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프로파간다를 깨는 천둥같은 불복종의 목소리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15일 오후 제주시 오라동 산록도로 인근의 박진경 대령 추모비 옆에 세워진 바로 세운 진실 안내판의 모습. 2025.12.15. 연합뉴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 불의한 법이 당신에게 하수인이 될 것을 요구한다면 분명히 말하지만 그 법을 어겨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문제는 불복종 이 아니라 복종 이라고 하면서 전쟁, 학살, 노예제 등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들은 불복종이 아니라 복종에서 비롯했다 고 지적한 바가 있다. 이토록 중요한 불복종 중에서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전쟁에 대한 불복종 이 아닐까?
왜냐하면 좀 더 가까운 곳에서는 바로 최근에 쿠데타의 명분을 위한 윤석열의 한반도 전쟁 책동이 있었고, 좀 더 먼 곳인 팔레스타인 가자와 이란과 레바논 등에서 집단학살과 침략전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여기서 최우현 작가가 책을 쓴 것과 우리가 그것을 읽는 것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포병 장교였던 최우현 작가는 어느 귀먹은 군인의 고백 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누구보다 적절한 사람이다. 단지 그가 전직 군인 출신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반공주의를 적극 받아들이고 호전적인 전쟁 판타지 에 빠져 있었다. 초등학생 때의 일기에도 6.25를 생각하니 공산당이 쏜 총알이 내 가슴에 박히는 것 같다 고 썼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투철한 반공 소년 이었는지는 책에 실린 몇 가지 사례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는 동네를 뒤지며 진보단체들이 배포한 홍보물을 주워서는 경찰에 신고하고 아주 바람직한 학생 이라는 칭찬을 받고 포상을 기대하던 초등학생이었다. 길거리에서 전쟁 반대 홍보물을 내미는 사람의 손을 내치며 친구들 앞에서 우쭐과시 를 하던 고등학생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홍보물을 주워서 돌아서는 사람의 뒤통수에 저런 인간들은 전쟁을 X도 몰라. XX같은 인간들 이라고 욕을 할 정도로 확신에 차 있었다. 대학생 시절에 대해서도 그는 교정에서 민중가요 가 울려 퍼지면 침을 뱉던 자신을 기억한다. 이처럼 군대와 전쟁에 대한 생각만 하면 가슴 한쪽이 뻐근해지던 자신을 그는 스스로 극우 파시스트 였다고 돌아본다.
결국, 그는 그토록 꿈꾸던 국가에 충성하는 군인 이 되었고, 10년 가까이 군 생활을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했다. 그 중심에는 죽음 의 기억들이 있다. 예컨대 8톤의 견인포에 깔려서 머리가 뭉개져 죽은 병사, 선명한 궤도 자국이 찍힌 시신으로 남은 병사 등이 있다. 박격포 포탄에 맞아 몸의 반쪽이 날아가며 죽은 이등병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출처 – 뉴스타파, 이래도 전쟁인가, 당신이 보지 못한 민간인학살 특별 페이지
그 이등병은 죽어가면서도 이름을 부르자 이병 000 라고 관등성명을 복창했다고 한다. 또 그가 인사장교로서 직접 후속 처리를 해야 했던, 병영 폭력으로 자살당한 병사의 기억도 있다. 그 병사의 어머니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이 울려 퍼지는 영결식장에서 자살 아니야! 니들이 죽였잖아! 라고 울부짖으며 그와 다른 군 간부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군 생활 10년이 그 자신에게 남긴 후유증도 청력 대부분의 상실과 이명(귀울음) 증상이다. 그는 이제 보청기가 없이는 잘 듣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동안 보고 듣지 못하던 것을 보고 듣게 됐다. 이제 흥미진진한 전쟁 서사에 시선을 뺏겨버린 나머지 전쟁터 곳곳에 흩뿌려진 울부짖음 을 듣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며 더 많은 곳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는 인간의 피부, 근육, 연골이 무기와 총알을 만드는 강철에 비해서 너무나 연약하기에 쉽게 부러지고 찢어진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전쟁과 폭력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수많은 겁쟁이 군인 들이 존재했다는 진실을 깨닫게 됐다. 실제로 미 육군 준장 마셜이 2차 대전 참전 군인들을 조사한 결과 적에게 방아쇠 당긴 군인 은 15~20%에 불과했다고 한다.
전쟁터에서도 상대 군인에게 총을 쏘지 않거나 일부러 빗맞히는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전쟁터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수많은 군인들이 앓게 되는 전쟁신경증 으로도 나타난다고 그는 지적한다. 한국전쟁에서도 미군 정신과 전문의들은 전체 병력의 3분의 1이 이러한 정신질환에 걸려 있다고 추정했다고 전한다.
4.3 학살 책임자 박진경 대령을 암살한 문상길 중위의 최후 진술 중에서 - 유튜브 화면 갈무리
그는 1952년 10월 3일에 부산 동래의 상이군인정양원에서 수십 명의 군인이 집단 음독자살 시도를 했다는 소식 등을 알리는 잊힌 신문 기사들도 찾아낸다. 한때는 불모고지 의 용사요, 어느 때는 피의 능선 의 용맹한 국군장병이었던 그들이 지금은 한갓 정신이상자로 발광하고 있는 것이다. (…) 포성에 놀라고 폭격에 간이 뒤집혀
자신이 인사장교로 근무하던 연대에서 병력의 6분의 1이 자살이나 사고가 우려되는 관심 병사 로 분류돼 있었던 기억도 떠올린다. 그런데도 왜 수많은 어린 최우현 들은 반공 소년 으로 자라나고 애국 군인 을 꿈꾸게 됐을까? 적 을 만들고, 적 에 대한 공포와 전쟁을 부추겨서 유지되는 사회구조와 거기서 권력과 돈을 얻는 인간-어덕서니 들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와 이 책은 멀리 일제 강점기부터 거슬러 올라가 이들이 어떻게 손가락 총 으로 누군가를 적 으로 지목했고 사람들을 전쟁터로 등 떠밀어 왔는지 고발한다. 대표적으로 모윤숙 시인이 있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는 시에서 모윤숙 시인은 이처럼 귀신 부대를 만들어내고 나아가 영원한 전쟁까지 요구 했다. 또한, 아직도 이 나라의 보수 진영에서 전쟁 영웅 으로 추앙하는 백선엽 장군이 있다. 그는 나이 어린 학도병들까지 맨몸으로 폭탄을 안고 북한군 전차 앞에 뛰어들어서 인간 폭탄 으로 죽어가게 하는 것을 중요한 전략으로 삼았다.
아침 전투에서 지난밤에 보충된 신병의 80~90%가 사라지는 게 보통이었다 라고 온기 하나없는 부대일지 같은 어투로 그것을 돌아보는 백선엽을 이 나라의 보수 진영은 나라를 구한 건군의 아버지 ,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 라고 칭송해 왔다. 모윤숙을 찬양하고 백선엽을 숭배하는 이들은 지금도 여기저기 손가락 총을 난사 하며 전쟁을 위한 기도 를 올리고 있다.
오, 주님! 우리를 도우시어 우리의 포탄으로 저들의 병사들을 갈기갈기 찢어 피 흘리게 하소서. 우리를 도우시어 저들의 청명한 벌판을 저들 애국자의 창백한 주검으로 뒤덮게 하소서. 마크 트웨인이 풍자적으로 적어냈다는 이 기도문은 최근 이란 침략 이후에 미국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가 미군을 모아놓고 했던 기도와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장관이 1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해 있다. 2026.2.19 [서울중앙지법 제공. 연합뉴스
이들이 펼치는 전쟁-프로파간다 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군복을 맞춰 입고 위병소로 달려가 전쟁 좀 합시다! 라고 소리치는 순간 에 완성 된다는 것이 작가의 지적이다. 윤석열-김용현의 전쟁 책동과 쿠데타도 이런 바탕 위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백선엽의 후예들, 제2의 김용현들은 더 빨리 진급하고 가장 높은 권력의 자리에 오른다.
반대로 제주 4.3 당시 제9연대 지휘관 김익렬 중령처럼 폭력 진압과 학살을 피하고자 한 군인들은 더 쉽게 더 낮은 곳으로 밀려난다. 김익렬을 대신한 것은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 고 말하던 박진경이었고, 이 책은 한국군은 김익렬 같은 군인보다 박진경 같은 군인을 훨씬 더 사랑한다 고 지적한다.
김익렬과 이 책의 저자인 최우현 같은 군인들은 한국 사회와 군대에서 겁쟁이 군인 , 비루한 낙오자 취급을 받아 왔다. 하지만, 이 책은 전쟁과 폭력의 어두운 측면을 지켜본 이들이 말하는 평화 가 그 무엇보다 더 뜨겁게 우리 가슴에 저며온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귀먹은 군인 최우현은 자신이 경험하고 지켜본 군대와 전쟁을 바탕으로 끝없이 성찰한다.
역사를 돌아보고, 책을 찾아보고,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까지 살펴보며 죽어간 수많은 영혼의 목소리를 불러본다. 그러면서 자신과 그 모든 이들의 고통에 감응하고, 그것을 공감의 언어로 번역하고, 그것을 더욱 증식시키려고 애쓴다. 따라서 그의 전쟁 불복종 선언은 천둥같이 우리 귀를 때린다. 이것이 우리가 백선엽이 아니라 김익렬을 기억하고, 김용현이 아니라 최우현의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다.
나는 나의 예민함으로 전쟁에 불복종한다. 전쟁이 터지면 신경증 환자들과 함께 병상에 누워 비명을 지를 것이다. 누군가 나를 겁쟁이라 욕하더라도 기꺼이 감수할 것이다. 총 뒤에 숨어 전쟁판에서 가장 평화롭게 전쟁을 누릴 저 괴물들보다는 전쟁 신경증 환자들의 얼굴이 훨씬 더 아름답고 숭고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