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렴도 추락…계엄 · 책임자 처벌 못한 탓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2025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가 63점, 31위로 하락했다. 2017년 이후 지속되던 상승세가 처음으로 꺾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53점, 52위였던 한국은 지난해까지 11점, 22단계나 상승하며 국제투명성기구로부터 2012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개선된 3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청탁금지법과 이해충돌방지법 등 반부패 제도가 정비되고, 국민들의 높은 반부패 의식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그러나 이번 하락의 배경에는 12.3 비상계엄이라는 충격적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11일부터 12일까지 한국투명성기구 유한범 대표와 이번 부패인식지수 하락에 관해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투명성기구 유한범 대표는 부패인식지수를 산정하는 9개 조사가 2025년 상반기까지를 대상으로 했다 며 결국 12.3 계엄과 그 직후 드러난 한국의 부패, 책임자에 대한 불처벌이 영향을 미쳤다 고 분석했다. 특히 정부의 부패통제 기능 과 공직자 직권남용 처벌 가능성 지표에서 점수가 크게 하락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2024년 12월 비상계엄 이후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전문가 평가나 기업인 대상 설문조사에서 민감하게 작용했다 고 평가했다. 요건이 되지 않는데도 정치적 필요에 의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거나 동조한 책임자들이 제대로 처벌되지 않은 현실이 국제사회의 평가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한국투명성기구 유한범 대표
윤석열 정권의 반부패 정책 실종
계엄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윤석열 정권의 반부패 정책 부재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유 대표는 국가청렴 수준을 진단하여 대책을 마련하고 각계각층과 협력해야 하는데, 그럴 마음도 방향도 정책도 시스템도 없었다 고 지적했다. 반부패종합대책 같은 청사진이 국민에게 제시되지 않았고, 반부패정책협의회, 청렴사회민관협의회 같은 추진기구도 사라졌다. 오히려 공무원이 직무관련자에게 받을 수 있는 음식물과 선물 상한액을 올리는 등 청렴과 역행하는 정책이 이어졌다.
국제경영개발원(IMD) 조사에서 가장 큰 폭의 하락이 나타났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경영자를 대상으로 부패와 뇌물의 존재 여부 를 묻는 이 조사는 기업환경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다. 유 대표는 우리 기업들의 관행, 투명성, 거버넌스, 반부패정책 수준이 아직 높지 않다 며 함께 협력하여 개선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한국투명성기구 유한범 대표
권력자에게 관대한 사법부, 무너진 무관용 원칙
가장 심각한 문제는 권력자에 대한 이중 잣대다. 유 대표는 2400원을 횡령했다고 버스기사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하면서,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 그림을 선물하며 공천 청탁을 했다는 검사의 청탁금지법 위반은 무죄를 선고했다 고 비판했다. 한 판사가 법의 적용에는 권력자이든 권력을 잃은 자이든 예외나 차별이 없어야 한다 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정상적이라면 권력자이든 일반 국민이든 이라고 해야 한다 며 권력을 잃은 자에 대해 연민을 보이는 판사를 보니 우습기까지 하다 고 일침을 가했다.
청렴도 향상을 위해서는 권력자와 공직자의 부패행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 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수사·처벌 체계는 일반 국민에게는 가혹하면서도 권력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내란 책임자들과 부패행위자에 대한 최근 판결들을 보면, 그동안 쌓아올린 반부패 제도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깊어진다.
세계 부패인식지수 지도. 한국투명성기구
반부패기관 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유 대표는 검찰,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등 반부패기관에 대한 대대적 개혁을 촉구했다. 민주화 이후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남용되어 많은 문제를 야기했고, 결국 비상계엄 선포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검찰개혁이 시급하다 고 강조했다. 감사원은 정권의 입맛대로 편향적 모습을 보였던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하며, 국민권익위원회는 김건희의 명품 가방 수수에 면죄부를 주고 종결처리 한 과정에 대한 반성과 반부패총괄기관 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익신고자 보호도 여전히 미흡하다. 제도는 강화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많은 공익신고자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보복행위에 대한 처벌도 미흡한 경우가 많다. 유 대표는 사회 전체적으로 공익신고자를 조직의 배신자 가 아니라 조직의 부패를 막아주는 소금 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세계부패인식지수. 한국투명성기구
청렴선진국으로 가는 길
한국은 OECD 38개국 중 칠레와 공동 22위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국가의 위상에 비해 한참 못 미친다. 그러나 유 대표는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았다. 국제투명성기구는 2012년 이후 큰 폭으로 점수가 상승한 나라들이 민주주의 국가이며, 지속적인 제도개혁, 감독기관 강화, 공공서비스 디지털화, 깨끗한 거버넌스 등을 추진했다고 평가했다 며 한국이 불법적 비상계엄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반부패 리더십을 발휘하여 체계적인 정책을 추진하면 반드시 청렴선진국으로 올라설 것 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추진해야 할 핵심과제로는 세 가지가 꼽힌다. 첫째, 권력자를 비롯한 공직자의 범죄와 부패행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의 엄격한 적용. 둘째, 검찰 등 사정기관,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등 반부패기관에 대한 대대적 개혁. 셋째, 민간의 참여와 민·관의 공동노력으로 부패위기를 극복하고 반부패문화를 재구축하는 것이다.
올해 세계 평균점수는 42점으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 역시 역대 최저점수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국제투명성기구는 독립적 목소리를 탄압하고 사법부 독립성을 훼손하는 조치는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며 부패한 기업관행에 대한 관용과 시민사회 원조삭감은 전 세계 반부패 노력을 약화시켰다 고 지적했다. 세계적 민주주의 후퇴 속에서 한국의 하락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부패인식지수는 인식 을 측정하는 지표라는 한계가 있지만, 부패는 은밀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객관적 측정이 어렵다. 해당사안을 잘 아는 사람과 전문가의 인식을 측정하는 것이 차선의 방안이다. 유 대표는 조사 없이 발언 없다 라는 말이 있다. 가능한 대로 현실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며 부패인식지수가 지난 30여 년간 각 나라가 부패문제에 관심을 갖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게 하는 역할을 해왔다 고 평가했다.
12.3 계엄이 드리운 그림자는 단순한 정치적 사건을 넘어, 한국사회의 청렴도와 법치주의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2016년 촛불 이후 만들어온 반부패 제도와 국민의 높은 청렴의식은 여전히 우리의 자산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권력에 대한 엄정한 법 적용, 반부패기관의 독립성 회복, 그리고 민·관이 함께하는 반부패 거버넌스의 재건이다. 한국이 다시 상승궤도로 돌아서기 위한 선택은 분명하다.
한국의 부패인식지수. 한국투명성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