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으로 힘 합쳐 수해 극복한 ‘정뱅이’ 사람들 [사람들] 오동진 영화평론가
대전 서구는 특이한 곳이다. 대전은 일반적으로 잘 아는 중구(유명한 빵집인 성심당의 본점이 있다. KTX 대전역이 여기에 있다)와 유성구(국립대학인 한밭대와 충남대가 있는 곳이다)가 있고 대덕단지가 있는 대덕구, 그리고 원도심인 동구, 개발 신도시인 서구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이 서구는 계급의 양극화가 아니라 특이하게도 도농으로 분리된 지역이다. 대전정부청사, 시청, 법원 등 행정기구가 다 있는 곳이 서구지만 남부 외곽엔 비닐하우스 농사가 중심인 전형적인 시골 마을들이 있다. 용촌동 정방마을이 대표적이다. (정방마을 사람들, 특히 이곳 여성들이 뜻밖에도 상당히 세련된 모습인 것은 이곳이 서대전 도시화의 영향을 받은 탓으로 보인다)
200년만 물폭탄 맞고 겨우 살아난 정방마을 사람들
정방은 ‘鼎坊’이라고 해서 마을과 여기를 관통하는 두 개의 천이 생긴 모양을 본떠 만든 한자어(솥 정)에서 나온 이름이다. 항간에는 삼국통일 당시 백제를 공격한 나당연합군의 장수였던 소정방의 본진이 있었다고 해서 그의 이름 ‘定方’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정방마을은 행정구역상의 용촌동 일대를 지칭한다. 27가구의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을을 ‘정뱅이’라고 부른다. 이 정뱅이 마을에 어느 날 홍수가 났다. 2024년 7월 10일 정방마을은 시간당 60.5mm의 물이 쏟아졌다. 7일부터 시작된 비는 사흘간 277.6mm를 퍼부었다. 200년만에 보는 물 폭탄 수준의 폭우였다. 마을은 순식간에 고립됐다. 마을 사람들은 겨우 살아남았다. 그러나 가옥과 재산,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심지어 가족에 대한 기억과 추억조차)이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영화 는 수몰 지역에서 살아나고, 함께 재해를 극복하려 애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영화는, 정뱅이 주민들이 보여준 새로운 공동체 운동을 얘기하려는 양, 사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 오정훈의 일관된 태도는 대중의 자발성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대중은 스스로 자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다큐에는 공동체의 신화에 대한 환상 ‘따위’는 주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오정훈의 카메라는 시종일관 주민 옆에 붙어 있으며, 이들의 얘기를 듣는 쪽에 국한한다. ‘다이렉트 시네마’(전통적인, 객관과 중립을 중요시하는 기법의 다큐)의 원칙을 지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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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자’에서 ‘대자’로 ‘점층’하는 대중 그린 『상록수』 같은 교조적 작품
1980년대 국내에 들어 온 해외의 사회과학서는 일어에서 번역한 것이 많았고 그래서 일본식 한자어가 난무했다. 즉자적 대중이니 대자적 대중이니 하는 말도 그때 나왔다. 즉자(卽自)는 개인이다. 대자(對自)는 전체이다. 즉자는 정치·사회적 자각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기적 존재이며 대자는 연대의 사회적 가치를 깨달은 이타적 존재이다. 영화 에 나오는 수해 피해 주민들의 이어지는 인터뷰는 처음엔 이들이 즉자적 대중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소 지루해 보이고 형식주의적으로 보이는 인터뷰의 연결, 자료화면의 교차 편집을 통해 이들이 대자적 존재로 ‘점층’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것은 감독 오정훈이 다큐의 전체 구성을 정교한 사회과학적 사고로 만들어 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다큐는 보고 있으면 사회운동의 치밀한 교본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영화는 상당히 정치적이다. 이른바 집단지성이라는, 때론 허울 좋은 명제에 대해 구체적인 실체 같은 것, 집단이 지성화하는 방법 같은 것을 얘기하려는 작품으로 보인다. 어쩌면 다큐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 때론 심훈의 『상록수』 같은 느낌이어야 한다. 종종 교조적일 수도 있어야 한다. 영화 는 신(新) 사회운동론 같은 작품이다.
정치와 행정에 대한 기대 버리고, 예술은 힘을 합하고
정뱅이 주민들이 수해 이후 신(新)공동체를 건설하고, 새로운 자립형 사회 구조를 만들어 낸 것까지는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미완이다. 그걸 향해 가기까지 오정훈은 주민들 스스로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하고 스스로가 아젠다를 만들어 내게 한다. 그 점이 흥미롭다. 주민들은 정부 행정이 지닌 관료주의적 병폐를 깨닫고 정치에 대한 기대를 버린다. ( 반파된 집은 보상이 얼마 안 돼. 완파되어야 해. 내가 이번에 8천 빚졌잖아, 집 고치느라고.” 경운기나 트랙터 고치는 게 대당 천만 원이야. 6대가 있는데 나온 돈은 600이잖아. 고칠 수 있었겠어?” 같은 주민의 말들) 닥친 난리가 자연재해를 넘어 결국엔 사회적 재난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든다. (공무원들의 인터뷰. 이들은 늘 규정을 꺼내 든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해 오정훈의 카메라는 담담하다. 화를 내지 않는다)
비닐하우스에서 경작하며 땅을 일구던 사람들이 예술과 환경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갖게도 만든다. 이 수해 지역에 행동 예술가들이 결합했다. 설치미술 작가 여상희는 진흙에서 건져낸 훼손된 가족사진, 각종 가구, 의류 등을 전시한다. 마을 사람들은 신기해한다. 미디어 아티스트 박정선은 수해가 극복되고 하천이 다시 청정 수역이 되는 모습을 수중촬영으로 찍고, 전시한다. 다큐 는 자연재해에 충격을 입고 이를 사회적 연대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예술이 하는 역할과 재난이 환경 문제와 연결되는 지점 등을 보여준다. 주민들은 결국 스스로 ‘재난복구 감사예술제’를 주최한다. 2024년 11월의 일이다. 수해 4개월 만이다.
다큐멘터리스트는 사안의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이러한 전 과정을 그 어떤 극적인 에피소드의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건 다큐를 만드는 사람들로서는 상당히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서사의 욕망, 연출에 대한 욕망, 이야기를 살짝 변형시켜서라도 재미를 강화하고 싶은 욕구를 시종일관 꾹꾹 눌러야 했을 것이며 그건 촬영 이후 편집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보는 사람들 역시 이 다큐가 쉽지 않은데, 가장 평범하고 일반적인 척, 꽤 낯선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무미건조함을 톤앤매너로 삼고 대중 관객에 정면으로 승부하는 다큐멘터리는 실로 오랜만이다. 젊은 층 일부는 이 다큐가 상당히 ‘올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의 본질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세상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다큐는 꼭 있는 그대로의 기록을 중요시해야 하는가. 약간의 포장도 허용될 수 없는 것인가. 다큐를 만드는 기록자의 주체적 의지, 주관은 배제해야 하는 것인가.
마이클 무어( )식의 다소 극단적인 시네마베리테는 늘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다큐에서 화자, 곧 기록자는 사안의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뒤늦게 폭로된 마이클 무어의 편집 조작 연출 기법()은 이제 그 자신을 용도폐기시킨 꼴이 됐다. 무어는 지난 2015년 이후 10년간 별다른 신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거장 올리버 스톤 역시 다수의 다큐를 만들어 왔는데 2023년에 만든 는 그가 원자력발전소의 개발을 옹호하는 내용이어서 논란이 되었다.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 다룬 새롭지 않은 새로운 정통 다큐
다큐를 자신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려던 시도는 모두 철저하게 분석, 비판됐다. 다큐가 중간중간 원래의 정통 기법으로 돌아가 만들어져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정훈의 는 바로 그렇게 정통과 전통으로의 복원을 시도한 작품과 다름없다.
정뱅이 마을 주민들. 가운데가 다큐 만든 오정훈 감독.
개봉관 수는 매우 적다. 전국 5개 스크린에서만 상영 중이다. 아마도 이 작품은 이후 도서관 같은 비(非) 극장 상영을 추진해 갈 것이다. 마침 ‘슬로우 시네마 운동’도 시작됐다. 한두 개 스크린을 순회하며 장기간 영화를 상영하는 운동이다. 일본의 ‘미니 시어터 운동’이 롤모델이며 도쿄에 있는 이미지 포럼, 유로 스페이스 같은 극장이 주도한다. 는 이 슬로우 시네마 운동의 일원이 될 것이다. 낯설고 익숙한, 새롭지 않지만 새로운 다큐, 이 시대에 사라진 용어인, 사회적 연대라는 목표 의식을 가지는 다큐 를 기억하시기들 바란다. 6월 24일 개봉됐으며 1296명을 모았다. 시민언론 민들레 독자들을 위한 영화이다.오동진 ohdjin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