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CSRD 의무공시 1100개 보고서 분석... 10-K 닮아가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럽연합(EU)의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이 본격 적용되면서 기업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성격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과거의 화려한 홍보물 형태에서 벗어나 딱딱한 재무제표인 10-K(미 상장사 연례보고서)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미디어 트렐리스는 10일(현지시각) 지속가능성 보고 내비게이터(Sustainability Reporting Navigator)에서 1100건 이상의 CSRD 보고서를 분석한 쾰른대 재무회계 전공 막사밀리안 뮐러(Maximilian Mueller) 교수팀의 분석 결과를 이같이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의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이 본격 적용되면서 기업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과거의 화려한 홍보물 형태에서 벗어나 딱딱한 재무제표인 10-K(미 상장사 연례보고서)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챗GPT 생성이미지
홍보형 보고서에서 ‘10-K형 규제 문서’로 변화
분석 결과에 따르면, CSRD 보고서들은 이전보다 분량이 약 30% 가량 늘어났다. 반면 어조는 훨씬 신중해졌으며, 과거에 흔히 볼 수 있었던 긍정적인 수식어나 미래 지향적인 스토리텔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뮐러 교수는 미국 증권보고서인 10-K와 비슷해졌다 고 평가했다.
이같은 변화의 핵심 원인은 강력한 처벌 규정이다. 과거 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는 온실가스 프로토콜(GHG Protocol) 같은 가이드라인을 따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자발적 참여에 가까웠다. 기업은 배출 강도 같은 자체 지표를 만들고 강조할 항목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CSRD는 법적 의무 공시 체계이기 때문에 회원국들은 독자적인 처벌 규정을 마련 중이다. 독일의 경우 규정 위반 시 최대 1000만유로(약 145억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기업들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 이른바 빅4로 불리는 글로벌 회계법인인 PwC, KPMG, EY, 딜로이트(Deloitte)에 제3자 검증을 맡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현재는 재무보고의 ‘합리적 보증(reasonable assurance)’보다 완화된 ‘제한적 보증(limited assurance)’ 수준이지만, 규제 당국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전문 회계인력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표준화 강화로 기업 간 비교는 쉬워졌다
특히 가장 큰 변화는 데이터 비교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기업마다 자체적인 핵심성과지표(KPI) 를 설정해, 동일 산업 내에서도 성과 비교가 어려웠다. 그러나 CSRD는 공통 지표 중심 보고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기업 운영의 에너지 집약도 같은 지표를 동일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됐다.
뮐러는 이제는 기업 간 진정한 벤치마킹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데이터 활용 측면에서는 아직 한계가 있다. 현재 기업들은 보고서를 공개해야 하지만, 데이터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디지털 형식으로 제출할 의무는 없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비교하려면 여전히 상당한 수작업이 필요하다. EU 집행위원회는 향후 디지털 분류 체계(택소노미)를 확정해 데이터 구조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기업들, 지속가능성 데이터 ‘재작성’ 늘어
전문가들은 이번 변화가 단순히 보고서 형식을 바꾸는 것을 넘어 데이터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규제 준수를 위해 과거에 사용하던 불확실한 지속가능성 데이터들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거나 재작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뮐러는 이를 환영할 만한 데이터 품질 개선”이라고 평가했다. 표준화된 지표와 외부 검증 요구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이 기존 수치를 다시 검토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CSRD만의 영향은 아니다. 배출량 계산 기준 자체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온실가스 프로토콜(GHG Protocol)은 최근 토지 부문 배출 가이드라인을 새로 발표했다.
또 공급망 전체의 배출량인 스코프 3(Scope 3) 데이터의 경우, 과거에는 업계 평균치를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공급업체로부터 직접 받은 1차 데이터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뮐러 교수는 표준화된 데이터와 엄격한 검증은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수치를 다시 쓰게 만들고 있다 며 이는 환경 데이터의 신뢰도를 높이는 환영할 만한 품질 개선 이라고 덧붙였다.
스토리텔링 포기 못 해 ... 바이엘 등은 보고서 쪼개기 전략
CSRD로 인해 기업의 자유로운 스토리텔링이 줄어들자 일부 기업들은 보고서를 여러 개로 나누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자사의 지속가능성 성과를 매력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독일 제약·화학 기업 바이엘(XETRA: BAYN)은 2025년 연례보고서에 CSRD 기준 데이터를 포함하면서도 별도의 영향 보고서(Impact Report)를 발간해 기존 지속가능성 스토리를 유지했다. 또한 지속가능성회계기준위원회(SASB),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 태스크포스(TCFD),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정(SFDR) 등 다양한 글로벌 기준에 맞춘 추가 보고서를 각각 짧게 별도로 공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CSRD가 글로벌 ESG 공시 규제 강화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규제 중심 공시 체계가 확산될 경우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는 점차 ‘홍보 문서’에서 ‘재무 공시 수준의 규제 문서’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