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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농민들은 왜 한방의료봉사에 열광하나[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 하늘 아래로’
그룹 들국화의 가수 최성원이 작사∙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제주도의 푸른 밤’ 한 대목이다. 1987년 최성원은 들국화 동료들이 구속되자 상심한 나머지 제주도로 떠난다. 가사는 도시의 지친 삶을 상징하는 아파트, 술집, 신문, TV, 월급봉투 같은 것을 내려놓고, 푸른 밤 별 아래 바다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제주도로 떠나자고 한다.
서울 강남 심포니한의원 박신엽 원장이 지난달 30일 배롱서원에서 해금을 연주하고 이승교 원장이 한의학 강연을 했다. © 이봉수
배롱서원서 해금으로 연주된 ‘제주도의 푸른 밤’
‘제주도의 푸른 밤’이 이번에는 ‘책의 집’(書院) ☞ 배롱서원에서 해금으로 연주됐다. 우리 부부가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에 지난 6월 개원한 배롱서원은 성산읍에 4년 전 문을 연 기숙학교인 한미리스쿨(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의 기능을 이어 받아 학생이나 일반인들이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고 모임을 가지면서 무료 숙박까지 할 수 있는 현대판 서원이다.
해금을 연주한 박신엽 씨는 아마추어 해금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연주자이지만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개런티를 받았으니 프로에 버금가는 연주 실력을 지녔다. 해금은 두 줄밖에 없는 전통 현악기인데도, 인간의 목소리처럼 울림이 깊은 데다 감정 표현이 풍부해 최성원이나 성시경의 리메이크 목소리보다 애절함이 더 간절했다.
해군OCS 예비역장교를 묶는 끈
박신엽 씨는 남편 이승교 씨와 함께 심포니한의원을 운영하는 부부 원장이다. 이들 부부를 포함해 서울 강남 등지에서 잘나가는 한의원 원장 다섯이 지난달 29일 도시의 일상을 내려놓고 제주도로 왔다. 해군OCS봉사단의 일원으로 성산읍 난산리에서 한방 의료봉사를 하고 30일에는 조천읍 대흘리로 와서 의료봉사와 함께 ‘한방과 해금, 배롱서원에서 만나다’ 행사를 가진 것이다.
OCS는 사관후보생학교(Officer Candidate School)를 뜻하는데 해군사관학교와 별도로 학사 출신 해군∙해병대 장교를 양성하는 군사학교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집단이면서도 고된 훈련을 함께 받아 제대 후에도 결속력이 강하다. 해군OCS봉사단을 배롱서원으로 초청한 것은 나 또한 OCS 출신이기 때문인데, 71기 동기만 해도 박진∙조현 두 외교장관 등 고위관료와 교수 등이 대거 배출됐다. 최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딸 최민정과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 이지호가 임관했다.
배롱서원에서 어깨 결림 환자를 침술로 진료하고 있는 이승교 원장(왼쪽)과 이연서 원장(가운데). 벽 스크린에 봉사단원 환영 영상이 떠 있다. © 이봉수
한의학 전문기자는 왜 없는가?
배롱서원에서는 해금 연주에 이어 이승교 원장이 ‘한의학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다른 원장들과 함께 진료도 했다. 이 원장은 언론이 한의학을 홀대해서 일반인이 일상에서 한의학에 관한 정보를 얻고 치료를 받기는 쉽지 않다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에서는 ‘의학전문기자’ 타이틀을 가진 기자분들이 있는데 대개 의사이다 보니 팔이 안으로 굽는 거예요. 한의학에 관한 이해가 없고 이분들이 만나는 사람들이 거의 다 대형병원의 의사나 홍보실 직원, 의대교수들이니 한의학을 접하기 힘듭니다.”
실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으로 일할 때 한의학전문기자 양성을 시도한 적이 있다. 세명대 한의대생이 내 교양강좌를 들은 뒤 저널리즘스쿨에 진학한 데다 한방은 저널리즘으로 풀어낼 이야기도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에 ‘한방 이야기’도 연재하게 하는 등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한 중앙일간지에 추천했는데 중간에 의학전문기자가 반대해 좌절됐다.
이승교 원장은 언론에 다가서려는 한의사들의 노력이 부족한 점 등 한의학계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보험 적용이 늦었고 군의관 진출도 뒤늦게 허용돼 원천적으로 불공정 게임을 해왔다고 말한다. 한의사가 군의관이 될 수 있도록 병역법을 바꾼 것은 1998년이었다.
서양에서도 인정하는 침술의 효능
한의사는 숫자에서 밀리는 데다 의료정책을 결정하는 정부 기관과 국회에도 일반의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진출해 있다. 그럼에도 그들 부부는 고려대를 졸업한 아들이 좋은 직장에 다니다가 한의대에 입학하려고 할 때 말리지 않았을 만큼 한의학에 관한 자부심과 애정이 깊다.
우리가 한글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한의학도 우리 민족의 유산이고 자산이라는 측면에서 보호받아야 합니다. 저는 한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이 외국이라고 생각해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한의학의 가치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가치를 역수입하겠다는 겁니다.”
그는 우리나라 양의들도, 심지어 서양에서도 침의 효능은 인정하는 이가 많다고 강조했다.
배롱서원에서 ‘한의학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심포니한의원 이승교 원장. © 이봉수
한약 먹으면 간 나빠진다고 하는 이가 있는데 잘못된 말이에요. 양약 먹고 간 나빠지는 게 훨씬 많거든요. 양의사들이 처방하는 양약 중에 한약에서 출발한 것도 많아요.”
흔히 한의학은 기를 통해 몸 전체를 이해하기에 서양의학이 진단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같은 정신적 발병 원인을 포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의학의 생약은 서양의학의 인공 합성물에 견주어 몸에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의 편견을 깨우쳐준 난산리 노인들
그러나 양의학에 주로 의존해서 병원 드나드는 게 습관이던 나에게는 한의학의 치료효과가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와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일말의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알다시피 ‘플라시보 효과’는 가짜 약을 복용하거나 비활성 치료를 받았는데도 증상이 호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나의 편견을 깨우쳐 준 것은 배롱서원 방문 전날인 29일 난산리 한방의료봉사 현장을 취재할 때였다. 김명수(68) 이장에 따르면, 난산리 주민 500여 명 가운데 65살 이상 노인은 절반이 넘는다. 해안과 중산간지대 경계쯤에 있는 이 마을 주민들은 주로 감귤 등 과수농사와 당근 감자 무 고구마 등 밭농사로 생계를 꾸려왔는데, 평생을 밭에서 일한 노인들은 거의 다 무릎 관절염과 허리 디스크, 근육통 등 근골격계 질병을 앓고 있다.
난산리 노인복지회관을 사방으로 빙 둘러가며 앉아서 의료봉사단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주민들. © 이봉수
2019년부터 이 마을에서 한방진료를 해온 의료봉사단은 주민들의 간청으로 1년에 두 차례로 진료회수를 늘리고, 주민들이 일하는 시간을 고려해 저녁에 진료를 하고 마을에서 숙박한 뒤 다음 날 아침에 2차 진료를 한다.
지난달 29일 저녁에도 45명이 진료희망자로 등록해놓고 기다리다가 봉사단이 도착하자 육지에서 자식들이 온 것처럼 반가워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25명이 진료를 받았는데, 모두가 증세 호전을 실감한 노인들이기에 만사 제쳐놓고 노인회관으로 온 것이다.
난산리 중산간동로 3726-44에 사는 권음전 씨는 74살인데 노인회에서는 ‘막내’ 축에 낀다. 그는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왔는데, ‘유연성 테스트’에서 안간힘을 쓰며 허리를 굽혀 방바닥을 짚으려 해도 20Cm 정도는 간극이 있었다. 그런데 침 시술을 받은 뒤 너끈하게 바닥을 짚는 게 아닌가! 그는 그 참 신기하네”란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권음전 씨가 침 시술을 받은 뒤 ‘유연성 테스트’에서 손이 방바닥에 닿는 모습을 심포니한의원 박신엽 원장이 지켜보고 있다. © 이봉수
환자를 만족시키는 게 치료다
머리∙어깨∙허리 등에 약침을 꽂고 있던 오길삼(81)∙김두숙(76) 씨 등은 침 맞으면 효과가 있느냐”는 질문에 효과가 있다 마다지” 있으니까 이렇게 열일 제쳐두고 오지”라고 답했다. 몇몇 노인들은 시골 보건소에는 한의사도 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난산리에는 간호사 출신이 계약직으로 보건진료소장을 맡고 있다.
‘플라시보’의 라틴어 어원은 ‘내가 기쁘게 해주지’ 또는 ‘만족시키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방진료는 가짜약이 아니라 노인들에게는 몸뿐 아니라 마음을 치유해주는 진짜약 구실을 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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