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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보통 이하’의 위대함

‘보통 이하’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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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성 재즈가수 익숙한 것에 대해 질문해보자. 그런데 문제는 이미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익숙한 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익숙한 것 또한 우리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 우리가 경험하는 것, 나머지인 것, 모두 나머지 것, 그것들은 어디에 있을까. 매일 일어나고 날마다 되돌아오는 것, 흔한 것, 일상적인 것, 뻔한 것, 평범한 것, 보통의 것, 보통 이하의 것, 잡음 같은 것, 익숙한 것, 어떻게 그것들을 설명하고, 어떻게 그것들에 대해 질문하며, 어떻게 그것들을 묘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평범한 것들’에 대해 말하고, 어떻게 그것들을 더 잘 추적하고 수풀에서 끌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그것들을 끈끈하게 감싸고 있는 외피에서 떼어내고, 그것들에 하나의 의미, 하나의 언어를 부여할 수 있을까. 마침내 그 평범한 것들이 자신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조르주 페렉의 『보통 이하의 것들(L’infra –Ordinaire)』 중에서) ‘세부 문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제친 조르주 페렉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실험정신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문학비평가이며 영화제작자인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1936~1982)은 60년대 전위문학을 주도했던 작가 (수학자, 화가)들의 문학 실험 그룹 울리포(Oulipo 잠재적 문학 공동작업실의 약자)의 핵심 멤버였다. 그의 작품 『사물들』 『인생 사용법』 『장소들』 『잠자는 남자』 『생각하기 분류하기』 『공간의 종류들』은 울리포의 실험 정신이 반영된 것이었다. 조합 문학으로 불리는 울리포는 조합식의 문자 배열을 추구하며 제한이 곧 창조를 낳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조르주 페렉 조르주 페렉의 데뷔작인 『사물들』은 젊은 부부를 둘러싼 사물들의 목록이 이야기의 중심이 다. 사건이나 심리를 대치하며 집요하게 이어지는 사물들의 묘사는 주인공들이 느끼는 욕망과 계급을 암시한다. 조르주 페렉은 이 소설로 르노도상을 수상하며 단번에 유명해졌다. 마치 현대 소비사회를 겨냥한 듯한 이 소설은 요즘 나온 문화 비평서로 느껴질 만큼 실험적이다. 불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e’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장편소설 『실종(La Disparition1969)』과 그로부터 3년 후, 모음 중 ‘e’만 사용한 소설 『돌아오는 사람들(1973)』을 출간해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울리포의 실험정신을 토대로 한 그의 작품은 이전에 없던 ‘세부 문학’이라는 새로운 세계였다. 실험적 기법의 글쓰기로 ‘시간의 횡포’에 맞선 작가 1978년 메디치상을 받은 그의 걸작 『인생 사용법』은 파리의 한 아파트 건물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99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마치 각각의 단편을 읽는 듯한 느낌이다. 소설의 연결 구조는 체스의 행마법에 따른다. 퍼즐 맞추듯 흩어진 정보를 모으고, 인용과 다시 쓰기 등 실험적인 기법을 쓰고 있다. 방마다 사는 사람들의 삶과 사물은 페렉의 작품 노트에 도표로 실려 있다. 『인생 사용법』에 등장한 수많은 소재는 ‘유럽의 백과사전’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방대하다. 『인생 사용법』의 연작인 『어느 미술 애호가의 방(1979)』은 미술 애호가의 그림 사기극을 통해 진품과 위작에 대한 평가와 가치, 그리고 미술계에 대한 비평을 담고 있다. 『보통 이하의 것들』은 일상의 단상, 기록, 관찰을 담은 산문집이다. 그가 표현한 ‘네 개의 밭 (사회학적, 소설적, 유희적, 자전적 글쓰기)을 한데 모아 놓은 책이다. 한 목차인 에서는 발신자가 각국의 다양한 장소에서 엽서를 보내는 내용으로 인물, 장소, 활동, 즐거움, 특별한 작별인사 등과 엽서의 재료 목록이 도표로 나와 있다. 1974년 한 해 동안 페렉이 먹은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의 목록이 나오고, 그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기록한 페이지도 있다. 자신의 추억이 담긴 빌롱 거리를 12년 동안 12곳을 찾아가 기록하는 프로젝트도 나오는데 이것은 사라져가는 파리의 옛 모습을 남긴 역사가 되었다. 페렉은 현대인들이 모두 일종의 ‘일상적 실명 상태’에 빠져 있는데 여기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글쓰기를 통해 ‘현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록이야말로 ‘시간의 횡포’에 맞서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당연한 모든 것들에 대한 질문 때로 가계부처럼 보이는 그의 글쓰기 방식은 사물의 목록 사이에서 의미가 떠오르도록 놔두려는 치밀한 계획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보지 않는 것, 이를 그는 ‘보통(일상) 이하의 것’이라 불렀다. 그의 치밀한 사소함은 소설과 에세이에 등장하는 사물들의 목록이 읽어가는 중에 의미를 찾도록 (세계를 다시 쓰도록) 감각을 열어주는 도구였다. 감정이 배제된 채 나열되는 사물의 수치와 항목은 ‘삶의 리듬’과 ‘습관’을 의미한다. 그의 대표적인 에세이 모음집인 『생각하기/분류하기』는 그의 기록에 대한 애정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일상의 기록이야말로 페렉의 존재 방식이었다. 그는 감정이 배제된 기록만이 이미 있는 것을 다시 보게 하며, 가장 개인적인 삶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았다. 6세라는 어린 나이에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 희생자였던 부모들을 차례로 떠나보낸 외로운 천재, 조르주 페렉을 구원한 건 문학이였다. 폐암으로 45세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그가 생전에 썼던 모든 스타일이 담긴 책이 바로 『보통 이하의 것들』이다. 사물을 장르의 영역으로 확장해간 페렉은 말한다. 우리는 생애 동안 꿈도 없는 잠을 자고 있다”고. 그리고 이제 그의 말에 다시 귀를 기울일 때가 왔다. 너무 당연해 보여서 잃어버린 놀라움이라는 감정들과 벽돌, 콘크리트, 유리들, (그리고) 걷고 마시고 숨쉬며 살아가는 모든 것들에게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당연한 것을 다르게 봤기 때문에 예술이 된 작품들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살아있는 공작 한 마리가 등장했다. 랑시스 알리스의 예술작품으로 제목은 (공작의 일거일동)다. 작가는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공작은 자신이 마치 예술가라도 된 양,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온 전시장과 연회장을 휘젖고 다닐 겁니다”(이는 옛 동물 우화를 연상시키며 예술계의 허영을 풍자하는 일화를 암시한다) 마크 윌리저는 여기서 더 나아가 경주마를 등장시키는데 작품 제목은 이다. 실제로 시합에 나갔던 진짜 경주마였다. 이들의 작품은 ‘동요하는 오브제들’(헤럴드 로젠버그)로 불리는데 마르셀 뒤샹의 의 계보를 잇고 있다. 대상의 개념을 새롭게 창안한 것이다. 공작새나 경주마 그 자체로는 작품이 될 수 없다. 그들이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지에 대한 개념이 제시될 때 ‘동요하는 오브제’는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한가로이 거니는 것. 중국의 어느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이 가져온 악기를 연주하지 않고 흉내만 낸다. 피아니스트는 건반을 두드리지 않고 피아노 앞에 앉아만 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활을 허공에 대고 있다. 플루티스트는 플루트를 입에 대고 불지는 않는다. 이것이 공연 작품의 내용이다. 소리를 제거한 공연, 이는 ’잠재적인 음악들‘로 불린다. 존 케이지가 보여주었던 ’연주하지 않는 연주‘가 아니라 더 나아가 연주하는 척하는 연주’다. 음악의 본질인 소리를 제거하고 행위만 남긴 연주. 소리 없는 교향곡. 이는 페렉이 지향했던 것처럼 이미 있는 것, 너무나 당연한 것을 다르게 보는 것이 결국 예술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죽음의 창끝에서 나온 삶의 바늘 토인의 창과 재봉틀의 바늘은 관계가 있을까?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 둘을 연상시켜 꿈을 이룬 사람이 있다. 1846년 재봉틀을 발명한 일라이어스 하우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토인의 창끝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려 재봉틀의 바늘을 만들었다. 사람을 죽였던 창이 삶을 이어주는 바늘로 탄생한 것이다. 사물은 그대로인데 삶과 죽음이 나뉘어진다. 사물에 대한 개념에 따라 기능과 윤리가 바뀔 수 있다는 건 여전히 놀랍다. 그가 죽음의 상징인 창끝에서 발견한 것은 삶이었다. 그는 이미 예술가였다. 18세기 네덜란드의 문해력은 80%였다. 교육과 계몽, 혹은 문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닌 바로 ‘계약서’ 때문이었다. 지적 수준으로 평가되는 문해력이 계약을 이해하기 위한 절대적 도구였던 것이다. 네덜란드는 최초의 근대적인 주식회사(네덜란드 동인도 주식회사)를 보유하며 당시 유럽에서 가장 발달한 상업 국가였다. 네덜란드에서는 글을 읽는 것이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일종의 생존 방식이었다. 시를 읽고, 교양을 쌓는 것 보다 계약서를 쓸 줄 아는 게 시급한 상황 때문에 문해력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유명한 구절은 장미는 장미이고 장미이며 장미다(A rose is a rose is a rose is a rose)”이다. 이처럼 장미를 또렷하게 떠올리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장미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았기에 오직 장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그녀는 장미를 볼 때 장미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스타인의 장미’가 가장 화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모든 비유를 제거한 진실에 있다. 흔하디 흔한 장미가 매 순간 새롭게 존재하고 있음을 그녀는 잊은 적이 없으리라.   거트루드 스타인 맥주의 나라에서만 마실 수 있는 ‘맥주 없는 맥주’ 맥주의 나라 체코에서는 ‘맥주 없는 맥주’를 주문할 수 있다. 실제로 거품만 한 잔 주문해서 숟가락으로 떠먹기도 한다. 맥주 없는 맥주는 맥주의 ‘표면’인 ‘거품’만 남은 것이다. 거품을 떠먹고 비어 있는 잔도 여전히 맥주다. 맥주를 마시지 않아도 맥주를 경험할 수 있다. 세계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는 필스너, 우르켈 같은 양조장은 체코의 문화유산이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맥주 없는 맥주를 체코에서 주문할 수 있는 것은 맥주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세계 1인당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 체코의 전통 술집인 호스포다(hospoda)는 단순히 술을 마시는 곳이 아니라 친구와 이야기하는 공동체 공간이다. 그러기에 체코에서의 맥주는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게 아니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음료다. 는 오네트 콜멘(1935~2015·알토 색소폰)의 문제작이며 현대 재즈의 기념비적인 음반이다. 코드 진행과 하모니 구조의 곡이 대부분이었던 기존의 재즈형식에서 해방된 즉흥성과 해체된 멜로디로 이뤄진 일종의 실험 음악이었다. 프리재즈(Free Jazz)의 시초라 불리는 이 음반은 출시와 동시에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스케일과 화성이 강조된 피아노를 제거한 시도는 즉흥 연주자들이 멜로디와 리듬을 코드라는 경계 없이 주고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음반은 재즈가 아닌 다른 장르(현대 클래식, Rock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재즈클럽에서 오네트 콜멘의 연주를 보고 레오나드 번스타인이 천재라고 선언한 일화도 있다) 기존의 재즈 문법을 해체한 이 음반은 솔직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친다. 이 음반을 들으면 ‘e’를 뺀 페렉의 소설 『실종』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오네트 콜멘 ‘다가올 재즈’는 ‘낯섦’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을 제거하고도 존재할 수 있는 것,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중요하다고 느껴지지 못한 것, 예술가는 이 모든 것을 놓치는 법이 없다. 그들은 모든 것에 늘 약간의 주의를 기울인다. 일상이 ‘진주를 품은 조개’임을 안다는 듯. 그러니 페렉이 말한 보통 이하의 것들, 다시 말해 일상은 위대한 것이다. 일상의 사물들도 당연한 게 아니다. 예술은 ‘익숙함’이라는 과거에서 ‘낯섦’이라는 현재를 끌어올린다. 그 낯섦을 끌어올리고 있다면 자신이 예술가인지 모르는 예술가”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맥주, 공작새, 경주마, 재봉틀 바늘, 창, 계약서 이들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이 모두는 재인식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되었다. 이것이 ‘앞으로 다가올 재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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