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 뭘 남기지 말라 가르친 마르가레타 망누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 3월 12일(현지시간)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스웨덴 작가 마르가레타 망누손. selmastories.se
다락방에도 지하실에도 어머니가 남긴 게 아무 것도 없어서,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어.”
84세에 유명한 책 ‘죽음청소: 슬프지 않은 이야기 (Döstädning: Ingen sorglig historia 2017)를 써내 유럽과 북미, 아시아 32개국에 번역본이 출간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은 스웨덴 할머니 작가 마르가레타 망누손(Margareta Magnusson, 1933.12.31~2026.3.12)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에서 보고 그냥 넘겼는데 한국일보 가만한 당신 코너 최윤필 기자가 21일 상세히 다뤘다. 최 기자의 글을 간추렸다.
그는 예테보리의 한 요양시설에서 눈을 감았다. 평소 나이를 물으면 이 할머니는 80세에서 100세 사이”라고 유쾌하게 응수하곤 했단다. 스웨덴과 유럽 매체들은 그를 1933년생이라고 소개했고, NYT는 1934년생으로 쳐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부고에 적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스스로 정리하는 북유럽인들의 생활습관 데스테드닝 (Döstädning)을 소개했다. 영어로 옮기면, death cleaning, 약간 께름칙하지만 죽음 청소 다. 유족들이 감당해야 하는 유품 정리의 수고를 더는 것은 물론, 유품을 정리하다가 자녀들이나 후손, 친척, 친구들이 마음의 상처를 얻지 않도록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망누손은 그 행위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일 뿐 아니라 노년의 삶을 새롭고 풍성하게 재편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라고 문고본 책에 썼다.
우리말로도 옮겨졌다. 제목은 ‘내가 내일 죽는다면: 삶을 정돈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 데스클리닝’이다.
다섯 남매를 모두 잘 길러 독립시키고 남부러울 것 없이 가만한 노년을 보내던 그를 80대에 스테디셀러 작가 반열에 올린 것이 딸 야네였다. 맨위의 말도 야네의 말이다. 부모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휴가를 내야 한다는 뉴욕 친구의 푸념에 야네가 자기는 그럴 일 없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출판사에 다니던 뉴욕 친구가 그 자리에서 책을 내자고 했고, 그렇게 석 달 만에 후닥닥 쓴 것이 이 책이었다.
스웨덴 예테보리의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 부부의 딸로 태어난 망누손은 1956년 스톡홀름의 베크만스(Beckmans) 디자인 칼리지를 졸업한 뒤 약 1년간 회사를 다니다 산업 장비 제조·수출업체 ESAB에서 일하던 라르스 망누손과 결혼했다. 아이들을 다 길러낸 다시 그림을 시작해 1979년 예테보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 사이 남편 직장을 따라 다섯 차례 해외로 이주하는 등 평생 17차례 이사를 다녔다고 했다. 이삿짐 싸고 헤치는 데 이골이 난 셈이다.
1969년 어머니가 세상을 떴고, 얼마 뒤 시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졌으며, 2005년 사별한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도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홀몸의 그는 집을 줄여 이사하느라 또 살림을 줄여야 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어차피 나도 언젠가 죽을 텐데, 내가 떠난 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힘들게 치워야 할 쓰레기 더미를 남겨둘 이유가 있을까.”
나는 자문해보곤 했다. 내가 이 물건을 남겨둬서 누군가가 조금이나마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 시간과 노동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이자 죽음 이후 그 공간에 있을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시간을 사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물건이 그들에게도 유용할까?”, 내게 감정적인 뭔가를 들려주는 물건인가”, 그 감정의 가치는 나만의 것일까, 남겨진 이들에게도 의미가 있을까” 등등. 그렇게 망누손은 자신의 공간을 비워 냈다.
미국 유명 코미디언 겸 프로듀서 에이미 폴러가 망누손의 데스테드닝 을 테마로 제작해 2023년 4월 스트리밍 플랫폼 피코크 (Peacock)를 통해 방영한 8부작 리얼리티 예능 스웨덴식 정리정돈의 기술 스틸 사진. 세 명의 스웨덴인 데스클리너(정리, 인테리어, 심리) 와 함께 의뢰인의 죽음 청소를 돕는 과정을 담은 이 프로그램은 같은 해 10월 스웨덴 공영방송 SVT로 역수출되기도 했다. svtplay.se
그는 가장 어수선한 공간, 또 지하실처럼 넓은 공간부터 먼저 정리한 뒤 부엌과 책상 등 오래 머무는 친숙한 공간으로 순서를 정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감정적 동요가 클 수 있는 물건들, 예컨대 편지나 사진, 오래된 메모 등은 후순위로 밀쳐두라고도 했다.
각자 진행하는 죽음청소를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리고 때로는 초대하는 것도 좋다고 권했다. 처분할 책과 가재도구 등을 한편에 모아두고 지인들에게 갖고 싶은 게 있는지 둘러보게 하라는 거였다. 어떤 물건이 어떻게 자신에게 왔고, 또 어떤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보냈는지 들려줄 수도 있고, 무거운 물건들을 함께 옮길 수도 있다. 당연히 그 과정은 자신의 삶의 일부를 사랑하는 이들과 공유하는 행위가 되고, 자신과 서로의 죽음을 별 두려움 없이 생각하고 예비할 수 있게도 해준다. 그 시간 자체가 또 누군가에겐 값지고 애틋한 추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과 이전 세대 여성들에겐 정서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익숙한 데스테드닝이란 행위에 세상이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개 여자들의 일은 주요 관심사 밖으로 밀려나기 일쑤이고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 이라는 것. 딸 야네도 한 인터뷰를 통해 주로 부부 중 남편이 먼저 떠나기 때문에 유품 정리는 여성의 몫이기 쉽고, 나이 든 여성의 노동에 대해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망누손의 데스테드닝 은 영원한 여행을 앞둔 고령자들, 나이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이 언제일지 모를 각자의 순간을 앞두고 허둥지둥 여행가방을 싸는 일을 피하자는 조언이기도 할 것이다. 고령화가 심화하고 고독사가 빈발하면서 유품 정리업이라는 새로운 업종도 생겨났다. 50plus.or.kr
죽음과의 대면을 회피하거나 지연시키기 행위가 ‘방어적 비관주의 (Defensive Pessimism)다. 독일 에를랑겐 뉘른베르크대 연구팀이 노인 다수를 대상으로 장기간 추적 조사한 바, 매사에 비관적이고 건강 등에 걱정이 많은 노인들이 미래를 낙관하는 노인들보다 장애를 겪거나 사망할 위험이 덜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동반하기 쉬운 패배주의적 비관주의와 달리 방어적 비관주의는 건강에 대한 경계심과 위험 회피 행동, 예상치 못한 불행 등에 심리적으로 대비함으로써 위험과 스트레스 등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될 수 있다. 그래서 방어적 비관주의는 일종의 전략적 불안 통제 메커니즘이다.
망누손은 책 서문 제목을 ‘절대 슬프지 않은 작업, 데스클리닝’이라 달았다.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 나는 그 과정이 신나고 흥미로운 과정이 되길 바라며, 또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데스테드닝은 누구나 언제든 시작할 수 있고, 그걸로 주변을 잘 정돈하면 훨씬 쾌적하고 여유로운 환경과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경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면 당신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자신의 삶과 경험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도 빠르게 흘러 마치 아침 식사 시간이 15분마다 찾아오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데스테드닝도, 처음엔 힘들지 몰라도, 습관이 되면 일상의 리듬처럼 편하고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고도 했다. 물론 살다 보면 또 새로운 물건이 생길 수도 있고, 앞서 남겨뒀던 물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역시 데스테드닝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고 한다. 여전히 나는 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었다.(…) 당신도 결코 완벽한 데스테드닝을 끝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유년 시절 모은 조개껍데기 모음은 간직했고, 이제는 어른이 된 자녀들의 어릴적 옷들 대부분은 버렸다고 한다. 다만 어머니가 손수 지어준 옷들은 혹시 일곱 손주들에게 입힐 수 있을지 몰라 간직했다. 혹시 손주들을 못 만나게 되더라도 그 상자들을 남겨둠으로써 게으른(?)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원한 바를 환기시킬 수도 있겠기 때문”이었다.
만 84세의 망누손은 2017년 생애 첫 책을 써 일약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오른쪽은 한국어판 책 표지. albertbonniersforlag.se, 예스24 닷컴
데스테드닝으로 정신적 육체적 짐”을 덜어낸 그는 집안에 갇혀 지냈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젊은이들이 알아두면 좋을 나이 듦의 경이와 슬픔 에 대한 단상을 기록해 두 번째 책 ‘당신보다 먼저 죽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주는 삶의 조언 (Levnadsråd från någon som troligtvis kommer dö före dig, 2022)을 출간했다. 우리말 번역본 제목은 ‘초콜릿을 참기에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다.
‘왓츠앱’ 같은 놀랍고도 재미있는 기술”에 대한 노년의 바람직한 태도에서부터 지구(환경)와 미래(세대)에 대한 상념, 머리카락과 주름 관리, 손주 대하기 등등. 그가 가장 좋아했다는 간식인 초콜릿에 대한 장 ‘초콜릿은 언제나 옳다’에 그는 이렇게 썼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모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른다. 영원히 살 것처럼 초콜릿 바를 먹겠다는, 정확히 말하자면 영원히 살지 못한다고 해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는 내 결정이 초콜릿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한 것 같다. (…초콜릿 바를 먹을 때마다 재채기가 나오는 거였다. …) 하지만 재채기를 멈추자마자 나는 바로 한 입을 더 먹는다. 내 나이쯤 되면 가끔 이렇게 생각해 버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니까. 그러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