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식물학자, 평화중재자,18세기의 양심 존 포더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포더길 초상화.(John Fothergill | RCP Museum)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대개 정복자와 군주들의 이름을 기록한다. 하지만 그 수레바퀴가 굴러가며 짓이겨놓은 자리를 묵묵히 보듬고,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뿌린 이들의 이름은 종종 먼지 속에 묻히곤 한다. 존 포더길(John Fothergill, 1712~1780)은 오늘날 우리에게 낯설다. 그는 왕관을 쓰지도, 칼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18세기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의사였으며, 세계적인 식물학자였고, 무엇보다 전쟁의 불길을 막으려 사투를 벌인 평화의 중재자였다. 성공 보다 옳음 이 실종된 이 시대, 우리는 왜 다시 그를 불러내야 하는가.
존 포더길.(위키피디아)
차별을 딛고 인술(仁術)을 펼치다
존 포더길은 1712년 잉글랜드 요크셔의 평온한 마을 웬즐리데일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존 포더길 시니어는 독실한 퀘이커였다. 퀘이커는 내면의 빛 을 강조하며 모든 인간의 평등과 비폭력을 주장하는 종교집단이다. 당시 영국 국교회(성공회) 중심의 사회에서 퀘이커는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명문 대학은 국교회 신자가 아니면 입학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포더길은 좌절하는 대신 우회로를 택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대학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1736년 의학 학위를 취득했다. 주류사회의 배척이 오히려 그를 실력중심의 의학자로 단련시킨 셈이다. 런던으로 돌아와 병원을 연 그는 곧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의 진료실 앞에는 늘 두 부류의 사람들이 줄을 섰다. 당대 최고의 귀족들과 한 푼의 진료비도 낼 수 없는 빈민들이었다. 포더길은 귀족들에게서 받은 거액의 치료비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단순히 무료진료에 그치지 않았다.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환자에게는 처방전 대신 사비로 고기와 빵을 사다 먹였다. 의사는 질병뿐 아니라 가난도 치료해야 한다 는 신념 때문이었다. 1775년 독감이 창궐했을 때, 그는 하루 60명이 넘는 환자를 돌보며 자신을 소진했다. 그는 런던에서 가장 부유한 의사 중 하나가 되었지만, 그의 생활은 퀘이커의 전통대로 검소하기 그지 없었다. 벌어들인 부는 오직 타인의 고통을 줄이는 데만 사용되었다.
존 포더길.(Dr John Fothergill | Quaker Strongrooms)
하던 대로 깨부순 과학적 통찰
의학자로서 포더길의 업적은 시대를 반세기 이상 앞서 있었다. 그는 오늘날 현대인의 사망 원인 1순위로 꼽히는 심혈관 질환의 선구자적 연구자였다. 협심증의 통증이 관상동맥의 경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임상적으로 증명한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이다. 또한 삼차신경통에 대한 체계적인 기술을 남겼고, 당시 수많은 아이의 목숨을 앗아간 궤양성 인후염(디프테리아) 에 관한 논문을 써서 유럽 의학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그의 합리적 치료법 이다. 18세기 의학계는 병의 원인도 모른 채 환자의 피를 뽑는 사혈(Bloodletting)이나 무분별한 설사 유도가 만연해 있었다. 포더길은 이런 가혹한 관행이 환자를 더 약하게 만든다고 비판하며, 영양 공급과 위생, 그리고 완만한 약물 투여를 강조했다.
그는 천연두 예방 접종의 열렬한 옹호자이기도 했다. 동료 의사 토머스 딤즈데일이 러시아로 건너가 예카테리나 대제에게 종두법을 시행하도록 배후에서 조력한 인물이 바로 포더길이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그의 인술은 국경과 이념을 넘어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했다.
존 포도길 평전.(Dr John Fothergill | Quaker Strongrooms)
업턴 하우스의 기적, 씨앗을 심는 마음
포더길의 또 다른 자아는 식물학자였다. 1762년, 그는 런던 동쪽 웨스트 햄의 업턴 하우스를 매입해 거대한 식물원을 조성했다. 이 정원은 단순한 취미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는 전 세계의 탐험가와 상인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며 진귀한 식물표본과 씨앗을 수집했다.
당시 그의 정원에는 약 6400종에 달하는 전 세계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80미터가 넘는 유리 온실 안에는 아프리카와 미대륙의 이국적인 식물들이 가득했다. 스웨덴의 위대한 식물학자 칼 린네는 포더길의 공로를 기려 포더길라(Fothergilla) 라는 식물 속(屬) 이름을 헌정했다.
포더길에게 식물은 신의 섭리 를 확인하는 창구였다. 그는 식물을 연구하며 자연의 조화를 배웠고, 이를 통해 인간사회의 갈등을 치유할 단서를 얻고자 했다. 그가 의뢰해 제작한 2000여 점의 정교한 식물 세밀화는 훗날 러시아 황실로 넘어가 보존될 만큼 예술적·과학적 가치가 높았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식물을 심는 것은 미래를 심는 것 이라 믿었다.
포더길의 친필 편지로, 병 증상에 대한 치료법을 제안하고 있다.(Dr John Fothergill | Quaker Strongrooms)
마지막 사투, 실패했지만 숭고했던 평화 협상
포더길의 생애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1774년 겨울에 찾아왔다. 당시 대영제국과 미국 식민지 사이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평화주의자인 포더길은 이 비극적인 형제 살육의 전쟁을 막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섰다.
그는 동료 데이비드 버클리와 함께 런던에 머물던 벤저민 프랭클린을 은밀히 만났다. 포더길은 영국 정부 내 온건파의 의견을 전달하며 프랭클린과 함께 분쟁 해결을 위한 화해안 을 초안했다. 이른바 18세기의 비공식 셔틀 외교 였다. 그는 영국 국왕에게 청원서를 제출하고 고위 관료들을 설득하며 전쟁을 막으려 사투를 벌였다.
결과는 실패였다. 영국의회는 강경했고, 식민지는 독립의 길로 나아갔다. 1776년 미국 독립전쟁이 터지자 포더길은 깊이 탄식했다. 비록 전쟁을 막지는 못했지만, 그의 노력은 기록으로 남아 칼보다 강한 대화의 가능성 을 증명했다. 실패한 평화중재자의 이름은 승전장군의 이름보다 희미할지 모르나, 그가 흘린 땀방울은 역사 속에 평화의 유전자로 각인되었다.
존 포더길의 작품집(1784)에 실린 아르부투스(남유럽 진달랫과의 일종) 삽화(Dr John Fothergill | Quaker Strongrooms)
노예제 반대와 교육혁명
그의 정의감은 의료와 정치를 넘어 사회구조 전반으로 향했다. 포더길은 인종차별의 근간인 노예제도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는 퀘이커 공동체 내에서 노예무역 폐지운동을 주도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역설했다.
또한 교육에도 남다른 혜안이 있었다. 1779년, 그는 요크셔 애크워스에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놀라운 점은 18세기에 이미 남녀공학으로 운영했다는 사실이다. 성별과 계급에 상관없이 배움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이 학교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그의 교육정신을 기리고 있다.
포더길이 세운 애크워스 학교 그림.(Dr John Fothergill | Quaker Strongrooms)
오늘, 한국사회에서 포더길을 읽는 이유
존 포더길은 1780년 12월 26일, 평생의 과업이었던 진료를 멈추지 않은 채 68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그는 독신이었고 자식도 없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전 세계 곳곳에 뿌리내렸다. 250년 전 영국의사의 삶이 오늘날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첫째, 전문가 정신 의 회복이다.
오늘날 한국의 전문가들은 자신의 성(城) 안에 갇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는 병원 안에만, 법조인은 법전 뒤에만 숨는다. 포더길은 자신의 의학 지식을 사회적 고통과 연결했고,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도구로 썼다. 진정한 전문성이란 자신의 분야를 넘어 공동체의 아픔에 공명할 때 완성됨을 그는 보여준다.
둘째, 포용의 힘 이다.
포더길은 차별받던 비주류(퀘이커)였지만, 그 상처를 원한으로 되갚지 않았다. 오히려 차별받는 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사회제도를 고치는 데 주력했다. 갈등과 혐오가 난무하는 우리사회에서, 상처를 포용으로 승화시킨 그의 삶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셋째, 씨앗을 심는 긴 호흡 이다.
정치도 경제도 당장의 성과에 매몰되어 있다. 100년 후를 내다보며 식물을 수집하고, 지지 않을 것이 뻔해 보이는 평화협상에 뛰어들며,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포더길의 긴 호흡 이 절실하다. 당장 표가 되지 않아도,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씨앗을 심는 행위 다.
존 포더길은 역사책의 각주 정도로 밀려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화려한 주석보다 소박한 각주가 때로는 역사의 진실에 더 가깝다. 돈보다 가치를, 권력보다 평화를,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했던 이 18세기의 양심 은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씨앗을 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