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받는 이들 편에 선 시민 지식인과 시민 종교인 [사람들]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시민 종교인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독자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역사학자 백승종 교수가 주창해온 시민 지식인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시민 종교인이라는 단어를 착안해냈다. 시민 지식인은 누구이고, 시민 종교인은 누구인가. 시민 종교인이라는 용어를 왜, 무엇을 위해 쓰려 하는가. 시민 지식인과 시민 종교인은 어떤 관계인가.
조선 시대의 평민 지식인은 누구였고, 우리 시대의 시민 지식인은 누구인가. 조선 시대의 평민 지식인과 우리 시대의 시민 지식인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백승종 교수의 생각을 우선 살펴보자.
조선 후기 권력에서 소외돼 민중 속으로 들어간 불만 지식인
조선 후기 성리학은 민생의 고통을 해결하기는커녕 권력 유지의 도구로 전락하였고, 지배층은 백성의 신음에 응답하기보다 사변적인 이기론과 예송 논쟁에 국력을 낭비했다. 임진왜란 이후 백성의 생계는 무너졌고, 조정의 조세 수탈은 더 가혹해졌다. 사회 안전망이었던 마을 공동체의 합의는 세도정치와 탐관오리의 탐욕으로 파괴되었고, 벼슬길이 막힌 선비들과 생존을 위협받는 농민들은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다.
17세기 이후 권력에서 소외된 지식인들은 과거 시험에 매달리지 않고 마을 단위의 두레와 조직에 깊이 파고 들어 농민들과 운명을 함께 했다. 서당 훈장, 지관, 의원 등을 맡으면서 전국을 유랑하는 비정규직 지식인이 되었던 그들은 조선 후기에 탄생한 불만 지식인이었고, 억눌린 사람들의 조직적인 저항으로 이어지는 불씨가 되었다.
18세기에 가난한 양반들이 지식을 팔기 시작했다. 평민과 여성과 천민도 글을 익히기 시작했고, 지식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해방의 도구가 되었다. 지식을 습득한 평민들은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유랑하며 비판적 사고를 전파했다. 특히, 평안도와 황해도 등 서북 지역에서 부당한 차별에 맞서 지식인들의 연대가 더욱 강회되었다.
비정규직 지식인으로 문화 투쟁의 선봉이 되다
마을마다 비정규직 지식인인 훈장이 대거 배출되었다. 당시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훈장들은 농민들의 의식에 변화의 필요성을 격려하는 문화 투쟁의 선봉이 되었다. 현실의 신분제는 여전히 강고했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차별의 질서가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평민 지식인은 유교 경전뿐 아니라 불교의 미륵 신앙과 서양의 천주교 소식까지 흡수하고 융합했다. 조선이라는 낡아빠진 정치 체제를 대체할 저항 이데올로기와 대안 이데올로기를 생산해냈던 평민 지식인들이 선택한 생존과 투쟁 방식은 비밀 결사였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준 구심점은 조선 왕조의 멸망을 예언한 『정감록』이라는 책이었다.
낡은 세상을 타파하려는 민중의 집단적인 갈망은 『정감록』에서 희망을 엿보았다. 『정감록』은 전쟁과 질병을 피할 수 있는 이상향인 ‘십승지 (十勝地)’를 제시하여 평민 지식인을 유랑으로 이끌었고, 바다 한가운데서 나타날 ‘해도진인 (海島眞人)’의 전설은 농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비밀 결사들은 『정감록』의 가르침에 따라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었고, 훗날 동학의 포접제라는 강력한 조직 체계의 밑거름이 되었다.
1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132주년 동학농민혁명기념식’에서 기념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2026.5.11. 연합뉴스
더 치명적 모순 정면으로 맞서는 이 시대의 시민 지식인
평민 지식인은 현재의 불의를 타파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예언서 형식을 빌려 표현했다.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이며 한반도에서 세상을 구할 힘이 나올 것이라는 평민 지식인의 신념은 서구 열강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려는 보국안민 정신으로 이어졌다. 19세기 후반, 평민 지식인의 갈망은 ‘동학’이라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폭발했다. 『정감록』의 비결이 동학이라는 종교를 만나 체계적인 대항 이데올로기가 탄생했다. 최제우의 순교는 평민 지식인들에게 투쟁의 정당성을 부여했고 민중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남겼다.
백승종 교수는 조선 시대의 평민 지식인을 계승하고 극복하는 우리 시대의 시민 지식인을 제안한다. 조선 후기의 위기보다 더 복잡하고 치명적이며, 지식은 자본과 기술에게 독점되고, 양극화와 차별은 더욱 일상화되고 있는 오늘, 시민 지식인은 사회 모순을 직시하고 대안을 실천하는 주체여야 한다. 시민 지식인은 국가주의와 성장 만능주의를 깨고 만물 평등의 생태적 가치를 최우선에 두며, 우리 식탁과 일터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바꾸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는 사람이다.
시민 지식인의 진정한 힘은 권력과의 유착이 아니라 소외된 자들과의 연대에서 온다. 우리 하나하나가 세상을 바꾸는 21세기의 시민 지식인이다. 불의한 세상을, 국물 맛을 모르는 어리석은 국자처럼, 멍하니 구경하며 살 수는 없다.
시민 지식인과 시민 종교인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동지
예수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편들었고, 억압하는 세력에게 저항했다. 예수처럼 억압받는 사람들을 편들고, 억압하는 세력에게 저항하는 사람은 누구나 시민 종교인이다. 예수 이름을 몰라도, 교회 성당에 다니지 않아도, 교회 성당에 발길이 뜸하더라도, 억압받는 사람들을 편들면서 억압하는 세력에게 저항하는 사람은 누구나 시민 종교인이다. 억압받는 사람들을 편들지 않고 억압하는 세력에게 저항하지 않는 종교인은 아직 시민 종교인은 아니다.
시민 지식인과 시민 종교인은 인류 공동의 집인 지구에서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시민 종교인과 시민 지식인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편들고 억압하는 세력에게 저항하는 길에서 든든한 동지가 된다.
우리 시대에 시민 지식인과 시민 종교인으로 누구를 우선 손꼽을 수 있을까. 2024년 12월 3일 계엄의 밤에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 촛불 집회와 남태령에 모인 청년들과 시민들, 6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민들레 주요 독자라고 밝힌 이재명 대통령을 시민 지식인과 시민 종교인의 훌륭한 모범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김근수 갈릴래아편지 mainzdo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