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국정과제, 기후·ESG 공약 비중 축소…향방은 국회로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13일 향후 5년간의 국정 운영 방향을 담은 123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564개 실천과제가 함께 마련됐지만,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보고대회에서는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기후·ESG 부문은 목표와 재정 계획 모두에서 빈틈이 드러나, 정책 우선순위와 정부 의지를 국민에게 명확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팩트온은 대선 공약과 비교해 이번 국정과제에서 빠지거나 후퇴한 핵심 내용을 짚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국정기획위원회
목표·재정 모두 빈틈…힘 빠진 기후 정책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취임선서에서 기후위기가 인류를 위협하고 산업의 대전환을 압박한다”며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재생에너지 중심의 사회로 조속히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환경단체들은 대통령이 취임선서에 기후를 두 차례나 언급했음에도 이번 국정과제를 살펴볼 때 기후위기 대응을 국가 운영의 핵심 전략으로 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녹색전환연구소와 플랜1.5는 13일 각각의 논평에서 감축 목표와 재정 계획, 핵심 수단 모두에서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임기 내 확정돼야 할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달성 경로가 제시되지 않았고, 2030년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78GW)가 전 정부 수준과 유사해 OECD 최하위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밝혔다. 기후·에너지 정책을 총괄할 ‘기후에너지부’ 신설 등 거버넌스 개편 방향이 부재하다고 비판했다. 녹색전환연구소는 2030년까지 기후대응 기금을 20조원까지 확대하자고 제안했는데, 현재 정부의 재정 투입 계획이 총 7조원에 불과해 필요치에 크게 못 미친다고 덧붙였다.
플랜1.5는 국정과제에서 2035년 감축 목표의 설정이 누락된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과학적 기준과 국제 합의 수준에 부합하는 감축 목표 설정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하지만, 이번 국정과제에는 관련 언급조차 없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목표 상향이 빠져 있고, 신규 원전·석탄 감축·전기차 보급 확대 등 주요 감축 수단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국정과제에 포함된 ‘에너지고속도로’ 정책은 재생에너지 중심의 분산형 전환과 방향이 다르다는 평가다. 장기 감축 경로와 배출권거래제 강화 등 핵심 정책은 표현만 언급됐을 뿐, 실행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발걸음 멈춘 핵심 공약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당시 중앙 공약집에서 약속했던 ‘상장회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 신속 추진’이 123개 국정과제에 명시되지 않았다. 2023년부터 공시 로드맵 발표가 지연되는 가운데, 핵심 공약이 멈춰 선 모양새다.
사안에 정통한 익명의 국정위 관계자는 임팩트온에 최근 상법개정안이라는 강력한 기업 규제법이 국회를 통과한 상황에서 또다른 규제 카드인 공시 의무화를 꺼내기에는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다만, 47번 과제인 ‘코리아 프리미엄을 향한 자본시장 혁신’의 실천 과제로 공시 의무화에 대한 항목이 포함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금융위원회에 ESG 공시 의무화를 조속히 촉구하라는 요구가 안건으로 나온 것처럼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의제로 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ESG 기본법, 국회 주도의 입법 전망
대선 공약이었던 ESG 기본법 제정도 이번 국정과제에서 빠졌다. 중앙 공약집에는 ▲국내 여건과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객관적 ESG 평가체계 구축 ▲ESG 워싱 규제 강화 ▲기후계획·감축목표의 주총 의결 안건 상정 및 지원을 위한 ‘기업의 ESG 도입·확산 지원법(가칭)’ 추진 ▲ESG 우수기업에 대한 재정·행정 지원 제도화가 담겼다. 대선 당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가 각 정당 후보들에게 보낸 질의서 답변에서도 이 대통령은 ESG 기본법 제정에 찬성했다.
법안은 국정과제와 별개로 국회 발의가 이어져 왔다. 21대 국회에서는 조해진·이원욱 의원안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22대 국회에서는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국회ESG포럼이 재추진에 나서고 있다. 국정과제에서는 확인되지 않지만, 국회 주도의 입법은 계속될 전망이다. ESG 기본법의 골자는 ▲국가·지자체·기업·금융기관의 책무 ▲5년 단위 기본계획 수립 ▲국무총리 소속 위원회 설치 ▲공시 기준 마련 등이다.
산업계에서는 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ESG경영개발원이 7월 134명의 기업 및 기관 ESG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새 정부 출범에 따른 ESG 동향 분석’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7.3%가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로 ‘ESG 기본법 제정’을 꼽았다. 응답자들은 글로벌 공급망 규제와 ESG 투자 확산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법적 정의와 절차가 통일된 ESG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에너지부 신설, 컨트롤타워 공백 지속
이 대통령은 대선에서 환경부 기후정책실과 산업부 에너지정책실을 통합한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공약했다. 국정기획위원회도 6월 성장정책 해설서에서 ‘에너지 전환·산업 업그레이드’를 5대 과제 중 하나로 제시하며 기후에너지부의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이번 국정과제에 명시되지 않았다.
국정과제에는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 과제는 환경부가, 에너지 관련 과제는 산업부로 소관이 분리되어 명시되어 있는 상황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12일 발간한 ‘기후·에너지 관련 정부조직 개편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에너지 정부조직 개편 방안으로 크게 세 가지 안이 논의되고 있다. 1안은 환경부의 기후 정책 부문(기후탄소정책실)과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부문(에너지정책실)만 분리하여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는 방안이다. 2안은 환경부가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부문을 흡수해 ‘기후환경에너지부’로 확대 개편되는 방안이다. 마지막 3안은 산업통상자원부에 환경부의 기후 정책 부문을 이관하여 ‘기후에너지산업통상부’를 만드는 방안이다.
국정위는 규제 부처인 환경부와 진흥 부처인 산업부의 이견으로 2안과 3안 사이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확인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질적인 업무를 담당한 두 부문이 하나로 합쳐질 경우 부처 내 갈등·마찰이 발생할 우려가 크기에, 이를 예방하고 해결할 방안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기후에너지부 신설에 관련하여 기능과 권한 배분 원칙을 사전에 명확히 하고, 기후정책 특성에 맞춰 정책 조정권과 예산 집행권을 함께 확보할 수 있는 조직 설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또한 산업계·환경단체·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공청회와 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권고했다.
녹색투자금융공사 설립, 기후금융 인프라 미비
중앙 공약집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녹색투자금융공사 설립은 22대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공약에 명시된 핵심 의제였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의 대선 후보 정책 질의서에도 녹색금융공사 설립 필요성이 담겼고, 이재명 대통령은 해당 안건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해당 안건 역시 이번 국정과제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이 정책은 재생에너지 기업과 녹색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탄소 가치 기반의 자금조달 시스템을 구축하고, 녹색 보증과 같은 금융수단을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과거 녹색펀드가 전문성 부족, 장기 전략 부재, 이해관계 충돌 등으로 낮은 투자 성과를 보였던 한계를 보완하고,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는 구조를 통해 리스크를 줄이며 안정적인 투자를 유도하려는 취지다.
시민사회에서는 녹색투자금융공사의 설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녹색전환연구소, 플랜1.5,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은 지난 6월 정부에 ‘기후금융 10대 정책’을 제안하며, 이를 ‘기후투자공사’ 설립을 촉구한 바 있다. 이들은 해당 공사를 공적 자금 집행과 녹색금융상품 개발을 전담할 기관으로 정의하며, 탄소중립 산업 육성을 뒷받침할 핵심 금융 인프라로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의로운 전환, 균형 없는 성장 일변도 정책
정의로운 전환 역시 중앙 공약집에는 포함돼 있지만, 국정과제에서 명시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정의로운 전환은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며,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공정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 방향을 의미한다.
5대 국정목표 중 혁신 경제는 과제의 대부분이 AI와 기후변화 등 전환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와 불평등을 완충할 정의로운 전환이 핵심 과제에서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의 ESG 실무자는 임팩트온과의 인터뷰에서 혁신경제 항목에는 디지털 전환과 탈탄소 전환 과제가 대거 포함됐지만, 전환의 그늘에 놓일 산업과 직업군, 지역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며 성장 중심의 설계에 치우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정의로운 전환이 메인 과제로 포함됐다면 시장에 더 강력한 시그널을 주고, 전환의 부작용을 완충할 제도 설계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