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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추방돼도 불의에 고개를 돌리지 말라 제임스 시노트

추방돼도 불의에 고개를 돌리지 말라 제임스 시노트
[사람들]
제임스 시노트의 한국이름은 진필세(陳必世, James P. Sinnott, 1929~2014)로 그는 1929년 6월 18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2014년 12월 23일 서울 성모병원에서 별세하였다(향년 85).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이방인이 있다. 낯선 땅에 와서 자기 나라 사람인 척 군림하는 자와, 낯선 땅을 제 고향으로 삼아 그 땅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는 자. 제임스 시노트 신부는 단연코 후자였다. 아니, 후자를 넘어서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사람 으로 불렸으니, 어떤 면에서는 대한민국 국민들도 살짝 민망해야 할 대목이다. 브루클린 토박이 청년이 군 복무를 마치고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된 것은 1960년. 그해 그는 인천 앞바다의 작은 섬 영종도에 첫발을 내딛는다. 당시 영종도는 인천국제공항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하던, 그야말로 파도 소리와 결핵환자 기침 소리가 뒤섞인 불모의 메마른 섬이었다. 시노트 신부는 그 섬에 성당을 짓고, 20병상짜리 결핵병동을 갖춘 작은 병원을 세우고, 섬 여성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바느질 협동조합도 만들었다. 복음을 전하되, 빈손으로만 전하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그는 1965년부터 1975년까지 인천교구 부교구장(부주교)을 지내며 성실한 선교사로 살았다. 이 시기의 그는 스스로 말하길, 영화 〈천국의 열쇠〉(1944)의 그레고리 펙(Gregory Peck, 1916~2003)처럼 조용한 선교사 였다. 정치? 그건 딴 세상 이야기. 유신헌법이 공포되어도, 교구와 본당이 수색을 당해도 크게 개의치 않던 냉전적 사고방식을 지닌 미국인 신부였다. 그런데 역사는 가끔 사람을 불러내는 법이다.   시노트 신부가 인혁당 사형장 앞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주검만이라도 돌려달라”며 외치다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https://www.incheontoday.com) 나는 아직 추방되지 않은 시노트 신부입니다 1974년, 박정희(1917~1979) 정권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인혁당 사건)을 터뜨렸다. 평범한 학생과 노동운동가들을 하루아침에 공산주의 간첩으로 만들어버린 이 사건에서, 1975년 4월 9일 새벽 대법원의 사형확정 판결이 난 지 불과 18시간 만에 8명이 교수대에 올랐다. 국제사회는 경악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 사건을 사법살인 이라 규정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두 외국인 성직자가 있었다. 한 명은 개신교 목사 조지 오글(George E. Ogle, 1929~2020), 다른 한 명이 바로 제임스 시노트 신부였다. 조지 오글 목사는 인혁당 사건의 부당함을 설교에서 언급했다가 1974년 12월 14일 강제출국을 당했다.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만세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의 배짱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이 간다. 오글 목사가 떠나자 시노트 신부는 동아일보 광고 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탄신일을 맞이하여 오글 목사님의 행운을 빌며. 아직 추방되지 않은 시노트 신부.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를 들먹이고, 아직 추방되지 않은 이라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예고하는 이 광고 문구는 저항과 유머와 예언이 버무려진 걸작이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이 광고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상상만 해도 흥미롭다. 그 뒤의 일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시노트 신부는 인혁당 피고인들의 아내들을 만났고, 사형 집행 장면을 기록했으며, 법정에서 재판관을 향해 이것은 정의를 모독하는 당치 않은 수작이다! 히틀러 재판보다 더 나쁘다! 라고 외쳤다. 또한 법정 분위기를 다잡으려는 시도에 법정이라고? 여긴 그저 오물들이 쌓여 있는 곳이라고! 라며 맞받아쳤다. 그리고 예언대로, 1975년 4월 30일 시노트 신부는 한국에서 강제 추방당했다.   동아투위 기자들의 강제 해산에 항의하는 시노트 신부.(시노트 신부의 간절한 외침 - 조작이다! 조작이다!) 추방 이후, 더 넓은 법정을 찾아서 그런데 이 사람,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그 다음달, 그는 미국 하원 외교분과위원회 국제기구소위원회에 출석해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증언했다. 박정희 정권의 인권 유린을 미국 의회에서 직접 폭로한 것 이다. 이후 그는 메리놀 정의평화국(Maryknoll Justice and Peace Office)에서 일하며 교회와 인권단체들을 돌며 한국의 실상을 알렸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는 또 다른 군사독재가 판치던 칠레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니, 그의 인생 자체가 20세기 독재 지형도였다. 1994년,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선교활동을 재개했다. 그리고 2002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김대중(1924~2009) 대통령 정부는 그를 공식 초청하여 훈장을 수여했다. 1975년 추방당한 지 27년 만의 복권이었다. 역사는 느리지만 틀리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이후 서울 메리놀회 본부에 거주하다가 2014년 12월 23일 서울 성모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장례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치러졌다. 브루클린 청년이 영종도를 거쳐 파주 땅에 뼈를 묻은 것이다.   구속자가족협의회 회원들과 활동하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 넘어진 시노트 신부.(한국문제일본기독교긴급회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늘 서울에서 시노트를 다시 읽는다 오늘 대한민국의 뉴스를 보면 시노트 신부 생각이 절로 난다. 사법살인 이라는 단어가 50년 전 인혁당 사건에만 붙는 낱말이길 바랐건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조희대 사법부가 진행하는 재판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계엄령이라는 단어가 역사책 밖으로 나온 것도 엊그제 일이다. 외국인 신부가 법정에서 사법부를 향해 여기는 오물들이 쌓인 곳 이라고 외쳐야 했던 그 시절이 그냥 과거가 아닐 수 있다는 불편한 생각이 스친다. 시노트 신부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침묵에는 대가가 없는 게 아니다. 유신헌법이 선포되어도 꿈쩍 않던 그가 변한 계기는 어느 날 방송에서 흘러나온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설교였다. 불의를 앞에 두고 외면하는 것도 결국 선택이며, 그 선택 역시 역사의 일부가 된다. 둘째, 당신이 이방인이어도 상관없다. 그는 미국사람이었다. 한국국적도, 한국인 가족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인혁당 피고인들의 부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름을 기억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세계에 알렸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조건은 호적이나 주민등록이 아니라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능력이다. 셋째, 추방당해도 싸울 곳은 있다. 그는 한국 땅에서 쫓겨났지만, 미국의회와 교회와 거리에서 계속 싸웠다. 오늘날 뜻 있는 사람들이 언론에서 잘리고, 직장에서 밀려나고, 플랫폼에서 차단되더라도, 싸울 법정은 어디에나 있다. 넷째,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교훈은 이것이다. 아직 추방되지 않은 이라는 말은 저항의 언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직 해고되지 않은 , 아직 기소되지 않은 , 아직 탄압받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아직 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브루클린 출신 시노트 신부가 영종도 섬사람들을 위해 병원을 짓고, 인혁당 피고인들의 아내들 손을 잡고, 법정에서 고함을 치고, 추방된 뒤에도 미국의회를 뛰어다닌 이 삶은, 어쩌면 가장 단순한 진리의 실천이었다. 눈앞에 불의가 있거든, 고개를 돌리지 말 것이다. 그는 끝내 파주 땅에 묻혔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사람이 그곳에 여전히 있다.   민주화기념사업회 주최 간담회에 참석한 조지 오글 목사(오른쪽)와 제임스 시노트 신부.(왼쪽). ⓒ 오마이뉴스 손병관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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