내는 ‘상상력’이 없다면, 과학기술과 사회 시스템은 현상 유지에 머물거나 방향을 잃기 쉽다. 정치적 상상력이야말로 모든 사회적, 과학적 발전의 진정한 원동력이다.
정치적 상상력은 사회의 ‘한계’를 규정하는 틀을 깨는 것이다. 인권, 민주주의, 복지제도는 과거에는 불가능하거나 상상할 수 없었던 아이디어였다. 노예제가 당연시되던 시대에 평등을 상상하고, 여성의 투표권이 없던 시절에 참정권을 요구했던 것은 정치적 상상력이었다. 이는 단순히 제도 개선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정의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었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끊임없는 상상과 도전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또한 이러한 상상력 위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태양과 바람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고, 지구를 넘어 우주를 개척하며, 인공지능을 향한 비전은 과학자들의 호기심뿐만 아니라, 인류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비전과 결합할 때 현실이 된다.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통해 어떤 세상을 만들지 고민하는 상상력 이 방향타 역할을 하는 것이다. AI 혁명, 기후위기, 탄소중립, 융합 기술 등 오늘날의 과학적 난제들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윤리적·정치적 합의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21일 국회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을 위한 시민사회 원탁회의 결성식’에서 참석자들이 결의를 다지고 있다. © 이봉수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 정치적 상상력을 키울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서구가 산업혁명과 더불어 발전해온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이미 명징하게 나타나 있다. 바로 교육이다. 인류의 역사는 무지에서 계몽으로,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는 끊임 없는 여정이다. 이 위대한 진보의 수레바퀴를 굴려온 가장 강력한 원동력은 단연 교육이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행위를 넘어, 인간의 잠재력을 깨우고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명 진보의 핵심 엔진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에서 ‘빛의 혁명’까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산업화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동시에 쓰고 있는데 그 동력의 엔진은 ‘교육’이었다. 아무리 지도자가 뛰어나도, 아무리 자원이 많아도, 국민이 무능하거나 어리석다면 다 허사다. 폐허 속에서 피어난 경제 강국, 총칼 대신 촛불로 일궈낸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세계가 ‘기적’이라 부르는 서사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 기적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자원 하나 없는 척박한 땅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자원, 바로 ‘사람’을 키워낸 교육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대한민국의 미래도 교육에 달려있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한국전쟁 직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당시 우리 국민이 선택한 생존 전략은 ‘배움’이었다. 부모들은 끼니를 거르면서도 자녀를 학교에 보냈고, 그 뜨거운 교육열은 숙련된 노동자와 창의적인 기술 인력을 배출하는 토대가 되었다. 초등교육의 보편화는 문해율을 획기적으로 높였고, 이는 산업화 시기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인적 자본으로 치환되었다. ‘한강의 기적’은 단순히 공장을 짓고 도로를 닦아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보통교육을 통해 훈련된 인재들이 일궈낸 땀방울의 결과였다.
이 땅에 산업화와 더불어 형식적 민주주의를 성립시킨 것 역시 교육의 힘이었다. 대한민국은 압축 성장 과정에서 억눌렸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시민의 힘으로 분출해왔다. 4·19 혁명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평화로운 시민 불복종의 정점을 보여준 촛불혁명 빛의혁명에 이르기까지, 교육은 ‘비판적 사고’를 가진 시민들을 양성해 왔다. 학교와 사회에서 길러진 민주시민 의식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용기를 주었다. 성숙한 토론 문화와 질서 정연한 광장의 모습은 대한민국 교육이 지향해온 민주 가치가 현장에서 구현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한 단계 더 나아간 ‘민주주의의 완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고 본다. 그 완성의 장소는 다름 아닌 학교여야 하며, 그 새로운 동력은 교사의 정치활동 보장에 있다고 믿는다. 민주주의 없이 선진산업국으로 도약없다는 역사발전의 법칙을 받아들인다면 이제는 대한민국도 한단계 더 높은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민주주의는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행위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사회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대안을 모색하는 ‘민주시민의 양성’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교육 현장은 어떤가? 교과서 속 지식으로만 배우는 민주주의는 화석에 박제되어 교실 벽에 갇혀 있다.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은 ‘살아있는 교육’이다. 학교에서부터 사회적 이슈와 쟁점을 토론하고, 정치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해 인권, 평등, 자유의 가치를 체득하며, 대화와 타협을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을 하는 습관을 기르고 평화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현재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 놓여 있다. 교사는 퇴근 후에도 정당에 가입할 수 없고, 좋아하는 후보에게 커피 한 잔 값의 후원조차 할 수 없다.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이 거세된 교사가 학생들에게 어떻게 당당하게 시민의 권리와 책무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 일각에서는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우려한다. 하지만 교육의 중립성은 ‘정치적 무관심’이나 ‘침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는 현장에서 교사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정한 토론을 이끌 때 실현된다. OECD 국가 중 대다수가 교원의 정당 가입과 정치 활동을 전면적 혹은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교사의 정치적 자유가 교육 현장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숙하게 만든다는 점을 시사한다. 교원에게 정치적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단순히 한 집단의 권익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교사가 한 명의 온전한 시민으로서 사회 문제에 참여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행동하는 시민’으로 길러내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 대해 토론하면서도 정작 그 과정에서 배제된 교사가 가르치는 수업은 학생들에게 공허하게 다가갈 뿐이다. 교실을 책임지는 교사들이 시민으로서의 온전한 권리를 회복할 때, 비로소 우리 아이들은 민주주의를 지식이 아닌 삶으로 체득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낡은 금기에서 벗어나, 교원의 정치활동 보장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직시해야 할 때이다.
세계 5대 경제강국 문화대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서 교원의 정치적 위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OECD 가입국 중 한국처럼 교원의 정당 가입과 정치적 표현을 전면 금지하는 나라는 사실상 전무하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대다수 선진국은 교원의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와 ‘직업인으로서의 직무상 의무’를 엄격히 분리한다. 독일의 교사들은 광범위한 정치활동의 자유를 누린다. 정당 가입은 물론, 현직 교원이 의회에 진출하는 비율이 20%를 넘을 정도로 교육계의 목소리가 입법 과정에 적극 반영된다. 프랑스·덴마크 교사들도 일반 시민과 동등한 수준의 표현의 자유와 정당 활동의 자유를 누린다. 미국·영국은 교사가 선거 출마 시 일부 제한은 있으나, 정당 가입이나 정치 기부, 사적 영역에서의 정치적 견해 표명은 기본권으로 존중받는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교육의 편향성은 오히려 교원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고 투명한 교육 원칙을 세울 때 해결될 수 있다.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1976)는 그 해답을 제시한다. 교사가 자신의 견해를 학생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논쟁적인 사안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룬다. 이 원칙은 교사가 ‘무색무취’해야 한다는 침묵의 강요가 아니라, 다양한 견해를 공정하게 다루는 전문성을 발휘할 때 진정한 교육의 중립성이 완성됨을 보여준다.
최근 국내에서도 교원을 ‘정치적 금치산자’ 상태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사법적·입법적 움직임이 활발하다. 국가인권위원회 및 ILO: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현행법을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개선을 지속적으로 권고해 왔다. 헌법재판소도 학교 밖에서의 정치단체 가입이나 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는 등, 교원의 기본권 범위를 점진적으로 넓히고 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교사노조연맹 주최로 열린 교사 시민권 회복 행사에서 송수연 교사노조연맹 위원장이 ‘새장에 갇힌 교사 시민권’ 퍼포먼스를 마치고 새장 모형에서 나오고 있다. 2026.5.14 연합뉴스
이제 대한민국도 교원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사가 퇴근 후 정당 게시판에 의견을 쓰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책에 후원하는 행위는 교육의 중립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시민적 자존감을 높이고 교육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다. 교사에게 시민의 권리를 돌려주는 것, 그것이 곧 우리 아이들을 ‘온전한 시민’으로 길러내는 민주주의 교육의 완성이다. 대한민국이 한걸음 더 도약을 위해서는 학교가 ‘민주시민의 산실’이 되어야 하며, 이를 가르치는 교사들부터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
최근 우리 국회에서는 교사의 근무시간 외 정당 가입, 정치 후원금 납부, 피선거권 보장을 골자로 하는 ‘교원 정치기본권 보장 7법’ 등이 발의되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보수 야당을 중심으로 이를 반대하는 세력은 여전히 시기상조론을 앞세우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분명한 결의를 가지고 임해야 할 것이다.
결국, 정치적 상상력은 불가능 을 가능 으로 바꾸는 힘이다. 아직 여건이 안 된다, 시기상조다, 현재의 기술과 자원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상상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정치적 상상력은 당장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정치적 상상력은 그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엔진이다. 더 나은 사회와 과학 발전을 위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담대하고 창조적인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십수 년 전 필자는 대학교수로 재직 중 두 차례에 걸쳐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다. 이 지역의 정치성향상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혁신유림의 고향 안동에서 영남유생의 전통을 계승하는 사람이 한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온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이 무모한 도전의 배경에는 이 지역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낮에는 학교에서 밤에는 야학에서 이 땅의 민초들을 대상으로 기초교육에 힘쓰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 그 선생님들이 보수도 없이 오직 가난하여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빈곤층을 대상으로 오직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열정 하나로 혼신의 힘을 쏟고 있었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그 선생님들은 당시 부패한 기득권 정치권력에 대해 투쟁을 전개했는데 모두 선생님들이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빼앗긴 데 분노하고 있었으며,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대학교수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지 말고 정치에 참여해서 세상을 바꾸라는 것이었다. 이제는 대학만이 아니라 초중고의 모든 선생님들도 세상을 바꾸는 데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6.3지방선거에서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추진 등 교육철학이 담긴 공약들은 사라지고, ‘현금성 공약’이 그 자리를 파고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보편복지 확대, 고교 서열화 완화, 학생인권 증진 등 시대정신을 담은 교육공약이 사라지면서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은 점점 매말라가는 듯 하다.
이제 교육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는 이 위대한 역사발전은 계속되어야 한다. 과거의 교육이 성장의 엔진 이었다면, 미래의 교육은 방향을 잡는 나침반 이 되어야 한다. 극심한 경쟁과 격차를 해소하고, 양보와 나눔을 통해 공존의 가치를 가르치는 교육으로 거듭나야 한다. 경제적 성취와 민주적 성숙을 동시에 이뤄낸 우리의 저력은 결국 다시 교육 에서 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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