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민주화 위해 트럼프 전쟁 지지한다는 거짓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이란에 대한 침공과 폭격, 그리고 그로 인한 민간인들의 피해를 비판하면 흔히 일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란 정권의 민주화 시위대 살인 진압은 어떻게 보느냐 는 것이다. 이것은 차마 노골적으로 트럼프의 전쟁을 지지하지는 못하면서도, 뭔가 딴지를 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던지는 의심스럽고도 익숙한 질문이다.
문제는 사실 명백하고 단순하다.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은 이란의 독재적 신정 정권을 지지해야 하는가? 반대로 이란의 이슬람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은 트럼프의 전쟁을 환영해야 하는가? 전형적인 이분법의 함정이다. 이 질문은 마치 당장의 살인범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그러면 너는 얼마 전의 폭행범을 지지하느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 눈앞의 살인을 규탄한다고 해서 과거의 폭행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살인과 폭행의 피해자와 연대하는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전쟁을 반대한다고 해서 이란 정권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권의 살인적 탄압에 고통받았고, 이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략 전쟁에 죽어가는 이란의 시민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전쟁에 반대하고 이슬람 공화국에 반대한다 는 팻말 - 출처: 그리스 망명 이란 활동가 시야바시 샤하비의 페이스북
이런 질문을 반복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정말로 헷갈려서 묻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침략을 어떤 식으로든 옹호하고 싶어서, 겉으로는 이란 정권을 비판하는 데 관심있는 척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란 민중의 고통이나 죽음이 아니라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잘못을 덮어 주고 변명해 주고 싶은 욕망이다.
이와 연결되어 또 하나 반복되는 주장이 있다. 이란 정권이 지난 1월에 3만 명을 학살했다 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숫자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 수치는 주로 서방 정부와 언론에서 제시된 것이며 독립적 검증이 어려운 정보다. 반면 해외에서 활동하는 이란 인권 단체 HRANA(Human Rights Activists News Agency)는 실명 확인과 병원 기록을 바탕으로 희생자를 7천여 명으로 추산한다.
이란 문제에서 서방 정부와 언론의 주장보다는 독립적인 인권 단체의 주장에 더 신뢰가 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더구나 3만 명이라는 숫자는 사실 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스라엘이 2년 동안 계속된 무차별 폭격으로 학살한 가자 주민이 약 7만여 명이다. 그런데 이란이 단 일주일 만에 지상 발포만으로 3만 명을 살해했다는 주장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것은 이란 정권의 진압 능력을 과장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란 민중의 저항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이야기로 들린다. 물론 살인 진압의 피해자 숫자가 더 크거나 작다고 해서 이란 정권의 잘못과 책임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방 정부와 언론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숫자를 강조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끔찍한 독재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가피하다’라면서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이란 침공과 폭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는 과장이나 왜곡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이란 정권의 살인 진압을 규탄할 수 있고, 동시에 이란의 반정부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과 연대할 수 있다.
방송 화면 갈무리
최근 이란에서 새로운 최고지도자로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선출된 소식도 단순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균형있는 관점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이란을 침공하고 폭격하면서 이슬람 정권을 전복시키겠다고 공언해 왔고, 차기 지도자는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발언까지 했다. 모즈타바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적대감과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이란 정권은 무너지기는커녕 오히려 강하게 반격했고, 트럼프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을 최고지도자로 선출했다. 더구나 모즈타바는 이번에 트럼프에게 부모, 아내, 자식까지 잃어서 더욱 정당한 복수심을 가져 마땅한 인물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침략 전쟁이 성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원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장면을 단순히 통쾌한 마음으로만 볼 수도 없다. 반정부 민주화 시위를 이어 온 이란 시민들의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러기가 어렵다. 그들에게 모즈타바의 선출은 혁명수비대 중심의 독재 체제가 계속된다는 선언처럼 보일 가능성이 크다. 권력 세습 자체도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고, 모즈타바는 그동안 살인 진압의 책임자로 지목되어 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데에는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책임이 결정적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과 침략은 이란 민중의 생명을 빼앗았을 뿐 아니라, 내부에서 아래로부터 압력을 받던 이란 정권이 개혁을 모색할 가능성까지 파괴했다. 외부의 군사 공격은 민주화를 촉진하기는커녕 오히려 강경파를 결집시키고 그들 중심으로 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만 낳았다.
군사적 폭격은 민주화 운동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노동조합의 조직화, 시민 단체의 건설, 독립적인 언론의 등장을 결코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외국 세력도 지속 가능한 민주적 삶에 필요한 네트워크를 대신 창조해 줄 수는 없다. 외국의 전투기에서 폭탄 투하 버튼을 누르면 지상에서 민주화 시위대가 호응할 것이라는 생각은 식민주의적 망상일 뿐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갈등 속에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의 교전이 격화된 가운데,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보고된 베이루트 남부 외곽 지역에서 발생한 연기 기둥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뒤덮고 있다. 2026. 03. 13 [로이터=연합뉴스]
이 점은 쿠르드 문제에서도 다시 분명하게 드러난다. 2022년 히잡 시위 당시 정권의 폭력에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 역시 쿠르드인이었고, 민주적 자치를 요구해 온 쿠르드 세력은 오랫동안 이란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구성원들이었다. 이란의 권력자들은 그들을 ‘외세에 협력하는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으며 민주화를 염원하는 시민들과 갈라치면서 탄압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트럼프는 ‘쿠르드가 우리와 함께 싸우기 위해 국경을 넘고 있다’는 식의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그 낙인을 강화시키려고 했다. 쿠르드가 트럼프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으면서 며칠 만에 이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것은 이란 정권이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고 분열시키는 데 이용해 온 프레임을 오히려 강화해 주는 행동이었다.
이보다 트럼프가 이란 민주화 운동의 적이라는 사실을 더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다. 그리스로 망명한 이란 민주화 활동가인 시야바시 샤하비(Siyavash Shahabi)는 하루 종일 이란으로 연결되지 않는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보내며,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끔찍한 추측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문제는 살인자가 이란인인지 미국인인지, 무슬림인지 기독교인인지, 터번을 썼는지 넥타이를 맸는지가 아니다. … 전쟁광들은 동일한 논리의 양끝에 서 있다. 한쪽은 외부에서 타격하고, 다른 한쪽은 내부에서 질식시킨다. … 한쪽은 제국의 언어로 죽음을 정당화하고, 다른 한쪽은 저항이나 신앙, 혹은 국가 안보의 언어로 죽음을 정당화한다.”
이처럼 지금 이란의 시민들은 지옥 같은 고통과 양 날의 칼 속에 놓여 있다. 결국 이 전쟁은 이란 민주화의 가능성과 싹을 파괴하는 전쟁이다. 따라서 이란 정권의 억압을 비판하면서도, 그럴수록 더더욱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침략 전쟁에 앞장서 반대해야 한다. 이 두 입장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이란 민주화 운동에 진정으로 연대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관점과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