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원의 ESG투자트렌드】안전사고, 기업가치를 잠식하는 느린 불씨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동안 사회(S) 관련 이슈는 환경(E)이나 지배구조(G)에 비해 상대적으로 ESG투자와 관련된 논의에서 소외되어 왔다. 정량화가 어렵고, 투자 기회 보다는 리스크에 편중되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회라는 단어 아래 너무 많은 이슈(근로자, 공급망, 소비자, 지역사회 등)가 존재하여 ‘환경 전문가’, ‘지배구조 전문가’는 있어도 ‘사회 전문가’가 있기 어렵다는 점도 이유일 수 있다.
중대재해 제재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사회, 그 중에서도 안전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안전 사고가 단순 노이즈가 아니라 사업의 수익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신호로 여겨지게 됐다. 정부는 지난 20일 건설사 공공입찰 참여 시 안전 평가를 강화하여 안전 관리가 미비한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계획을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2명 이상 중대재해가 발생할 시에 가능한 건설사 영업정지에 관한 요건을 1명으로 낮추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건설업 외의 산업에서는 자본비용을 높일 수 있는 은행 대출 규제도 논의되는 중이다. 금융당국에서는 대출 심사시 금리, 한도 등에 중대재해 리스크를 반영하고, 프로젝트파이낸싱 보증 심사 시 중대재해를 반영해 지원 순위, 금리 등에 패널티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니 투자자들도 안전 사고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기업 가치에 즉각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이앤씨의 회사채의 거래가 최근 크게 줄었다고 한다. 신용평가사에서는 신용등급 하향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주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 해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중대재해 발생 횟수가 많을수록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주가 하락 폭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받지 못하는 느린 연소
우리가 하는 큰 착각 중에 하나는 사고가 없으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큰 사고가 나면 그제서야 사회적인 주목이 향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고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느린 연소(Slow Burn)이라는 개념이 있다. 천천히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펜실베니아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및 와튼스쿨의 박지성 교수는 『1도의 가격』 이라는 책에서 이 개념을 기후변화에 적용했다. 박지성 교수는 이 책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호우, 폭염 등이 야기하는 물리적 피해는 정량적으로 환산되어 주목받지만, 그보다 더 큰 피해가 점진적이고 누적되어 발생하고 있음에도 눈에 잘 보이지 않아 외면 받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그것이 바로 ‘느린 연소’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적자원에 대한 피해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재난이더라도 그 재난이 발생한 지역의 학생들의 학습 손실, 진학률 감소 등 학업에 피해를 준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는 일시적이지 않고, 미래 소득 등에 영향을 주어서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박지성 교수는 계량경제학적 접근을 통해 이러한 피해를 정량화하여 인적자본에 미치는 피해가 눈에 보이는 물리적 피해보다 더 클 수 있음을 입증했다.
중대재해는 대규모 기후재난과 유사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기사가 쏟아지고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사회적 논란이 확대 재생산된다. 규제가 개정되거나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안전 사고는 꼭 중대재해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비용, 즉 ‘느린 연소’를 수반한다. 생산성 하락이다.
작은 부상이라도 부상이 발생하게 되면 해당 라인을 잠시라도 멈추게 된다. 직접적인 생산 차질로 이어진다. 갑작스러운 인력 공백으로 인해 임시직이나 미숙련 근로자를 투입하게 된다. 또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고를 당한 근로자와 해당 사고를 목격한 주변 근로자들 모두 심리적 위축이 발생하여 업무 몰입도가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국내 상장기업 568개를 대상으로 2011년부터 7년간 수행된 연구에 따르면 재해율이 1% 늘어날수록 1인당 영업이익이 최대 240만원 감소했다. 연구 대상 기업의 1인당 영업이익 평균이 약 2900만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10%에 가까운 숫자다.
이 연구는 산재가 한 번 일어난 회사에서는 또 일어난다는 점도 지적한다. 산재가 올해 발생하지 않은 기업에서 내년에 산재가 발생할 확률은 30% 미만인 반면, 올해 산재가 발생한 기업에서 내년에 또 발생할 확률은 70%에 육박했다. 다시 말하면 산재로 인한 이익감소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전을 투자에 통합하기
안전 사고를 투자 의사결정에 통합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지속가능보고서를 자발적으로 발간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안전과 관련된 정량 데이터도 공개하고 있다. 다만 산업재해율, 사고율, 사망만인율 등 여러 지표가 공존하고 있으며, 같은 용어도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어 비교 가능성이 크게 떨어진다.
정부가 중대재해 예방 방안 중 하나로 중대재해 공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공시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으나 중대재해 발생 여부 공시만으로는 부족하다. 상기한 바와 같이 작은 사고라도 반복된다면 생산성 하락이 지속된다. 그리고 반복되는 작은 사고는 큰 사고가 발생할 전조 현상일 수 있다. 따라서, 중대재해만이 아니라 모든 안전사고를 포괄하는 지표가 필요하다. 또한, 절대적인 건수만으로는 비교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동일한 분모를 통해 표준화한 지표가 필요하다. 기업 규모, 근로자의 수, 근로 시간 등에 따라 안전사고 건수가 변하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 총량으로는 기업간 비교가 어려운 것과 동일한 이치다.
매출이나 근로자 수는 사업 형태에 따라 다양한 노이즈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근로 시간’을 사용하여 표준화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데, 안전 사고 건수를 근로시간으로 표준화한 지표로서 근로손실재해율(Lost Time Injury Frequency Rate)이 대표적인 지표이다.
안전사고는 단순한 규제 준수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가치에 점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아직 데이터와 공시 체계는 미비하지만, 제도 변화와 투자자 관심 확대에 따라 점차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 입장에서는 안전을 비용 항목으로만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장기적 성과와 신뢰를 지탱하는 기반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느린 불씨’로서의 안전사고를 방치한다면, 어느 순간 기업가치를 삼켜버리는 거대한 화재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박세원 팀장은
박세원 팀장은 국내 ESG리서치 기관에서 ESG리서치 및 의결권행사 등의 업무를 수행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5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종합자산운용사인 키움투자자산운용에서 ESG전담부서를 맡아 ESG 투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체적인 ESG평가 모형을 비롯한 ESG리서치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운용부서와 협력하여 ESG요소를 투자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