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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패배, 다시 찾아온 어둠…콜롬비아 대선의 교훈
[뉴스]
콜롬비아의 역사는 피와 폭력, 억압받는 이들의 투쟁으로 뒤덮여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국가와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간의 내전은 60년간 최소 30만 명의 사망자, 10만 이상의 실종자, 700만에 달하는 국내 실향민을 낳았다. 이 잔혹한 현대사 속에서 정치 권력은 줄곧 소수의 보수적 엘리트와 대지주, 과두 지배층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나마 2016년 FARC와의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2019년과 2021년의 대규모 민중 항쟁으로 변화가 시작됐다. 당시 우파 이반 두케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긴축 재정과 평화협정 파기 시도, 정치 테러에 맞서 청년과 노동자, 원주민 공동체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 거대한 저항의 에너지를 기반으로 2022년, 콜롬비아 역사상 최초의 좌파 정권이 등장했다. 구스타보 페트로 정부의 집권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우파 독점 체제를 깨부순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라틴아메리카 진보 물결의 일부였고 그것을 다시 강화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이스라엘 이라고 불릴 만큼 미국의 영향력이 큰 나라여서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26년 6월, 콜롬비아는 또다시 뼈아픈 역사적 좌절을 마주하고 있다. 페트로 정권의 4년은 기득권의 거센 저항 속에서 진보적 가치를 제도화하려 했던 치열한 시간이었다. 페트로 정권은 의회 내 소수파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민중의 직접적인 동원과 풀뿌리 조직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재명 정부와 비슷하게 내각 회의를 생중계하고,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지역 주민 평의회에 직접 배정하는 파격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이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9.23 [EPA=연합뉴스] 2025년 말에는 최저임금을 23%나 인상하는 과감한 조치를 단행했고, 만연했던 기아와 빈곤율, 사회적 불평등을 의미 있게 감소시키는 성과도 거두었다. 국제 무대에서 페트로 대통령이 보여준 반제국주의와 반전 평화 행보도 눈부셨다. 그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에 대해 전 세계 그 어느 지도자보다 단호한 반대 목소리를 냈다. 팔레스타인 민중과 연대하기 위해 국제적인 연대체인 헤이그 그룹(Hague Group) 결성을 주도하는 등 글로벌 진보 전선을 구축하는 데 앞장섰다. 유엔(UN) 총회 연설에서는 트럼프와 미국 제국주의에 직격탄을 날렸다. 트럼프는 가자지구의 어린아이들, 청년들, 여성들, 노인들에게 미사일을 발사하도록 허용합니다. 그는 집단학살의 공범입니다. 그것은 집단학살이고, 우리는 그것을 몇 번이고 외쳐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의 저항은 집요하고 조직적이었다. 사법부와 검찰 등 보수 세력이 장악한 국가 기구는 페트로 정부를 사사건건 가로막았고, 대통령의 아들까지 무리하게 엮어 부정부패 사건과 사법 리스크 를 만들어냈다. 한국의 우리에게도 익숙한,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히고 국정 운영을 마비시키는 연성 쿠데타 시도였다. 거대 언론 카르텔 역시 철저하게 이 기득권 세력의 편에 서서, 왜곡 보도와 무차별적인 마녀사냥으로 페트로 정권을 공격하며 대중의 불신을 조장했다. 군부와 우익 진영의 비협조 속에서 내전 종식 평화협정 도 난항을 겪었다. 오히려 무장 조직들의 잔혹 행위와 폭력이 다시금 고개를 들면서, 대중은 피로감과 좌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콜롬비아의 좌파 대통령 후보 이반 세페다가 16일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6.16 [EPA=연합뉴스] 소수파로서 의회에서 교착 상태를 돌파하기 위한 제헌의회 소집 시도도 실패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우익 진영이 좌파 정권이 독재를 시도한다 는 프레임을 짜기 좋은 빌미가 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 2026년 대선은 콜롬비아 사회의 극단적인 양극화와 기존의 보수 우파를 넘어선 극우 신파시스트 세력의 급성장을 보여주었다. 지난 5월 31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 역사적 동맹 (Pacto Histórico)이 내세운 후보이자 페트로 정권의 계승자인 인권 운동가 출신의 정치인 이반 세페다는 극우 성향의 백만장자 출신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에게 선두를 내주었다. 호랑이 라는 별명의 에스프리에야는 신생 조직인 조국의 수호자들(Defensores de la Patria) 을 이끌며 돌풍을 일으켰다. 대지주와 기업주들의 지지를 받던 전통적 우파 후보 팔로마 발렌시아가 불과 6.9%의 득표율로 참패한 반면, 에스프리에야는 43.72%를 얻어서 40.92%에 그친 세페다를 제쳤다. 6월 21일 치러진 결선 투표의 결과는 더 안타깝다. 에스프리에야가 49.66%, 세페다가 48.70%를 득표하며, 불과 1%p 미만의 차이로 극우 정권의 탄생이 확정되었다. 투표율이 콜롬비아 역사상 최고 수준인 64%에 육박할 정도로 양 진영의 지지층이 총동원된 싸움이었다. 이 극우의 승리는 철저히 대중의 불안과 감정을 파고든 포퓰리즘 전략의 승리였다. 세페다 후보가 정책과 공약을 차분히 설명하는 동안, 에스프리에야는 트럼프를 흉내 내며 소셜 미디어를 장악했다. 그는 자신의 엄청난 부를 과시하며 대중에게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 는 환상을 심어주었고, 치안 불안에 시달리는 대중에게 무자비한 철권을 통한 범죄 척결 을 약속했다. 페트로 정권이 마약 카르텔과 뒷거래를 한다는 가짜 뉴스도 퍼뜨리며 평화 협상 을 야합 으로 매도하는 자극적인 악선동이 합리적인 정책 토론을 대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서 콜롬비아 극우 후보의 당선을 기뻐하고 있다  이번 대선 결과는 피비린내 나는 물리적 테러와 미국 트럼프 정권의 노골적이고 초법적인 선거 개입, 그리고 초국적 가짜 뉴스 카르텔이 결합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과 그에 앞서 진행된 총선을 앞두고 콜롬비아 전역에서는 수많은 진보적 정치인, 지역 활동가,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노린 암살과 정치 테러가 연이어 벌어졌다. 이 기획된 피의 공세는 농촌과 변방 지역의 치안을 극도로 악화시켰고, 페트로 정권을 치안 무능 이라는 궁지로 몰아넣었다. 결과적으로 진보 세력의 풀뿌리 선거 운동망은 심각하게 위축되었으며, 유권자들에게 심어진 적개심과 공포심은 선거 지형을 우파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으로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라틴아메리카를 다시 미국의 뒷마당으로 만들겠다는 이른바 먼로주의(Monroe Doctrine) 를 전면화하며 선거에 깊숙이 개입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SNS에 에스프리에야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글을 올리며, 세페다 후보를 과격 좌파 마르크스주의자 로 낙인찍었다. 미국 대사관이 이 게시물을 공유했다. 미국 국무부는 세페다 후보 지지자들의 비자를 취소하겠다는 협박까지 했고, 심지어 세페다를 지지한 콜롬비아 출신의 저널리스트가 미국 국토안보부(DHS) 요원들에 의해 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압박은 미국 내 콜롬비아 해외 투표소에서 에스프리에야가 몰표를 얻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여기에 더해 조직적인 가짜 뉴스 폭탄이 소셜 미디어 규제가 부족한 콜롬비아 사이버 공간을 도배했다. 페트로와 세페다가 범죄 조직 및 게릴라와 연계되어 있다는 악의적인 가짜 뉴스가 극우의 미디어 전략을 통해 대량 유포되었다. 수십 년간 반복돼 온 우파의 표 매수 행위도 여전했고, 극우적 준군사조직들은 에스프리에야를 공개 지지했다. 무능하고 불공정한 콜롬비아의 선거관리 시스템과 사설 보안 기업이 독점한 개표 시스템은 부정선거 의혹을 증폭시켰으며, 페트로 대통령은 검증 불가능한 우파 지지표가 80만 표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극우 신파시스트 정권의 등장으로 콜롬비아는 잔혹한 폭력과 극단적인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던 어두운 구렁텅이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새 정권은 공공 지출을 40%나 삭감하여 페트로 정부가 이룩한 사회적 성과와 복지 제도를 완전히 해체하겠다고 선언했다. 건강보험 민영화와 금융 자본을 위한 규제 완화가 기다리고 있다. 치안 분야에서는 모든 평화 협상을 중단하고, 과거 피비린내가 나던 대게릴라 군사 작전 노선으로의 회귀를 선포했다. 마약 재배를 근절하겠다며 맹독성 제초제를 공중 살포하겠다는 계획은 농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농촌 지역의 폭력적 갈등을 더욱 격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또한, 페트로 정권의 성과였던 화석연료 탐사 금지 등 친환경 정책을 폐기하고, 환경 파괴적인 무분별한 자원 약탈 정책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콜롬비아 무소속 대통령 후보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가 12일 콜롬비아 칼리에서 자신의 러닝메이트를 소개하는 행사에서 기자들에게 발언하며 손짓하고 있다. 2026.3.12 [AP=연합뉴스] 그러나 에스프리에야의 극단적인 계획이 뜻대로만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록 대선에서는 패배했지만, 콜롬비아 진보 좌파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조직적 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진보와 좌파 세력이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된 역사적 동맹 은 현재 의회 내에서 단일 정당으로는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지게 됐다. 반면 에스프리에야의 정당인 조국의 수호자들 은 상원에 단 4석만을 가진, 사실상 대통령 개인의 인기에 기반한 빈 껍데기 정당일 뿐이다. 에스프리에야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기성 보수 우파와 권력 나눠먹기식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그의 아웃사이더 이미지를 스스로 갉아먹는 문제가 있다.(이것도 윤석열이 국민의힘과 손을 잡은 것과 비슷하다.) 진짜 저항은 거리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2021년 좌파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던 콜롬비아 민중의 거대한 정치적 역량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번에 세페다 후보가 얻은 표는 4년 전 페트로보다 150만 표가 늘어난 수치다. 극우 정권이 복지 삭감과 환경 파괴를 강행할 경우, 콜롬비아는 또다시 거대한 민중 저항의 불길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앞서 보았듯이, 콜롬비아 페트로 정권의 경험과 대선 결과는 한국 정치 상황과 유사점이 많고, 교훈을 던져주는 면이 있다. 첫째, 대중의 실망과 피로를 먹고 자라는 극우 포퓰리즘 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진보나 개혁 정권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 실망한 대중의 일부는 언제든 가장 극단적인 우익의 선동에 이끌릴 수 있다. 둘째, 뉴미디어 환경에서의 디지털 신극우 에 대한 강력한 대응의 중요성이다. 콜롬비아 대선은 자극적인 혐오를 생산하는 극우의 소셜 미디어 전략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국의 극우 역시 사이버 공간을 중심으로 극단적인 혐오 프레임과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응을 소홀히 한다면 순식간에 많은 청년들이 그것에 넘어갈 수 있다. 셋째, 극우에 맞서는 연대와 통합의 필요성이다. 콜롬비아의 진보 좌파는 노선 차이나 정파적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기득권과 극우에 맞서기 위해 역사적 동맹 이라는 거대한 정치세력으로 단일화를 이루었다. 물론 이런 연대의 형태와 방식은 다양할 수 있고, 상층 연합에 매몰되지 않고 노동 현장과 지역 공동체의 풀뿌리로 이어져야 진정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넷째, 국제적 극우 네트워크의 위험성과 대응의 중요성이다. 콜롬비아 민중은 미국의 트럼프와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콜롬비아의 에스프리에야로 이어지는 글로벌 극우 연대의 공세에 노출돼 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극우에 맞서서 진보 진영 역시 국경을 넘어선 국제적 연대와 지지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전지윤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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