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태권도, 유네스코에서 다시 만날까?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희용 문화비평가·언론인
2024년 3월 북한이 ‘조선의 전통무술 태권도’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해 유네스코가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국가유산청이 뒤늦게 남북한 공동등재를 추진하기로 함에 따라 그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러 회원국이 공동 등재를 추진할 경우 나라 간 사전 협의를 거쳐 함께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5년 등재된 줄다리기(한국·베트남·필리핀·캄보디아)를 비롯해 아라비카 커피(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오만·카타르), 지중해식 식단(그리스·모로코·스페인·이탈리아·포르투갈·크로아티아·키프로스) 등이 그런 절차를 거쳤다.
비슷한 문화라 해도 회원국마다 특성이 있으면 다양성을 중시하는 유네스코 정신에 따라 따로 인정하기도 한다. 아리랑은 2012년과 2014년, 김장(김치 담그기)은 2013년과 2015년에 각각 남북한 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2011년에는 한국을 포함한 11개국의 매사냥이 동시에 등재됐다.
태권도 유네스코 남북 공동등재 추진위원회가 2021년 평화공감 캐릭터 진이·풍이를 활용해 만든 홍보 포스터. 남북 천연기념물인 진돗개와 풍산개 앞 글자를 딴 것으로 태권도 도복에 세계태권도연맹(WT)과 국제태권도연맹(ITF)의 영문 약자가 쓰여 있다. 뒤에는 파르테논 신전을 형상화한 유네스코의 상징 마크를 새겼다.
뿌리 같으나 독재와 냉전으로 갈라진 남북한 태권도
씨름의 경우에는 북한이 2015년, 남한이 2016년에 따로 신청했으나 유네스코는 2018년 공동 등재를 결정했다. 인류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는 남북한 전통문화의 중요한 일부이고, 연행(演行)과 전승 양상이나 공동체에 관한 사회문화적 의미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평가기구도 남북한 공동 등재를 권고했다”고 이유를 설명한 뒤 전례에 없던 이 결정은 평화와 화해를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어린이 씨름대회 모습. 유네스코는 2018년 씨름을 남북한 공동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제공)
유네스코 무형유산은 통상 3월에 신청서를 제출받아 심사한 뒤 12월에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우리 정부의 목표는 오는 3월 신청해 올해 정부간위원회를 통과하는 것이다. 한 번의 예외가 더 만들어질 수 있을지 속단하긴 어렵지만 태권도 역사의 특수성과 남북 관계가 국제정세에 미칠 영향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태권도는 용어, 품새, 경기 규칙 등이 다르고 국제경기단체도 남북한이 각각 주도하는 세계태권도연맹(WT)과 국제태권도연맹(ITF)으로 양분돼 있다. 하지만 용어나 규칙 등의 차이는 씨름처럼 분단 이후 세월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태권도 명칭을 정하고 ITF를 만든 후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한 주역은 남한의 군인이자 무도인 최홍희다. 그러나 독재와 냉전은 남한의 태권도 역사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버렸고 의도적으로 태권도의 이질화를 부추겨 남북한 태권도를 갈라놓았다.
2018년 2월 9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앞서 남북한의 태권도 시범단이 합동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최홍희 사단장의 29사단 주둔지 모슬포가 태권도 발상지
최홍희는 1918년 11월 19일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中央)대 법학과에 다니며 가라테(唐手·空手)를 배우다가 1944년 1월 학도병으로 입대해 평양에서 근무했다. 조선 학도병을 중심으로 항일조직을 만들어 투옥됐다가 평양형무소에서 광복을 맞았다. 미 군정이 만든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1월 남조선경비대 소위로 임관해 육군 창군 주역이 됐다. 1953년 11월 제주도 모슬포의 제1훈련소 자리에 창설된 보병 제29사단 사단장으로 부임했다.
당시에는 청도관, 무덕관, 지도관, 창무관, 송무관 등 일본 가라테나 중국 쿵푸(功夫) 등을 가르치는 무술도장이 많았다. 최홍희는 청도관 출신의 남태희 중위 등과 함께 품새를 연구하고 격파 기술을 연마하는 한편 부대 안에 오도관을 만들어 장병에게 가르쳤다. 모슬포가 태권도 발상지라고 하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29사단은 태권부대, 혹은 주먹사단으로 불렸다. 경례 구호는 ‘태권’이었고 사단 마크에도 주먹이 그려져 있었다. 29사단은 이듬해 설악산 인근으로 옮겼고 1959년 9월 20사단으로 흡수됐다.
육군 제29보병사단 마크. 한반도 지도에 주먹이 들어 있다. 창설 당시 최홍희 사단장 부인이 남편 주먹을 모델로 그렸다고 한다.
택견’ 같다는 이승만 칭찬 듣고 발음 비슷한 명칭 창안
최홍희가 가라테에 우리 고유의 권법과 발차기 동작을 접목해 만든 무술 이름이 태권도가 된 사연은 이렇다. 1954년 10월 제1군단 창설 4주년 기념식 때 남태희가 무술 시범을 보이며 일격에 기와 13장을 격파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박수를 치며 저건 예로부터 전해오는 택견이야. 앞으로 전군(全軍)에 보급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최홍희와 남태희는 옥편을 뒤져가며 택견과 발음이 비슷하면서도 뜻이 통하는 ‘밟을 태’(跆)에 ‘주먹 권’(拳) 자를 써서 ‘태권도’라고 명명했다. 1955년 사회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명칭제정위원회에 제안해 추인받았고, 이 대통령은 ‘태권도 우남(이승만의 호)’이라는 친필 휘호를 내렸다.
최홍희는 1959년 9월 3일 대한태권도협회를 창립했다. 자신의 호를 딴 품새(형·型) 창헌류도 개발해 보급했다. 그러나 공수도나 당수도 명칭과 기존 가라테 형을 고집하는 도장도 많았고, 일부는 대한수박도(手搏道)회를 만들었다.
무술인들은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태권도와 공수도에서 한 자씩 따서 1961년 대한태수도(跆手道)협회로 이름을 바꾸는 한편 훗날 주월(駐越)한국군 사령관이 된 채명신 군사혁명위원회 감찰위원장을 회장으로 영입했다. WT와 대한태권도협회는 1959년 최홍희 주도로 발족한 대한태권도협회는 인정하지 않고 대한태수도협회를 효시로 삼고 있다.
국제태권도연맹은 한국이 주도한 국제 경기단체의 효시
최홍희는 1959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국군 태권도시범단과 태권도 외교사절단을 이끌고 베트남, 대만, 아프리카, 중동, 유럽 등을 순회했다. 1962년 6월 제6군단장(소장)으로 예편한 뒤 말레이시아 대사로 부임했다가 1965년 1월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으로 복귀하며 협회 명칭도 태권도협회로 환원했다.
1966년 베트남 붕타우 운동장에서 한국의 태권도 사절단이 공중 격파 시범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해 8월 ‘태권도 교본’도 펴냈으나 1년 만에 회장에서 물러나고 이듬해 3월 ITF를 창설했다. 우리나라가 주도한 최초의 국제 경기단체로 회원국은 첫해 9개국에서 이듬해 40여 개국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사범 해외 파견과 단증 발급 등을 둘러싸고 ITF가 대한태권도협회와 갈등을 빚은 데다 박정희 대통령과 껄끄러운 관계가 지속되자 1972년 3월 캐나다로 망명했다. 최홍희는 자서전 ‘태권도와 나’에서 3선 개헌에 반대해 박정희 정권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회고했으나 말레이시아 대사 시절 공금 유용 혐의를 받았고 1971년 1월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한 김운용과의 파워 게임에서 밀렸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최홍희는 1972년 ITF 본부를 캐나다로 옮긴 뒤 1974년 몬트리올에서 23개국이 참여한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 북미는 물론 남미와 유럽 등지에도 태권도를 보급하는 한편 재외동포들을 규합해 반정부 활동을 펼쳤다.
박정희가 최홍희 대항마로 중용한 김운용
박정희 정권은 손 놓고 있지 않았다. 1971년 3월 ‘국기 태권도’란 휘호를 대한태권도협회에 하사하며 힘을 실어주었다. 육군 소령 출신의 외교관 김운용 회장은 태권도인이 아니었지만 정권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안으로는 새 판 짜기를 통해 최홍희 지우기에 나서는 한편 밖으로는 세계화를 추진하며 최홍희를 압박했다.
김운용은 1973년 5월 서울에서 19개국 대표가 참가하는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며 ITF에 맞서는 WTF(2017년 WT로 개칭)를 창설해 초대 총재에 취임했다. 이에 앞서 1972년 11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태권도중앙도장도 국기원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단증 발급과 지도자 교육도 국기원이 도맡았다.
김운용 회장은 태권도협회장, WT 총재, 국기원장, 국기원 이사장 등을 겸하며 이종우 등과 함께 태권도장 통합, 경기 규칙 제정, 표준 품새 개발 등에 힘썼다. WT 회원 확대, 국제대회 개최, 국내 초청 연수 등을 발판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가입도 추진했다.
WT의 적극 공세에 입지가 줄어들자 최홍희는 공산권으로 눈을 돌렸다. 1978년 시범단을 이끌고 동유럽을 방문하는가 하면 1980년 9월부터 여러 차례 북한을 드나들며 태권도를 보급하고 거점을 마련했다. ITF 본부도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겼다. 북한에 살던 친형 도움으로 1983년 북한에서 15권짜리 ‘태권도 백과사전’을 출간하기도 했다.
남북한 태권도를 각각 이끌며 세계 태권도계를 양분했던 김운용(왼쪽)과 최홍희
최홍희 사후 분열 거듭한 국제태권도연맹(ITF)
그의 친북 활동은 한국과의 갈등을 증폭시켰다. 전 세계 태권도 인구를 늘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남한 출신의 해외 태권도인 상당수가 등을 돌렸다. 그 틈을 타 WT는 저변을 넓히고 스포츠 외교에 힘써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부터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 종목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최홍희는 그를 도와온 외아들 최중화와 말년에 불화를 겪다가 2002년 6월 평양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 북한이 공개한 유언장에는 농구인 출신의 IOC 위원 장웅을 후계자로 삼는다고 적혀 있었다. 장웅은 후임 ITF 총재로 선출됐고 2015년 리용선이 이어받았다.
북한의 평양 형제산구역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있는 최홍희의 무덤. 2018년 11월 9일 100주년 생일을 맞아 여러 개의 화환이 헌정됐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최중화는 장웅 승계설이 조작됐다고 주장하며 딴 살림을 차렸다. 그는 1982년 캐나다를 방문할 예정이던 전두환 대통령 암살을 모의한 혐의로 이듬해 캐나다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적도 있다. 최중화계 ITF의 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으며 서울 구로구에 중앙도장을 두고 있다. WT는 리용선이 이끄는 ITF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있으나 ITF 한국본부는 최중화계를 따르고 있다.
최홍희 후계를 둘러싼 대립 속에 ITF 북미지부장을 지낸 베트남계 캐나다인 트란 콴은 ‘노 코리안(No Korean)’을 외치며 2003년 스페인 발렌시아에 본부를 둔 새 조직을 만들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파블로 트라이젠버그를 거쳐 지금은 독일의 폴 와일러가 총재를 맡고 있다.
남한은 스포츠 성격 강하고 북한은 무술에 가까워
WT의 품새는 태극 1∼8장과 고려·금강·태백·평원·십진·지태·천권·한수·일여로 이뤄져 있다. ITF는 천지·단군·도산·원효·율곡·중근·퇴계·화랑·충무·광개 등 20가지 창헌류에 의암·연개·문무·서산의 4가지를 합친 24개 틀(형)을 정해놓았다.
2002년 9월 16일 남한의 태권도 시범단이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격파 솜씨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찌르기, 앞굽이, 손날, 앞차기 등의 용어 대신 ITF는 뚫기, 걷는서기, 손칼, 앞차부수기 등을 사용한다. WT는 머리와 몸통에 호구를 착용하고 맨발로 겨루기(맞서기)를 한다. ITF는 보호대 없이 장갑과 신발을 착용한다. WT는 손으로 얼굴을 가격할 수 없어 발 위주로 공격을 펼치는 데 비해 ITF는 주먹에 의한 얼굴 공격이 가능해 격투기와 유사하다.
남한의 태권도는 스포츠 성격이 강하고 북한의 태권도는 무술에 가깝다. 그러나 최홍희가 남한에서 태권도의 틀을 만든 뒤 북한에 보급해 근본적 차이는 없다. 한 뿌리에서 줄기가 갈라진 것이 아니라 꺾꽂이하듯이 남한에서 자라난 줄기를 북한에 옮겨 심었기 때문에 정권이 덧칠해놓은 이념의 색깔을 지우고 곁가지만 다듬으면 통일할 수 있다.
전북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2017년 6월 26일 전북도청에서 격파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한 태권도계는 2018년 공동등재 추진에 합의
남북한 태권도계는 이미 2018년 태권도의 유네스코 공동등재 추진에 합의한 바 있다. 캐나다 국적의 정순천 사범이 남북한을 오가며 양측 만남을 주선해 합의를 끌어낸 것이다. 2024년 등재를 목표로 2021년 TF 위촉식, 태권도 역사 사진전, 추진위 현판식 등을 개최하고 캐릭터와 포스터를 통한 홍보 활동도 벌였다. 이듬해 7월에는 남북한 공동으로 ‘ONE 코리아 ONE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위원회’(KOREA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를 발족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가운데 북한이 2024년 3월 단독으로 등재 신청서를 제출하자 태권도 종주국 지위를 북한에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남측 추진위 관계자는 북측과 접촉하며 공동등재 의사를 거듭 확인했으나 윤석열 정권은 소극적이었다. 이재명 정부로 교체된 뒤 태권도인들이 다시 뜻을 모으고 정부도 나서고 있다.
태권도는 원조 한류이자 K스포츠의 간판이다. 1960년대 베트남에 파견된 시범단원들은 미군과 월남군이 보는 앞에서 태권도의 위력을 뽐낸 뒤 세계 각국으로 진출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동양 무술 가운데서는 가라테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어 ‘코리안 가라테’라는 간판을 내건 태권도장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과 태권도인의 노력이 어우러져 태권도는 가라테를 눌렀다.
세계 수천만 명이 한국말 구령 외치는 K스포츠 간판
2023년 7월 24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제27회 고양특례시 태권도협회장기 대회 참가자들이 풍이·진이 캐릭터가 그려진 포스터를 들고 태권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염원하고 있다. (고양시 제공)
각국 도장에서는 수천만 명이 ‘차렷’ ‘경례’ ‘앞차기’ 등의 우리말 구령을 외치며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 문화와 예절도 자연스럽게 익힌다. 태권도는 기량의 평준화도 이뤄내 스포츠 약소국들의 전략 종목으로 꼽힌다. 가봉, 베트남 등이 첫 올림픽 메달을 태권도에서 따냈기 때문에 다양한 나라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태권도는 남북한 분단의 상징이기도 하다. WT 회원국이 214개국에 이르지만 ITF 가입국도 150개국을 헤아린다. 유네스코 무형유산 공동등재를 계기로 남북한 태권도가 통일을 이루고 남북한 교류의 촉매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