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하나로 세상을 바꾼 영문학과 교수 J R R 톨킨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교수님, 세계를 뒤흔들다
존 로널드 루엘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1973).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이 영국 교수는 20세기 대중문화를 통째로 바꿔놓은 인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쓴 소설 한 편 때문에 전 세계 출판계, 영화계, 게임업계가 지금도 먹고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1954년부터 1955년 사이 발표한 반지의 제왕 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었다. 이건 거의 새로운 갈래의 탄생이었다.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상은 현실 비판서에 가까웠다. 교수님, 겉으로는 난쟁이와 요정 이야기를 하시면서 속으로는 산업화와 전쟁의 광기를 해부하고 계셨던 것이다.
1920년대의 톨킨.(위키피디아)
전쟁이 만든 이야기꾼
톨킨을 이해하려면 1916년 솜 전투를 알아야 한다. 그는 1차 세계대전(1914~1918)에 참전했고, 친구들 대부분이 전장에서 죽는 걸 목격했다. 참호 속 진흙과 시체 사이에서 살아남은 그는 평생 전쟁의 악몽에 시달렸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유독 작은 존재들 이 영웅으로 등장한다. 난쟁이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그냥 평범한 호빗족. 키 작고 배만 나온 이 생명체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설정.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구도 아닌가? 그렇다. 권력자들이 벌여놓은 전쟁에 평범한 백성들이 끌려가 목숨 걸고 싸우는 20세기 전쟁의 풍경 그 자체다.
1892년 크리스마스 카드. 블룸폰테인에 사는 톨킨 가족의 컬러 사진이 담겨 있으며, 영국 버밍엄에 있는 친척들에게 보냈다.(위키피디아)
나무를 베는 자들에 대한 분노
톨킨의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자연파괴에 대한 집요한 비판이다. 반지의 제왕 에 등장하는 악당 사루만이 뭘 하는가? 나무를 베어 공장을 짓는다. 괴물군대를 대량생산한다. 이건 거의 19세기 산업혁명에 대한 직접적인 풍자다.
톨킨이 살던 옥스퍼드 근처 시골마을들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 개발되었다. 그가 어린 시절 뛰놀던 들판에 공장이 들어섰고, 나무는 베어졌다. 교수님은 이게 못마땅하셨다. 아주 많이.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나무들이 걸어 다닌다. 나무 거인들이 분노해서 공장을 부숴버린다. 2024년 한국에서 새만금 개발이니, 제주 제2공항이니 하면서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면, 톨킨 할아버지가 얼마나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자연보호 활동가들이 들고 다녀야 할 소설이 바로 반지의 제왕 이다.
영국 버밍엄 오라토리오는 톨킨이 1901~1911년 교구 신자로 활동했던 곳이다. (위키피디아)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반지. 그 유명한 하나의 반지 는 대체 뭘 상징하는가? 톨킨 본인은 이건 빗대어 쓴 게 아니다 라고 부인했지만, 누가 봐도 절대 권력에 대한 은유다.
반지를 낀 사람은 누구든 미쳐버린다. 착한 사람도, 현명한 사람도, 심지어 주인공조차 결국 반지의 유혹에 넘어간다. 이게 바로 권력의 본질 아닌가? 지금 정치판을 봐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배지 달면, 시장이 되면, 사람이 달라진다.
톨킨이 내놓은 해답은 단순하다. 그 권력을 없애버려라. 반지를 불 속에 던져버려라. 권력을 나눠 갖는 것도, 착한 사람에게 주는 것도 답이 아니다. 아예 파괴해야 한다. 이런 급진적인 소리를 난쟁이와 요정 이야기에 숨겨놓다니, 이 양반 보통 교수가 아니다.
톨킨이 재학했던 버밍엄의 킹 에드워드 스쿨(1900~1902년, 1903~1911년).(위키피디아)
한국이 배울 점, 작은 것들의 손잡기
톨킨 작품의 핵심은 작은 존재들의 손잡기 다. 호빗, 난쟁이, 요정, 인간. 서로 말도 다르고 살아온 모습도 다른 이들이 손을 잡는다. 개인적인 원한과 편견을 넘어서 공동의 적에 맞선다.
현재 한국사회를 보자. 세대싸움, 지역싸움, 성별싸움으로 온 나라가 쪼개져 있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탓하고, 서울은 지방을 무시하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적으로 본다. 이러다간 악당이 한국에 쳐들어와도 서로 싸우다 망할 판이다.
톨킨이 만든 반지원정대 를 보라. 키 작은 호빗 네 명, 인간 둘, 요정 하나, 난쟁이 하나, 그리고 마법사 하나. 이들은 처음엔 서로를 믿지 못했다. 요정과 난쟁이는 수천 년 원수지간이었다. 하지만 결국 친구가 된다. 목숨을 걸고 서로를 지킨다.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2030세대와 5060세대가 손잡고, 서울과 부산이 힘을 합치고, 여성과 남성이 함께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톨킨은 그게 가능하다고, 아니 그래야만 이긴다고 말한다.
1911년, 19세의 톨킨.(위키피디아)
느림의 아름다움과 큰 이야기
톨킨의 글쓰기 방식도 배울 점이 많다. 그는 반지의 제왕 을 쓰는 데 12년이 걸렸다(1937-1949년 집필, 1954-1955년 출간). 요즘 식으로 말하면 완전히 비효율적이다. 출판사는 속 터져 죽을 판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을 보라. 7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에서 팔리는 책이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나온 피터 잭슨(1961- ) 감독의 영화는 역대 최고 흥행작 중 하나가 되었다.
빨리빨리 문화에 중독된 한국사회에 톨킨은 묻는다. 정말 빠른 게 좋은 건가요? 그는 심지어 말을 새로 만들었다. 요정말, 난쟁이말, 괴물말. 지도도 직접 그렸다. 역사도 수천 년 치를 만들어냈다. 장인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차대전 중 군복을 입은 톨킨 소위, 1916년.(위키피디아)
돈벌이에 저항한 예술가
톨킨은 돈을 싫어했다. 정확히는 자신의 작품이 상품이 되는 걸 싫어했다. 1960년대 미국에서 반지의 제왕 이 큰 인기를 끌자, 온갖 회사들이 달려들었다. 옷에, 그림판에, 달력에 그의 인물들을 찍어내려 했다.
교수님은 화가 나셨다. 편지를 쓰고 또 썼다. 내 작품을 상품으로 만들지 말라 고. 1960년대 젊은이들이 프로도를 살려라 는 배지를 달고 다니는 것도 못마땅해 하셨다. 내 호빗을 정치 도구로 쓰지 말라 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지금 한국 창작자들은 어떤가? 웹만화 작가는 재벌2세 횡포에 시달리고, 가수는 회사에 착취당한다. 돈 되는 것만 만들라는 압박에 예술혼은 사라진 지 오래다. 톨킨처럼 내 작품은 내가 지킨다 고 말할 수 있는 창작자가 한국에 몇이나 될까?
1차대전 중 서부전선 참호에 있는 영국 군인들. 톨킨도 이런 곳에 있었을 것이다.(위키피디아)
평범함의 영웅됨
반지의 제왕 의 진짜 주인공은 프로도가 아니다. 샘와이즈 갬지다. 정원사 샘. 주인님 따라 세상 구하러 가는 이 평범한 호빗이야말로 톨킨이 진정 사랑한 인물이다.
샘은 특별한 재주가 없다. 마법도 못 쓰고, 힘도 세지 않다. 그냥 성실하고 충직할 뿐이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주인공 프로도가 절망에 빠질 때, 샘이 업어서라도 데려간다. 제가 반지는 못 들어도 나리는 들 수 있습니다 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이게 톨킨이 말하는 영웅이다. 초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 거창한 능력이 아니라 끈기와 우정으로 버티는 사람. 오늘날 한국에서 과로로 쓰러지면서도 출근하는 직장인들, 최저임금에 악착같이 버티는 아르바이트생들, 등록금 벌려고 밤새 일하는 대학생들. 이들이야말로 톨킨이 말한 진짜 영웅 아닐까?
리즈 웨스트 파크에 있는 톨킨의 옛집, 던리 로드 2번지.(위키피디아)
말글 학자의 반란
톨킨의 본업은 소설가가 아니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였다. 옛 영어 전문가였다. 고대 영웅이야기를 연구하는 학자였다.
그런 사람이 왜 난데없이 소설을 썼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영국에는 자기만의 신화가 없었다. 그리스에는 호메로스(기원 전 8세기경)가 있고, 북유럽에는 옛 신화가 있는데, 영국은 마땅한 게 없었다. 1066년 이후 프랑스 문화에 잠식당해 고유 신화가 사라졌다.
톨킨은 이게 분했다. 그래서 만들었다. 아예 신화를 처음부터 창조했다. 이건 거의 광기의 일이었다. 세상의 창조부터 시작해서 수천 년 역사를 담았다.
한국은 어떤가? 단군신화도 있고, 삼국유사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판타지 세계를 만든 한국작가가 있는가? 죄다 서양 따라 하기에 급급하다. 한국 모습이 담긴 세계, 한국의 신화를 오늘날 방식으로 다시 만들 창작자가 절실하다.
옥스퍼드에 있는 톨킨의 옛집 중 하나인 노스무어 로드 20번지.(위키피디아)
상상이 세상을 바꾼다
톨킨은 2차 대전(1939~1945) 직후 절망에 빠진 세계에 희망을 선물했다. 그의 말은 명확했다. 작고 평범한 사람들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손잡아라. 자연을 지켜라. 권력을 조심하라. 그리고 무엇보다 포기하지 말라.
1973년 9월 2일, 톨킨은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만든 세계는 죽지 않았다. 지금도 전 세계인들이 그의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즐긴다.
한국도 지금 어려운 시대다. 청년실업, 저출산, 빈부격차, 기후위기. 사방이 막혀있는 것 같다. 하지만 톨킨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절망할 시간에 손잡고 걸어가세요. 작은 발걸음도 계속 걷다 보면 산을 넘습니다.
옥스퍼드대 머튼 칼리지, 톨킨은 이곳에서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1945~1959).(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