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응원 틈틈이 전쟁 상흔 돌아보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2026 동계올림픽이 오는 6일 막을 올린다. 올림픽은 국가와 국가, 선수와 선수가 맞서는 경연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국가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올림픽을 바라보면 훨씬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해서 대회가 폐막할 때까지 그날 그날 발생한 일들의 지정학적 측면들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인구 6000명 밖에 안 되는 조그만 산악스키 마을인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에서는 6일 개막하는 동계올림픽 설상 종목 경기들이 열린다. 지난 3일(현지시간)의 이 마을 설경. 코르티나담페초 로이터 연합뉴스
2023년 6월의 코르티나담페초 마을. 뒤에 보이는 산이 팔로리아. 임병선
이번 올림픽 명칭에는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란 두 도시 이름이 들어간다. 지금까지 동계는 물론, 하계까지 통틀어 올림픽 개최지로 두 도시 이름이 들어갔던가? 혹시 그런 기억이 있나?
없을 것이다. 두 도시 이름이 올림픽 개최지로 등재되는 것은 올림픽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국내에서 개최된 1988 서울올림픽 때도 부산 수영만에서 요트 경기가 열렸지만 대회 명칭은 어디까지나 서울올림픽이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때도 강릉에서 컬링 경기가 펼쳐졌지만 대회 명칭은 평창동계올림픽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두 도시 이름을 못박기로 한 것은 신규 시설 건설을 최소화하고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권장하며 강조하는 지속 가능성 과 연결돼 있다. 그만큼 대회 규모가 커져 두 도시의 개최 부담이 대등해졌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다 돌로미티 산맥 가운데 자리한 코르티나담페초의 협소한 지형 탓에 이 도시 혼자 힘으로 올림픽을 개최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르티나 담페초는 이미 1956년 동계올림픽을 치른 경험이 있다. 생모리츠(1928년과 1948년), 인스브루크(1964년과 1976년), 레이크 플래시드(1932년과 1980년)에 이어 두 차례 동계올림픽을 치르는 네 번째 개최지가 된다.
70년 전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처음 대회가 열렸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종목은 24개에서 116개로 다섯 배로 늘었고, 참가국은 24개국에서 93개국으로 세 배가 됐다. 경기 개최일도 열하루에서 열아흐레로 늘었다.
2026년 동계올림픽은 동하계 대회를 통틀어 가장 넓은 면적에서 치러지며,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밀라노를 포함한 여러 지역과 도시에서 대회가 열린다. 개회식은 패션 도시이며 이탈리아 제2의 도시인 밀라노에서 열리고, 폐회식은 로미오와 줄리엣 의 무대인 베로나에서 열린다.
이탈리아 정부는 당초 코르티나담페초, 토리노에 이어 세 번째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두 도시 말고 토리노까지 엮으려 했으나, 두 도시와의 사이가 틀어진 토리노가 발을 빼면서 두 도시만으로 대회를 치르게 됐다.
대회 경기장은 크게 4개 클러스터로 구분된다. 개회식장인 산시로 올림픽 스타디움(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이 위치한 밀라노 클러스터에서 빙상과 아이스하키 경기가 펼쳐진다. 밀라노에서 400㎞ 정도 떨어진 코르티나담페초 클러스터에서는 알파인스키, 바이애슬론, 컬링, 썰매 경기 등이 열린다.
역시 밀라노와 200㎞ 이상 거리가 있는 발텔리나 클러스터에서는 스노보드, 프리스타일 스키, 산악 스키 등이 개최된다. 스키점프, 노르딕복합, 크로스컨트리 스키 등이 펼쳐지는 발디피엠메 클러스터도 밀라노에서 약 300㎞ 떨어져 있다.
경기가 열리지 않고 폐회식만 개최되는 베로나도 밀라노에서 약 150㎞,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약 250㎞ 떨어진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개·폐회식장을 포함해 이번 대회에 사용되는 15개 시설 중 새롭게 지어진 것은 밀라노의 산타 줄리아 아이스하키 아레나와 코르티나 슬라이딩 센터뿐이다.
경기장을 재활용하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코르티나의 올림픽 아이스 스타디움은 1956년 대회 개막식, 아이스하키, 피겨스케이팅이 열렸던 곳이다. 70년 전에는 노천 행사로 진행됐는데, 이제는 지붕을 덮어 한국인들이 많이 응원할 수밖에 없는 컬링 경기가 열린다.
제25회 동계올림픽 개막을 사흘 앞둔 3일(현지시간) 코르티나담페초 마을 건너편 토파나 산군을 배경으로 대회 깃발이 게양돼 있다. 코르티나담페초 EPA 연합뉴스
돌로미티 곳곳에 숨겨진 전쟁의 상흔
이맘때 전 세계 스키족들이 즐겨 찾는 코르티나담페초는 산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6월이나 한여름 돌로미티 트레킹 및 등반의 거점 도시로 기억된다. 이 마을에 여장을 푼 트레커들은 트레치메, 미주리나 호수, 라가주오이 산장, 친퀘토리, 이 마을을 둘러싼 두 산 팔로리아와 토파나로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겨울에는 스키족들이, 여름에는 트레커들이 이 마을을 거점으로 삼는다.
이곳은 신성로마제국 영토였다가 15세기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16세기부터 약 400년 동안 합스부르크 가문의 핵심인 오스트리아 공국-오스트리아 대공국 영토였다. 주민들은 독일어가 아니라 라딘어란 산악방언을 사용했다.
이곳에 유럽 스키족들을 불러모은 결정적인 계기는 역시 도로 건설이었다. 라가주오이 산과 친퀘토리를 품은 사스 데 스트리아 사이를 지나는 팔자레고 고개(해발 고도2105m)는 벨루노 지방의 높은 길이다. 1909년 아랍바와 코르티나 사이의 백운석을 가르는 도로 공사가 시작됐다. 이 길이 뚫려 돌로미티 관광 개발이 본격화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의 암운이 덮쳤다. 1915~1917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군 사이에 백운석 암벽이 전선 역할을 했다. 오스트리아군은 산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었고, 이탈리아군은 적군 지휘부 막사를 폭파시키기 위해 바위에 터널을 파거나, 산악 부대인 알피니들이 벽 등반을 하는 방법으로 폭파를 시도했다. 이곳에서 치열한 산악 전투가 벌어진 것을 기리기 위해 팔자레고 고개에 추모 기념비가 생겼다.
전쟁이 끝난 뒤 알피니들이 뚫은 길은 산악인들에게 비아 페라타 (Via Ferrata, 자일이나 로프를 걸어 암벽을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만든 쇠나 장비) 길을 제공했다.
2023년 6월 건너편 동굴에서 바라본 트레치메의 위용. 임병선
코르티나담페초 인근 돌로미티 산의 동굴들에서는 이렇듯 1차 세계대전 때 대포 등이 그대로 놓여 있다. 월간 산 2022년 11월 19일
개인적으로 두 차례 돌로미티를 다녀왔다. 친퀘토리나 라가주오이, 트레치메 등을 찾았을 때 손쉽게 군용 참호와 터널, 대포, 막사 등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험준한 지형에 터널을 뚫으면서까지 인류는 왜 그렇게 처절하게 싸웠을까, 상념에 젖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코르티나담페초 주변에서 열리는 설상경기와 컬링 중계를 보며 전쟁의 상흔과 교훈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