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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669명 구하고도 50년을 침묵한 니콜라스 윈턴

669명 구하고도 50년을 침묵한 니콜라스 윈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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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12월, 런던의 유능한 증권중개인 니콜라스 윈턴(Nicholas Winton, 1909~2015)은 성탄절 휴가를 앞두고 스위스 스키 여행을 계획 중이었다. 모든 예약이 끝난 상태에서 날아온 친구 마틴 블레이크의 전보 한 통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프라하로 와라. 할 일이 있다. 스키는 두고 와도 된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 독일의 야욕 앞에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뮌헨 협정으로 괴뢰국 주데텐란트를 강탈당한 체코는 방어력을 상실했고, 국경 인근 피난민수용소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온 유대인 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윈턴이 목격한 광경은 참혹했다. 영하의 추위 속에 아이들은 굶주림에 떨고 있었고, 부모들의 눈동자에는 자식을 살릴 수 없다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윈턴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히틀러의 다음 타깃은 프라하 전체가 될 것이며, 이곳의 아이들은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스물아홉의 평범한 청년은 스키를 타는 대신, 사선에 놓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2007년 10월 10일 프라하에서의 윈턴 (위키피디아) 식탁에서 시작된 킨더 트랜스포르트 (아동 이송)의 기적 윈턴이 프라하에 머문 시간은 단 3주 밖에 안되었다. 그러나 런던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치밀한 구조 작전에 착수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보호자가 없는 어린이의 입국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었다. 윈턴은 낮에는 증권거래소에서 숫자를 다루는 업무에 매진하다 장이 마감되는 오후 3시 30분부터는 아이들을 구하는 슈퍼맨 윈턴 으로 변신했다. 그의 본부는 화려한 사무실이 아닌 런던 햄스테드 자택의 식탁이었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난민위원회 라는 그럴 듯한 단체명으로 공신력을 확보했고, 밤마다 타자기를 두드려 각국 대사관과 자선단체들에 편지를 보냈다. 아이들을 맡아줄 양부모를 찾아 신문에 광고를 내고, 영국 정부의 입국 허가를 받기 위해 관료들과 설전을 벌였다. 영국 정부가 내건 조건은 가혹했다. 아이 한 명에 50파운드의 보증금을 예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가치로 수천 달러에 이르는 거액이었지만, 윈턴은 물러서지 않았다. 돈이 부족하면 전 재산을 털었고 부족한 금액은 모금으로 충당했다. 1939년 3월 14일, 20명의 어린이를 태운 첫 번째 비행기가 이륙한 바로 다음날, 독일군은 프라하를 점령했다. 윈튼의 예견이 적중한 순간이었다. 그 뒤 8개월 동안 모두 8대의 열차가 669명의 생명을 싣고 런던을 향해 떠났다. 비극은 2차 세계대전 시작과 함께 찾아왔다. 250명의 어린이를 태우고 9월 1일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지막 아홉 번째 기차가 나치의 폴란드 침공과 동시에 강제로 멈춰세워졌다. 그 열차에 탔던 아이들 대부분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목숨을 잃었다. 윈턴 훗날 그 아이들을 더 일찍 데려오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 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니콜라스 윈턴이 1938년 한 아이와 함께 한 모습 (위키피디아) 50년간의 침묵과 우연한 폭로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윈턴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을 부인 그레테 예스트루프(Grete Gjelstrup, 1921~1999)와 세 자녀에게조차 털어놓지 않았다. 669명의 목숨을 구한 영국판 쉰들러 는 수십 년 평범한 직장인이자 지역 자선활동가로만 살았다. 그의 영웅적 행보는 영원히 묻힐 뻔했다. 기적의 전말은 1988년 부인이 다락방을 정리하다가 낡은 스크랩북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그 안에는 아이들의 이름, 사진, 입국 서류, 그리고 양부모들의 연락처가 빼곡했다. 부인의 설득으로 이 기록은 역사학자에게 전달되었고, 마침내 BBC의 생방송 프로그램 이런 게 삶! (That’s Life!)을 통해 온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일흔아홉의 윈턴은 자신이 왜 방송에 불려 나왔는지도 모른 채 객석에 앉아 있었다. 그때 사회자가 말했다. 이 자리에 니콜라스 윈턴 씨 덕분에 목숨을 구한 분이 계신가요?  그의 주변에 앉아 있던 수십 명의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어느덧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윈턴의 아이들 이었다. 그들은 50년 전 자신들을 구해줬던 청년의 주름진 손을 맞잡으며 통곡했다. 윈턴 역시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윈튼이 2007년 10월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 모습(위키피디아) 윈턴의 침묵 vs 한국사회의 떠들썩함 윈턴이 반 세기를 침묵한 이유는 명료했다. 딸 바바라 윈턴(Barbara Winton, 1953~2022)이 집필한 전기에 따르면, 그는 영웅 숭배를 원치 않았고, 그저 필요한 일을 했을 뿐 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선행은 자기만족이나 과시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녀야 할 윤리적 책임 이었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부박한 모습을 돌아본다.  오늘날 한국은 작은 선행조차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만 비로소 가치를 인정 받는 전시형 선행 의 시대다. 수백만 원을 기부하고 수천만 원의 홍보비를 쓰는 기업들, 재난 현장에서 구호 활동보다 사진 촬영에 열을 올리는 정치인들, 그리고 소셜미디어(SNS)에 오늘도 좋은 일을 했다 며 셀피 사진을 올리는 이들까지. 윈턴의 침묵과 우리의 떠들썩함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존재한다. 윈턴은 669명의 생명을 구하고도 잊히려 했지만, 우리는 타인에게 베푼 커피 한 잔을 평생의 훈장처럼 여기며 다른 이로부터 인정받길 갈구한다. 윈턴을 옳은 일 을 추구했고, 우리는 보이는 일 에 몰두한다.   2015년 7월, 프라하 중앙역 윈턴 조각상 앞에서 열린 기념행사 (위키피디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윈턴의 원칙 한국은 건국 이래 유례 없는 복합위기에 직면해 있다. 0.72명이라는 기록적인 저출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 그리고 세대, 지역 그리고 성별로 갈라져 서로를 증오하는 모습 등등. 이런 상황에 윈턴의 좌우명은 우리에게 벼락같은 깨달음을 준다. 불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을 해낼 방법은 있다. (If it s not impossible, there must be a way to do it) 윈턴은 국가 보조금이나 대형 단체의 후원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과거 한국에도 장기려(1911~1995) 박사나 이태석(1962~2010) 신부 같은 이들이 있었으나, 오늘날 그와 비슷한 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재벌 총수들은 횡령을 저지르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시민들은 각자도생의 길에서 부동산과 로또에 매몰된다. 남을 돕는 것은 손해 보는 일이며, 침묵하는 선행은 바보 같은 짓이라 치부되는 사회에서 윈턴의 삶은 그 자체로 묵직한 경종이다.   플로르 켄트가 제작한 프라하 중앙역의 윈튼 ​​조각상은 2009년 9월 1일에 공개되었다. (위키피디아) 국경을 초월한 양심과 행동의 가치 윈턴은 체코 어린이들을 구했다. 자신의 동포도, 가족도 아니었다. 오직 위험에 처한 생명 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는 모든 위험을 감수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 민족 을 외치면서도 소외된 이들을 배척하고, 난민을 향해 혐오의 화살을 쏜다. 내 집 값이 떨어질까봐 특수학교 설립을 막아서는 우리에게 윈턴의 국경을 넘나든 양심은 수치심을 안긴다. 윈턴은 트레버 채드윅(Trevor Chadwick, 1907~1979)과 도린 워리너(Doreen Warriner, 1904~1972) 등 동료들의 공으로 돌리고 자신을 낮췄다. 우리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위대한 영웅 한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몫을 조용히 다하는 669명의 윈턴 이 필요하다. 윈턴이 안락하고 쉬운 길을 포기하고 구한 669명의 아이들은 6000여명의 후손으로 불어났다. 여러분의 조용한 실천은 얼마나 많은 생명과 그들의 삶으로 이어질 것인가. 윈턴처럼 106년을 살며 그 열매를 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카메라를 내려놓고, 이웃의 손부터 잡아야 한다.   202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대규모 유대교 회당 경내 기념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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