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 …풍요속 불면증은 어디서 오나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로큰롤의 황제로 불리운 엘비스 프레슬리는 20세기 대중문화사에 우뚝 선 영웅이었다. 흑인 음악인 리듬 앤 블루스에 컨트리 음악을 접목했고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압도적인 보컬로 10억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했다. 그런데 그는 1977년 42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원인은 과도한 약물 의존과 그로 인한 변비 등의 부작용이었는데, 엘비스는 사망 전 2년간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약 1만 9000회 이상의 수면제와 진통제, 안정제, 각성제 등을 처방받아 복용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하루에 평균 2회 공연을 했고, 심야 무대까지 자주 올라야 해서 생체리듬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그는 독창적인 춤, 뮤직비디오의 예술화, 인종 장벽의 타파 등으로 대중문화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고, 앨범 는 1억 4000만 장 이상 팔리면서 역사상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2009년 50세에 생을 마감했다. 원인은 무려 6주간 매일 투여받은 프로포폴에 중독된 것으로 밝혀졌고, 신경안정제를 함께 복용한 것이 상태를 악화시켰다고 한다. 당시 잭슨은 예전에 아동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다가오는 런던 공연을 앞두고 엄청난 중압감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잠은 모든 동물의 본능으로, 배우지 않아도 그리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인간도 출생 직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채울 정도로 수면은 가장 원초적인 생리 작용이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의 많은 수가 지금 수면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신체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조직화해야 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몸의 순리를 거스르기 일쑤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가운데 생존의 압박은 불면을 가중시킨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가속화되는 사회의 변화는 구성원들에게 과부하를 걸고 심신을 피폐하게 만들기 쉽다.
23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 가족마당 도시락공원에서 열린 2019 우푸푸 숲 속 꿀잠대회 에서 참가자들이 잠을 청하고 있다. 2019.6.23 연합뉴스
한국인들은 특히 더 잠을 못 이룬다. 압축적 경제 성장에 매진해오면서 밤낮없이 일하느라 ‘만성적 수면 부족 국가’가 되었고, 최근에는 로켓 배송이 확대되면서 철야의 과로가 돌연사를 종종 일으키기까지 한다. 다른 한편 입시 경쟁으로 청소년들이 늦은 시간까지 학원 수업을 받아야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게임이나 SNS에 오랜 시간 매달리는 경우도 많다. 물론 어른들도 늦게까지 스마트폰에 매달리느라 수면의 양이 줄어들고 질도 떨어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런가 하면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화에 따른 수면의 어려움도 가중되는데, 거기에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마음의 활력을 잃어버리고 신체의 움직임도 줄어드는 일상이 맞물려 있다.
현대인이 겪는 불면의 스펙트럼은 폭이 넓다. 한쪽 끝에는 야간 교대 근무자들처럼 물리적인 휴식 시간 자체가 모자라는 ‘수면 박탈’이 있고, 다른 끝에는 오랜 시간 잠자리에서 뜬 눈으로 이리저리 뒤척이며 밤을 보내는 ‘불면증’이 있다. 식사에 비유하여 전자가 굶주림이라면, 후자는 소화 불량이다. 그렇듯 잠들지 ‘못하는’ 양극단의 중간에는 잠들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창의적인 작업에 몰두하는 예술가,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학생이나 지식인, 게임이나 술이나 모임으로 밤을 지새우는 이들이 거기에 속한다.
수면의 부족은 건강을 훼손한다. 그런데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수면의 결핍을 채워주는 약물은 나오지 않는다. 영양 보충제는 있어도 수면 보충제는 없다. (수면 유도제나 멜라토닌은 수면을 도와줄 뿐, 수면 자체를 채워주지는 못한다) 불면증을 치료하는 시술이나 수술도 전혀 개발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요원하다. 그리고 날로 혁신을 거듭하는 AI가 여러 피지컬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 작용을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또한 물리적인 시간 자체를 조정할 수도 없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하루를 24시간 이상으로 늘일 수도 없고 시간의 흐름을 늦출 수도 없으며, 밤과 낮의 교차를 변경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수면 장애에 대해 다양한 솔루션이 나오고 있다. 수면 관련 의료 및 산업 시장(슬리포노믹스)의 규모는 세계적으로 750억 달러 정도이고, 한국만 해도 3조 원을 넘었다. 이른바 슬립테크(Sleeptech) 의료기기와 침구와 건강 기능 식품이 쏟아지고, 의료 시장에서는 수면 클리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관련한 전문 지식이 축적되면서, 책이나 유튜브 등에서도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그런데 거의 모두 의학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내용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처방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수면은 생리적 작용일 뿐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모든 심신의 질환이 그러하듯, 불면도 삶을 둘러싼 전반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고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자살이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지만 사회학적으로도 설명되듯, 잠도 오롯이 혼자만의 경험이지만 그 양과 질은 깨어있는 동안의 사회생활과 깊이 연관된다. 앞으로 이 연재에서는 현대인의 수면이 왜 불량해졌는지를 분석하면서, 최소한의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한 사회적 조건을 타진할 것이다. 아울러 불면증이 깊어지는 마음의 드라마를 탐구하고자 한다. 평온한 이완에 들어야 할 두뇌가 오히려 괴로움과 두려움을 일으키며 과잉 각성에 빠지는 메커니즘 말이다.
필자는 40대 초부터 3년 전까지 세 차례에 걸쳐 극심한 불면증으로 깊은 슬럼프에 빠진 경험이 있다. 어떤 사건으로 잠을 설치기 시작하여 수면 시간이 점점 짧아졌고 급기야 일상의 리듬이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생각의 회로가 부정적으로 형성되면서 우울증과 불면증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외부 활동도 불가능해지면서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정신과 치료와 심리 상담, 수면제, 기치료, 한방, 양압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방법들을 찾아다녔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하지 못했다. 결국 인지 재구조화와 마음챙김 수련을 통해 극복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할 것이다. 내가 겪은 고통을 다른 이들이 피해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싶어서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한국에서 종종 주고받는 아침 인사다. 어느 문화권이든 상대방에게 잘 잤느냐고 묻는 표현이 있지만, 한국처럼 일상에서 수면 안부를 정중하고도 자연스럽게 나누는 경우는 드물다. 숙면은 ‘안녕’의 핵심 조건이라는 생각이 거기에 깔려 있는 듯하다. 잠은 건강의 중요한 지표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행위지만, 시대 상황에 좌우되는 경험이기도 하다. 경제시스템, 욕망과 문화, 그리고 우리의 사고방식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실존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연재에서는 불면이라는 현대 특유의 증세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얼개를 조감하고, 심신의 균형과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타진하려 한다. 잠에 대해 성찰하면서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싶다.
* 이 글은 미국의 한인 동포 매체인 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