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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치료 첫 걸음, 몸이 알아서 재워준다 믿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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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책을 읽는 데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몇 날 밤을 한숨도 안 자고 말똥말똥한 상태로 지새곤 하는 반면 낮에는 완전히 비몽사몽이었다. 이렇게 잠도 안 자고 책만 읽다 보니 머릿속이 푸석푸석해지는가 싶더니 결국은 이성을 잃어버리기에 이르렀다.”(‘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박철 옮김, 시공사, 40쪽) 이렇듯 가련한 처지에 놓인 인물은 돈키호테다. 그의 내면에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정체성의 혼란이 일어나면서 허무맹랑한 기사도 정신을 쫒는다. 결정적인 원인은 수면 부족이었다. 그는 기사 소설에 탐닉하느라 여러 날 동안 잠을 못 이루었고, 의식이 점점 혼미해지는 가운데 자신을 유랑기사라고 믿으며 온갖 기괴한 행동들을 서슴지 않게 된 것이다. 현실 감각과 이성을 잃고 광기에 사로잡힌 자아가 바로 ‘돈키호테’였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그는 긴 병상의 잠에서 깨어난 뒤 마침내 제정신을 되찾는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돈키호테가 아니라, 본래의 나 알론소 키하노로 돌아왔다”고 선언하며 그동안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정체성을 깨뜨린다.   그림 출처 : 미겔 데 세르반테스, 박철 옮김 돈키호테 (시공사. 2004) 수면은 생리 기능의 회복, 면역력 강화, 에너지 보존, 호르몬 균형 유지 등 신체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정신 건강의 측면에서도 뇌의 노폐물 제거, 기억의 정돈 등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어서 하룻밤만 꼬박 새워도 인지와 판단력이 크게 떨어진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1984년 인도 보팔 가스 참사, 1986년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 폭발과 소련 체르노빌 원전 폭발 등의 원인이 담당자들의 지속적인 수면 부족으로 밝혀졌다. 교통사고나 의료 사고도 그 원인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36시간 이상 잠을 못 자면 감정 기복이 심해져 짜증과 공격성 또는 반대로 이상한 고양감이 나타날 수 있고, 스트레스 조절 능력이 떨어진다. 거기에다 하루이틀을 더 못 자면 현실 지각에 큰 왜곡이 생기면서 환각과 각종 망상이 일어나는 등 정신병의 초기 증세가 나타난다. 그런데 수면의 메커니즘은 의외로 복잡하다. 그냥 가만히 앉거나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꿀잠을 자고 나서 ‘세상 모르고 잤다’는 말하기도 하는데(영어에는 I slept like a log 라는 표현이 있다. 나무토막처럼 아무 반응 없이 꼼짝 않고 곯아떨어졌다는 의미다), 숙면 상태에서는 내면과 외부 세계가 상당 부분 차단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가운데도 의식의 상태가 변화를 거듭한다는 점이다. 렘(REM) 수면 중에는 부분적으로 의식이 깨어 있다가, 비(非)렘 수면으로 들어가면 의식이 극도로 희미해진다. 그 두 상태는 일정한 주기로 반복된다. 수면 위내시경 검사를 받는 도중에 헛소리나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도 의식이 완벽히 잠들지 않은 상태에서 감정이 과장되거나 기억이 흔들려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한다. 잠에서 깨어나도 생각의 전원이 곧바로 켜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눈을 뜬 직후에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지금이 언제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어릴 때 낮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인 줄 알고 가방을 챙겨 학교에 가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좀 더 몽롱해지면 자아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 깊은 수면 중 자아가 일시적으로 소멸되는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 정신은 잠이 든 장소에 대한 모든 감각을 상실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날 때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처음엔 내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내겐 동굴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생존에 대한 지극히 단순한 감정만 있었을 뿐, 아니, 동굴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보다도 더 헐벗은 존재였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김희영 옮김, 민음사, 19쪽) 우리가 매일 수면과 각성의 경계에서 경험할 법한 ‘무아지경’의 혼돈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천식에 시달려온 프루스트는 코르크판과 커튼으로 외부의 소음과 빛을 차단한 침실에 누워 주로 밤중에 이 책을 썼는데, 완벽하게 격리된 시공간이 메타 인지와 자아 감각을 날카롭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왼쪽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책 표지. 오른쪽 : 같은 제목의 그림. https://www.artmajeur.com/amelchikhi2512/ko/sabhwa/11068747/a-la-recherche-du-temps-perdu)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올라온다. 자아의 경계가 일시적으로 허물어지도록 수면 프로그램이 설계된 까닭은 무엇일까? 각성 상태에서 휴식을 취하면 심신의 회복이 온전히 이뤄지기 어려운가? 뇌과학의 설명은 이러하다. 수면 중의 뇌는 불필요한 자극에서 해방되어 기억과 감정을 정돈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키운다. 그리고 과도한 두뇌 네트워크의 연결도 잠자는 동안 초기화되어 정신적 긴장을 완화시킨다. 결과적으로 깊은 수면은 뇌 기능을 회복하고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듯 정교한 생체 시스템을 관장하는 것은 자율신경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호흡, 심박수, 소화, 체온 등 생명 유지 기능을 자동 조절하여 인체 항상성을 유지하는 말초신경계 말이다. 생각해보면 인체의 핵심 기능들은 거의 다 자율신경에 의해 작동하며, 수면도 마찬가지다. 밤이 되면 부교감 신경이 우세해져 심박수와 혈압을 낮추고 몸을 이완 상태로 만들어 숙면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마음을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아니, 마음을 먹을수록 더 안 된다. 부교감 신경의 핵심은 이고 그것은 와 상충하기 때문이다. 잠을 잘 자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불면증의 원인이 되어버리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서 생겨난다. ‘자다’라는 동사를 들여다보자. 그것은 자동사인가, 타동사인가? 사전을 찾아보면 모두 해당한다. 즉 목적어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타동사로 쓰일 때 목적어는 딱 하나, ‘잠’ 밖에 없다. (그렇게 한 단어만 목적어로 갖는 또 다른 타동사로 ‘(꿈을) 꾸다’ ‘(춤을) 추다’가 있다) 그런데 ‘잠’이라는 명사는 목적어로만 쓰이지 않는다. ‘잠이 온다’ ‘잠이 든다’ ‘잠이 쏟아진다’ 등에서처럼 주어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잠 손님’이라고 높여서 부르기도 한다. 잠이 주어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절하기 어려운 대상이라는 뜻이다. 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소화가 된다’고 하지 ‘소화를 시킨다’라고 하지 않는다. 자율신경계로 움직이는 신체 기능은 자동사로 묘사될 수밖에 없다. ‘심장(맥박)이 뛴다’, ‘땀이 난다’, ‘혈압이 오른다’, ‘하품 / 재채기 / 기침이 나온다’ 등이 그러한데, 우리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어느 정도 통제되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배설과 호흡이다. 소변이나 대변은 최종적인 배출을 상당 부분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변을 대장의 끝부분에 밀어내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완전히 자율신경의 몫이다. 그 기능이 원만하게 작동하지 않아 변비가 생기면 엄청 고통스럽다. 호흡은 어떤가? 숨쉬기도 통제의 범위에 일정 부분 들어오는데, 숨은 저절로 쉬어지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상을 할 때 호흡에 주의를 집중시키면 생각을 내려놓고 에 온전히 머물기가 수월해진다. 수면은 어떤가? 그것도 의지로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기는 하다. 누구나 잠을 미룰 수 있다. 몸을 움직이거나 자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하루 이틀 정도는 밤을 새울 수 있다. 그리고 알람 시계를 맞춰놓고 잠을 깰 수도 있다. 하지만 잠에 드는 것은? 입면(入眠)은 절대로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교감 신경을 흥분시키는 것은 의지대로 할 수 있지만, 부교감 신경이 움직이는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물론 아무리 교감 신경을 자극한다 해도 무한정으로 깨어 있을 수는 없다. 점점 갈수록 각성의 수준은 저절로 떨어질 수밖에 없고, 육체의 한계에 도달하면 ‘저절로’ 잠이 든다. 그 순리를 믿지 못하고 불안에 사로잡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 불면증의 전형적인 증세다. 언젠가 잠은 올 수밖에 없다. 영어의 ‘fall asleep’이라는 표현처럼, 피곤하면 곯아떨어지게 되어 있다. 몸이 알아서 재워준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불면증 치료의 커다란 기둥이다. 잠을 자려고 애쓰지 말고, 잠이 오는 조건이 왜 만들어지지 않는지를 살펴야 한다. 과잉 각성을 내려놓으면, 의식은 스스로를 놓아주면서 잠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일러스트레이션 : 지예 ‘수많았던 밤은 나에게 잠을 주지 않았지’ 1990년대에 활동했던 팝밴드 의 ‘우리 모두 여기에’라는 곡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이 문장은 밤이 나를 거부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밤은 한결같은 어둠을 펼치고, 잠은 그 속에 조용히 도착한다. 문제는 내가 잠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다. ‘잠을 잔다’는 말은 내가 주체가 되어 무언가를 수행하는 듯한 표현이지만, 사실 잠은 스스로 걸어오는 것이고, 우리는 그저 자리를 내어주고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잠은 ‘스며드는’ 것이고, 몸은 스스로를 ‘재운다’. ‘잠이 들다’라는 말은 잠이 들어온다(入)는 뜻이다. 잠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지, 내가 그것을 끌어오는 것이 아니다. 이 미묘한 표현의 차이가 수면의 본질을 드러낸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잠을 자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잠이 올 수 있도록 길을 비워두는 일이다. 밤은 언제나 우리에게 잠을 선사한다. 그것을 받을 수 있으려면, 어둠의 드넓은 품에 조용하게 안겨야 한다. 마음과 몸의 문을 잠시 열어두면, 잠은 말없이 찾아온다. 내가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잠이 나를 데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로소 자신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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