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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올레길 서명숙이 묻는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올레길 서명숙이 묻는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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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의 개척자 서명숙(1957-2026) 서명숙은 1957년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나 언론인으로 오랜 시간 활동한 뒤, 한국의 대표적인 걷기 운동가이자 사회혁신가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그는 시사 주간지와 인터넷 언론 등에서 기자와 편집국장으로 일하며 치열한 언론 현장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빠른 속도와 경쟁 중심의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던 중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체험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귀국 이후 그는 고향 제주로 돌아가 2007년부터 ‘제주올레’ 길을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올레길은 자연과 인간, 지역 공동체가 공존하는 새로운 걷기 문화를 만들어내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한국 사회에 ‘걷기 여행’이라는 흐름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서명숙은 이후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길의 철학과 가치를 꾸준히 확장해 왔으며, 느림과 성찰, 관계의 회복을 강조하는 삶의 방식을 제시하였다. 그는 길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다시 연결하려 한 실천적 사상가로 평가되며, 2026년 4월 7일 향년 68세로 별세하여 많은 이들의 애도를 받았다. 1. 길은 누구의 것인가: 서명숙 사유의 출발과 제주올레의 철학 서명숙이 말하는 ‘길’은 단순한 이동의 통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와 다시 관계를 맺는 방식이며, 삶을 새롭게 이해하는 하나의 철학적 실천이다. 일반적으로 길은 출발과 도착을 연결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지만, 그의 사유에서 길은 목적지에 이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성찰하고 회복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점에서 제주올레는 단순한 관광 코스를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사유의 장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사유는 무엇보다도 현대 문명이 절대적 가치로 삼아온 ‘속도’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사회는 빠름을 효율성과 동일시하며, 더 신속한 이동과 더 많은 생산을 통해 성취를 측정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도의 논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게 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게 한다. 풍경은 소비되고, 사람은 기능화되며, 삶은 단편화된다. 이에 대해 서명숙은 ‘느림’이라는 전혀 다른 선택지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 실천으로서 ‘걷기’를 제안한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의 속도를 늦추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감각의 회복이며, 존재 방식의 전환이다. 인간은 발을 통해 땅과 접촉하고, 몸을 통해 바람과 햇빛을 느끼며, 시선을 통해 세계의 미세한 변화를 인식한다. 이러한 감각적 경험은 사고 이전의 차원에서 세계와의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서명숙이 강조하는 바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즉, 인간은 사유 이전에 이미 세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걷기를 통해 그 연결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은 스페인의 순례길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오랜 기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언어와 정보의 흐름 속에 놓여 있던 그는, 그 길 위에서 침묵과 고독을 경험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지나치게 많은 말을 하며 살아왔음을 자각하게 되었고, 동시에 말 이전의 감각과 존재의 층위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체험은 그의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제주올레를 구상하게 되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제주올레는 제주도라는 구체적 공간 위에서 구현된 사유의 결과이다. ‘올레’라는 말이 본래 집에서 큰길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을 의미한다는 점은 상징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는 사적인 삶과 공적인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개인의 내면과 사회적 관계가 만나는 경계의 공간을 의미한다. 서명숙은 바로 이 ‘경계’를 회복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통해 인간이 다시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와 더불어 그의 사유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등장하는 것은 ‘공공성’이다.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공간은 특정 주체에 의해 소유되고 통제된다. 그러나 제주올레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유의 장소로 기획되었다. 이는 단순한 운영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길은 더 이상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가 생성되는 장으로 이해된다. 또한 제주올레는 공동체적 실천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 길은 국가나 기업에 의해 일방적으로 조성된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를 통해 형성되었다. 이러한 형성 과정은 그 자체로 공동체의 회복을 의미한다. 길 위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인식하고, 관계를 맺으며, 일상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연결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점차 약화된 공동체적 감각을 재생시키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작용한다. 서명숙은 또한 개발 중심의 사고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제주도는 오랜 기간 관광 산업의 확장 속에서 자연과 지역성이 훼손되어 왔다. 그러나 그는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깊이를 강조한다. 제주올레는 자연을 소비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며, 오히려 자연의 흐름과 결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이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전제하는 생태적 인식에 기반한다.   그의 글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또 하나의 개념은 ‘치유’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치유는 단순히 심리적 안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다시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이다. 걷는 동안 인간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고통과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직면을 통해 삶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되며, 이는 곧 존재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결국 서명숙의 사유에서 ‘길’은 물리적 경로를 넘어선 존재론적 개념이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며, 동시에 그 질문에 대한 실천적 응답이다. 길은 완결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걷는 행위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된다. 이 점에서 제주올레는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살아 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의 철학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는 복잡한 개념을 제시하기보다, 단순한 행위를 제안한다. 곧, 걷는 것”이다. 이 단순한 행위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과 세계를 다시 인식하게 하며, 삶의 방향을 재구성하도록 이끈다. 따라서 제주올레는 단순한 길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하나의 철학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발걸음 속에서 계속해서 새롭게 쓰이고 있다. 2. 걷기의 영성과 관계의 회복: 침묵, 몸, 그리고 존재의 재구성   서명숙의 사유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순한 생태적 실천이나 여행 철학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 존재의 근원적 차원을 탐색하는 일종의 ‘영성적 사유’로 확장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영성은 특정 종교나 교리 체계에 귀속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세계와 맺는 가장 근원적인 관계, 다시 말해 존재가 자신을 인식하고 타자 및 자연과 연결되는 방식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걷기’는 단순한 신체 활동을 넘어 인간 존재를 재구성하는 핵심적인 실천으로 자리한다. 근대 이후 인간의 삶은 점차 속도와 효율성의 논리에 지배되어 왔다. 기술의 발전은 이동의 거리를 획기적으로 확장시켰고, 동시에 시간의 압축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감각적 경험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더 많은 공간을 통과하지만, 그 공간을 경험하지 못한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들과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서명숙은 바로 이 단절의 상태를 문제 삼는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서 ‘걷기’를 제시한다. 걷기는 인간이 가장 오래전부터 수행해온 이동 방식이다. 그것은 기술 이전의 행위이며, 자연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움직임이다. 인간은 걷는 동안 땅과 접촉하고, 주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호흡과 리듬을 자각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신체 활동을 넘어,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서명숙이 강조하는 바는 바로 이 점이다. 즉, 걷기는 인간을 다시 ‘몸의 존재’로 되돌려 놓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의 글에서 ‘몸’은 단순한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근대적 사유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고, 정신을 우위에 두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서명숙은 이러한 이원론적 구도를 넘어선다. 그는 인간이 몸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고, 그 경험 속에서 의미를 형성한다고 본다. 걷는 행위는 바로 이러한 몸의 인식을 회복시키는 과정이다. 발걸음 하나하나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세계와의 접촉이며, 존재의 확인이다.   이와 더불어 걷기는 ‘침묵’을 가능하게 한다. 일상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말하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소음을 생산한다. 그러나 길 위에 서게 되면 자연스럽게 말은 줄어들고, 침묵이 찾아온다. 처음에는 이 침묵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침묵은 점차 새로운 감각을 열어준다. 우리는 그 속에서 자신을 듣게 되고, 주변의 미세한 소리를 인식하게 된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 발걸음의 리듬,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의 울림. 이러한 경험은 인간을 현재의 순간에 머물게 하며, 분산된 의식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 서명숙은 이와 같은 침묵의 경험을 통해 인간이 자기 자신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본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외부의 자극과 요구에 끊임없이 반응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은 점차 희미해지고, 삶의 방향은 외부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걷는 동안 인간은 외부의 속도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리듬을 회복하게 된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자각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걷기는 인간과 타자 간의 관계를 구성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일상적 공간에서의 만남은 대체로 기능적이고 목적 지향적이다. 우리는 특정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타인을 만나며, 그 관계는 일정한 역할과 규범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길 위에서의 만남은 다르다. 걷는 사람들은 동일한 조건 속에서 서로를 마주하게 되며, 그 만남에는 특별한 목적이나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는다. 단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관계의 기반이 된다. 이러한 만남은 인간으로 하여금 타인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낯선 이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는 순간, 우리는 그를 단순한 타인이 아니라 ‘같이 걷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공동체 형성의 출발점이 된다. 서명숙이 제주올레를 통해 기대하는 바 역시 여기에 있다. 그는 길을 통해 사람들이 다시 서로를 발견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제주도라는 공간은 이러한 관계의 실험이 이루어지는 구체적 장이다. 제주올레를 걷는 이들은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이 된다. 길을 관리하는 자원봉사자, 길 주변에서 살아가는 주민들, 그리고 길을 걷는 방문객들 모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유기적 관계망을 형성한다. 이 관계망은 위계나 통제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성과 상호 존중에 기반한다. 서명숙의 사유에서 자연은 이러한 관계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한다. 그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나 자원으로 보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과 함께 존재하는 하나의 주체이며, 인간은 그 일부로서 살아간다. 걷는 행위는 바로 이 사실을 체험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우리는 땅을 밟고, 바람을 느끼며, 햇빛을 받는다. 이 단순한 경험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걷기의 경험이 항상 평온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걷는 과정에는 피로와 고통이 수반된다. 때로는 길이 멀게 느껴지고, 몸이 무거워지며, 중단하고 싶은 유혹이 찾아온다. 그러나 서명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본다. 인간은 고통을 통과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신체적 극복을 넘어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그의 글에서 ‘치유’라는 개념은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치유는 고통의 제거가 아니라, 고통을 새로운 의미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걷는 동안 인간은 자신의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게 되며, 그 상처는 자연과 시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다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을 수용하게 되고, 삶을 다시 긍정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결국 서명숙의 걷기 철학은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하나의 실천적 사유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속도와 효율성 중심의 삶에 대한 대안이며, 감각과 관계, 그리고 존재의 회복을 지향한다. 그는 거창한 이론이나 규범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행위, 곧 걷기를 통해 삶의 변화를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점에서 제주올레는 단순한 길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다시 인식하는 하나의 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경험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관계와 의미를 생성해 나간다. 3. 길 이후의 세계: 서명숙 사상의 사회적 확장과 문명 비판 서명숙의 사유는 단순히 ‘걷기’라는 실천의 차원을 넘어, 오늘날 문명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로 확장된다. 그의 사상은 개인의 내면적 치유나 삶의 방식에 대한 제안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구성하고 있는 사회와 문명의 구조를 다시 묻는 데까지 이른다. 이 점에서 제주올레는 하나의 지역적 실험이 아니라, 현대 문명 전체를 향한 조용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성장과 확장을 중심 원리로 작동해왔다. 더 많은 생산, 더 큰 도시, 더 빠른 이동, 더 높은 효율성은 오랫동안 진보의 지표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의 이면에서 인간의 삶은 점차 불안과 고립 속으로 밀려나고 있다. 물질적 풍요가 증가할수록 삶의 의미는 오히려 희미해지고, 인간은 서로로부터 단절된 채 살아가게 된다. 서명숙은 바로 이러한 역설을 직시하며, 기존의 발전 논리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의 사유에서 중요한 전환은 ‘크기’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현대 문명은 크고 빠른 것을 선호한다. 대규모 개발, 대량 생산, 대중 소비는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서명숙은 이러한 논리에서 벗어나 ‘작은 것’의 가치를 강조한다. 제주올레는 거대한 인프라가 아니라, 인간의 발걸음으로 이어진 길이다. 그것은 느리게 형성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유지되며, 다양한 생명과 관계를 포용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닌다. 이러한 ‘작음’은 단순한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작은 길은 인간으로 하여금 주변을 세심하게 바라보게 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형성하도록 만든다. 반면 거대한 구조는 효율성을 높이는 대신, 개별 존재의 경험을 균질화하는 경향을 가진다. 서명숙은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고,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작은 길’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그의 사유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은 ‘지역성’이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많은 지역들은 점차 유사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도시의 풍경은 표준화되고, 지역 고유의 문화와 삶의 방식은 점차 사라진다. 그러나 서명숙은 제주도라는 구체적 장소의 고유성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제주올레는 단순히 자연 경관을 보여주는 길이 아니라, 그 지역이 지닌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드러내는 통로이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돌담의 의미, 바람의 방향, 해녀의 삶, 마을의 역사 등은 단순한 관광 정보가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을 담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방문자로 하여금 그 지역을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는 관광의 방식 자체를 전환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서명숙의 사유는 경제적 가치에 대한 재해석으로도 이어진다. 제주올레는 결과적으로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경제적 이익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지역이 함께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관심을 두었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기존의 성장 중심 경제와 구별되는 ‘관계 중심의 경제’로 이해될 수 있다. 관계 중심의 경제는 단순한 이윤 창출을 넘어, 삶의 질과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중시한다. 제주올레를 통해 형성된 다양한 관계망—걷는 사람들, 자원봉사자들, 지역 주민들—은 이러한 새로운 경제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들은 경쟁과 효율이 아니라, 협력과 공존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이러한 구조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지속 가능성과 인간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대안적 모델로 기능한다. 그의 사유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또 하나의 태도는 ‘겸손’이다. 이는 인간이 자연과 세계를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를 의미한다. 현대 문명은 인간을 자연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위치시켜 왔다. 자연은 개발의 대상이자 자원의 공급원으로 이해되었으며, 그 결과 생태계의 균형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그러나 서명숙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본다. 제주올레는 이러한 겸손의 태도를 구체적으로 구현한 사례이다. 길은 자연을 지배하거나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조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자연 환경을 최대한 존중하며, 그 흐름에 따라 이어진다. 이는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실천적 태도를 보여준다.   아내와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2021.9 필자 서명숙의 사유는 정치적 함의 또한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직접적인 구호나 이념의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삶의 방식 자체를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한다. 빠른 성장과 경쟁을 당연시하는 사회 구조에 대해, 그는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실천은 조용하지만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을 지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철학이 ‘실현된 사유’라는 점이다. 많은 이론들이 개념적 수준에 머무르는 데 반해, 서명숙의 사유는 실제 공간과 경험 속에서 구현되어 있다. 제주올레를 걷는 사람들은 단순히 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 담고 있는 철학을 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 경험은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그의 사유는 완결된 체계로 고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열려 있는 과정이며, 계속해서 확장되는 실천이다. 새로운 사람들이 길을 걷고, 새로운 해석이 더해지면서 제주올레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 점에서 그의 철학은 고정된 교리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사유라 할 수 있다. 결국 서명숙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이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속도와 경쟁, 성장의 논리에 따라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느림과 관계, 공존의 가치를 중심에 둘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의 삶 속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는 그 답을 대신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길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 길은 지금도 열려 있다. 인간이 다시 자신과 세계를 연결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그 길은 여전히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 이 글을 탈고하던 무렵, 7일 서명숙 선생의 작고 소식이 전해졌다. 한 문장을 매듭짓는 손끝에서, 마치 바람이 스며들듯 그 부고가 스며들었다. 바람이 길을 먼저 지나가던 제주도의 올레길을 걸을 때처럼, 그의 부재는 조용히 다가와 오래 남는 쓸쓸함으로 마음을 흔든다. 그러나 그는 길을 떠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길 위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늘 그러했듯, 바람을 앞세우고, 햇빛을 어깨에 얹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멈추지 않고 걸어가고 있으리라. 환하게 웃으며, 자신이 열어놓은 그 길처럼 담담하고도 씩씩하게, 보이지 않는 더 먼 길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가 남긴 길 위에는 여전히 바람이 불고, 사람들은 걷고, 사유는 이어진다. 그래서 그의 부재는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길이 시작되는 자리처럼 느껴진다. 걷기에 도움이 되는 책 철 이전에 길이 있었네 (서명숙 ) :  이 책은 길을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기억, 사유가 스며 있는 공간으로 바라보는 인문 에세이다. 작가는 포항 호미반도와 해안 길을 직접 걸으며 산업과 개발 이전에도 이미 사람과 자연 사이에는 오래된 길이 존재해왔음을 강조한다. 철과 산업이 지배하는 풍경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옛길을 통해 우리는 삶의 본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빠름과 효율을 좇는 현대인에게 잠시 멈춰 서서 천천히 걷고, 길 위에서 자신과 세계를 다시 성찰할 것을 권한다. 결국 길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걸어가는 삶의 태도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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