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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나크바’ 재앙 부른 미국산 백린탄과 벙커버스터[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가자지구는 석기시대로 돌아갔다는 얘길 듣는다.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위에 한 남자가 서 있다 ⒸJaber Badwan
팔레스타인 취재를 갈 때마다 현지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 있다. 죽음이 휴지처럼 가볍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군인이든 서안지구의 정착민이든, 유대인들의 마구잡이 폭력은 일상적이다. 그에 맞서면, 돌아오는 것은 총격이고 투옥이다. 유대인 병사들은 걸핏하면 몽둥이를 휘두른다. 수염이 희끗희끗한 아랍 노인이든 아기를 업은 부인이든, 소년이든 가리지 않는다. 감정선이 조금 더 올라가면 앞뒤 잴 것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이렇듯 죽음이 일상처럼 되풀이되는 곳이 바로 팔레스타인이다.
전선에 마을이 200곳 있었는데 다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마을을 파괴해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갈릴리에 우리가 사는 것처럼 이곳(팔레스타인 남부지역)에 아랍인들이 있었을 겁니다. 파괴하지 않았더라면 팔레스타인인이 100만 명 더 존재했을 겁니다.” (일란 파페 『팔레스타인 종족청소(The Ethnic Cleansing of Palestine, 2006)』 교유서가, 2024, 39쪽).
팔레스타인에서 민간인 학살과 추방(인종청소)의 전쟁범죄가 벌어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딱 78년 전인 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을 둘러싸고 유혈이 한창이었을 때도 그랬다. 위에 옮긴 글은 아랍 선주민 학살로 악명을 떨쳤던 기바티 여단 지휘관 이츠하크 푼다크(최종 계급은 육군 소장)가 2004년에 털어놓은 회고담이다. 유대인 준(準)군사집단 하가나(Hagana) 출신인 푼다크는 아랍인(팔레스타인 선주민)들을 죽이고 마을을 파괴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이스라엘은 없었을 것이라며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힌 전쟁범죄를 정당화하는 모습이다.
윗 글이 실린 책을 쓴 일란 파페는 영국 엑시터대 유럽팔레스타인연구센터 소장이며, 유대인 출신의 역사학자다. 파페의 부모는 1930년대 나치 히틀러 정권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서 팔레스타인(당시 영국의 위임통치령)으로 건너왔다. 파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에 비판적이며, 현지 아랍인들과의 평화공존을 바라는 소수의 유대인 지식인으로 꼽힌다. 이스라엘 주류 사회에선 유대인들의 가리고 싶은 추악한 얼굴을 용기 있게 드러내는 파페와 같은 역사학자 또는 인권운동가들에게 히브리어로 ‘말쉬님’(Malshinim)이란 딱지를 붙인다. 적에게 동포를 팔아넘긴 ‘밀고자’라는 뜻이다.
나크바(Nakba) 대재앙의 날
이스라엘의 건국 선언 다음날(1948년 5월 15일)을 아랍인 선주민들은 ‘나크바(Nakba)의 날’이라 부른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게 문을 닫는다. 어떤 이들은 상복을 입고 지난 일을 돌아보며 하루 종일 울면서 지낸다. 유엔의 집계에 따르면, 1948년의 유혈과 혼란 속에서 당시 팔레스타인 선주민 130만 명 가운데 75만 명이 쫓겨났다. 이 대목에서도 ‘통계전쟁’이 벌어진다. 이스라엘 쪽 집계는 50만, 팔레스타인 쪽 집계는 90만 명이다. 어느 쪽 집계가 맞든, 수십만 명이 하루아침에 집과 재산을 잃고 난민이 됐다.
유대인들이 ‘귀환(歸還)’을 뜻하는 알리야(aliya, 디아스포라disaspora의 반대 개념)를 외치며 몰려올 때 팔레스타인 땅은 (시오니스트들이 주장하듯) ‘사람이 살지 않는 빈 땅’이 아니었다. 아랍인들의 마을을 파괴하고 주민들을 죽이거나 쫓아냈다. 유대인 병사들이 어떤 마을을 공격할 때는 먼저 박격포와 수류탄 공격으로 주민들을 혼란에 빠뜨린 뒤 마을을 접수하곤 했다. 그 무렵의 살벌했던 상황을 전하는 또 다른 기록을 보자.
사람(주민)들은 마을 광장에 모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용의자’를 확인하는 익숙한 절차가 진행되었다. 군인들은 불운한 남자 70명을 끄집어내서 눈가리개를 한 뒤 멀리 떨어진 지점으로 데리고 가서 즉결 총살을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스라엘군이 머리 위로 총을 쏘는 가운데 사람들은 빈약한 개인 소지품조차 챙기지 못한 채 마을 밖으로 내쫓겼다. (일란 파페, 312-313쪽).
20세기 중반에 팔레스타인 민족이 겪었던 대형 참사(慘事)가 21세기에 다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졌다. 파페는 이 책의 한국어 새 번역판(2024년) 서문에서 2023년 10월 이후의 상황을 ‘새로운 나크바’로 불렀다. 그 때부터 지금껏 2년 반 동안 중동 사람들이 ‘제2의 나크바’로 일컫는 참사의 본질은 1948년과 다르지 않다.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희생자를 괴롭혔다는 점에서다.
다른 점이라면, 살상과 폭력의 속도가 훨씬 빠르고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20세기 중반은 박격포와 수류탄이 주요 살상무기였다면, 21세기엔 국제법으로 금지된 백린탄을 주거 밀집지역에 마구 쏴댔고, 무게만도 1톤 안팎의 살상력 높은 폭탄들이 떨어졌다. 이를테면 가자에서 많이 쓰인 미국산 폭탄인 MK-84(무게 907kg은 맨땅에 그냥 떨어지면 10m 넘는 구덩이를 만들기에 ‘해머’(망치)라는 별명을 지녔다. 같은 미국산 ‘벙커 버스터’ BLU-109(무게 900kg)와 GBU-29와 같은 폭탄들은 이름 그대로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벙커와 터널들을 파괴하는 살상력을 지녔다. 이런 괴물 같은 폭탄들이 하마스 비밀기지를 타격한다는 구실 아래 가자지구의 고층 아파트를 비롯한 주거밀집지역을 겨냥해 사상자를 크게 늘렸다. 어른과 아이를 가려 살상할 분별력이 폭탄에겐 없다.
10만 톤의 폭탄, 미국산 무기도 한몫
2023년 10월부터 지금까지 2년 반 동안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떨어뜨린 폭탄의 총량은 얼마나 될까. 이스라엘 쪽에선 이에 대한 공식 발표가 없기에 정확한 수치는 알기 어렵다. 다만 여러 인권단체와 연구자들의 추정치는 적어도 7만 톤, 많게는 10만 톤이다. 벤자민 네이마크(런던 퀸메리대, 정치생태학)을 비롯한 몇몇 연구자들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전쟁 중 가자지구에서 3000만 톤이 넘는 탄소 배출량을 기록했고, 이를 바탕으로 산출할 경우 적어도 7만 톤의 폭탄이 가자지구에 떨어졌다고 본다(, Volume 9, Issue 3, 2026년 3월20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드레스덴이나 함부르크, 일본의 도쿄 같은 대도시들도 연합군의 집중 공습으로 도시 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그때 떨어진 폭탄의 총량은 가자지구에 견주어 훨씬 적다(드레스덴 3900톤, 함부르크 2만 2000톤, 도쿄 1600~2000톤). 이들 도시들이 짧은 기간 집중 공습을 받았다면, 서울 면적의 60%쯤으로 좁기만 한 가자지구는 되풀이된 공습의 피해를 입었다. 그렇기에 가자지구가 21세기 들어 가장 강도 높은 공습에 희생됐다는 평가와 아울러, 이스라엘은 제노사이드(genocide)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는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달 중순 현재 가자지구 희생자는 사망 7만 2700명, 부상자는 17만 3000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영양실조로 죽은 이들도 있지만, 상당수가 폭탄에 직접 당하거나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죽고 다쳤다. 가자의 주거 밀집지역에 떨어진 폭탄의 상당량이 앞서 살펴본 MK-84나 흔히 ‘벙커 버스터’로 알려진 BLU-109, 그리고 아래에서 살펴볼 백린탄(white phosphorus)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쓰인 155mm M825A1 등이다. 이들 폭탄들은 다름 아닌 made in USA다. 그렇다면 미국에게도 전쟁범죄의 책임이 따른다.(이에 대해선 따로 살펴볼 참이다)
이스라엘은 국제법에서 사용을 금지하는 백린탄을 마구 쐈다. 백린탄에 맞아 팔다리에 중화상을 입은 사바 아부 할리마가 가자시티 알시파 병원 침대에서 넋이 나간 모습으로 앉아 있다. 그녀는 백린탄에 남편과 4명의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 Euro-Med Human Rights Monitor 김재명
‘죽음의 무기’ 백린탄, 40분 동안 300발 쐈다
이스라엘군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뒤 곧바로 철검 작전(Operation Iron Swords) 이란 대규모 보복공격을 벌였고, 그 과정에 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저지른 전쟁범죄 목록에서 백린탄 사용을 빼놓을 수 없다. 1983년 재래식 무기협약(CCW) 제3의정서는 민간 지역에 대한 공중 소이탄 공격을 금지한다. 팔레스타인은 2015년, 레바논은 2017년에 제3의정서에 가입했지만, 이스라엘은 비준하지 않았다. 전쟁에 관한 국제인도법에서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한 이 폭탄은 그야말로 ‘죽음의 폭탄’이다.
이스라엘군 포병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155㎜ M825A1 백린탄을 쏘면 집속탄 터지듯 파편이 공중에서 흩어진다. 곧 축구장 2~3개 면적이 그야말로 죽음의 땅으로 바뀐다. 건물 지붕에 떨어지면 물을 퍼부어도 끌 수 없다. 사람의 몸에 백린탄 파편이 붙으면 뼛속까지 타들어 가는 듯한 아픔과 더불어 심각한 화상을 입힌다. 일단 인화성 물질인 백린에 노출된 사람들은 호흡기 질환, 장기 부전, 화상 등으로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린다. 멀리서는 폭탄 더미가 버섯 모양으로 퍼지며 떨어져 마치 불꽃놀이처럼 보이지만, 폭탄들이 떨어지는 곳에 있는 사람들에겐 지옥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이스라엘군은 전쟁 초기부터 백린탄을 마구잡이로 퍼부었다. 하마스가 숨겨둔 군사자산을 파괴한다”는 명분 아래에서였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인 유로-메드 인권 감시단(Euro-Med Human Rights Monitor)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전쟁 첫날인 2023년 10월 7일부터 그 해 11월 중순까지 약 40일 동안 가자지구에 1000회 이상 백린탄을 쐈다. 이를테면, 2023년 11월 15일 이스라엘군은 가자 북부 베이트 라히아의 인구 밀집 지역에 4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300발의 백린탄을 퍼부었다. 같은 날 저녁, 가자시티 셰이크 라드완 지역의 중심부에도 여러 차례 백린탄이 쏟아졌다. 가자 서쪽의 알샤티 난민촌과 가자 북쪽의 자발리아 마을 및 난민촌도 백린탄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병원들은 중화상 입원자들로 넘쳐났다.(https://www.euromedmonitor.org/en/article/5952/)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오래 전부터 문제의 백린탄을 사용해 온 것으로 악명 높다. 2009년 이스라엘군의 가자 침공 때 가자시티의 가장 큰 병원인 알시파 병원에 들렀더니, 백린탄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은 피해자들이 수두룩했다. 양쪽 다리에 중화상을 입은 사바 아부 할리마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 넷이 백린탄에 맞아 고통스럽게 숨지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 가련한 여인은 그나마 목숨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위로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넋을 잃은 모습이었다.
아파트 건물 폭파로 떼죽음
백린탄뿐 아니다. 이스라엘군은 전폭기와 대포, 탱크 사격 등으로 엄청난 포탄을 퍼부었다. 주택가, 난민촌, 고층 아파트(현지에서 일컫는 이름은 ‘타워’), 의료 시설, 상수도 시설과 우물, 학교, 병원, 모스크(이슬람 사원)을 가리지 않고 포격을 해댔다. 전쟁 초기 이스라엘 군은 가자 주민들을 남쪽(이집트 접경 라파 지역)으로 몰아내려고 먼저 가자 북부를 집중 공격해 대량난민 사태를 만들었다(지난주 글에서 살펴봤듯이, 이집트령 시나이 사막으로 230만 가자 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는 의혹이 따른다).
하마스의 10.7 기습공격 6일 뒤인 2023년 10월13일 이스라엘군은 가자 북부 110만 명의 사람들에게 곧 공습이 있을 테니 24시간 안에 집을 비우고 남쪽으로 떠나라”고 발표했다. 그리고는 그뿐이었다. 막상 공습을 벌일 순간이 다가오면 아무런 사전경고도 없이 갑자기 폭탄을 쏟아부었다. 일부 지역에선 곧 공습이 있을 테니 집을 비우고 남쪽으로 떠나라”는 경고가 있긴 했지만, 옷가지를 챙겨 피란길에 오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 그런 짧은 경고조차 없는, 또는 듣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 대량 살상과 파괴가 벌어졌다. 한 보기를 꼽아본다.
공습으로 6층 아파트 건물이 무너져 큰 피해를 입은 주바이펠 가족 구성원들. (왼쪽 위부터 오른쪽으로) 나다, 와파, 왈라, 사마. (왼쪽 아래부터 오른쪽으로) 파라, 유세프, 히샴, 카드라, 올라, 살마. 공습으로 와파, 왈라, 사마, 파라, 유세프, 카드라, 살마가 숨졌다. ©주바이펠 가족
2023년 10월 31일 오후 2시 30분쯤 가자지구 중부의 누세이라트 난민촌 가까이에 있던 6층짜리 아파트(타워) 건물이 공습을 받아 무너졌다. 주민 133명과 근처에서 공놀이를 하던 소년 3명, 합쳐 136명이 목숨을 잃었다. (여성 44명, 남성 22명, 어린이 65명, 연령 미확인 5명). 이 건물은 가로 25m, 높이 20m로 20가구가 살았다. 북부에서 이제 막 피난 온 친척들도 그곳에서 함께 머물고 있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조사로는 그 건물은 순전히 주거용으로, 건물 안이나 가까이에 어떤 군사적 목표물도 없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폭격기가 쏜 4발의 포탄이 잇달아 떨어졌다. 건물 전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거대한 검은 연기와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람들이 몰려 들어 잔해 아래 깔린 사람들을 구하려고 애썼다. 11살 소년 모하메드 라미 압도가 콘크리트 더미 아래에서 발견됐지만, 병원으로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숨이 멎었다. 심한 화상을 입은 채 구조된 8살 모하메드 니달 마브후는 구급차로 급히 데이르 알 발라에 있는 알 아크사 순교자 병원으로 옮겼지만, 두 달 뒤 끝내 숨졌다.
17세 소녀 나다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건물이 무너진 뒤 나다의 하반신은 콘크리트 더미에 짓눌려 있었다. 한쪽 다리는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고, 피가 바닥을 적셨다. 나다는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그날 밤 11시쯤 구조된 나다는 열 차례가 넘는 다리 수술을 받아야 했다. 무너진 건물에 깔려 있다가 간신히 구조된 부상자는 나다와 성인 여성, 이렇게 단 둘뿐이었다.
주민들은 갑자기 쏟아지는 폭탄에 그야말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일 짧은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피폭 당일 오후에 60~70구의 시신을 수습했고, 다음날 도착한 굴착기가 매일 3~4시간씩 잔해를 제거하면서 시신을 더 찾아냈다. 그들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56명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로 남았다. 무너진 건물 밑에 묻혀 있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들은 그냥 사라졌어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에 깔린 가자지구 희생자들의 처참한 모습. ⒸAshraf Amra
아직도 1만 구의 시신 찾지 못해
아직껏 약 1만 명이 실종 상태다. 대부분은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 깔린 채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이를테면, 가자 중부 부레이 난민촌의 한 아파트 건물의 콘크리트 잔해 밑에는 적어도 50구의 시신이 지금껏 묻혀 있다. 부레이 난민촌은 전쟁 전만 해도 4만 6000명이 살던 인구 밀집 지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난민촌 전체가 파괴된 채로 옛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숨진 가족의 시신을 찾지 못해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유족들의 마음은 아프기만 하다. 지난해 10월 휴전 뒤 7개월이 지난 이달 초까지 발굴된 시신은 800구를 넘기지 못했다. 유엔은 6100만 톤 이상의 콘크리트와 목재 잔해가 가자지구 곳곳을 뒤덮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런 잔해들을 치우고 시신들을 찾아내려면 중장비가 필요하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지금껏 가자지구에 투입된 중장비는 하마스에 납치됐다가 숨진 이스라엘인 희생자들을 발굴하기 위해 적십자사가 들여온 소수의 중장비 말고는 없다.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반입을 막아온 탓이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시신들이 모두 수습돼 정중한 장례가 치러지려면,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다. 죽은 이들마저 제대로 모시지 못하도록 만드는 야만의 시대는 언제쯤 끝날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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