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맞춤 통합교육, 교사에겐 재앙 으로 다가와 [교육] 교육부가 오는 3월부터 학생맞춤 통합교육 을 시행한다고 밝혀 교사들이 업무 부담 가중을 걱정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대구시교육청이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거점초등학교로 지정한 군위초등학교의 겨울방학 캠프. 연합뉴스 자료사진
새해 벽두, 영국 일간 가디언은 현대인들에게 간결한 삶의 지침을 내놓았다. Don t stress, do less.” 완벽하려 애쓰지 말고, 불필요한 일을 덜어내야 삶이 지속 가능하다는 이 메시지는,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 학교 현장에 가장 절실한 조언처럼 들린다.
학교는 지금 거대한 ‘정책의 중첩’에 신음하고 있다. 작년 한 해, 현장은 준비 안 된 ‘고교학점제’의 파고를 넘느라 이미 탈진 상태다. 그런데 숨 돌릴 틈도 없이 오는 3월, 교육부는 ‘학생맞춤 통합지원 (학맞통)이라는 매머드급 사업을 학교 안에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
‘학맞통’의 취지는 그럴싸하다. 기초학력, 심리상담, 복지 등 파편화된 지원을 통합해 학생 한 명 한 명을 맞춤형으로 돕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의 교사들이 느끼는 공포는 다르다. 그들에게 ‘통합’은 업무의 간소화가 아니라, 기존 업무 위에 ‘조율하고 기록하고 보고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행정 업무가 ‘더해지는’ 재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가디언 기사는 속옷을 각 잡아 개키는 수고를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물며 교육 정책은 어떠해야 하겠는가. 지금 교육 당국은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 낡은 가구를 빼지도(捨) 않은 채, 거대한 새 가구를 구겨 넣으려(得) 하고 있다. 이것은 ‘통합’이 아니라 ‘폭력’이다. ‘학맞통’이 진정 학생을 위한 정책이 되려면, 선사후득(先捨後得), 즉 버려야 얻는다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첫째, 교사에게 지워진 ‘무한 책임’을 버려야 한다. 지금의 학맞통 구조는 교사에게 수업과 생활지도는 물론, 복지사의 역할과 사례 관리자의 행정력까지 요구한다. 교사는 슈퍼맨이 아니다. 가르치는 일에 집중해야 할 교사에게 행정의 짐을 덜어주지(Do less) 않고서는, 그 어떤 맞춤형 지원도 서류 상의 요식행위로 전락할 뿐이다. 행정은 시스템과 전담 인력이 맡고, 교사는 오직 학생의 눈빛을 살피는 일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둘째, 수직적이고 칸막이를 치는 관료주의를 버려야 한다. 교육부-교육청-학교로 이어지는 수직적 지시 체계와, 부서 간 밥그릇 싸움으로 쪼개진 칸막이 행정을 그대로 둔 채 학교 안에서만 통합하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 위에서부터 불필요한 사업을 과감히 버리고(捨), 학교가 자율적으로 지역사회의 자원을 연결할 수 있는 권한을 얻을(得) 때, 비로소 아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안전망이 작동한다.
셋째, ‘보여주기식 성과’를 버려야 ‘아이들의 삶’을 얻는다. 몇 명을 지원했다는 숫자 채우기보다 중요한 것은,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자존감을 갖추며,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학맞통이 또 하나의 실적 보고용 사업이 되는 순간, 아이들은 ‘지원 대상’이라는 꼬리표를 단 행정의 객체로 전락한다.
가디언은 2026년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덜 하는 것’이라 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고교학점제 위에 학맞통을 얹고, 그 위에 또 다른 정책을 쌓아 올리는 ‘더하기의 행정’은 이제 멈춰야 한다.
현장은 이미 임계점이다. 교육 당국에 강력히 촉구한다. 새로운 것을 채우려 하기 전에, 교사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업무들부터 먼저 비워내라. 선사(先捨) 없는 후득(後得)은 없다. 과감히 빼고, 덜어내고, 비워내는 것. 그것만이 학맞통 의 실패를 막고, 질식해가는 학교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