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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오! 캐롤 유 민 에브리씽 투 미 만들어 부른 닐 세다카

오! 캐롤 유 민 에브리씽 투 미 만들어 부른 닐 세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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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의 닐 세다카.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1950년대와 1960년대  오! 캐롤 , 캘린더 걸 , 해피 버스데이 스윗 식스틴 , 유 민 에브리씽 투 미 같은 히트곡들로 국내 팬들에게도 낯익은 미국 싱어송라이터 닐 세다카가 86세를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 비틀스의 브리티시 공습 에 밀리자 영국으로 이주했다가 엘튼 존 경의 도움을 얻어 1970년대 미국으로 돌아와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스튜피디 큐피드 와 러브 윌 킵 어스 투게더 같은 히트곡들을 작곡해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제공한 것으로도 오래 기억된다. 유족은 미국 잡지 피플에 전한 성명을 통해  우리는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인 닐 세다카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큰 슬픔을 느끼고 있다 면서 진정한 로큰롤 전설이자 수백만 명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를 알게 된 우리에게는 깊이 그리울 놀라운 인물 이라고 돌아봤다.  세다카는 27일(현지시간) 아침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당일 늦게 숨을 거뒀다고 맨먼저 보도한 TMZ가 전했다.  세다카는 1939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브라이튼 비치에서 자라던 그는 음악 교사가 재능을 알아보고 부모에게 피아노를 사도록 권유하는 쪽지를 쓴 것이 계기가 돼 피아노를 배웠다. 줄리어드 아동 준비 프로그램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는 1975년 피플 인터뷰를 통해 브루클린에서 사교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며 아주 어렸고, 교정기와 안경을 썼으며 야구를 하지 않았다. 해서 파티에 초대받는 방법은 팝 음악을 쓰고 노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열세 살 때 벌써 그는 세 살 위 작사가 하워드 그린필드를 만나 함께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 고교를 졸업한 후, 세다카는 더 링크-톤즈 라는 밴드를 결성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나 결국 그룹을 떠났다. 그와 그린필드는 전설적인 브릴 빌딩 에서 계속 곡을 썼고, 세다카는 솔로 경력도 추구했다. 가수 코니 프랜시스가 1958년에 둘이 쓴 곡 스튜피드 큐피드 를 발표했는데 그녀의 첫 히트곡 중 하나였다. 같은 해 세다카는 프랜시스에게서 영감을 받은 첫 솔로 싱글 더 다이어리 도 발표했다. 더 큰 히트곡은 1959년의 곡 오! 캐롤 이었다. 제목은 고교 때 사귀었던 작곡가 캐롤 킹을 가리킨 것이었다. 같은 해 원 웨이 티켓 을 발표했는데 우리 가수 방미가 1980년 날 보러 와요 로 번안해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1960년대 초반에도 스테어웨이 투 헤븐, 캘린더 걸 , 해피 버스데이 스윗 식스틴 , 그리고 1위를 차지하며 대표곡이 된 브레이킹 업 이즈 하드 투 두 같은 곡들로 차트 성공을 이어갔다. 세다카와 그린필드는 프랜시스를 위해 폴링 과 웨어 더 보이즈 아 등 더 많은 곡을 썼다.  또 지미 클랜튼을 위해 어나더 슬리프리스 나이트 와 왓 엠 아이 고잉 투 두 등의 히트곡도 만들었다.  그는 2010년 빌보드 인터뷰를 통해 나에겐 작곡에 세 가지 종류가 있다는 이론이 있다 면서 감정적인 건 트라우마를 겪고 그것을 글로 표현할 때다. 지적 글쓰기는 머릿속에서 몇 년간 맴돌던 곡을 거의 다시 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적 글쓰기인데, 이는 스스로 쓰는 더 높은 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당신이 채널링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닐 세다카가 2007년 10월 25일(현지시간) 뉴욕의 NBC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투데이쇼 에 출연해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영국 록 그룹 비틀스가 이른바 브리티시 침공 에 나서자 세다카와 동시대 뮤지션들은 차트에서 밀려났다. 그는 커리어의 최저점이었던 이 시기에 대해 2012년 CBS 인터뷰를 통해 창의적인 마음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은 큰 추진력이다. 매번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닐 세다카의 수준을 올려야 한다. 스스로를 뛰어넘어야 한다 고 털어놓았다. 1971년 앨범 이머전스 가 실패한 뒤 그는 영국으로 이주했다. 1973년 앨범 트라-라 시대는 끝났다 에는 2년 뒤 1위 히트곡이 된 캡틴 & 테닐의 러브 윌 킵 어스 투게더 가 포함돼 있었다. 세다카는 또 ABBA를 위해 링 링 을 공동 작곡했는데 밴드의 첫 글로벌 히트곡이자 1973년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이 됐다. 세다카는 또한 열렬한 팬이었던 엘튼 존과도 연결됐다. 존 경은 세다카를 자신의 레이블인 로켓 레코드 컴퍼니 리미티드에 영입해 미국 복귀를 계획했다. 세다카는 2012년 포워드 인터뷰를 통해 존 경이 내 경력을 완전히 재창조했다 고 털어놓았다.  그들은 1974년 세다카의 앨범 가운데 영국에서만 발매된 곡들로 구성된 Back 을 발매했다. 같은 해 래프터 인 더 레인 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다시 올랐다. 그의 곡 배드 블러드 도 이듬해 1위를 기록했고, 그는 이전 히트곡 브레이킹 업 이즈 하드 투 두 의 느린 리메이크 곡을 톱 10에 올렸다. 1990년대 후반에는 가수로서 덜 성공하는 모습이었지만, 몽키스와 피프스 디멘션 등 다른 밴드들을 위해 계속 곡을 썼다. 전체적으로 세다카는 25장 이상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그는 다섯 차례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으며, 1983년에는 작곡가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세다카는 1978년 할리우드 명예의거리에서 별을 받았고, 브라이튼 비치의 한 거리는 그의 이름을 따서 닐 세다카 웨이 로 불렸다. 싱어송라이터인 그는 말년까지도 공연을 이어갔으며, 종종 자신의 뮤직비디오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는 2011년 시러큐스 닷컴 인터뷰를 통해 나는 그것을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한다. 운이 아니다. 그 시대 문화에 맞추려고 애쓰는 것 같다. 최대한 현대적인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다. 목소리를 바꿀 수는 없으니 라고 털어놓았다. 세다카는 1962년 레바 스트라스베르크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다라와 마크 두 자녀를 가졌다. 다라는 뮤지션으로 1980년대 아버지의 몇몇 음반에 참여했고, 함께 히트 듀엣 곡 슈드비 네버 렛 유 고 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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