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잇의 전환이야기】전기차 ‘캐즘’은 없다…성장 궤도 오른 글로벌 시장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기차 산업을 둘러싼 시장의 가장 큰 오해는 ‘성장 둔화’다. 보조금 축소, 배터리 원자재 가격, 충전 인프라 문제 등은 흔히 전기차 캐즘(Chasm)의 신호로 해석되지만, IEA(국제에너지기구)의 ‘Global EV Outlook 2025’ 보고서는 그 반대의 그림을 제시한다.
‘둔화’ 아닌 ‘전환’…시장 주도 성장 본격화
2024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는 1700만 대를 넘어섰으며, 전체 신차 판매의 20%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2021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전기차가 이미 ‘조기 수용자’ 단계를 넘어 주류 시장에 안착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기차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는 국가는 단연 중국이다. 중국에서는 2024년 한 해 1100만 대 이상의 전기차가 판매되어 세계 시장의 약 3분의 2를 점유했다. 도시 중산층을 중심으로 전기차 보급률이 급격히 높아지며, 중국 내 승용차 판매의 절반이 전기차로 대체됐다.
전세계, 중국, 유럽, 미국의 전기차 등록 대수 변화/IEA
정부 보조금이 감소했음에도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17년 전체 전기차 시장의 약 20%에 해당하던 보조금 지원 규모는 2024년 7% 미만으로 축소됐다. 그럼에도 판매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시장이 이미 보조금 의존 단계를 벗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전기차가 배터리 가격 하락, 규모의 경제, 공급망 다변화 등을 통해 정책으로 만들어진 시장 에서 경제성으로 유지되는 시장 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유럽 주요국에서는 보조금 축소로 인해 성장세가 일시적으로 둔화되었다.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인센티브 종료로 판매량이 일시적으로 줄었으나, 여전히 판매 차량 5대 중 1대가 전기차로 나타났다. 미국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세제 혜택과 신모델 출시 효과에 힘입어, 2024년 전기차 점유율이 10%를 넘어섰다. 특히 중저가 세그먼트에서의 선택지가 급격히 늘어나며, 테슬라 중심 시장에서 브랜드 경쟁 시장으로 전환 중이다. 다만, 트럼프 정부하에서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이 줄어, 전기차 산업의 자생 가능성에 대한 시험 무대가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에서도 전기차 시장이 본격 성장하고 있다. 이들 지역의 전기차 판매 비율은 2023년 2.5%에서 2024년 4%로, 불과 1년 만에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낮은 제조 단가와 정책적 수출 지원, 현지 조립 확대 전략을 통해 가격 접근성을 크게 높인 중국 브랜드의 진출이 결정적이었다. IEA는 전기차의 확산은 선진국 중심 시장을 넘어 글로벌 대중 시장으로 확장되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태국,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전기차 등록 대수 변화/IEA
내연기관보다 싸졌지만, 초기 가격 격차는 여전히 과제
전기차의 연료비와 유지 관리비는 내연기관차(ICE)에 비해 현저히 낮으므로, 운행 기간 전체를 고려한 총소유비용(TCO, Total Cost of Ownership) 경쟁력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하지만 초기 구매 가격의 격차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전기차의 대중 확산 속도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IEA는 2024년 기준 글로벌 평균 배터리 팩 가격이 전년 대비 25% 이상 하락했다고 분석했으며, 이는 차량 제조원가와 소비자 가격 인하로 이어졌다. 그러나 국가별·제조사별 가격 전략 차이로 인해 하락 폭은 균등하지 않았다. 중국은 중형 SUV 배터리 팩 가격이 30% 하락하고 차량 가격은 평균 10% 인하됐다. 미국은 배터리 가격이 15% 하락했지만 차량 가격은 3% 감소에 그쳤다. 독일은 배터리 가격이 20% 하락했음에도 프리미엄 SUV의 판매 가격은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결론적으로, 배터리 기술 발전이 비용 절감을 견인하고 있음에도 각국 시장의 가격 정책과 브랜드 포지셔닝이 소비자 체감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이 드러난다.
전기차의 실질적 보급 속도는 중저가 모델의 공급 수준에 달려 있다. 중국은 내연기관차와 유사한 가격대의 순수 전기차(BEV) 모델이 전체의 약 40%에 달하며, 실제 판매가격(중간값) 또한 ICE보다 낮은 수준으로 형성됐다. 특히 소형차 부문에서는 2024년 기준 95% 이상이 전기차로 대체되어, 사실상 완전한 전환이 이루어졌다.
중국, 미국, 독일의 전기차 가격 변화/IEA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중저가 BEV·PHEV 모델이 여전히 부족하다. 3만 달러(약 4300만원) 미만의 BEV는 전체 모델 중 미국 3%, 유럽 5% 미만에 불과하며, 대다수 신형 모델은 5만 달러(약 7200만원) 이상의 프리미엄 차량 중심으로 출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전기차 구매가 가능한 소비자층이 여전히 중상위 소득계층에 집중되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SUV 세그먼트에서는 2023~2024년 사이 전기 SUV 가격 프리미엄이 약 25% 감소했다. 이는 테슬라의 공격적인 가격 인하 정책이 시장 전반의 가격 조정을 유도한 결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여전히 실질적 중저가 SUV 모델은 부족하며, IEA는 중산층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한 가격대 모델 확대가 전기차 대중화의 핵심 과제라고 분석했다.
전기차 확장의 본질은 ‘효율’…에너지 구조를 바꾼 기술 혁신
전기차(EV)의 확장은 단순히 보조금이나 정책의 결과로만 볼 수 없다. 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에너지 효율에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ICE) 대비 에너지 변환 효율이 3~4배 높다. 즉, 동일한 주행거리(1km)를 이동하기 위해 필요한 1차 에너지(석유·전력) 투입량이 내연기관보다 현저히 적다.
내연기관 차량은 원유 시추부터 차량 구동까지(Well-to-Wheel)의 전체 과정에서 에너지의 약 75~80%를 열로 낭비하게 된다. 즉, 연료 100단위 중 실제 차량 구동에 쓰이는 에너지는 20~25%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열 및 배기 손실로 사라진다. 이 구조적 비효율이 바로 내연기관의 한계이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차의 에너지 효율 비교/Veza et. al(2023)
전기차의 경우, 에너지 변환 구조는 다음 단계를 거친다. 1차 에너지(석탄·가스·원전)→발전소에서 전기 생산 (효율 약 40%)→송전·배전 (손실 약 5~8%)→배터리 충전(90% 효율) →전기모터 구동(85~90% 효율)이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고려하면, 전기차의 전체 효율은 약 30~35% 수준에 이른다. 즉, 1차 에너지원 단계부터 차량 구동까지 포함하고, 동일한 화석연료로 전력을 생산한다고 가정해도 전기차는 내연기관(20~25%)보다 여전히 약 1.5~2배 효율적이다. 만약 1차 에너지원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면, 70% 이상의 훨씬 더 높은 에너지 효율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의 가장 큰 강점은 단순히 배출이 없다 는 점을 넘어, 덜 쓰고도 더 멀리 가는 구조 에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가 곧 탄소 배출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은 주행 과정에서 연료의 70% 이상을 열로 낭비하지만, 전기차는 투입된 전력의 대부분을 실제 구동에 사용한다. 이 차이는 단위 주행거리당 탄소 배출량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자동차 연료원별 수명주기 온실가스 배출량/Negri & Bieker 2025
같은 거리를 주행하더라도, 전기차는 내연기관 대비 약 70% 이상 적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이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도 70% 이상 낮다. 전력 생산 과정에 일부 배출이 포함될 수 있지만, 전력망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그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즉, 전기차의 에너지 효율 향상은 단순한 기술 개선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에너지 수지(balance)를 재편하는 구조적 변화다. 교통 부문은 그동안 대부분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에너지 소비 영역이었으나, 전기차의 확산은 이 부문을 전력 체계로 편입시키면서 국가 전체 에너지 소비 구조의 효율화 전환 을 촉발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산업 전반의 탄소 집약도(Carbon Intensity)를 극적으로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동일한 생산·운송·소비 활동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에너지 투입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기차의 확산은 단순히 친환경 기술의 채택 이 아니라, 에너지 시스템 효율화라는 경제 구조의 진화 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기차의 적극적 활용은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단순한 수송 수단의 대체재 를 넘어, 시스템적 해법(systemic solution)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2025년 2000만 대 돌파… 캐즘은 없다”
IEA는 2025년 전기차 판매가 2000만 대를 돌파하고 전체 자동차 판매의 25%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단기적인 둔화가 아닌, 정책 의존 성장 에서 시장 주도 성장 으로의 전환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경쟁은 심화되고 보조금이 줄어도 전기차 시장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전기차 시장의 캐즘 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환은 이미 이루어졌으며, 지금 남은 과제는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넓게 확산할 것인가 이다. 이는 정부 지원보다는 시장의 선택이 만들어낸 변곡점이며, 글로벌 산업 구조가 친환경으로 재편되는 전환의 한가운데에서 전기차는 더 이상 실험이 아닌, 현실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 홍상현 대표는
홍상현 대표는 에너지 전문가로, 2024년 에너지 정책 연구기관인 플랜잇(PLANiT)을 공동설립했다. 플랜잇은 전환 경로를 식별하는 모델 기반의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정량적 연구 기관이다. 홍 대표는 세계대학평가 상위 1%의 명문대학인 호주 애들레이드 대학교에서 에너지 정책 분석 모델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영국 버밍엄대 연구소, 호주 태즈매니아대, 싱가포르의 난양기술대학 등의 국내외 유수 연구기관에서 경험을 쌓았다. 특히 에너지 시장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분야의 선도적인 글로벌 공급업체인 에너지 이그젬플러(Energy Exemplar)에서 에너지 시장 선임 애널리스트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