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과 루스벨트, 두 대통령의 역사적 조우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처음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생중계 한다고 할 때만 해도, 일종의 정치적 이벤트일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평생 TV 뉴스에서 몇날 몇시 국무회의가 열렸다는 소식을 화면과 함께 잠깐씩 접하기는 했지만, 대통령이 국무위원들과 함께 국정 현안을 토론하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지켜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이 취임 초반 며칠 간 대통령실 출입기자들과 하던 도어 스테핑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정치쇼 정도로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주 옛날 노태우 대통령도 취임 초기 잠깐, 자신이 ‘보통사람’이라며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쇼를 연출하기도 했지요.
유례없는 국무회의 생중계, 윤석열 도어 스테핑 같은 정치 쇼?
윤석열의 도어 스테핑 쇼는 얼마 가지 못했지요. 기자들의 버르장머리를 탓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지난 밤 마신 술이 덜 깨어 출근 시간을 제대로 지킬 수 없었던 탓도 있지만, 도무지 기자들과 즉문즉답을 할 만한 콘텐츠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도 윤석열을 되돌아보면 한 사람을 오래 속일 수 있고 여러 사람을 잠시 속일 수도 있지만, 여러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다”는 말이 참으로 명언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네요. 만일 이재명 대통령의 국무회의 생중계도 정치 이벤트 혹은 정치 쇼에 불과하다면 그 역시 오래가진 못할 겁니다. 정치 이벤트란 그 유효기간이 짧기 마련이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아직은 서로가 잘 모르는 인물들을 장관 자리에 앉혀놓고 공개적으로 ‘MT(멤버십 트레이닝)’ 혹은 ‘브레인 스토밍’ 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정체성을 확인하고, 방향성을 맞추려는 일종의 훈련과정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용도라면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긴 할 겁니다.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니까요. 이 대목에서 잠깐 예전 진보정권 때 비공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늘 졸았다던 어떤 괴랄한 정치인 한 사람이 떠오르긴 합니다. 이보다 더 비판적인 어떤 사람은 이 대통령이 능력 부족한 장관들을 이용해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과시하는 원맨쇼를 벌이는 것이라고 극혐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44회 국무회의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물가 동향 관련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2025.9.30. 연합뉴스
그런데 저는 국무회의 생중계가 이 대통령의 기발한 언론개혁 아이디어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 배경과 목적, 효과 등이, 여러분들도 중고등학교 수준에서 배워 잘 알고 계실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fireside chat)’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노변정담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강력한 개혁정책을 추진하면서 국민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만든 라디오 프로그램이지요.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국정 현안과 새로운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국민들이 자신감과 희망을 가지도록 노력했습니다. 결국 그는 대공황을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를 이끌면서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4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고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루스벨트 ‘노변정담’은 국민과 직접 소통 위한 고육책
루스벨트가 취임하던 때의 미국 경제는 3년 넘게 이어진 대공황으로 침몰 직전이었고 사회 양극화와 반정부 정서 역시 극심했습니다. 1300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공식적 실업률 25%) 수천 개에 달하는 은행과 기업이 도산했으며, 농산물 가격은 60%까지 떨어져, 농부는 농산물을 내다 팔 수도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가 하면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때의 참상은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 잘 묘사되어 있지요.
1933년 3월 4일 취임한 루스벨트는 죽기 직전인 미국을 살리기 위해 응급조치를 해야 했습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개혁법안을 통과시켜가며 뉴딜(New Deal)정책을 추진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기득권층이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비판하며 일제히 저항하고 나섰습니다. 우선 의회 내 야당, 대법원이 개혁에 반대했습니다. 무엇보다 부자들, 야심가들이 장악한 언론이 루스벨트의 개혁 정책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의 정적들은 뉴딜정책이 공산주의 혹은 나치의 정책이라고 공격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공격을 피해, 국민들에게 제대로 뉴딜 정책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인가? 뉴딜 정책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국민들이 얼마나 이 정책을 이해하고 지지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루스벨트는 국민들을 설득할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라디오를 통한 대국민 연설로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문은 보수화된 데다 지역적 한계가 있고, 아직 텔레비전은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은 시대, 소통의 가장 강력한 수단은 라디오였습니다. 마치 지금의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SNS를 연상시키지요?
그 때의 언론도 외면했던 ‘믿음’ ‘용기’ 그리고 ‘단결’
1933년 3월 12일,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한 지 불과 8일 만에 국민을 상대로 첫 번째 라디오 연설을 했습니다. 그것은 격식 차린 담화문이 아니었고 또 윗사람의 훈시도 아니었으며, 아는 사람들끼리 난롯가에서 나누는 친밀한 대화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밤입니다, 친구들(Good evening friends)’이란 인사로 시작해 뉴딜 정책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선후관계를 구체적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국민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이렇게 연설을 마무리합니다.
‘노변정담’ 방송하는 루스벨트 대통령 모습.
우리의 경제 시스템을 재조정하는 데 있어서, 화폐보다 더 중요하고 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입니다. 믿음과 용기는 우리의 계획을 실행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루머나 추측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서 우리 함께 뭉칩시다. 정부는 경제 시스템을 회복할 도구를 제공할 겁니다. 그러나 그 도구를 가지고 일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 자신입니다. 내 친구들이여!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나의 문제인 동시에,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함께 하는 한,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이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 생중계를 통해 우리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루스벨트가 라디오를 통해 직접 전했듯이, 이재명은 유튜브 혹은 케이블을 통해 직접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과 시대만 다를 뿐 두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똑같고, 똑같은 방식으로 돌파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길목 지키고 서서 삥 뜯는 조폭 피하는 방법
노변정담을 통해 루스벨트 대통령을 신뢰하게 된 미국 국민들은 은행 개혁에 대한 그의 다짐을 믿고 은행에 다시 돈을 맡겨 달라는 당부에 호응해, 저금을 빼내는 것이 아니라 집에 있던 돈을 다시 은행에 맡기기 위해 줄 서는 광경을 연출했다고 합니다. 마치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았을 때 우리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펼쳤던 것처럼 말이지요.
거기에 기성 언론의 역할은 없었습니다. 그때의 미국이나 지금의 한국이나, 언론은 라디오, TV 세트, PC 등 금속상자에 불과하거나 신문종이일 뿐, 제대로 언론의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근본적으로 정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며 일종의 구전을 얻어먹는 정보 장사꾼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팔릴 물건, 안 팔릴 물건 취사선택도 하고 약간의 가공도 하지요.
언론이 그런 정보 유통자 역할을 하면서 중립과 객관은 그만 두고라도 공정과 상식을 제대로 갖췄더라면, 언론을 패싱하고 국사를 날것으로 국민에게 전달하는 이런 모습까지 연출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같은 언론업에 종사하는 저로서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정보를 유통하면서 유통비를 과하게 책정하거나, 팔아야 할 물건, 팔아서는 안 될 물건 구별하지 않은 업보를 받는 거지요. 더 심하게 비유하자면 길목 지키고 서서 삥 뜯는 조폭생활이 종쳤다고나 할까요. 돈을 강탈 당하거나 폭행이 두려운 사람들은 애써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세상의 이치일 테니까 말이지요.
언론 생태계 정화될 때까지 생중계는 계속될 것
황금시간대에 30분가량 진행된 노변정담은 최고의 청취율을 보였고 루스벨트 대통령 재임 중 총 30여 차례의 노변정담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무회의 생중계가 얼마나 오래, 몇 번이나 더 진행될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다만 생중계가 필요 없을 정도로 언론이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고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언론 개혁은 여전히 우리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개혁 작업이 완수되는 시점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언론개혁이란, 또 한번 비유하자면 길목을 지키고 있는 조폭을 소탕하거나, 다른 안전한 길을 더 많이 만들고 넓히는 작업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