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투표 당선 심각, 실질적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해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1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한 인쇄소에서 관계자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비례대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선거 투표용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2026.5.17 [공동취재] 연합뉴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을 넘어섰지만, 우리의 풀뿌리 민주주의는 심각한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주권자인 주민이 투표소에 가기도 전에 당선인이 결정되는 무투표 당선 현상이 고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8회 지방선거에서 490명에 달했던 무투표 당선자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513명에 이르며 2000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지역의 살림과 행정을 총괄하는 기초단체장마저 단독 출마로 인해 투표 없이 임기를 시작하는 비정상적인 일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190조 제2항과 제275조에 따라 무투표 선거구가 확정되는 순간, 해당 선거구는 투표를 실시하지 않으며 그 후보자에 대한 모든 선거운동 역시 전면 중지된다. 이로 인해 유권자는 후보자의 도덕성과 공약을 검증할 최소한의 선택권 을 박탈당하고, 후보자는 자신을 알릴 선거운동의 기회 를 잃게 된다. 경쟁이 원천 차단된 선거는 주민 소외를 낳고, 결과적으로 지방의회의 역동성과 책임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지방정치 무대의 진입 장벽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 제도는 다양한 가치와 지역적 특성을 대변하고자 하는 신진 정치 세력이나 소수정당, 지역정당이 발을 붙이기 어려운 구조다. 경쟁자가 다양하지 못한 환경에서는 필연적으로 특정 세력의 쏠림과 무투표 선거구 양산이라는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무투표 당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비판이나 규제가 아니라,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문턱을 낮춰 더 많은 정치 주체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에 있다.
19일 서울 종로구 지하철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서울시선관위 관계자들이 스크린도어에 제9회 지방선거 투표 참여 홍보물을 부착하고 있다. 2026.5.19 [공동취재] 연합뉴스
국정 전반의 행정과 안전, 자치분권 선거 제도를 소관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으로서, 필자는 풀뿌리 정치의 다원성을 확보하고 유권자의 주권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도적 개선 과제 를 제안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첫째, 소수정당과 신진 정치 세력의 진입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중대선거구제 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초의원 선거구당 선출 인원을 최소 3인에서 5인 이상으로 확대하여 대안적 목적으로 출마하는 다양한 정당들이 의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다져야 한다. 다양한 정치 세력이 풀뿌리 무대에 등장해 건강한 경쟁 구도를 형성할 때, 자연스럽게 무투표 선거구는 사라지고 주민을 위한 정책 경쟁이 촉발될 것이다.
둘째, 지역의 고유한 현안을 책임감 있게 대변할 수 있는 지역정당(로컬정당) 의 설립과 선거 참여를 제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현행 정당법상의 과도한 요건을 완화하여 지역 주민들이 직접 조직한 정당이 지방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면 지방자치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거대 담론에 묻히기 쉬운 지역 밀착형 과제들이 활발히 논의되면서 선거의 활력도 되살아날 것으로 확신한다.
셋째, 이러한 제도 개편에도 불구하고 단독 출마 등으로 인해 후보자 수가 선거구 정수와 같아지는 구역이 발생한다면, 최소한의 유권자 검증을 위한 주민 검증 투표(찬반 투표제) 도입을 병행해야 한다. 경쟁자가 없다는 이유로 투표 자체를 생략하기보다, 신임 투표 형식을 거쳐 유효투표 총수의 일정 비율 이상 찬성을 얻도록 조율한다면 무투표 당선으로 인한 유권자의 권리 침해와 후보자의 알릴 권리 박탈을 최소화할 수 있다.
선거는 단순히 당선인을 골라내는 기계적 절차가 아니라, 다양한 비전이 부딪히며 지역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축제의 장이어야 한다. 투표함조차 열지 않는 선거를 방치하는 것은 자치분권의 정신에 어긋난다.
이광희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청주시서원구)
선거 제도의 다원적 개선은 집행 기관의 몫이 아닌 법을 만드는 국회, 특히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의 준엄한 책무다. 필자는 소수정당과 지역정당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내고 무투표 당선 예외 조항을 합리적으로 보완하는 공직선거법 개정 논의를 주도해 나갈 것이다. 기득권을 넘어 포용과 상생의 선거 제도를 설계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자치와 분권, 그리고 건강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완성될 것이다.
이광희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청주시서원구) goanhee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