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의 ESG적 생각】 ESG의 렌즈로 ‘로컬’ 바라보기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로컬’이 화두다. 로컬의 지속가능성은 사회의 지속가능성, 국가의 지속가능성과 연결된다. 지역의 인구가 급감하면 상권이 붕괴하고, 전반적인 지역경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기업은 그 지역을 떠나게 되고, 일자리는 더 줄어들며, 세수 또한 감소한다. 이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지역에서 이탈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다. 지역은 쇠퇴하고, 나아가서 소멸하게 된다.
소멸(消滅). 사라져 없어진다는 의미를 갖는, 사실 일상에서는 그리 쓸 일이 많지 않은 무거운 단어다. ‘지방 소멸’. 소멸의 대상이 지방이라니 기괴하기 짝이 없다. 지방 소멸이 본격적으로 논의의 테이블에 오른 지 이제 약 10년이 지났다.
일본 지자체의 절반 가까이가 소멸할 것이라던 마스다 히로야의 경고
당시 일본 이와테(岩手)현 지사와 총무상을 역임한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는 2040년까지 일본의 기초지자체 중 49.8%가 소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나라의 읍·면·동·리에 해당하는 896개의 지역(시·구·정·촌, 市區町村)이 사라질 수 있다는 섬뜩한 분석이었다.
그는 대도시만 살아남는 ‘극점(極點) 사회’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모든 자원이 도쿄에 집중되고, 도쿄로 모여든 젊은이들은 저임금과 고물가 등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을 유예하다가 결국 포기하기에 이른다. 저출산 문제가 장기화하면서 종국에는 도쿄가 축소되고, 일본이 파멸한다는 것이 이른바 ‘마스다 리포트’의 골자다. 이 리포트는 이후 <지방 소멸>이라는 책으로 재탄생한다. 그 책의 출간 시점이 2014년이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여타 선진국 대비 수도권 집중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극점 사회’가 됐다. <지방 소멸>에서 진단했던 일본의 여러 문제점은 한국에서도 여과 없이 공통으로 벌어지고 있다.
로컬의 지속가능성과 다양성 담론의 성숙도
ESG의 렌즈로 로컬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도 로컬의 지속가능성과 밀접히 맞닿아 있다. 마스다 히로야는 올해 국내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외국인 10%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 활성화는 외국인 수용에 대한 논의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며 ‘냉정한 논의’를 주문했다.
이 또한 지금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메시지다. 이민청 설립 등 이민정책에 대한 논의가 왕성한 요즘, 우리는 얼마나 ‘외국인 수용’에 대해 ‘냉정한 논의’를 할 준비가 된 것일까? DEI 중 다양성 담론은 어느 정도로 성숙되어 있는 것일까? 다문화 사회에 대해서는 얼마나 열린 마음을 갖고 있을까? 아직 우리 사회에서 어떤 정책 도입에 대한 ‘공적 판단’은 이 정책을 주도하는 진영이나 인물에 대한 ‘사적 평가’에 가려지는 경우가 허다한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ESG, ‘평가’를 넘어 ‘사회과학적 의제’로 지위 격상
로컬로 눈을 돌렸을 때 고려해 볼 수 있는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지방 소재 대학교의 경쟁력, 학생들의 지역 내 취업 등은 교육 및 일자리 이슈와 직결되며, 여기서 기업의 역할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 정치학의 현미경을 들이밀면, 지역 정당에 관해서도 다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지역 정당을 한국 사회의 병폐인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구시대적 산물로만 볼 것인지, 지역의 이슈를 해결하고자 자생적으로 조직된 결사체로 볼 수는 없는지, 쉽게 결론 내기 어렵고 철학적인 고민거리를 듬뿍 배태하고 있다.
또 로컬의 개념 자체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제기할 수 있다. ‘로컬=지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까? 그러면 수도권에 소재했으면 로컬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일까? 로컬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닐까? A 지역이 B 지역보다는 로컬의 성격을 가질 수 있지만, C 지역과 비교하면 이른바 대도시의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울러 로컬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도 되짚어봐야 한다. 로컬을 그저 단순히 활성화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끝없이 객체화하는 것은 아닌지. 마치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바라보듯, 대도시라는 이유로 서푼짜리 선민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속가능한 정주 여건은 면밀히 고려하지 않고 하루 이틀짜리 관광 및 여가 콘텐츠로만 로컬을 소비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릴 수 있는 힙한 명소로만 로컬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게 모르게 나오는 이런 태도와 편벽된 서울 중심적 인식이 로컬 입장에서는 ‘내부식민지(internal colony)’를 연상케 하지 않을지.
ESG적 사유와 자세를 호출할 시점이다. ESG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ESG가 지방 소멸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는 있다. ESG와 로컬이 결합하면, 어떤 맥락에서든 ESG는 사회과학적 의제로 치환된다.
KCGS 등 평가기관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는 것이 ESG의 전부인 양 오독하는 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ESG 담론의 지위 격상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ESG 평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ESG 평가 결과로 ESG의 A부터 Z까지 한 번에 재단하려 하고, 평가 이외의 것들을 소홀히 여기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을 뿐이다.)
ESG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로컬은 또 다른 주요 키워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1번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Sustainable Cities and Communities)’와도 결부된다. 극점 사회에서 ESG라는 접근법은 여러모로 긴요할 것이다.
☞ 김민석 팀장은
김민석 팀장(listen-listen@nate.com)은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인 마스턴투자운용에 재직 중이다. 브랜드전략팀 팀장과 ESG LAB의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행정학·정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필명으로 몇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외부전문가 자문위원,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외부 전문위원, 서울에너지공사 시민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