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공동체 파괴 행위의 면책특권 아니다 [칼럼]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는 서구 근대사상의 산물처럼 이야기되지만 한국 사회 역시 오래전부터 공동체와 민심, 인간 존엄과 공론의 중요성을 고민해왔다.
표현의 자유는 오랫동안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처럼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서구 사회는 왕권과 검열, 종교권력과 독재에 맞서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확대해왔고, 이는 현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 역시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구 자유주의가 처음부터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유를 의미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날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는 보편적 자유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미국 건국 초기의 자유는 실제로는 제한된 자유였습니다. 노예와 여성, 원주민과 빈곤층은 그 자유의 주체에서 상당 부분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자유란 상당 부분 재산과 권력을 가진 시민 남성들의 자유에 가까웠습니다. 초기 자유주의는 인간 전체의 존엄과 평등 위에서 출발했다기보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신들의 권리와 재산을 보호하려는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극우 정치세력이 이러한 자유 개념의 한계를 더욱 극단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MAGA 세력과 한국 극우 정치세력 일부가 말하는 자유는 공동체 전체의 자유 확대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 자유는 냉소와 조롱, 선동과 허위정보를 정당화하는 언어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조롱과 봉하마을 희화화, 여성과 이주민에 대한 혐오 선동, 음모론과 허위정보 확산조차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존엄과 공론장을 무너뜨리기 위한 면책특권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민들이 함께 시대의 문제를 토론하고 공동체를 유지·갱신하기 위한 공론의 자유에 가까웠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동아시아 정치문화 역시 표현의 문제를 개인 감정의 분출이나 사적 욕망의 배설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말과 글은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고 민심을 드러내며 권력이 바른 정치를 하도록 만들기 위한 공적 행위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동아시아 사회 역시 권위주의와 탄압의 역사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권력 역시 공론과 민심을 함부로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규범 또한 존재했습니다. 표현은 공동체와 분리된 사적 권리라기보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과 함께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과 알고리즘, 극우 정치와 혐오 선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과연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그것은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자유인가. 아니면 공동체가 스스로를 성찰하고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공론의 자유인가. 이번 글에서는 이 문제를 동아시아 공론 전통과 미국 수정헌법의 역사, 그리고 한국 민주공화정의 사상적 흐름 속에서 다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 맹자는 왜 폭군의 정당성을 부정했는가
— 민심·공론·역성혁명의 정치철학
맹자는 민심을 잃은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한다고 보았다. 동아시아 정치문화 역시 오래전부터 공론과 민심을 권력의 중요한 기준으로 이해해왔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정치문화를 이야기하면 흔히 위계질서와 복종, 충(忠)과 예(禮)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근대 이후 서구 중심의 시각 속에서 유교(儒敎)는 권위주의와 집단주의의 사상처럼 이해되는 경향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맹자(孟子, BCE 372?~289?)의 정치사상은 그러한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오히려 맹자는 중국 고대 유학(儒學) 사상 가운데서도 민심과 공론을 통해 권력을 제한하려 했던 매우 역동적인 정치철학자에 가까웠습니다. 맹자는 『맹자(孟子)』 「진심장구(盡心章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이 짧은 문장 속에는 상당히 급진적인 정치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국가의 정당성은 군주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공동체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왕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민심과 공동체 위에서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이 이미 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맹자의 정치사상이 더욱 인상적인 이유는 폭군의 정당성을 사실상 부정하는 대목에 있습니다.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서 제나라 선왕은 탕왕이 걸왕을 몰아내고, 무왕이 주왕을 정벌한 일을 두고 신하가 군주를 죽인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이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인의를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한다. 잔적한 자를 일개 사내라 부른다. 나는 주왕이라는 일개 사내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대단히 강한 표현입니다. 민심과 도덕성을 상실한 군주는 더 이상 군주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정당성은 혈통이나 무력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민심과 공론을 잃는 순간 스스로 붕괴할 수 있다는 사고가 이미 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맹자의 이러한 사상은 흔히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왕조의 성씨가 바뀌는 혁명, 곧 민심을 잃은 권력은 교체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왕조 교체의 명분을 제공하는 이론이 아니었습니다. 정치 권력 역시 공동체와 민심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강한 정당성 이론이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맹자에게 민심은 침묵하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민심은 드러나야 했고, 공론은 형성되어야 했으며, 권력은 그것을 경청해야 했습니다. 유교 정치문화에서 언로(言路)를 막는 행위가 폭정의 징표로 이해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간언을 거부하고 비판을 억압하며 공론을 차단하는 군주는 스스로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맹자는 표현의 자유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군주가 백성의 말을 듣지 않고, 측근과 아첨꾼의 말만 듣는 정치를 경계했습니다. 『맹자』 「이루장구(離婁章句)」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좌우가 모두 현인이라 말해도 믿지 말고, 대신들이 모두 현인이라 말해도 믿지 말며, 나라 사람들이 모두 현인이라 말한 뒤에야 살펴보라.”
(左右皆曰賢 未可也 諸大夫皆曰賢 未可也 國人皆曰賢 然後察之)
권력이 폐쇄된 권력 내부의 목소리에 갇혀서는 안되며, 결국 공동체 전체의 평가와 공론을 확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맹자에게 언로는 말할 권리 이전에, 나라의 잘못을 발견하고 바로잡는 통로였습니다. 백성의 목소리가 사라진 정치는 결국 왕도정치(王道政治)가 아니라 패도정치(覇道政治)로 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서양 정치사상에서 권력자의 말할 권위”가 중요하게 작동했던 경우가 많았다면, 맹자에게 중요한 것은 오히려 군주의 듣는 자세”에 가까웠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표현을 공동체의 공론 질서 속에서 이해하려 했던 동아시아 정치문화의 특징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정치제도 역시 이러한 유교 정치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사간원(司諫院)·사헌부(司憲府)·홍문관(弘文館)으로 구성된 삼사(三司)는 왕권과 관료사회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언관들은 왕에게 공개적으로 잘못을 지적할 수 있었고, 상소와 간쟁(諫諍)은 정치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로 여겨졌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붕당정치와 권력투쟁, 사화(士禍)와 숙청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공론을 통한 권력 견제라는 원리 자체는 제도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유교 정치문화의 역동성이 조선 후대로 갈수록 점차 약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성리학(性理學)이 국가 지배이념으로 자리잡은 이후 조선 후기의 유학은 현실 정치와 공론의 긴장감보다는 명분과 예학(禮學), 질서 유지 중심으로 경직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송논쟁과 사문난적(斯文亂賊) 논쟁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윤휴(尹鑴, 1617~1680), 박세당(朴世堂, 1629~1703) 등은 이러한 성리학 정통성을 둘러싼 정치 속에서 사문난적으로 몰려 공격과 탄압의 대상이 된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결국 조선 후기의 유학은 살아 있는 공론의 철학이라기보다 지배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직된 국가이념으로 기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교 정치사상 전체를 복종과 권위주의의 철학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습니다. 적어도 맹자의 정치철학 속에는 민심과 공론을 통해 권력을 견제하려는 강한 정치적 긴장감과 공동체적 책임의식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오늘날 민주공화정과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민주공화정 역시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할 수 없으며, 공론과 공동체의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은 제한되고 교체될 수 있다는 원리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 미국 수정헌법은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 국가 권력 공포와 표현의 자유의 탄생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가장 강력하게 헌법에 규정한 근대 국가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미국 수정헌법 제1조(First Amendment)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가장 강한 표현의 자유 조항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집니다. 내용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연방의회는 종교를 설립하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으며, 언론 또는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 수 없다.”(U.S. Constitution, First Amendment, 1791)
미국은 1787년 헌법 원문 위에 수정헌법(Amendment)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체제를 유지해왔습니다. 현재 미국 헌법에는 27개의 수정헌법이 존재하며, 1791년 비준된 수정헌법 제1조부터 제10조까지는 ‘권리장전(Bill of Rights)’으로 불립니다. 수정헌법 제1조는 종교·언론·집회·청원 등 시민 자유 전반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후 미국 정치문화 전체를 규정하는 핵심 원리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 역시 추상적 철학적 논의에서만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매우 구체적인 역사적 공포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당시 미국 건국세력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국가 권력이었습니다. 특히 영국 왕권과 식민통치 경험은 미국 사회에 강한 국가권력 불신을 남겼습니다. 독립혁명 이전 영국은 식민지 언론과 출판을 강하게 통제했습니다. 왕권과 식민총독, 국교회 체제는 반정부적 주장과 급진적 정치사상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고, 인쇄물 검열과 선동죄 처벌 역시 빈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1735년 뉴욕의 인쇄업자 존 피터 젱거(John Peter Zenger, 1697~1746) 사건은 미국 언론 자유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됩니다. 젱거는 식민지 총독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지만, 배심원단은 무죄 평결을 내렸습니다. 이후 이 사건은 권력을 비판할 자유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미국 독립혁명 이후에도 이러한 불신은 계속되었습니다. 미국 건국 초기 반연방주의자(Anti-Federalists)들은 강한 중앙정부가 결국 또 다른 왕권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들은 헌법만으로는 시민 자유를 충분히 보호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결국 1791년 권리장전(Bill of Rights)으로 불리는 수정헌법이 추가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의 이러한 국가권력 불신에는 남부의 자치주의 정치문화 역시 깊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남부의 대농장 경제를 기반으로 성장한 엘리트들은 강한 연방정부가 지역 자치권과 자신들의 경제 질서에 개입할 가능성을 경계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노예경제를 유지하려는 이해관계 또한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연방권력 제한과 주(州) 권리(states’ rights), 중앙정부에 대한 경계는 미국 초기 정치문화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됩니다. 실제로 미국 건국의 핵심 지도자였던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과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역시 모두 남부 버지니아 기반의 대농장 엘리트였습니다. 이들은 공화국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지나치게 강한 중앙권력이 새로운 형태의 압제로 변질될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특히 제퍼슨은 느슨한 형태의 연방과 강한 지역 자치를 선호했으며, 수정헌법(Bill of Rights) 논의 과정에서도 연방권력 제한과 시민의 권리 보장을 중시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자유와 자치의 언어는 당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부 엘리트들이 말한 자유에는 노예와 여성, 원주민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 초기 자유주의는 보편적 인간 존엄 위에 서 있었다기보다 상당 부분 재산과 권력을 가진 시민 남성들의 자유에 가까웠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 자유주의는 위대한 민주공화정의 이상과 동시에 깊은 구조적 모순 역시 함께 안고 출발하게 됩니다. 물론 수정헌법 제1조 자체를 남부 백인우월주의의 산물로만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조항은 이후 노예제 폐지운동과 여성참정권 운동, 노동운동, 흑인 민권운동, 반전운동 등을 보호한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로 역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강한 국가권력 불신과 남부 자치주의 전통은 오늘날에도 미국 극우 정치문화의 중요한 역사적 토양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MAGA 세력은 연방정부 불신과 지역 자치 강조, ‘워싱턴 엘리트’ 공격, 총기 규제 반대, 연방 사법기관 불신 등을 통해 미국 건국 초기의 반연방주의 정치문화를 반복적으로 호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수정헌법 제1조가 만들어졌던 시대와 오늘날의 사회구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18세기 미국 건국자들이 상상했던 위험은 왕권과 국가 검열, 중앙정부 폭정이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민주주의는 전혀 다른 위기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플랫폼 기업과 알고리즘, 허위정보와 극단주의 정치가 결합한 새로운 위기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특히 극우 정치세력은 표현의 자유를 민주주의 토론을 확대하기 위한 원리가 아니라 혐오와 허위정보, 정치적 부족주의를 정당화하는 방패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오늘날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가장 치열한 문제 제기가 미국 밖에서가 아니라 미국 내부에서 등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디지털 플랫폼 시대의 표현의 자유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법철학자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 1954~ )은 『#리퍼블릭: 소셜미디어 시대의 분열된 민주주의(#Republic: Divided Democracy in the Age of Social Media, 2017)』에서 디지털 플랫폼이 시민들을 서로 다른 정보 공간 속에 가두며 민주주의 공론장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시민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접하지 못하는 ‘정보의 고치(information cocoon)’와 ‘에코 챔버(echo chamber)’ 현상이 민주주의 숙의 구조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2026) 역시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과 숙의정치(A New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 and Deliberative Politics, 2023)』에서 디지털 플랫폼과 소셜미디어가 시민들을 서로 다른 정보 집단으로 분리시키고 있으며, 알고리즘 기반 정보환경이 민주주의 공론장의 기반 자체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하버마스는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공통의 사실과 공통의 토론 공간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1947~ ) 역시 『혐오로부터의 군주정치(The Monarchy of Fear, 2018)』에서 공포와 혐오 정치가 민주주의 시민성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Timothy Snyder, 1969~ ) 또한 『폭정에 대하여(On Tyranny, 2017)』와 『자유에 관하여(On Freedom, 2024)』 등을 통해 허위정보와 선동정치가 시민사회의 판단 능력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 제도를 잠식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경고해왔습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애틀랜틱(The Atlantic)》,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 등 미국과 유럽의 주요 언론들 역시 디지털 플랫폼 시대의 혐오와 허위정보 확산 문제를 다루며 미국 수정헌법 중심의 절대주의 표현 자유 모델이 새로운 역사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The New York Times, 2024.1.8 / The Atlantic, 2023.9.12 / Financial Times, 2023.11.2).
그럼에도 미국 사회가 이러한 문제를 시대 변화에 맞게 수정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 헌법체계 자체에 있습니다. 미국 헌법 개정은 연방의회 상·하원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전체 주(州) 의회 4분의 3 이상의 비준을 필요로 합니다. 현재 미국은 50개 주 가운데 38개 주의 동의를 얻어야만 헌법 개정이 가능합니다. 사실상 사회 전체 수준의 거대한 합의가 없으면 개정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여기에 미국 보수 진영 내부의 강한 헌법 원문주의(originalism) 역시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미국 보수 법철학은 헌법을 시대 변화 속에서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기보다 건국 당시의 원래 의미에 최대한 가깝게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수정헌법 제1조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거의 미국적 정체성 자체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국의 시대정신을 지키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습니다. 문제는 시대 변화 속에서도 그것이 여전히 살아 있는 원리로 작동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문제를 설명하지 못하는 사상은 점차 교리처럼 굳어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표현의 자유 자체를 축소하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날 민주공화정은 표현의 자유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공론장과 시민공동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과제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상과 제도는 결국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스스로 경직되고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미국 수정헌법 제1조 역시 국가 검열을 막기 위한 자유의 원리가 혐오와 허위정보, 극우 선동을 정당화하는 방패로 활용되며 민주주의 공론장을 위협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결국 18세기의 자유 개념이 21세기 디지털 플랫폼 사회의 문제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일부 극우 정치세력과 언론이 이러한 미국 내부의 복합적 논의와 위기의식을 외면한 채, 오히려 미국식 절대주의 표현 자유 개념만을 단순 수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혐오표현과 허위정보, 음모론과 조롱 문화조차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며, 공동체의 공론 질서와 시민적 책임은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결국 표현의 자유는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권리만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시민의 존엄을 지키며 민주공화정을 지속시키기 위한 공론의 질서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 존엄과 공동체 공론을 함께 고민해왔던 한국의 사상 전통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 동학은 왜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말했는가
— 인내천과 한국 민주공화정의 뿌리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선언했다.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공공성을 함께 사유하려 했던 이 정신은 한국 민주공화정의 중요한 철학적 뿌리 가운데 하나였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오늘날의 혼란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집니다. 표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것은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자유인가. 아니면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인간다운 존엄을 유지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론의 질서인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조선 말기의 동학(東學)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사회는 극심한 신분질서와 탐관오리의 수탈, 외세 침략의 위기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고, 정치권력은 민심을 잃은 채 부패와 붕괴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 속에서 수운 최제우(崔濟愚, 1824~1864)는 전혀 새로운 인간 선언을 내놓았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종교적 표어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 자체를 신성의 차원까지 끌어올린 급진적 사상이었습니다. 양반과 상민, 천민과 여성으로 구분되던 조선 후기 신분질서 속에서 모든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선언은 기존 질서 전체를 뒤흔드는 철학적 혁명에 가까웠습니다.
해월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같이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동학의 민심즉천심(民心卽天心) 사상은 백성의 마음 자체를 곧 하늘의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백성을 보호의 대상이나 통치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질서와는 다른 시선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인간을 공동체의 존엄한 주체로 바라보는 철학이 담겨 있었습니다.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 ) 역시 『동경대전』 강해와 여러 저작·강연에서 동학을 한국 사상사에서 가장 급진적인 인간 해방 사상 가운데 하나로 평가해왔습니다. 그는 인내천 사상이 인간 존재 자체의 절대적 존엄을 선언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서구 자유주의가 개인 권리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동학은 인간 존재의 존엄과 공동체 윤리를 함께 사유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동학농민혁명이 요구했던 내용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특징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동학농민군은 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한 폭동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탐관오리 숙청과 부패 척결, 과도한 수탈 중단, 신분질서 개혁, 민생 안정, 외세의 침탈 속에서 나라와 민생을 지키려 했습니다. 이것은 무너진 공공 질서를 다시 세우고 인간 존엄 위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에 가까웠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동학의 문제의식이 오늘날 민주공화정의 핵심 가치들과 상당 부분 연결된다는 사실입니다. 민주공화정 역시 권력이 특정 지배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 전체의 공적 위임 위에서만 정당성을 가진다는 원리 위에서 작동합니다. 또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존엄한 시민으로서 공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역시 민주공화정의 중요한 전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 점에서 동학은 조선 후기의 민중종교라는 범주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한국 민주공화정 정신의 중요한 철학적 뿌리 가운데 하나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이후 천도교를 거쳐 3·1운동의 중요한 기반 가운데 하나로 이어졌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과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습니다. 실제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임시헌장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서구 헌정질서를 기계적으로 수입한 문장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프랑스혁명과 미국혁명, 근대 입헌주의의 영향 역시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선언 속에는 오랫동안 이 땅에서 이어져온 민본주의와 공동체 공론의 정신, 그리고 동학이 보여준 인간 존엄의 철학 또한 함께 흐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서구 근대사상의 산물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 역시 오래전부터 공동체와 민심, 인간 존엄과 공론의 중요성을 고민해왔습니다. 고조선의 홍익인간(弘益人間)에서부터 맹자의 민본주의, 동학의 인내천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상사에는 공동체 전체의 존엄과 공공선을 강조하는 흐름이 분명히 존재해왔습니다. 오늘날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 역시 결국 이 문제로 돌아옵니다. 말과 표현은 공동체를 냉소와 혐오 속으로 붕괴시키기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시민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시대의 문제를 해결해가기 위한 공론의 질서인가.
독재는 자신의 말만 남기려는 체제입니다. 그러나 민주공화정은 서로 다른 시민들의 목소리가 공론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유지됩니다. 그리고 동학은 이미 오래전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권력은 정당할 수 없으며, 공동체 역시 인간의 존엄 위에서 다시 세워져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결국 표현의 자유란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시민들이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토론할 수 있도록 만드는 민주공화정을 지탱하는 공론의 질서 속에서 비로소 살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병권 인문연구가 lbkwon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