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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혁명의 괴짜, 존 로지 베어드의 기묘한 성공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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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손바닥만 한 화면으로 세계 반대편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한다. 텔레비전이라는 마법상자 앞에서 웃고 울며, 때로는 현실보다 더 생생한 가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 건 불과 백 년 전, 병약한 스코틀랜드인이 다락방에서 폐품을 주워 모아 만든 기계 덕분이었다.   1917년의 존 로지 베어드 (위키피디아) 폐품 더미에서 피어난 영상의 꿈  존 로지 베어드(John Logie Baird, 1888~1946). 1888년 8월 13일 스코틀랜드 헬렌스버러에서 목사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해 1차 세계대전 징집조차 거부당했다. 하지만 그의 머리만큼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했다. 십대 시절 자기 집에 전기 조명을 설치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의 사업 감각이었다. 1919년 트리니다드(카리브해 남쪽 섬나라)로 건너가 잼 공장을 차렸는데, 벌레들이 설탕을 훔쳐가거나 끓는 잼 통에 빠져 죽는 바람에 망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뒤엔 물에 젖지 않는 양말과 녹슬지 않는 유리 면도날을 만들었지만 역시 실패.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실패한 사업가 이야기다. 하지만 1923년, 요양을 위해 영국 헤이스팅스로 내려간 베어드는 운명적인 결정을 내린다. 바닷바람을 쐬며 마침내 영상 전송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돈이 없던 그는 자전거 부품, 과자 상자, 실, 바늘, 낡은 전기 모터를 긁어모아 장치를 조립했다. 이웃들은 이 괴짜를 미친놈 취급했다.   존 로지 베어드가 텔레비전 장치와 함께 있는 모습, 1925년경 (위키피디아) 인형의 얼굴이 역사가 되다 1925년 10월 첫째 주, 베어드는 자신의 실험실에서 복화술 인형 스투키 빌 의 얼굴을 전송하는 데 성공한다. 역사상 최초로 움직이는 영상이 화면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흥분한 베어드는 아래층으로 달려가 사무실 직원 윌리엄 에드워드 테인턴(William Edward Taynton)을 데려와 실험했다. 테인턴은 그렇게 해서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한 최초의 인간이 됐다. 1926년 1월 26일, 베어드는 런던 소호의 프리스 스트리트 22번지 왕립학회 회원 40명 앞에서 정식 시연을 했다. 당시 타임스 기자는 영상이 희미하고 자주 흐려졌지만, 세세한 움직임과 표정의 변화를 즉시 전송하고 재현할 수 있다는 주장을 입증했다 고 썼다. 화면 크기는 고작 3.5x2인치. 오늘날 스마트폰 액정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였다.   1926년 베어드는 텔레바이저 장비와 함께 제임스 와 스투키 빌 을 제작했다. (위키피디아) 성공의 순간, 그리고 쓸쓸한 종말 1928년, 베어드 텔레비전 개발 회사는 최초로 대서양 횡단 텔레비전 송신에 성공했다. 또 같은 해 컬러 텔레비전을 시연했고, 입체 텔레비전과 적외선으로 어둠 속을 보는 야간 투시경 까지 개발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 혁신을 이어갔다. 하지만 기술적 한계가 발목을 잡았다. 베어드의 기계식 텔레비전은 240선의 화질을 제공했지만, 경쟁사 마르코니-EMI의 전자식 시스템은 405선이었다. 1937년 초 BBC는 마르코니 시스템을 독점 채택하며 베어드 시스템 방송을 중단했다. 그러나 베어드 회사는 텔레비전 수상기 제조업체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 진짜 치명타는 1939년 9월에 날아왔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BBC가 텔레비전 서비스를 완전히 중단한 것이다. 텔레비전 수상기가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고철 이 되자, 베어드 회사는 결국 청산됐다.   1926년 1월 28일자 타임스 지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베어드의 텔레비전 으로 제작된 움직이는 영상의 첫 번째 사진이 촬영되었다. (위키피디아) 한국에 도착한 영상 상자, 1956년의 기적 베어드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뒤, 1956년 5월 12일 한국에 HLKZ-TV라는 첫 텔레비전 방송국이 문을 열었다. 미국 RCA가 중고 흑백 텔레비전을 팔기 위한 상술로 시작한 것이었다. 파고다 공원과 서울역, 광화문에 몇 대의 텔레비전이 설치됐고, 사람들은 신기한 듯 그 앞에 모여들었다. 같은 해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드라마 천국의 문 이 방영됐다. 연출자 최창봉(崔昌鳳)은 두 달 반 동안 대본을 고치고 세트를 준비하며 한국 최초의 특수효과까지 만들어냈다. 겨우 15분짜리 드라마였지만, 그것은 한국 방송역사의 시작이었다. 1961년 10월 1일, 본격적인 텔레비전 방송국 HLKA-TV(현 KBS 1TV)가 문화공보부 산하로 개국했다.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며 한국의 텔레비전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군사정권의 선전도구로 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던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는 창이기도 했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프리스 스트리트 22번지에 있는 베어드의 첫 텔레비전 시연을 기념하는 파란색 명판(위키피디아) 베어드에게서 배우는 교훈 베어드의 이야기가 현재 한국에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첫째, 실패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다. 잼 공장도 망하고, 양말 사업도 망한 베어드가 결국 텔레비전을 만들어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실패자에게 가혹하다. 한 번의 실패가 영영 낙인이 되는 풍토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베어드 들을 놓치고 있는가? 둘째, 기술 혁신은 대기업 연구소가 아닌 다락방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베어드는 폐품으로 세상을 바꿨다. 오늘날 한국은 삼성과 LG 같은 대기업의 혁신에만 의존한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정작 괴짜 발명가 에게 실험할 여유를 주는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안전망이 있는가? 셋째, 최초가 곧 승자는 아니다. 베어드는 최초였지만, 마르코니-EMI가 시장을 차지했다. 1948년 베어드의 회사를 인수한 것은 경쟁사 스코포니(Scophony)였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최초 에 집착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지속가능한 혁신이다. 빨리빨리 문화는 때로 조급함을 낳고, 진짜 혁신을 놓치게 만든다. 넷째, 개인의 천재성만으론 부족하다. 베어드는 기술자였지 경영자가 아니었다. 자금 조달에 실패했고, 회사 경영도 서툴렀다. 한국의 많은 기술자들도 비슷한 처지다. 벤처자본은 대박 만 노리고, 정부 지원은 서류와 심사로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베어드 같은 발명가를 제대로 지원하는 생태계다.   베어드가 1931년 뉴욕에서 자신의 기계식 텔레비전 시스템을 시연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전파 상자 안의 한국 아이러니하게도 베어드가 만든 텔레비전은 오늘날 한국의 가장 강력한 문화 무기가 됐다. K-드라마는 전 세계를 사로잡았고,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 은 베어드가 상상도 못했을 방식으로 지구촌을 연결했다. 2021년 오징어 게임 시즌 1은 44개의 국제 상을 휩쓸었고, 첫 달에만 약 16억 5000만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 베어드가 1926년 프리스 스트리트 다락방에서 인형의 얼굴을 전송할 때, 그는 100년 뒤 서울에서 만들어진 드라마가 전 세계인을 울고 웃게 만들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의 기계식 텔레비전은 사라졌지만, 그가 열어젖힌 영상 혁명의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다. 결국 베어드의 이야기는 묻는다. 당신은 실패를 두려워하는가? 폐품 더미에서도 혁신을 볼 수 있는가? 최초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세상을 바꿀 꿈을 포기하지 않았는가? 오늘의 한국이 진짜 혁신 국가가 되려면, 베어드 같은 괴짜들이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다락방에서, 작은 사무실에서 끈질긴 집념만 있다면, 다음 텔레비전 은 바로 여기, 한국에서 탄생할 수도 있다. 베어드는 빈털터리로 죽었지만, 그의 꿈은 영원하다. 그리고 그 꿈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다락방에서 조용히 싹트고 있을지 모른다.   이 패디 네이스미스의 실사 영상은 베어드 사의 첫 번째 완전 전자식 컬러 텔레비전 시스템을 시연하는 데 사용되었는데, 이 시스템은 두 개의 프로젝션 CRT를 사용했다. 두 가지 색상으로 표현된 영상은 이후 텔레크롬 시스템과 유사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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