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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두 발로 생각한다는 것, 걷기와 사유의 관계

두 발로 생각한다는 것, 걷기와 사유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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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철  사람들은 흔히 생각을 머리로 하는 일이라 여긴다. 생각은 뇌에서 일어나고, 몸은 그 생각을 실행하는 도구라고 믿는다. 그러나 인류의 긴 역사에서 이런 분리는 매우 최근의 일이다. 오랫동안 인간은 몸으로 생각해 왔다. 특히 두 발로 걷는 행위는 인간의 사고 방식 자체를 형성해 온 근본적인 조건이었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일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는 하나의 인식 방식이었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고, 시선은 수평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단지 생물학적 변화가 아니라 사유의 구조를 바꾸는 사건이었다. 걸으면서 인간은 멀리 보게 되었고, 앞을 내다보며 계획하게 되었으며, 길 위에서 예측과 판단을 반복했다. 생각은 이렇게 움직임 속에서 자라났다. 가만히 앉아 떠올리는 추상적 사고보다 걸으며 세계를 감각하는 경험이 먼저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학파’를 의미하는 말로 ‘걷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은 스승과 함께 걸으며 토론했고, 그들은 산책하는 철학자들 이라 불렸다. 질문은 멈추지 않았고, 답은 완결되지 않았다. 걸음에 맞춰 사유는 흐르고, 생각은 닫히지 않은 상태로 유지되었다. 걷기는 사유를 열어두는 방식이었다. 근대 이후 철학은 점점 책상 위로 올라갔다. 사유는 고정된 자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되었고, 움직임은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생각의 질에도 영향을 미쳤다. 몸과 분리된 생각은 점점 추상화되었고, 삶과 멀어졌다. 개념은 정교해졌지만, 살아 있는 감각은 사라졌다. 이때부터 우리는 생각이 많아질수록 삶이 가벼워지지 않고 오히려 무거워지는 역설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걷기는 이 분리를 다시 잇는 행위다. 걷는 동안 생각은 머리에서만 맴돌지 않는다. 발바닥의 감각, 호흡의 리듬, 주변 풍경의 변화가 생각에 개입한다. 그 결과 생각은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풀리고 엮인다. 많은 사람들이 걷다 보니 생각이 정리됐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리란 무엇인가. 불필요한 생각이 사라지고, 진짜 중요한 질문만 남는 상태다. 걷기는 바로 그 상태로 우리를 데려간다. 니체는 자신을 걷는 철학자”라 불러도 좋을 만큼, 사유와 보행을 분리하지 않았다. 그는 앉아서 오래 생각하는 것을 경계했고, 걷지 않는 사유는 건강하지 않다고 보았다. 니체에게 생각이란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리듬을 지녔고, 그의 사유는 언제나 움직이고 있었다. 걷는 동안 떠오른 생각만이 살아남았고, 멈춰서 만들어진 생각은 스스로 검열했다.   2025년 1월 10일 신불산 눈길을 걷다. 사진 박철  프랑스 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는 걷기를 사유가 몸을 되찾는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걷는 동안 인간은 사회적 역할에서 잠시 벗어난다고 말한다. 직업, 지위, 성과에서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생각은 더 이상 무엇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걷는 생각은 설득하려 하지 않고,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며 스스로의 모양을 찾아간다. 이 점에서 걷기는 명상과도 닮아 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호흡을 관찰하는 명상과 달리, 걷기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명상이다. 길 위에는 항상 변수와 우연이 있다. 바람, 소리, 사람, 날씨가 생각을 흔든다. 이 흔들림 속에서 생각은 더 유연해진다. 고정된 관점은 깨지고, 다른 가능성이 스며든다. 걷는 사유는 그래서 독단적이기보다 열려 있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앉아서 공부하는 사회’였다. 생각은 책상 앞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배웠고, 움직임은 산만함으로 간주되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오래 앉아 있는 훈련을 받았고, 몸을 움직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 결과 우리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정보가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잘 배우지 못했다. 생각은 많아졌지만, 삶은 복잡해졌다. 이런 사회에서 걷기는 다시 생각의 통로를 여는 행위가 된다. 최근 걷기와 글쓰기를 함께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걷다가 떠오른 문장은 책상 앞에서 억지로 짜낸 문장보다 힘이 있다. 그것은 이미 몸을 통과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많은 작가들이 산책을 글쓰기의 일부로 여겨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인 김수영은 도시를 걸으며 시를 썼다. 그의 시에는 거리의 소음과 시대의 긴장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가 걷지 않았다면 그렇게 날것의 언어에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걷는 동안 그는 억압을 감각했고, 그 감각은 곧 시적 언어로 변했다. 그의 사유는 책상 위가 아니라, 거리 위에서 자랐다. 교육자 이오덕 선생 또한 걷는 사유를 중시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책보다 먼저 길을 보여주었다. 마을을 걷고, 들판을 걸으며 아이들의 말을 들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기 언어를 찾았고, 생각은 자연스럽게 깊어졌다. 이오덕에게 걷기는 교육의 방법이자 철학이었다. 자기 발로 걸어본 세계만이 자기 생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걷는 사유는 빠른 결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안한 시대에는 더욱 필요하다. 우리는 늘 즉각적인 판단과 명확한 입장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많은 문제는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걷는 동안 우리는 판단을 미루는 법을 배운다. 아직 모른다는 상태를 견디는 법, 생각이 완성되지 않은 채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을 회복한다.   기도하기 좋고 걷기 좋은 아름다운 숲길. 사진 박철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서도 걷는 사유는 중요하다. 걷는 사람은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는다. 같은 높이에서, 같은 속도로 세계를 본다. 그래서 걷는 사유는 타인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노동자들의 도보 행진, 순례자들의 침묵 행렬, 시민들의 평화 걷기는 모두 생각을 몸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 걷기는 주장 이전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사회를 걷고 있는가. 걷지 않는 사회에서는 생각도 쉽게 고립된다. 온라인 공간에서 생각은 빠르게 퍼지지만, 쉽게 단절된다. 몸이 개입하지 않은 생각은 상대를 적으로 만들기 쉽다. 반면 함께 걷는 경험은 생각을 다르게 만든다. 같은 길을 걸으며 나누는 말은 논쟁이 아니라 대화에 가깝다. 걷는 동안 사람들은 상대를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함께 움직이는 존재로 인식한다. 이 연재가 주목하는 걷기는 바로 이런 사유의 방식이다. 걷는다는 것은 생각을 몸에 다시 돌려주는 일이고, 삶과 분리되지 않은 사고를 회복하는 일이다. 걷는 사유는 느리지만 깊다. 즉각적인 해답을 주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그것은 길 위에서 숙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두 발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머리만 바쁜 삶에서 벗어나 몸 전체로 질문을 품는 삶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걷는 동안 생각은 가벼워지고, 질문은 정직해진다. 그 질문은 때로 답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체로 충분하다. 생각은 반드시 결론에 도달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북걷사 도반들과 운문사 명품 소나무 앞에서. 2025.12.2 사진 박철 다음 회부터는, 이렇게 두 발로 생각했던 사람들 가운데 여러 인물의 삶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것이다. 걷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길 위에서 사유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따라가며 걷기의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계속 걸을 것이다. 생각하기 위해서, 그리고 살아 있기 위해서. 걷기에  도움이 되는 책 조이스 럽 느긋하게 걸어라: 산티아고 가는 길  순례길의 풍경을 보여주는 여행기가 아니라, 삶의 속도를 다시 묻는 영적 산문이다. 조이스 럽은 산티아고 길 위에서 빨리 도착하려는 습관, 성과를 앞세우는 태도, 스스로에게조차 가혹한 마음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그 과정은 특별한 깨달음의 과장이 아니라, 발의 통증과 피로, 낯선 이들과의 조용한 연대 속에서 천천히 이루어진다. 이 책의 미덕은 더 잘 걷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데 있다. 대신 멈추고,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산티아고를 걷지 않은 독자에게도 이 책은 유효하다. 각자의 일상 역시 하나의 순례길이기 때문이다. 바쁘고 지친 삶 속에서 속도를 늦추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다정하지만 단단한 동반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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