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단 판치고 지지리 가난한 아이티가 동계올림픽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탈리아계 아이티 디자이너 스텔라 장(가운데)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주재 아이티 대사관에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아이티 선수단 단복을 소개하고 있다. 설원이나 빙상에서 아주 돋보일 단복이다. 왼쪽 모델은 리비아 오데인, 오른쪽 모델은 메건 토머스. 로마 AP 연합뉴스
갱단들이 판치는 카리브해에 있는 그 나라가 동계올림픽에 선수단을 내보낸다고? 넘실대는 파도가 절로 떠오르는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가 6일 개막하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한다.
2010년과 2021년 두 차례 대지진까지 덮쳐 이 나라 형편은 말로 할 수 없을 지경이 됐다.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사저에서 괴한들의 총에 의해 암살당할 정도로 치안이 형편 없는 나라기도 하다. 무법천지 나 무정부 상태 같은 표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나라다. 2024년 한국인들이 여행할 수 없는 국가로 지정됐다.
우리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이티는 4년 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했다. 남자 알파인 스키에 출전하는 리처드슨 비아노는 베이징 설원에 서 있었다. 크로스컨트리 선수 스티븐슨 사바트도 아이티 선수단 단복을 입는다. 둘 다 어릴 적에 프랑스로 입양됐다.
비아노는 AP 통신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아이티에 대해서는 늘 안 좋은 얘기만 나오지만, 이렇게 긍정적인 인터뷰를 하게 돼 다행 이라고 답했다.
화려한 아이티 선수단 단복을 디자인한 이는 이탈리아계 아이티 디자이너 스텔라 장이다. 장은 단복에 아이티의 혁명가 투생 루베르튀르가 붉은 말을 타고 있는 그림을 그려 넣었으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정치적 표현에 해당한다 는 유권해석을 받고 루베르튀르의 모습은 지워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갠디 토마스 이탈리아 주재 아이티 대사는 AP 통신에 아이티의 동계 올림픽 출전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자 선언 이라며 아이티는 겨울 스포츠를 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어떤 외부의 정의에 갇히는 나라가 아니다 라고 말했다.
디자이너 장 역시 중요한 것은 루베르튀르 장군의 말이 그대로 선수단복에 남았다는 사실 이라며 우리에게 이 말은 아이티의 상징으로 여겨질 것 이라고 강조했다.
아이티는 동계올림픽에 이어 오는 6월 국제축구연맹(FIFA) 미국 및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FIFA 랭킹 83위 아이티는 1974년 이후 52년 만에 사상 두 번째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 세계 최강 브라질과 한 조에서 맞대결한다.
아이티는 또 대만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12개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메이카 봅슬레이 대표팀 4인승 출전 선수들. 트레이시는 전 자메이카 육상 100m 챔피언 출신이다.
우리에게 영화 쿨러닝 으로 동계올림픽 이색 참가국의 원조 격으로 각인된 자메이카 봅슬레이 대표팀도 코르티나담페초에서 다시 시동을 건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이색적인 도전으로 세계적 관심을 끌었던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은 이제 더 이상 참가하는 데만 의의를 두는 팀이 아니다.
자메이카 봅슬레이연맹 회장인 크리스 스토크스는 1988년 대표팀 일원으로 대회에 참가해 영화의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이다. 자메이카 대표팀은 올해 초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북미컵 대회에서 몇 주 연속 금메달을 땄다.
스토크스는 2017년 회장 취임 이후 장기 개혁에 착수했다. 코로나19 여파로 2022 베이징 대회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뒤, 그는 2034년 동계올림픽 메달 획득을 목표로 10년 전략을 수립했다. 순발력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인 육상 엘리트 선수들을 봅슬레이로 전향하게 했다. 그 결과 전 자메이카 100m 챔피언 티켄도 트레이시, 현 200m 국내 챔피언 아샨티 무어 등이 팀에 합류했고, 어민 출신인 셰인 피터는 단기간에 유망 파일럿으로 성장했다. 피터는 이번 대회 2인승과 4인승 봅슬레이를 모두 이끌 예정이다.
기술적 지원도 강화됐다. 2014 소치 봅슬레이 동메달리스트 조엘 피어런은 성과 코치로 합류한 뒤 직접 썰매를 미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그는 일부 팀과 관계자들이 자메이카를 여전히 이색적인 존재로만 본다”며 우리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경쟁자임을 증명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4인승 경기에 나가는 썰매는 2018 평창 대회 은메달을 땄던 한국 대표팀의 중고 장비이며, 2인승 썰매 역시 미국 대표팀이 사용하던 장비를 물려 받았다. 자국 내 봅슬레이 기반은 여전히 없기 때문이다. 전용 봅슬레이 트랙이 없고, 대표팀은 겨울마다 미국 뉴욕을 거점으로 훈련을 진행한다. 자메이카 올림픽위원회로부터의 직접 지원도 못 받아 후원과 모금에 의존하고 있다.
스토크스 회장은 자메이카에서 자라며 배운 것은 돈이 성공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라며 자원이 아니라 창의성과 집요함이 위대한 결과를 만든다”고 장담하고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엠블럼 깃발이 토파나 산을 배경으로 게양돼 있다. 2026.2.3 코르티나담페초 AP 연합뉴스
서아프리카의 베냉과 기니비사우, 그리고 중동의 아랍에미리트(UAE)는 동계올림픽에 처음으로 선수단을 파견했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기후 때문에 겨울 스포츠의 불모지로 불리지만, 뜨거운 도전 정신으로 베냉과 기니비사우는 1인 선수단 을 내보낸다. UAE는 남녀 1명씩 2명의 선수단이 기수로 개회식에 입장한다.
세 나라 선수 모두 알파인 스키에 출전한다. 국제스키연맹(FIS)은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배분하면서 기본 쿼터로 최소 자격 요건을 갖춘 선수가 있는 모든 국가에 남녀 각 1장씩 배정한다. 신생국이나 동계 스포츠 저변이 열악한 국가를 배려한 것이다.
베냉의 알파인 스키 선수 나단 치보조(21)는 동계올림픽 무대를 밟겠다는 일념으로 국적을 세 차례나 바꿨다. 2021~22시즌까지 프랑스 국적으로 국제대회에 나섰던 치보조는 2022년 토고로 국적을 바꿔 2023년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출전하며 올림픽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그는 토고스키연맹과 갈등이 생겨 선수 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베냉으로 국적을 다시 옮기게 됐다.
IOC는 국적을 바꾼 선수에 한해 3년 동안 국제 대회 출전을 제한하지만, 치보조와 토고스키연맹의 갈등 상황을 인정하면서 지난해 12월 특별 예외 조치로 그의 출전을 허용했다.
베냉 역시 첫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 2024년 스키협회를 설립한 뒤 FIS에 가맹해 빠르게 스키 대표팀을 꾸리는 행정력으로 치보조의 국적 변경을 거들었다.
기니비사우 남자 알파인 스키 선수인 윈스턴 탕(19) 역시 치보조와 비슷하게 미국→대만→기니비사우로 국적을 바꿔가며 치열하게 올림픽 무대를 준비했다. 미국 유타주에서 성장한 탕은 2023년 대만 소속으로 국제 대회에 데뷔했고, 2023~24시즌과 2024~25시즌에는 미국스키연맹 소속으로 활동했다.
탕은 출전권 확보가 쉽지 않자 지난해 기니비사우로 국적을 바꿔 국제대회에 출전해 올림픽 출전권에 필요한 최소 포인트를 충족해 기니비사우 최초의 동계올림픽 선수로 대회전과 회전 종목에 출전한다.
아랍에미리트(UAE) 대표로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는 기쁨을 전한 알렉스 아스트리지. 본인 인스타그램 갈무리 연합뉴스
UAE는 알파인 스키 선수인 알렉스 아스트리지(남자·19)와 피에라 허드슨(여자·29)을 앞세워 역시 동계올림픽 무대에 첫선을 보인다. 아스트리지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6개월부터 UAE에서 성장했고, 세 살 때 스키를 처음 접하며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과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 나섰고, 이번에 자력으로 올림픽 출전 자격을 따냈다.
허드슨은 뉴질랜드 대표팀 출신으로 지난해 6월 UAE로 국적을 바꿔 올림픽 무대를 밟는다.
브라질과 멕시코 같은 나라도 겨울 스포츠와 그리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나라들인데 참가한다. 멕시코 기수로는 도노반 카리요(피겨스케이팅)과 사라 슐레퍼(알파인 스키)가 나선다.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2022년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 차원에서 이번 대회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올림픽 퀄리파잉(출전 자격을 따는) 대회 참가가 허용되면서 개인 중립 선수단으로 출전하게 된다. FIS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출전을 불허했으나 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결정에 따라 팀 단위를 제외한 경기 출전이 허용됐다. 아울러 3년 이상 전화에 시달린 우크라이나도 당연히 선수단을 파견한다.
이처럼 IOC와 동계 스포츠의 국제경기단체들은 저변이 없는 나라, 가난한 나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다양한 유인책과 출전 자격을 얻는 허들 을 낮추고는 있는데 저변 확대란 과실은 영글지 않고 있다. 더 많은 나라들이 명실 상부하게 동계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으려면 한참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